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6)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8화(38/385)
증인을 찾습니다 -4-
#
민승기가 강건우를 노려봤다. 강건우는 저 양반이 왜 저러나 하면서도 굳이 눈싸움을 피하지는 않았다.
두 선수는 서로를 노려보면서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패스트볼과 네 배트. 어느 쪽이 강한지 우열을 가리자.’
‘승기 형 젊을 땐 눈에 총기가 좀 있었네. 국대에서 봤을 땐 동태 눈깔 같더니.’
아무튼, 민승기는 온몸의 분노를 손끝으로 치환시키려 했다.
경기 전에 투수 코치가 신신당부했었다. 빠른 공을 정말 잘 치는 타자니까 조심하라고.
하지만 민승기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내 포심은 다른 놈들과는 다르다.’
김권종?
물론 좋은 투수다. 제구력과 슬라이더는 인정할 수 있었다. 그래도 포심은 자기가 낫다고 생각했다.
박용재도 마찬가지다. 투심이라면 또 몰라도.
선더버즈 마무리 봉재석은 조금 인정할 수 있었지만, 본인의 판단으로는 그래도 자기가 한 수 위였다.
불도저스 용수현?
어디서 감히. 깜냥도 안 되는 놈이.
그나마 민승기가 인정할 수 있는 선수는 바이킹스 마무리 이대훈 정도였다. 그래도 마무리 투수가 기껏 한두 이닝을 맡는 데 비해 자신은 선발 투수가 아니던가.
그러니까 한국에서 최고의 포심을 가진 것은 자기 자신이 분명했다.
‘쳐볼 테면 쳐봐라. 내 포심이 네 인생 최대의 고비일 거다.’
원래 계획은 바깥쪽 높은 코스의 존 끝에 걸치는 포심.
공이 약간 안쪽으로 쏠리긴 했지만, 느낌은 좋았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다. 코스가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고, 게다가 오늘 둘은 첫 맞대결 아니던가.
투수와 타자가 처음 만난다면 타자가 불리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아무리 영상을 참고하고 분석한다고 한들, 실제로 겪어본 것만 못하다.
‘백문이 불여일겨어어어어언!’
마치 공이 날아가는 것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던진 본인이 봐도 묵직했고, 회전이 심상치 않았다.
타자의 배트가 천천히 나오고 있었다.
중심 이동에 이어 허리부터 회전하는 스윙.
크게 원을 그리며 나오는 아름다운 궤적.
따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안돼애애애애애!”
민승기는 자기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강건우라는 신인 타자가 강렬한 스윙으로 공을 날려버린 후, 배트를 마치 종이비행기 날리듯 던져버렸다.
민승기가 타구를 확인도 하지 않고 털썩 마운드에 주저앉았다.
‘내가…졌어? 내 포심이? 이게 가능한 일인가?’
사실, 민승기가 피홈런이 적은 투수는 아니었다.
포심 위주의 공격적인 피칭을 하는 투수들은 아무리 구위가 좋더라도 자연스레 피홈런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승기는 방금 그 공은 맞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갱! 건! 우우우우우우우!”
“강건우! 강건우! 강건우!”
“갱-건-우우우우우! 강! 건! 우! 오션스 강건우!”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타구의 방향은 자신의 머리 위.
그리고 맞을 때 느낌이 왔다. 이건 크다. 정말로 크다고. 굳이 비참하게 뒤를 돌아보지 않더라도 홈런이란 것쯤은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 구차하게 뒤를 돌아보며 실낱같은 희망을 갈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후. 후후후…”
민승기는 비척대며 일어섰다. 실성한 사람처럼 웃음을 흘렸지만, 속으로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세간에는 민승기의 멘탈이 약하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건 득점권 한정이었다.
솔로 홈런 따위.
야구장에서 가장 높은 곳-마운드-에 서 있는 투수야말로 야구의 주인공이라 생각하는 민승기에게 큰 타격을 주지는 못 했다.
‘강건우라…그래. 아무리 나라 하더라도 혼자서는 무리지. 강건우라. 나라는 주인공을 보좌하는 주연급 조연으로 딱이군. 큭큭.’
민승기는 야망이 큰 사람이었다.
#
“민승기 쟤 오늘 왜 저러냐?”
오션스 타격 코치의 말이었다. 1회 초, 강건우가 또 홈런을 칠 때만 해도 느낌이 좋았는데, 그 이후로 각성이라도 한 듯 아웃 카운트를 쓸어 담고 있었다.
“장난 아닙니다. 뭔 놈의 공이…”
아까 타석에서 삼진을 당한 이시욱이 혀를 내둘렀다. 입가에 묻은 초콜릿을 본 타격 코치가 인상을 찌푸리며 핀잔을 줬다.
“시욱이 너 오늘 초코파이 몇 개 먹었냐?”
이시욱이 민망하다는 듯 실실 웃으며 대답했다.
“아. 코치님. 누가 초코파이를 숫자 세 가면서 먹습니까?”
“몇 개야? 한 박스 벌써 해치웠어?”
“아이, 뭘 그런 걸 다 세려고 하십니까.”
“그러다 초코파이 씨에프 찍겠다?”
“어휴. 코치님. 찍게만 해주신다면 제가 한 박스 1분 컷 보여드릴 수 있느으엌!”
“자랑이다, 이 새끼야.”
몇 년째 이어진 1차 지명 잔혹사.
올 시즌 강건우의 맹활약으로 인해 조금 묻히긴 했지만, 하위권을 전전했던 것 치고는 신인 발굴이 거의 안 됐다는 평가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물론, 1차 지명자 중 1군에 있는 선수들도 있었다.
지금 마운드에서 미친 듯이 강속구를 뿌려대는 저 탈삼진 타이틀 보유자를 거르고 뽑은 불펜 투수나, 엔진스 부동산 트리오 중 20홈런 2루수 이현동 대신 뽑은 전 주전 포수 조용수 등등.
그게 언제나 문제였다.
코치진들은 스카우트팀이 선수를 잘못 뽑아온다고 생각했고, 스카우트팀은 코치들이 선수를 못 키운다고 서로 불만이 있었다.
어쨌거나, 투수 코치는 헛된 꿈을 꾸고 있었다.
‘저런 놈 하나 있으면 진짜 소원이 없겠네.’
강건우에게 홈런을 맞은 민승기가 날뛰었고, 강건우가 두 번째 타석에서 또 안타를 때려내자 민승기는 아까보다도 더 날뛰었다.
“야. 강건우.”
“왜.”
“…쿵덕쿵덕이 안 통하는데.”
세 번째 타석에서도 범타로 물러난 노경우가 풀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엉덩이 문제가 아닌 거 같다.”
“그럼?”
요즘 타격감이 꽤 올라왔던 노경우다. 하지만 오늘은 몸쪽 높은 빠른 공에 전혀 대처하지 못하고 무안타.
“복도 들어가서 벽에 붙어서 스윙 연습하고 와.”
“야 그건 너무 기초 아니냐?”
벽이나 펜스 가까이에 서서 스윙하는 훈련은 중고등학교 시절 많이 하던 연습이었다. 스윙 반경을 의도적으로 좁게 만들어 몸쪽 공에 대처하기 위한 훈련이다. 강건우는 냉정했다.
“내가 말 안 했었나?”
“뭘?”
“너한테 부족한 게 두 가지라고.”
“뭐? 두 가지나 있어? 내가 그럴 리가 없는데?”
“기초랑 생각.”
노경우가 반박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배영한이 은근슬쩍 끼어들었다.
“여자친구도 없지.”
“아, 그건. 저는 야구랑 연애하고 있습니다!”
“의현이가 그렇게 대답하라고 가르쳐 준거지?”
“…예.”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다이아몬즈와의 3차전은 오션스가 패배하고 말았다.
오션스 선발인 이훈은 6이닝 3실점으로 퀄리티 스타트에 성공하며 기대한 것보다는 잘해줬지만, 하필 상대인 민승기가 이름값을 톡톡히 해버려 패전 투수가 되고 말았다.
민승기는 2실점 완투승을 기록해 경기 수훈선수로 뽑혔고, 수훈선수 인터뷰에서 아나운서의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했다.
“1회에 홈런을 맞고도 훌륭한 피칭을 보여주셨는데요. 오션스를 상대로 아주 좋은 상대전적을 이어나가게 됐습니다. 특별히 오션스와 경기할 때 따로 마음가짐 같은 게 있나요?”
“에이스란, 모든 경기에서 최상의 모습을 보여줘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 난 존재입니다. 굳이 오션스가 상대 팀이라고 해서 뭔가 특별한 준비를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상대가 누구든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사실, 오션스 상대로는 평소보다 더 열심히 준비해오곤 했다. 민승기가 없을 때 오션스는 절대 우승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민승기가 아니더라도 오션스는 절대 우승권은 아니었다.
[야 민승기 또 멋있는 척함]∟오늘 존나 멋있었으니까 봐주자
∟솔직히 난 쟤 데뷔할 때부터 저러길래 첨엔 컨셉인줄 알았음
∟여자 아나운서 올 때마다 더 심한 거 같은데 내 착각임?
∟die아몬드 새끼들아 승기 완투좀 그만시켜라
∟남의 팀 한테 왜 훈수둠?
∟오션기 곱게 쓰고 넘겨라 어깨 좀 아껴주고
∟또 꼴션스 꼴레발 치러 왔네
∟ㅂㅅ아 니가 승기면 오션스를 가겠냐
∟(명문오션스)꿈의 구단 오션스 입단 외않헤?
∟명문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ㅅㅂ
∟입만 열면 헛소리여 저새끼들은
∟꼴션놈들은 부끄럽지도 않나
∟부끄러운거 알면 저러고 다니겠냐
∟아 ㅋㅋㅋ 오션스 명문 맞다고 ㅋㅋㅋ
∟지들이 승기 거르고 박은수 뽑아놓고 ㅋㅋㅋ
∟전설의 민거박 ㅋㅋㅋㅋ
∟오션스의 큰그림임ㅇㅇ오션스는 투수 못 키우니 너네한테 맡겨논거
∟좀 꺼져;;;제발;;;;
#
팀은 시즌 첫 연패를 당했지만, 나는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홈 경기를 앞두고 있어서다. 144경기 내내 홈에서 경기하고 싶다.
메이저리그에서 뛸 때를 떠올려보면, 그때는 익숙해져서 몰랐는데 KBO와 비교하니 정말 끔찍하다는 생각이 든다.
원정 10연전도 그렇고 직선거리 2,400마일(약 3,800km)도 그렇고.
-나 : 도착까지 200km 남았어
-유리 누나 : 10키로 단위로 보고 안 해도 돼
-나 : 누나가 궁금해 할까 봐 그랬지
-유리 누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약간은, 그때의 유리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완벽하게 이해하는 건 무리겠지만, 아주 약간은.
원정 경기에 말도 없이 유리가 나타났을 땐 정말 기뻤다. 스프링 캠프 때는 아직 과거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안 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고작 며칠 사이에 외롭다는 감정이 느껴져서.
음. 진지하게 유리를 오션스 코치로 취직시키는 걸 생각해볼까.
그럼 시즌 내내 같이 다닐 수 있을 텐데.
근데 선수 중에 집적대는 놈이 있으면 어떡하지?
어떡하긴 뭘 어떡해. 빳따로 뚝배기 깨고 시작하는 거지.
잡혀가서 유리가 슬퍼하면?
아 그건 좀 곤란한데.
계약금 받은 거로 합의를 봐도 형사 처벌은 받겠지? 감옥에서 유리를 기다리게 할 순 없다.
흠. 노경우한테 1억 주고 청부 뚝배기 시킬까.
조금 피곤했는지, 온갖 잡생각이 다 든다. 이게 다 유리가 아직 대학생이기 때문이다. 조기 졸업 같은 거 안 되나?
-유리 누나 : (사진)
-유리 누나 : 이 나비넥타이 기억나?
보내준 사진에는 어린 내가 울고 있고, 유리는 뭐가 그리 재밌는지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그리며 웃고 있었다.
나비넥타이?
음. 기억 날 듯 말 듯 한 데.
-유리 누나 : 너 어릴 때 나한테 예쁘게 보이겠다고 맨날 저거 차고 만나러 왔다며?
그랬나? 너무 오래 돼서 기억이 잘 안 난다.
-나 : 그럼 오늘 나비넥타이 차고 갈까?
-유리 누나 : 아닠ㅋㅋㅋㅋㅋㅋ
-유리 누나 : 근데 안 피곤하겠어? 원정 다녀오느라 피곤할 텐데 내일 보고 오늘은 쉬어도 돼
피로도와 관계없이 꼭 해야 하는 게 있다면, 그건 유리 만나기다.
-나 : 안 만나주면 누나 집 앞에 텐트 치고 잔다
-유리 누나 : 어휴
-나 : 100km 남았어
-유리 누나 : 빨리 와
-나 : 그냥 여기서 내려달라고 하고 택시 탈까?
-나 : 따따블이면 순식간 아닐까???
-유리 누나 : 아니다 내가 말실수했다
-유리 누나 : 저승에서 만날 생각 아니면 그냥 얌전히 와
-나 : 네
-나 : 98km
-유리 누나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메테오스 갤러리
[야 담 경기 오션스전인데 ㅆㅂ 괜찮겠지?]∟요새 소금물 새끼들 타격 장난 아니던데
∟강건우 미쳤고 양대근 올라왔고 선풍기 두 대 풀가동이더라
∟배영한도 존나 무서움 씨발 뭐 치면 다 안타임 변태같이 생겨가지고
∟황석규도 감 찾은 거 같더만
∟김권종 민승기 다 맞으니까 박용재도 터질까봐 불안함
∟그래도 박용잰데 잘 할 듯
∟바이킹스도 개막전 때 김권종 나온다고 꽁승 개꿀 이러고 다녔음
∟민승기는 강건우한테 처맞아도 완투승 했잖음
∟다이아몬즈는 그래도 수비는 할 줄 알자너 우리 수비 생각하면 쉽지 않음
∟개슬프네;;;
∟야 좋은 아이디어 하나 떠오름
∟뭔데?
∟혹시 학교 다닐 때 강건우한테 맞은 놈 없냐??
∟그게 뭔소린데 시발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리 봐도 저새끼 너무 잘함 그냥 크보에서 삭제시키는게 모두를 위해 옳은 일 같음
∟ㄹㅇㅋㅋㅋㅋㅋㅋㅋㅋ꼴션스 새끼덜 나대는 것도 보기 싫곸ㅋㅋㅋㅋㅋㅋㅋ
∟아님 강건우 급식 시절 담배 피거나 술 마시는 거 본 놈 없을까?
∟그 정도는 있지 않을까?
∟현상금 걸고 찾으면 본 놈 하나는 나올 듯
∟미친놈들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유리는 강건우를 기다리면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이런 게시글을 발견했다.
모태 야구 팬이다. 겨우 이 정도로 당황하거나 마음 아파할 만큼 약하지 않다.
어차피 이건 강건우를 칭찬하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션스 팬들이 냄새를 맡았는지 슬슬 댓글을 달고 있었다.
∟돌멩이 새끼들아 누굴 음해하려고
∟킹건우는 그런 짓 안함 ㅅㄱ
∟정정당당하게 클린 베이스볼로 승부하자 십새들아
어쩌면 동생 현수도 와서 댓글을 달면서 싸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거의 이 사이트에 상주하다시피 하니까.
예전에는 전화를 안 받길래 오션스 갤러리에 ‘현수야 누나다 전화 받아라’라고 쓰니까 바로 전화가 온 적도 있었다.
정유리는 살짝 웃으며 글을 하나 작성했다.
[나 강건우한테 맞은 적 있음]-매일매일 심장 폭행당함ㅠㅠㅠㅠㅠㅠㅠㅠ우리 건우 얼마나 귀엽게?????ㅠㅠㅠㅠㅠㅠㅠㅠ
댓글이 달린다는 알람이 마구 떴다. 하지만 유리는 댓글을 확인하기는커녕 알람을 꺼버렸다.
선빵 치고 현장을 확인하는 건 하수들이나 하는 짓이다. 보나 마나 욕밖에 안 달릴 텐데 봐서 뭐 하겠는가.
잠시 후 전화가 울렸고, 유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전화를 받았다.
“응? 왔어? 지금 바로 나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