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53)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55화(355/385)
갱스터, 총, 그리고 전쟁. -3-
#
양키스 주전 포수 시오도어 오닐은 공격형 포수로 분류되는 선수다. 데뷔 초에는 방망이만 쓸만하고 포수로는 영 꽝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뼈를 깎는 노력으로 수비력도 평균 정도는 되는 포수.
어떤 사람들은 시오도어 오닐이 쓸모없이 크기만 한 근육을 가지고 있어 재빠르게 움직이기 힘들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본인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근육을 만드는 이유? 빌어먹을. 달려드는 주자의 턱주가리를 반대편 펜스에 꽂아버리기 위해서지.”
물론, 홈에서의 충돌은 금지되어 있다. 시오도어 오닐은 그냥 근육을 타고난 체질인데, 본인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좋아할 뿐이다. 근육의 크기 때문에 약물 의혹을 받은 선수 중 하나이기에, 본인의 결백함을 증명하려고 도핑 테스트에 적극적으로 응하는 선수이기도 했다.
요새 시오도어 오닐은 조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헤이. 못 던지는 공이 있긴 해?”
혼란스러운 이유는 강건우였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구종을 구사한다. 그것도, 그냥 던질 줄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공이 무척 위력적이다.
심지어 에이스인 데인 크리스티안의 주 무기가 싱킹 패스트볼인데, 입 밖으로 내진 못 하지만 강건우의 싱커가 더 위력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강건우는 시오도어 오닐의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자이로볼은 못 던져.”
문제는 여러 가지다. 저 친구는 체인지업을 던질 때도 서너 가지를 던지고, 포심도 구속을 제멋대로 조절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시오도어 오닐은 수비보다는 타격에 훨씬 자신 있는 포수였다. 포심 싸인이 나갔는데 투수 마음대로 90마일(144km/h 가량)을 던졌다가, 다음 포심 싸인에서 105마일(168km/h가량)이 나오면 깔끔하게 잡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냥 구속이나 세부 구종을 하나로 통일하는 건 어때?”
시오도어 오닐의 말에 강건우는 씩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처음엔 좀 헷갈릴 수도 있는데, 너라면 잘 잡아낼 수 있을 거야. 그보다는, 싸인을 이중으로 정하면 되잖아.”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냥 자기가 헷갈리진 않을까 걱정될 뿐.
크리스티안이 1선발을 맡을지 저 친구가 1선발을 맡을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당연히 크리스티안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훈련에서 지켜본 결과 확실히 저 친구라고 생각했다.
그거야 감독이 정할 일이긴 하다. 게다가 투타 겸업을 한다고 하니 체력적인 문제도 고려해야 할 테고.
지난 시즌 양키스는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진출하긴 했지만, 스토브리그에서 선발 투수 셋을 잃었다. 따지고 보면 큰 손해는 아니었다. 그 세 선수가 썩 잘한다고 보긴 힘들었으니까. 애당초 타격의 힘으로 거기까지 간 것이다.
데인 크리스티안과 루돌프 파울리에 강건우, 그리고 김권종.
나머지 한 자리는 저기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는 마이너리거 중 한 명이 차지하게 될 것이다.
이런 건 항상 있는 일이다. 여기서는 모두가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그래도 작년보다 투수진은 나아질 것 같았다. 강건우뿐만 아니라 김권종도 이 바닥에서 검증된 투수다.
수시로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쫓아가느라 진이 다 빠지는 세 종류의 슬라이더를 던지긴 하지만.
외야와 내야에서도 보강이 있긴 했는데, 가장 굵직한 영입은 저 두 명의 한국인이었다.
팬들은 조금 불만이 있는 것 같긴 했다. 강건우는 완벽하게 검증된 자원이 아니고, 김권종은 확실한 1선발급이라고 보기엔 조금 모호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아무튼, 이번 시즌은 꽤 느낌이 좋았다. 괜찮을 것 같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시범경기가 끝날 때쯤.
강건우는 때때로 마운드에 올라 가끔 맞긴 했지만 미국 야구 팬들의 생각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변화구보다는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위주로 구사하면서도 시범경기 타자들을 우습게 만들었고, 타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점검 차원에서 멀티 포지션을 소화하기도 했는데, 모든 위치에서 정상급의 적응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월드시리즈 우승이 다가온다!]└벌써?
└Gang을 보고도 벌써냐는 질문이 나와?
└시범경기잖아.
└솔직히 난 별로 마음에 안 들어.
└인종차별주의자 자식, 반드시 죽어버려라.
└난 피부색 이야기는 한마디도 안 했어.
└보나 마나 KKK단이겠지.
└Fuck.
김권종도 꽤 여유 있었다. 벌써 메이저리그 5년 차다. 게다가 정유리와 함께 체인지업을 가다듬어 우타자에 대한 경쟁력도 확보했다.
양키스 선수들은 거의 처음 보는 강건우는 그렇다 치고, 김권종은 알고 있다.
우타자에게 크로스 파이어로 던지는 슬라이더의 제구가 안 되면 어려움을 겪곤 했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몇 주 만에 체인지업이 업그레이드되었고, 시범경기에서 내로라하는 우타자들에게 먹히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렇기에, 정유리 퀄리티 컨트롤 코치의 위상도 그럭저럭 올라오고 있었다. 코치진 사이에서 정유리에 대한 의구심이 있긴 했지만, 정유리는 모든 영역을 아주 적당한 깊이로 파고들면서 자기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냈다.
각자 다른 훈련 방식을 적절히 혼합하는 법을 알았고, SMC를 비롯한 첨단 장비의 활용과 데이터 추철에도 능했다.
“오늘은 어땠어?”
강건우의 말에 정유리는 침대에 몸을 푹 던지면서 대답했다.
“빡세.”
“많이 힘들어?”
“그래도 재밌어.”
“애들은 말 잘 듣고?”
정유리가 깔깔 웃었다.
“양키스 선수들이 애야?”
“다 좀 애 같지 않아?”
“건우 너처럼?”
“난 어른이지.”
“누가? 어른 강건우가 또 있는지는 몰랐는데?”
“어른 강건우 한 번 보여줘?”
강건우가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짓자 다시 웃은 정유리는, 자기 옆에 누운 강건우를 꼭 끌어안고는 말했다.
“개막전 선발로 나갈 거 같은데, 기분이 어때?”
강건우는 또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그냥 뭐 그렇구나?”
정유리는 강건우가 여기서도 잘 해낼 거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뭔가 오션스에서 뛸 때와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에 대한 태도는 다르지 않다. 그냥, 뭐라고 해야 하나.
“건우, 너 오션스 되게 좋아했었나 보다?”
“내가 그랬나?”
정유리가 밝게 웃었다.
“언제든지 돌아가고 싶으면 돌아가자.”
“왜?”
“여기서 뛰는 거 별로 재미없어 보여.”
사실, 어이없는 소리 같긴 했지만, 정말 그렇게 느껴져서. 강건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뭐 그렇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생각들과 또 다른 생각들이 조금 겹치긴 했다.
즐길 거리라곤 시범경기에서 만난 민승기와 정조준 정도라고 해야 하나. 게다가 삶의 낙이었던 다움이랑 놀아주기도 잘 못 했으니.
“그냥, 누나가 바빠서 나랑 못 놀아주니까 그래.”
어처구니없는 대답에 정유리는 웃었다. 그리고 강건우의 머리를 안아주며 말했다.
“그래서 어른 강건우는 어딨다고?”
#
시범경기에서 정조준은 강건우에게 삼진을 당했고, 민승기는 홈런을 맞았다.
하지만 ‘시범경기’라는 명목하에, 그건 잊히기 마련이다. 내일이면 강건우가 시범경기에서 보여준 좋은 모습은 별개의 일이 된다.
그건 바로 정규 시즌이 시작된다는 의미였다.
메이저리그 30개 팀은 각자 준비를 마쳤다. 어딘가에는 준비가 덜 된 팀도 있을 테지만, 어찌 됐거나 주사위가 던져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데인 크리스티안은 두 번째 경기에서 선발로 나서게 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조금 자존심이 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자네가 부족하다는 게 아니야. 그리고 갱이 한국에서 내 선수였다고 해서 그를 억지로 스타로 만들려는 것도 아니고. 이건 내 일이야. 감독은 선택하는 직업이고, 나는 양키스 감독 데뷔전을 준비하면서 가장 준비가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선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자네가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물론 자네도 열심히 준비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말이야.”
본인이 보기에도 강건우가 더 좋아 보인다. 억지로 우기는 것이 더 자존심 상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양키스는 전통을 중요시하고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다고 공식적으로 말하는 팀이다. 양키스는 미국 프로 스포츠 전체에서 유일하게 유니폼 뒤에 선수 이름이 없는 팀이기도 하다.
물론, 그건 조금 끼워 맞춘 이유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감독의 결정에 반기를 들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내심 이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나 없이 얼마나 잘 하는지 보자고.’
강건우라는 선수가 싫거나, 감독을 증오하는 건 아니었다. 그냥 당연히 개막전에는 자기가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
강건우의 실력도 인정한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는 새파란 신인 아닌가.
만약 홈 개막전에서 지고 다음 날 경기에서 자신이 팀을 승리로 이끈다면 다시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팀이 반드시 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조금의 자존심. 그리고, 훈련이나 시범경기와 메이저리그에서의 실전은 다를 거라는 약간의 고집.
개막전이 열리기 전날 밤이었다.
#
정유리는 개막전 선발로 나서게 된 강건우가 긴장이라도 할까 봐 굉장히 조심스럽게 행동했지만, 강건우는 다움이를 재우고 평소처럼 잠들었다.
오히려 잠을 설친 것은 본인이었다. 사실, 며칠 일찍 시작된 KBO 리그의 오션스 경기를 보긴 했지만.
오션스는 첫 4경기에서 2승 2패를 기록했다. 오션스의 장수 외국인 투수가 된 호세 킹이 개막전에서 승리를 거뒀고, 새 외국인 투수는 다음 경기에서 패배. FA로 영입한 최철이 6.2이닝 2실점에도 패전투수가 되고 이훈이 8이닝 1실점 호투로 승리를 거뒀다.
확실히 강건우가 없으니 타선의 무게가 다르다. 오션스가 우승하는 모습을 원 없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혹시나 연속 우승이 끊기면 어쩌나 걱정하는 자신을 보고 웃었다.
아침에 일어나 평소처럼 가볍게 운동하고 다움이와 놀아주는 남편을 본 정유리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진짜 얼마나 강심장인 거야?’
지금까지 강건우가 긴장한 모습을 본 적이 있기나 했던가. 굳이 떠올려 보자면…
‘2년 차 코시에 아주 약간, 음. 또 없나?’
어쨌거나.
강건우는 다움이한테 경기를 보러 와달라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하며 웃었다. 현수는 무슨 일인지 꽤 철든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애를 잘 케어하고 있다. 베이비시터가 따로 있고 집의 일을 도와주는 사람도 2명 정도 고용했지만 그래도 불안하긴 하다.
둘은 집을 나섰다.
미국에서의 운전은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이제 꽤 익숙해졌다. 한국에서 타던 허머를 그대로 가져왔는데, 혹시 모른다고 차 유리를 방탄유리로 교체했다. 방탄 유리 누나 같은 실없는 농담을 하면서.
양키 스타디움은 꽤 웅장하게 느껴진다. 여기저기서 들리는 영어 사이에서 한국어가 들리는 것 같고, 자기도 모르게 마른 침을 꼴깍 삼키기도 했다.
“누나. 긴장했어?”
“응? 아니?”
강건우가 정유리를 폭 안아주며 웃었다.
“걱정하지 마. 잘 할 거니까.”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 그래. 얘가 있는데 뭐가 걱정이겠어.
인생이 꽤 스펙타클하다. 이렇게 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 행복하다는 것이다. 정유리는 품에 안긴 채 헤실헤실 웃다가 강건우의 엉덩이를 팡 소리 나게 때렸다.
팀 분위기가 조금 어수선했다. 아무래도 개막전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날카롭거나 긴장한 모습들이 보인다. 차라리 이게 조금 안심이 되는 느낌이었다. 강건우 옆에 있으니 이게 메이저리그 개막전이자 데뷔전인지 KBO 시범경기인지 구분이 안 가는 것 같았다.
구장 관리인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클러비들이 부산하게 움직인다. 선수 하나는 시범 경기 때와는 다르게 날카롭게 굴었고, 시오도어 오닐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무언가 박살 나는 걸 볼 뻔했다.
팬들이 들어차고, 준비가 마무리되어 간다.
양키 스타디움 전광판에 선수 명단이 뜨자, 이제야 조금 실감이 났다.
[YANKEES]CF ADELMAN 0.322
RF KORPAL 0.287
1B GOMEZ 0.311
SP GANG 0.000
3B NELSON 0.308
C O’Neill 0.269
LF RONALD 0.258
SS HENSEN 0.249
2B FERRER 0.272
영어로 쓰여진 전광판에서 이게 확실히 KBO가 아니라 MLB라는 것이 느껴진다.
강건우의 이름이 확 튄다. Gang이라니. 진짜 갱스터같잖아.
게다가 지난 시즌의 타율이 표기된 다른 선수들과는 달리, 강건우 혼자 0.000으로 표기되어 있다.
네가 한국에서 뭘 했건, 어떤 선수였건 관계 없이 여기는 메이저리그니까 그냥 신인이라는 뜻일 거다.
그래서 그런지.
그리고 정규 시즌에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에 워낙 시끌시끌하게 만든 주인공이라서 그런지(물론, 강건우 본인이 한 행동은 아니었지만).
몇몇 관중들은 강건우의 모습이 보이자 가볍게 야유를 퍼붓기도 했다.
정유리는 그냥, 강건우가 얼른 저들의 의심을 잠재워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물론 잘 할 수도 있고 못 할 수도 있다. 그냥, 다움이가 여기 와서 경기를 보게 될 테니까.
#
-놀랍게도, 휴 브레드먼 양키스 신임 감독은 한국에서 갓 건너온 저 선수를 개막전 선발 투수 겸 4번 타자로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몇몇 양키스 팬들은 데인 크리스티안을 내놓으라고 외치고 있습니다만, 잠시 후면 알게 되겠죠.
-그렇죠. 그들이 데인 크리스티안을 그리워할지, 아니면 그를 하루 정도는 잊게 될지 말입니다.
-일단 연습 투구는, 예.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인상적이진 않네요.
-90마일에서 95마일 정도를 던졌죠. 양키스 측의 말에 따르면 105마일까지 나온다고 했는데요.
-하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저 투수가 한국에서도 구속을 조절하며 타자들을 가지고 놀았다는 거겠죠. 물론, 그곳과 이곳은 영 딴판이지만요.
-저도 기대하며 지켜볼 생각입니다.
-이제 곧 시작됩니다! 블루제이스와 양키스의 양키스 홈 개막전!
강건우는 마운드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댄다. 특별하진 않다. 강건우는 이 일을 이제 20년 넘게 하고 있다.
애슬레틱스에서 양키스로 건너왔을 때, 트레이드에 불만이 있는 것 같다는 이유로 양키스 팬들은 강건우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그리고 강건우는 그 해에 커리어 로우 기록을 새로 썼다.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적은 홈런을 때렸고, 데뷔 시즌이나 은퇴 시즌보다 낮은 타율을 기록했으며, 지난 3년간의 1점대와 2점대의 평균자책점은 사라지고 4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9승에 그치며 데뷔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리에 실패했다.
다음 시즌에 마무리 투수 겸 타자로 전환하며 그 야유를 잠재우긴 했다. (ERA 1.98, 36세이브, 타율 0.321, 28홈런)
어쨌거나, 양키스 팬 중 일부가 토해내는 불만과 야유는 그때와 비하면 별것도 아니었다.
딱히 긴장감은 들지 않는다. 그냥 조금 차분해졌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국민성의 표정이 떠오른다. 강건우는 국민성의 표정을 따라 하며 첫 투구를 준비했다.
포수 시오도어 오닐이 괜스레 호들갑을 떤다. 높은 코스 포심을 요구할 거면서.
새삼스럽다. 양키 스타디움에서 10년간 뛰면서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진 것은 3시즌이었지만,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진다.
무표정하게 공을 잡고 떠올렸다.
마치 기계처럼 움직이면 된다. 잘 기름칠 되고 정교하게 연마된 기계처럼. 부지불식간에 폐에 공기가 들어차고, 강건우는 공격을 시작했다.
오른쪽 무릎, 왼발, 왼쪽 무릎, 허리, 어깨, 팔꿈치-
슈웅-
릴리스 포인트에 누가 표시라도 해놓은 듯하다. 손을 떠난 공이 맹렬하게 존을 향해 날아간다. 메이저리그에도 존트론이 도입되었다. 심판 노조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MLB 커미셔너는 이 건을 통과시켰지만.
부웅-
존트론과는 관계없이 누구나 강건우의 데뷔전 초구 결과를 알 수 있었다.
타자의 강렬한 풀 스윙. 공을 따라가지도 못한 배트. 전광판에 찍힌 구속은.
104.5mph(168.17km/h).
어떤 팬이라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게 하는 숫자였다.
“Hooooooooooooooooo!”
“Hey!”
공만 빠르다고 다가 아니겠지만, 순간 후끈 달아올랐다. 해설자들도 놀라움을 표했고, 타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강건우를 노려봤지만.
강건우는 무표정하게 공을 받아 다음 투구를 준비했다.
다시 맹렬하게 날아든다. 104.2mph(167.69km/h).
타자가 배트를 내지도 못 했고, 시오도어 오닐의 표정이 상기되었다.
‘Fuck. 손바닥이 얼얼하잖아.’
양키 스타디움이 웅성거린다.
“진짜야?”
“스피드건이 고장 난 건 아니고?”
“아닌 거 같은데?”
“저렇게 9이닝 내내 던질 수 있어? 1이닝만 던지고 쓰러지는 거 아냐?”
그리고 강건우는, 시오도어 오닐과 두 세 번 싸인을 주고받은 후.
자신의 데뷔전 데뷔 첫 타자를 상대로 세 번째 공을 던졌다.
부우우웅-!
순간, 양키 스타디움에 정적이 감돌았다. 그 정적을 깬 것은 심판의 요란스러운 삼진 콜이었고, 양키 스타디움의 깐깐한 양키스 팬들이 동시에 환호했다.
-삼진! 삼구삼진입니다! 놀라워요! 정말 놀랍네요! 이건 지난 시즌 0.295의 타율에 0.411의 출루율을 기록한 레이놀즈의 잘못이 아닐 겁니다!
-그렇죠! 레이놀즈가 아니라 누가 오더라도 104마일 다음에 63마일(101.38km/h) 커브는 예상하지 못 했을 테니까요!
-양키스 팬들이, 단 3구 만에 양키스의 새로운 투수에게 매료된 것 같습니다! 작년 아메리칸리그 출루율 3위였던 레이놀즈를 멍청이로 보이게 만들었어요! 그리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쿨한 표정을 짓고 있네요! 갱스터! 코리안 갱스터가 메이저리그로 쳐들어왔습니다! 캐나다의 자경단이 잘 무장되었는지 모르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