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68)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70화(370/385)
한편 그곳에서는 -4-
#
“이야…”
“좋겠다…”
주말을 맞이해 남자 둘만 남은 한국 김해시의 모 아파트.
두 사람의 자식들과 손자는 미국으로 건너갔고, 부인들도 잠시 미국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둘만 남아봤자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둘이서 야구장에 가서 오션스의 패배를 지켜보며 맥주를 진탕 마시고는 택시를 타고 집에 왔고, 자고 일어나서는 라면을 끓여 먹으며 양키스 경기를 보고 있었다. 아내들은 저기서 아들 혹은 사위가 홈런 치는 것을 보고 있을 것이다. 어찌나 부러운지.
-강건우! 경기에 쐐기를 박는 홈런포를 때립니다! 마운드에서도, 타석에서도 존재감을 확실히 보여주는군요!
-메이저리그 관계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강건우 선수 때문에 한국인 야구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었다고 합니다.
-사실 강건우 선수 외에도 꽤 많은 한국인 메이저리거가 활약 중이기도 하죠.
-맞습니다. 민승기, 김권종, 박용재, 정조준, 천제현…모두가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까? 천제현 선수는 시즌 초반만 해도 걱정이 많았는데 지금은 또 적응을 잘 한 편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다른 이야기가 있나요?
-하하. 강건우 같은 선수는 없으니까 고생하지 말라고 말해줬죠.
-그건…예. 맞는 말씀이네요.
강건우 없는 오션스 야구를 보다가 강건우 있는 양키스 야구를 보니 절로 숙취 해소가 되는 느낌이었다.
어쨌거나.
한국, 부산의 사직 야구장.
오션스의 최고참이며 부상을 겪고 회복을 위해 애쓰고 있는 서창열은 아침 일찍부터 훈련장에 나와 있었다.
오션스의 외국인 감독은 선수들에게 딱히 하드 트레이닝을 요구하진 않았으나, 좋은 팀은 원래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는 법이다. 젊은 선수들에게 자리를 그냥 넘겨주지 않으려는 베테랑, 그리고 베테랑들에게서 실력으로 자리를 뺏고 싶은 루키들.
30대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는, 한때 리그 최고의 공수겸장 리드오프였던 서창열은 과거와는 다른 밸런스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예전만큼 스윙과 발이 빠르지 않다. 머릿속의 자신은 이미 저기 앞에 있는데 몸은 뒤에 남겨져 있다.
주먹을 쥐었다 펴며 숨을 몰아쉰다. 오션스에 온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사실, 이쯤 되면 그냥 쉬엄쉬엄해도 되는데, 서창열은 후반 대타 한 타석이라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이제 설렁설렁 좀 쉬면서 할 때도 된 거 아니냐고 물었을 때, 서창열은 이렇게 대답했다.
“아, 시바. 나이 먹고 훈련 때 설렁설렁하다가 삼진 처먹고 들어오면 존나 분위기 싸해지거든? 존나 쪽팔리다, 그거. 삼진 먹고 병살 칠 거면 평소에 열심히라도 해야 동정표라도 사지.”
그냥 그런 성격이었다. 이기지 못하면 온몸에 바늘이 돋아날 것 같은, 타고난 승부사.
강건우가 과거로 돌아오기 전의 서창열과 달리, 강건우가 오션스 유니폼을 입고 팀이 바뀌는 것을 보고 오션스와 계약한 것은 날카로운 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요즘은 명상도 겸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속에 품은 화를 잘 풀어내야 한다는 조용한의 조언 때문이다.
사실 조용한은 김권종 때문에 한참 예전부터 명상을 시작했었다. 그리고 이번 시즌이 끝나면 은퇴가 예정되어 있어 은퇴 투어가 예정되어 있기도 했다.
명상이라고 해도 별 건 없다. 그냥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본다. 쓸데없이 화를 내진 않았는지, 조금 더 다른 사람을 배려할 수는 없었는지, 아무 생각 없이 누군가를 상처입히진 않았는지…
“사자가 죽으면 뭔 줄 아세요?”
“…”
…
“사자가 죽으면?”
“…”
…
“저승사자.”
“…”
어떻게 이 새…아니, 얘는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는 걸까. 한국 나이 32세의 황석규는 3루와 코너 외야를 번갈아 가며 출장하고 있다.
원래는 좋은 하드웨어에 부족한 소프트웨어를 장착했다며 돌돌규나 황돌돌로 불렸지만, 이제는 그래도 경력이 쌓이며 원숙한 플레이를 펼치고 있다.
그런데 여전하다. 마치 서창열이 아니면 안 된다는 듯 죽어라 따라다니며 한 대 쥐어박고 싶은…아니, 이상한 개그를 시도한다.
황석규는 자기 개그에 자기 혼자 파하하 하고 소리 내며 웃었다.
서창열은 가라앉은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 애쓰며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석규야.”
“예?”
“네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아냐?”
“어…”
황석규가 고민했다. 이 형이 이럴 형이 아닌데. 이쯤 되면 화내면서 잡으러 와야 하는데.
조금 두근거렸다. 몇 년이 지나서 이제야 마음을 여는 건가?
“뭔데요? 잘 모르겠는데요.”
황석규가 어떤 개그가 나올지 기대하며 말하자, 서창열은 평온한 얼굴로 대답했다.
“알고 싶지 않으면 입 닥…닫고 저기 가서 훈련이나 해라…아니, 하는 게 어떨까?”
차라리 평소처럼 으르렁댔으면 별생각 안 했을 텐데.
사람이 갑자기 바뀌니 황석규는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서창열은 평온한 얼굴이었지만, 황석규는 두 눈으로 분명히 봤다.
무릎 위에 올려둔 꽉 쥔 두 주먹에 핏줄이 돋아나 있는 것을.
“…”
황석규가 눈치를 슬쩍 보면서 조용히 자리를 뜨자, 한참 뒤에 눈을 뜬 서창열이 인상을 찌푸렸다.
‘뭔데. 진짜 그냥 갔다고?’
자기가 너무 뭐라고 했나 싶은 생각에 자리를 일어나서, 황석규를 찾아가려고 했다.
“아, 시팔 진짜.”
내가 이게 무슨 짓인지. 근처에 있던 신인 포수가 움찔하길래, 별거 아니라며 손짓해주고 자리를 떴다.
물론, 그 신인 포수는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이형준! 표정이 왜 그렇나! 우리는 부산 오션스의 자랑스러운 포수진으로…”
“서, 선배님…”
“…우냐?”
아무래도 손짓을 착각한 모양이었다. 예를 들자면, 목을 베어버린다거나 뭐 그런 쪽으로.
#
양키스와 오션스. 아무래도 공통점이 거의 없는 두 팀이다.
연고 도시가 바다를 끼고 있다는 것 외에는 전혀.
양키스는 한동안 주춤하기는 했으나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우승을 차지한 명문 팀이다.
오션스는 몇 시즌 연속으로 우승하긴 했지만, 오래된 것 외에는 별 볼 일 없는 팀이었다.
그런데 최근 두 팀에 공통점이 생겼다.
“Gang is ‘war’king with a gun!”
“Gang! Gang! Gang!”
“Gun! Gun! Gun!”
“War! War! War!”
어제 강건우는 마운드와 타석에서 모두 최고의 활약을 펼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올 시즌 내내 그래왔듯 오늘 경기는 벤치에 앉아서 경기를 시작했다.
몸 상태에 따라 후반 대타로 한 두 타석 정도를 소화해낼 수는 있다. 시즌 초반에는 선발 등판 다음 날 전혀 출장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메이저리그의 길고 힘든 시즌을 소화하는 선수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컨디션 관리가 잘 되어 있는 까닭이었다.
어쨌거나, 양키스 팬들은 강건우가 오늘 나오지 않을 수도 있는데 애타게 강건우를 찾았다.
그리고 부산 오션스 팬들도 비슷하다. 물론, 양키스 팬들은 늦어도 내일이면 다시 강건우를 만날 수 있지만, 오션스 팬들은 최소 몇 시즌은 강건우를 자신들의 안방에서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차이는 있다.
“마! 강건우 어디갔노!”
“건우 쫌 데리고 온나! 갑갑해 돌아삐겠네!”
무사 2루. 타자가 루킹 삼진으로 물러나자 오션스 팬들은 난리가 났다. 그럴 때면 팬들은 강건우를 찾는다.
다음 타자 양대근이 볼넷을 얻었다. 나쁘진 않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양대근의 덩치 때문인지 여전히 장타를 요구하는 편이다.
그리고 다음 타자 앨빈 펠튼.
타율은 0.264에 불과하지만, 시즌 종료를 한 달 여 앞둔 지금, 한 달가량 늦게 팀에 합류했음에도 35개의 홈런을 쏘아 올리며 오션스의 중요한 선수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오션스 팬들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키는 것은 아니었다. 앨빈 펠튼은 달갑지 않겠지만, 강건우를 대신해 팀 내 최다 홈런 타자라는 점에서 그랬다.
그래도 앨빈 펠튼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싶었다. 감독은 앨빈 펠튼에게 ‘우리가 네게 바라는 것은 홈런이야. 타율이나 출루율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아도 돼.’라고 말했다.
물론 알고 있다. 사람들은 강건우 같은 타자를 원하지만, 앨빈 펠튼이 강건우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저 배트를 길게 쥐고 집중한다. 강건우의 모습은 지워야 한다. 실제로 봤던 강건우나 영상에서 봤던 강건우를 따라 하려 하면 안 된다.
그는 강건우고, 나는 앨빈 펠튼이다.
따아아아아아악-!
4구째, 슬라이더가 가운데로 몰리며 실투가 됐다. 이런 실투를 놓치면 안 된다.
타구가 힘 있게 날아가면, 그 순간만큼은 팬들이 강건우를 잊는다.
“앨-빈! 펠-튼! 넘가삐라! 함 보이도!”
“보이주네!”
“펠튼아! 함 봤다!”
“펠-튼! 펠-튼! 펠-튼!”
그럴 때면 엘빈 펠튼도 머리끝까지 짜릿함이 차오르는 느낌을 받는다. 배트를 거칠게 뒤로 집어 던지고, 기쁨을 숨기지 않고 베이스를 돈다. 흥분해서 얼굴이 시뻘게진 채 홈을 밟고 팬들 앞에서 춤을 추면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다.
“This is me! Yes!”
지금 삶이 너무 행복하다. 가족들도 한국에서 만족하며 지내고 있고, 이 수많은 사람이 자신의 홈런에 기뻐하며 다 함께 소리 지른다.
조금 더 일찍 왔다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도 한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왔다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마! 앨빈! 좀 치네!”
오늘은 벤치에서 대타 대기 중인 이시욱이 홈런을 축하해줬다. 조금씩이지만 한국말을 배우고 있는 앨빈은 이시욱의 목덜미를 잡고 말했다.
“Ma. Rega ham era borough la hat na ahn hat na?”(내가 형이라고 부르라고 했니 안 했니?)
외국인 선수들은 실력도 실력이지만 적응도 중요하다. 앨빈 펠튼은 역대 오션스 외국인 중 가장 적응을 잘 한 사례에 속했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자리에 앉아서 노경우에게 말했다.
“헤이, 니거. 홈런 치는 방법이 궁금하면 내가 좀 알려줄 수 있는데, 어때?”
이제 백인 선수에게도 니거라 불리는 노경우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한국에 오기 전에 강건우에게 노경우 놀리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흑인 선수들에게는 절대 그렇게 안 부르면서, 왜 나한테만?
노경우는 이 팀에 오는 외국인 선수 중 최소 절반은 미친놈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어쩌면 미친놈인지 테스트해서 미친놈들만 데려오는 것은 아닐까.
#
시즌 후반부가 되면 어떤 팀들은 순위 경쟁을 포기한다. 물론, 몇몇 팀들은 시즌 초반부터 경쟁을 포기한 것처럼 패배를 쌓기도 한다.
탱킹이라 부르는 행위이며, 몇 시즌 간 최하위를 차지해 드래프트에서 좋은 자원들을 싹쓸이해 몇 시즌 후를 노리는 것이다. 유망주 풀의 사이즈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미국이기에 실제로 효과가 있는 접근법이기도 하다.
그런 것들은 리그의 경쟁력을 악화시킨다는 비판을 받지만, 검증된 선수들에게 큰돈을 주고 우승을 노리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적은 비용이 들기에 꾸준히 시도되는 편이다.
어떤 팀도 우리가 대놓고 져서 꼴찌를 하겠다고 선언하진 않지만, 공공연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구단 사정상 탱킹 조차 잘 하지 못 하는 팀이다. 강건우가 여기서 데뷔했었고, 강건우를 양키스로 팔았던 팀.
시즌 막바지에 지구 우승을 확정 짓기 직전인 강건우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어떻게 변했는지 확인했다.
강건우를 중심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그 팀은, 같은 시기에 그때와 같은 성적을 내는 데 실패했다.
팀 투수진 재건에 큰 역할을 했던 론버거 킨도, 오션스에서 실패하고 수비 코치로 부임해 팀 수비력을 업그레이드시켰던 휴 브레드먼도 없다.
세 사람이 팀 전력의 다는 아니었지만, 세 사람은 지금 다른 곳에 서 있다.
“너 애슬레틱스 좋아하나 봐. 애슬레틱스 성적 자주 확인한다?”
정유리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고, 강건우는 가만히 지구 4위를 차지하고 있는 애슬레틱스의 선수단 성적을 확인하다가 조금 늦게 대답했다.
“뭐, 좋아한다기보다는…”
애증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가 시작됐던 곳이기도 하고. 그냥, 복잡한 팀이다.
한때는 증오하기도 했다. 자신을 팔았고, 그것 때문에 정유리와의 사이가 틀어졌다고 생각해서.
하지만 그게 아니란 것을 이제는 안다. 그 모든 것은 그냥 강건우 본인이 잘못한 것뿐이다.
“그냥, 생각보다 못하네 싶어서.”
“그래? 팀이? 아니면 선수가?”
“둘 다지 뭐.”
“선수 중에 굳이 꼽자면?”
여러 명이긴 한데.
애슬레틱스 4선발로 뛰며 평균자책점 5.12에 4승 11패를 기록한…
“멀 해리슨?”
“멀 해리슨?”
원래는 나와 함께 원투펀치를 이뤘을 선수다. 유리는 내 말을 듣고는 바로 노트북을 켜 그 선수의 자료를 확인했다.
유리가 영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체와 하체의 밸런스가 안 맞는다며, 던질 때 무릎을 활용하면 훨씬 좋아질 거라면서.
나는 그냥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유리가 저러는 모습을 보면 나는 행복해진다.
아무래도, 두 번째로 주어진 기적 같은 이 기회에서 나는 실수한 적은 있을지언정 실패하진 않은 것 같다.
나도 행복하고 유리도 행복하다. 어쩌면, 아니, 아마도, 유리가 분명히 나와 함께 살면서 참아주는 부분도 있을 테지만, 우리 사이에 치명적인 문제는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유리가 중얼거린다. 이 투수를 사 오려면 어느 정도가 필요할 테고, 데려와서 몇 달만 교정시키면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괜찮은데?
일에 몰두하고 있는 유리를 뒤에서 안았다.
“응? 왜?”
말없이 그냥 안고 있다가, 유리와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아니 그냥.
좋아서.
우리가 여기 같이 있다는 게.
그냥 그러고 있으니 유리가 여전히 예쁜 그 웃음을 짓고는 모니터로 고개를 돌렸다.
“으이그. 내가 그렇게 좋냐?”
“응.”
음. 누나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