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79)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81화(381/385)
누군가에게만큼은 전설적인 -6-
#
아주 시끄러웠다. 뭔가가 날아다니고, 다들 미친 듯이 흥분해서 떠들어댔다. 사람들은 나를 찬양했고, 내가 유리를 가리키자 유리를 찬양했으며, 어린아이처럼 폴짝폴짝 뛰어다니던 감독님은 허공에 주먹질하다 말고 이렇게 소리쳤다.
“갱! 갱의 여권을 빼앗아! 저 녀석을 미국 국경선을 넘지 못하게 해야 해!”
한국 야구 팬들이 뛰어난 외국인 선수에게 하는 여권 농담을…여기서?
아무튼, 남의 홈구장이지만, 우리는 꽤 기분을 냈다.
음.
내 첫 월드시리즈 우승이나, 심지어는 오션스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 때만큼 기쁘지 않다는 것은…
내가 나이가 들었거나, 혹은 우승 경험이 너무 많아져서 생긴 현상일까.
#
“솔직히, 우리 사위가 한국에서 뛴 게 말이 안 되는 거 아니냐?”
“그렇지. 우리 아들이 어? 갑자기 미국 안 간다고 하고 그랬던 게 어? 우리 며느리 때문이라고.”
“아이고오 사도온.”
“한잔 받으시오 사도오오온.”
아버지와 장인어른은 기분이 꽤 좋으신지, 주거니 받거니 하며 서로의 자식을 칭찬하고 있다. 유리랑 나를 이야기하는 거다.
“난 유리 저 가시내가 어릴 때부터 공부는 안 하고 야구장만 다니길래 커서 뭐가 될까 했더니…”
“언니. 건우는 유리만 따라다니길래 커서 유리 남편 되나 했더니 진짜 됐네.”
장모님과 어머니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내일 당장 한국으로 가기로 했다. 모든 일을 끝마친 유리는 피로에 찌든 얼굴로 내게 말했다. 그것도,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이제 그냥 마음 편하게 오션스 코시 보고 싶다…”
“마음 편하게 볼 수 있겠네.”
“직관하고 싶다…”
“직관?”
“사직…”
그래서 나는 어른들 앞에서 선언했다.
“저희 한국에 야구 보러 갈 건데 같이 가실 분 계십니까?”
“어?”
“야구 보러?”
“지금?”
“예. 미국 관광 좀 하실 거면 현수랑 같이 남아계셔도 되고…”
사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오션스 한국시리즈?
몇 년 동안 지겹도록 보지 않았을까?
유리야 뭐, 일 년 동안 미국에 있었으니 오션스의 매운맛 야구가 보고 싶었을 수도 있지만, 저분들은 거의 한국에 계셨으니…
“가자.”
“짐 싸자.”
“어우. 안 그래도 한국 공기 맡고 싶더라.”
“미국 관광은 뭐, 오션스 우승 보고 다시 와서 하면 되지. 안 그래?”
미국 음식이 입맛에 안 맞으셨나. 아니면 진짜 오션스 야구가 너무 보고 싶으신건가…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다움이 생각이 났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우리가 가면 손주도 갈 테니 손주 따라서 오시려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어쨌든, 나는 한국에 오래 있을 생각은 아니다. 우승 퍼레이드나 시상식이 남아 있다. 그 후에 다시 한국에 갈 수도 있긴 한데, 그건 뭐 유리한테 달려 있는 거고.
“혹시 한국 갔다가 다시 미국 오실 거면 짐 놔두고 그냥 가죠. 어차피 다시 올 건데. 저 한국에 오래 못 있거든요.”
어른들이 서로 눈빛을 교환한다. 그리고 다들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서기 시작했다.
“그럼 그냥 가볍게 가자.”
“말 나온 김에 지금?”
“건우 시구 한 번 하나?”
다들 성미가 급하시다. 하긴. 오션스 팬 중에 느긋한 성격인 사람을 본 적은 없다.
#
[엔진스 대 오션스 한국시리즈, 역대급 치열한 경쟁 속에 마지막까지 한 걸음.] [시리즈 스코어 3대 3으로 7차전을 맞이하는 한국시리즈.] [최종 결전에 돌입하는 한국시리즈. ‘무조건 총력전’] [엔진스 추성태 감독, ‘오션스, 역시 강하다. 그래도 엔진스도 강하다. 선수들이 하나 되어 정신력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까지 이기는 경기 하겠다.’] [론버거 킨 오션스 감독, ‘마지막 경기를 위해 일 년을 달려왔다. 라스트 스퍼트를 보여줄 때다.’] [(PHOTO) 6차전 패배에 관중석에서 오열하는 민승기.] [(PHOTO) 쌍둥이 아이들의 위로를 받는 민승기.] [(PHOTO) 끝까지 경기장에 남아 ‘오션스 승리하리라’라고 외치는 민승기.]#
[KS 7차전 오션스 라인업.]1번 타자 2루수 노경우
2번 타자 우익수 배영한
3번 타자 1루수 양대근
4번 타자 좌익수 엘빈 펠튼
5번 타자 3루수 이시욱
6번 타자 지명타자 주상욱
7번 타자 중견수 유준
8번 타자 포수 박의현
9번 타자 유격수 정예성
선발 투수 국민성
#
몸이 꽤 무거운 편이다. 시차 적응 문제도 있고, 아무튼.
우리는 급하게 한국에 건너왔다. 그나마 마지막 경기라도 볼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이 마지막 경기를 보고 큰 여유도 없이 다시 미국으로 가야 한다. 비행기에서 이메일 인터뷰에 대답해주기도 했고, 아무튼 해야 할 것이 많다.
그리고 뭐.
유리가 보고 싶다고 해서 온 거긴 한데, 사실 나도 이게 뭔가 보고 싶더라니까.
선수단과는 경기가 끝나고 만날 계획이다. 괜히 내가 가서 분위기 들떠서 경기를 망칠까 봐.
그래도 이야기를 조금 들었는데, 라인업이 저런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석규 형이 6차전에서 주루 플레이를 하다 발목을 다쳤다. 창열이 형은 무릎이 안 좋아서 후보로 빠졌고, 백업 내야수들도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고 한다.
노루 형이 한국시리즈 7차전 선발 3루수라. 어찌 보면 꽤 실험적이지만, 예성이 형이 잘 해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호세 킹은 6차전에서 패전 투수가 됐다. 훈이 형은 휴식이 부족할 수도 있지만 불펜에서 언제든 모습을 드러낼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불펜도 꽤 과부하 상태다. 하지만 그건 엔진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시즌의 마지막 시리즈가 이렇게 치열하게 전개되면 감독들의 머리도 고장 날 수밖에 없다. 있는 투수 없는 투수를 다 끌어모아서 쓰게 될 거고, 부상을 안고 뛰는 선수도 많다.
정규 시즌에서 경기하는 것과 결승 시리즈에서 경기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소모를 불러일으킨다. 그게 체력이건 정신력이건.
어쨌거나, 여기는 엔진스 홈구장.
하지만 오션스 팬들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어찼다. 거의 절반 정도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장모님은 선글라스와 거대한 깃발을 준비하셨다. 유리는 그 옆에서 똑같은 선글라스와 조금 작은 깃발을 들고 있다.
사람들이 두 사람을 보고 환호한다. 물론, 나한테도 그렇다. 하지만 나는 다움이를 안고 있어서 깃발을 들 수 없다.
조금 어이없는 것은, 휴가를 줬더니 현수가 우리 아랫줄에 앉아있다는 거였다.
“너 휴가인데 여기서 뭐 하냐?”
“아니, 형. 갈 데가 없더라고…”
어쨌든, 경기는 시작됐다.
1회는 두 팀 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어떤 선수는 체력이 떨어져 보이고, 또 어떤 선수는 조금 긴장한 것으로 보였지만, 큰 사고가 있진 않았다.
2회 말에는 엔진스의 선취점이 나왔다.
몸에 맞는 볼로 출루한 주자가 희생 번트로 2루에 갔고, 우익수 앞에 떨어진 짧은 안타에 전력 질주해 홈을 밟았다.
오션스가 실점하는 것이 기쁘진 않다.
그런데 조금 더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영한이 형의 송구가 예전 같지 않은 것을 두 눈으로 봐서 그런 것 같다.
어깨가 엄청나게 좋은 사람은 아니었지만, 방금 송구는 예전보다 훨씬 더 큰 포물선을 그렸다.
그래도 민성이 형은 병살을 잡아내 1실점에 그쳤다.
그리고 오션스가 곧장 따라붙었다. 지명타자로 나선 상욱이 형의 솔로 홈런.
상욱이 형은 이번 시즌 포수, 1루수, 지명타자로 번갈아 나서고 있다. 포수가 아닌 다른 포지션으로 완전히 변신할 준비를 하는 중이다. 아무래도 의현이 형의 입지가 너무 탄탄하다 보니. 게다가 상욱이 형 스스로가 포수로서 의현이 형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도 하다.
타구는 크게 뻗어 펜스를 살짝 넘겼다. 상욱이 형은 두 팔을 하늘로 뻗으며 포효했다.
오션스를 밖에서, 그것도 경기장에서 보고 있으니 느낌이 묘하다. 승기 형도 경기장 어디에 있을 텐데.
안 마주치면 좋겠다.
#
경기는 치열하다. 안 치열할 수가 없는 경기다.
물론, 가끔 이런 경기에서 허무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엔진스와 오션스의 경기는 굉장히 치열했다.
오래 준비해온 엔진스, 그리고 오래 정상을 차지해온 오션스.
5회가 끝났을 때 전광판에는 2대 2라는 스코어가 쓰여 있었다.
그리고 6회 말, 엔진스가 앞서 나가는 점수를 기록했다.
따아아아아아악-!
홈런왕 이주혁의 솔로 홈런.
배트 컨트롤 보다는 게스 히팅에 특화된 이 타자는 데뷔 이후 국민성에게 통산 타율 0.150으로 꾸준히 약한 모습을 보였지만, 큰 경기에서 자신의 장타력을 보여줬다.
해설자들은 심리전에서 이주혁이 국민성을 이겼다고 극찬을 늘어놓았다.
야구는 던지고 치는 게임이다. 휘두르다 보면 맞을 수 있고, 이주혁 또한 강건우가 사라진 이후 KBO에서 대표적인 홈런 타자가 된 선수다.
스코어 3대 2.
직접 마운드로 올라간 론버거 킨은 단 두 마디만 나누고 벤치로 돌아왔다.
“이번 이닝까지는 맡겠습니다.”
“그래? 괜찮아?”
“네.”
“좋아.”
국민성은 자신이 말 한 대로 이번 이닝을 무사히 끝마쳤다. 6이닝 3실점.
어쩌면 그리 성에 차는 성적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제 할 일은 해냈다.
경기가 후반으로 흘러가고 있다. 7회 초, 오션스가 2사 3루 기회를 잡았지만 무산됐다. 7회 말에 마운드에 오른 이훈은 첫 타자를 볼넷으로 내줬지만, 포크볼로 삼진을 따낸 후 투심으로 병살을 유도해냈다.
강건우는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오션스는 강팀의 야구를 하고 있다. 기회를 살리지 못했던 것은 아쉽지만, 찾아온 기회를 모두 잡아내는 팀은 없다.
8회 초, 8회 말.
3대 2.
그리고 9회 초.
오션스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닝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
서창열은 호흡을 가다듬고, 트레이너가 테이핑해주고 있는 무릎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번 시즌은 꽤 괜찮았다. 잔 부상에 시달렸지만, 꽤 많은 경기에 나섰다.
포스트시즌 들어 상태가 더 안 좋아지긴 했지만.
동갑내기 배영한도 상태가 그리 좋진 않다. 배영한은 요즘 후회가 많다. 젊었을 때 조금만 더 관리를 잘 했었으면, 하고. 물론 배영한은 남들이 안 보는 데서 노력하는 타입이었다. 그냥 나이가 들어가는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하는 소리다.
타순은 나쁘지 않다. 아니, 좋다. 3번 양대근부터 시작이다.
대타로 나설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엔진스는 좌완 마무리 투수 공은호를 올렸다.
저쪽도 컨디션이 그리 좋진 않지만, 대체할 자원이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양대근을 상대로 풀카운트.
그리고.
딱!
“아웃!”
국가대표 2루수 이현동의 다이빙 캐치.
1아웃.
평소에 보기 힘든 모습이 나왔다. 양대근이 자신의 타구에 화를 낸 것이다.
양대근이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얼마나 있었지.
앨빈 펠튼은 타구를 잘못 때렸다. 하지만, 열정적이며 오션스에 완벽하게 동화된 이 외국인 타자는 공을 때리는 순간 전력 질주를 시작했고, 간발의 차이로 세이프 선언을 받았다.
마치 끝내기 홈런을 치기라도 한 것처럼 포효했다. 오션스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경기에서 투지를 보여준다면, 기뻐할 수밖에 없다.
이시욱은 평소의 장난기를 완전히 지운 표정이었다. 항상 티격태격하지만 제일 친한 양대근의 화내는 모습에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따악-!
안타.
이제 1사 1, 2루. 타구 스피드가 빨라서 추가 진루를 하지는 못 했다.
서창열은 복잡한 기분이었다.
대타로 나가고 싶다.
하지만, 나가기 싫기도 하다.
뭐라도 해보고 싶다.
1사 1, 2루. 이 상황이 무서운 것은 아니다.
그냥 내가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채우지 못하고, 패배하는 것이 싫다.
유준은 오늘 무안타다.
론버거 킨과 눈이 마주쳤다. 감독은 서창열을 보고 스윙하는 시늉을 해 보이고는 한국어로 말했다.
“준비해! 준의 대타야!”
서창열은 몸이 부르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기뻐서인가? 모르겠다. 그래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기쁜지 슬픈지는 상관없지 않나.
감독이 보기에 여기서 내가 더 좋은 카드라고 생각했으니 내보냈겠지. 일단 나가고 나면, 모든 감정을 지워버리고 이기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 된다.
다음 타자는 오늘 홈런을 때린 주상욱. 서창열은 주상욱의 다음이다.
엔진스에서 투수 교체가 있었다. 홈런을 친 우타자를 상대로 우투수를 올리기로 한 것이다. 주전 마무리 투수라 할지라도 안타를 연달아 맞은 데다가 우타자가 올라오니 교체할 수밖에 없었다.
타석에 선 주상욱은 호흡을 가다듬었다. 머릿속에 아까 때린 홈런의 잔상이 남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그런 타구를 날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런 타구가 아니라 그냥 적당한 타구만 나왔더라도 좋았을 텐데.
“스트라이크! 아웃!”
날카로운 슬라이더에 헛스윙 삼진.
주상욱은 자신에게 화가 났다. 이걸 속다니, 이런 중요한 상황에!
“고생했다.”
서창열이 대기 타석에서 나오며 주상욱의 어깨를 두드렸다. 주상욱은 서창열의 눈을 보고 무언가 색다른 감정을 느꼈다.
어디서 많이 본 눈빛이다. 서창열이 바이킹스에 있을 때, 항상 저런 눈으로 포수를 보고 있는 주상욱을 노려보며 발 근처에 침을 뱉곤 했다.
그땐 죽여버리고 싶었는데.
지금은 어딘가, 이 형이 뭔가 해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같은 편일 때는 이렇게 든든하다니.
서창열은 타석에 서서 뒤쪽으로 침을 뱉었다.
한 살 어린 백준섭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지만 상대해주지 않으려는 듯했다.
“가운데로 체인지업 하나 꽂아봐.”
백준섭은 이 양반 스타일, 아주 잘 안다. 괜히 상대하면 말려든다. 하지만 백준섭도 이런 수작질에 휘둘릴 타입은 아니다.
“딱 하나만 준다.”
물론 거짓말이다. 가운데 체인지업? 아무리 나이를 먹었고 부상에 시달리고 있다지만, 서창열한테 그런 걸 던지면 안 되지.
그래도 초구 체인지업을 요구했다. 대타로 결정적인 순간에 나온 선수들은 강하게 치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다. 여기서 투구 수를 늘리거나 단타나 치라고 나온 대타가 아닐 테니까.
투수에게 체인지업 싸인을 냈다. 바깥쪽 낮게. 가능하면 존 안으로. 하지만 무리하진 말고.
투수가 공을 던졌고, 서창열은 힘차게 배트를 돌렸다.
계획대로 됐다면 병살 코스, 아니면 헛스윙.
그러나 젊고 힘 넘치는 이 투수는, 실투를 던지고 말았다.
따아아악-!
푹 쉬었고, 이 한 번의 스윙만을 위해 계속 준비해온 서창열의 타구는 멀리 뻗었다. 주루 코치가 귀신에 홀린 것처럼 팔을 돌려댔다.
이시욱은 느리다. 하지만 혀를 빼물고 달렸다. 타구가 펜스를 때렸고, 외야수가 예측하지 못한 곳으로 튀었다.
앨빈 펠튼이 3루를 돌아 홈을 터치했다. 엔진스 팬들의 좌절 섞인 탄식이 들려온다.
문제는 엔진스의 중계 플레이가 시원치 않았다는 점이다. 공을 살짝 더듬었고, 예상치 못했던 이시욱이 전력 질주해 홈에 슬라이딩.
그리고 포수 백준섭은 태그를 시도했다.
“세이프!”
베테랑답지 않은 실수가 나왔다. 글러브에서 공이 새버렸다. 이 과정에서 이시욱의 반칙성 플레이는 없었고, 오션스 팬들은 9회 초에 벌어진 대역전에 모조리 자리에서 일어나 울부짖었다.
“꽃 피이이이이느으으으은-!”
강건우도, 민승기도, 정유리도.
2루에 서서 웃고 있는 서창열에게 환호하고 있었다.
#
아쉽게도 추가 득점은 나오지 않았지만, 9회 말.
연투로 지친 이휘은 대신 장태영이 마운드에 올랐다.
마무리에 아주 적합한 투수는 아니다. 컨디션 좋을 때면 언터처블에 가깝지만, 제구가 조금이라도 튀거나 공이 조금이라도 덜 긁히는 날이면 무한 볼넷이 나오거나 어이없게 장타를 맞는다.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스트라이크-아웃!”
공이 미친 듯이 휜다.
“스트라이크! 아웃!”
말도 안 되게 휜다.
타자는 장태영의 웃는 얼굴을 보고 패닉에 빠질 것 같았다. 왜, 어째서, 어떻게 여기서 저렇게 웃을 수 있는가.
그것도 그냥 웃는 얼굴이 아니다. 입이 찢어질 듯 웃고 있다.
스트라이크.
공이 아래로 깔려 들어오다 존 위쪽을 할퀴듯 지나갔다. 포수가 점프해서 공을 잡아냈지만, 존트론은 이걸 스트라이크로 판정했다.
사람 눈으로는 잡아내기 쉽지 않은 스트라이크다.
2구, 스트라이크. 몸쪽으로 향해 날아오던 공이 존 바깥을 향해 급격히 휜다. 배트가 나왔지만 따라가지 못했다.
타자는 혼란에 빠졌다. 이건 눈으로 따라갈 수 있는 공이 아니다.
일단, 휘두르기로 했다. 어디로?
높게? 바깥? 중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예측도 안 되고 쫓아갈 수도 없다. 일단 그냥 휘두르자. 생각한다고 답이 나오진 않을 것 같다.
힘껏 배트를 쥐고, 장태영이 공을 던지자 머릿속에서 숫자를 세고 휘둘렀다.
부웅-퍼억!
거의 눈 감고 휘두르다시피 했는데, 어딘가 공에 맞는 소리와 함께 허벅지 통증이 느껴졌다.
맞았지만 기분 나쁜 생각이 들지 않았다.
됐다.
그래도 출루했다.
다행이다.
내가 마지막 아웃 카운트가 아니라서.
“스트라이크! 아웃! 경기 종료!”
타자의 머리가 텅 비어서인지 조금 착각을 한 모양이었다.
몸에 맞더라도 스윙하면 헛스윙이다. 삼진 아웃이다.
장태영이 마운드에서 두 다리를 넓게 벌리고 마음껏 포효하는 동안, 엔진스의 마지막 타자는 멍하게 서 있었다.
귓가에는 정돈되지 않은 함성만이 들려왔다.
“장-태-영! 장태영! 장태영!”
“오션스으으으-!”
“승리하리라아아아아아아!”
“오늘도오오오오-!”
“내일도오오오오오-!”
“어제도오오오오오오오!”
“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