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381)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383화(383/385)
오래오래 행복하게(에필로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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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하게도, 오션스와 KBO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내가 없었던 2034시즌이 오션스에게는 가장 역사적인 시즌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기쁘다.
몇 시즌 뒤의 KBO와 오션스가 궁금한 마음도 있다. 앞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두 번째 20대를 지나 달려가고 있지만,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것이 바뀌어 내가 아는 대로 흘러간 것은 많지 않다.
내가 언제 미국에서의 커리어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갈지도 장담할 수 없다. 나는 이제 내 맘대로 결정하지 않을 것이다.
휴 브레드먼 감독은 내게 10년 계약을 하는 건 어떠냐고 말했다. 분명히, 돌아오기 전의 나라면 좋다고 했을 것이다.
선수들은 대부분 거액의 장기 계약을 원한다. 장기 계약이라는 것 자체가 인정받는다는 이야기다.
부상을 당하거나 신체 능력이 쇠퇴하더라도 큰돈이 보장되고, 구단 최고의 계약을 가지고 있는 선수를 벤치에 썩힐 수 있는 팀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지금 나는 생각이 조금 다르다. 물론, 나이를 먹은 뒤에는 후회할 아주 작은 가능성이 절대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기량이 안 되는데 억지로라도 경기에 나서고 싶은 욕심이나 돈에 대한 집착은 없다.
[존트론, 테슬라로부터 거액의 투자 유치 확정…이틀 연속 상한가.]…뭐, 이건 별개의 이야기다. 아예 상관이 없다고 말하기도 좀 그렇지만.
어쨌거나, 어떤 일이 있었건, 야구는 다시 시작된다. 조용한은 즉시 코치 연수를 시작한다고 한다. 권종이 형의 말에 따르면 바이킹스에서 미래의 감독으로 육성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고.
권종이 형도 언젠가는 바이킹스에 돌아가 커리어를 마무리하고 싶다고 하는데, 그때 조용한이 감독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정도로 빠르게 감독이 된다면, 음.
“나 오션스 돌아갈 때 감독일 수도 있겠네.”
권종이 형의 표정이 좀 이상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모를 사람이지만, 이번엔 알 것 같다.
“그때 되면 바이킹스전에만 선발로 등판해야지.”
반응이 재밌어서 좀 더 놀렸다. 세계 최초 한 팀 상대로 50도루를 노리겠다거나, 뭐…그런거.
내년이면 또 누군가가 은퇴하게 될 거고, 그 자리는 다른 누군가가 채울 거다. 물론 그 자리를 완전히 메꾸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닐 수도 있다.
조용한의 빈자리를 우동석이 차지한 것처럼.
아무튼, 영한이 형과 창열이 형은 곱게는 자리를 못 내준다며 고된 훈련을 계획하고 있었다. 영한이 형은 신혼여행 다녀온 직후부터 바로 시작한다고.
그리고 오션스 팬 중 한 사람으로서 가장 기분 좋은 것은, 저 두 사람이 같이 훈련하기를 원하는 후배 선수들을 데려가기로 했다는 부분이다.
“마, 이 새끼들아. 데려가 주는 것만 해도 어딘데 내 돈까지 쓰라고?”
“헤헤. 감사합니다, 창열 선배님.”
그것도 자비로.
너희는 돈도 없냐고 투덜대긴 하지만, 흔쾌히 내주기로 한 모양이었다.
영한이 형의 부인 되시는 분은 정말로 평범한 교사였다. 영한이 형이 애들 돌봐주는 모습에서 매력을 느꼈다고 하는데…
진짜.
인간 됐네.
아니면 사기꾼일지도…
어쩌면 우리는 다들 속고 있는 게 아닐까?
나와 유리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우리는 양키스 우승 퍼레이드를 무사히 끝마쳤고, 나는 메이저리그의 모든 상을 휩쓸었다.
새삼스럽게 엄청 기쁘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안 기쁜 것은 아니었다. 신인상과 사이 영 상, 행크 애런 상, 리그 MVP를 모두 휩쓸었고, 유격수 골드글러브와 실버슬러거를 탔다. 투수 골드글러브도 물론이다.
포스트시즌 최고의 활약을 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베이브 루스 상도 내 것이 되었고, 양대 리그 최고의 수비수에게 주어지는 플래티넘 글러브와 월드 시리즈 MVP 및 챔피언십 시리즈 MVP도.
“넌 욕심이 너무 과해.”
“너도 내 공을 받는 욕심을 조금 더 낼 수 있을 거야.”
“빌어먹을. 걱정 안 해줘도 욕심은 충분히 내고 있어!”
시오도어 오닐, 시오는 유리에게서 겨울 훈련 과제를 자진해서 받았다. 훈련 코스의 대부분은 하체 훈련이다. 아마 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우승 퍼레이드와 몇 가지 일정을 끝낸 후에는 부모님과 장인어른, 장모님을 포함한 가족들과 미국 관광에 시간을 썼다.
그 이후로는 주로 유리와 다움이랑 시간을 보냈고, 그 외에는 모두 훈련에 투자했다.
훈련을 게을리하면 다칠 확률이 높아진다. 다움이한테 경기장에 쓰러져서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다.
그렇게, 또 새로운 시즌이 시작된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진 모르지만, 최소한 이 바닥에 몸담고 있을 때만큼은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휴 브레드먼 양키스 감독, ‘10년 연속 월드 시리즈 우승을 꿈꾼다.’]#
2035년. 양키스는 2년 연속 우승을 달성했고, 오션스는 우승에 실패했다.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해 탈락. 아쉬운 탈락이었지만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이훈은 엔젤스로 가겠다는 예전의 꿈을 버리고 오션스에 남았다. 돌이킬 수 없었다. 여전히 엔젤스의 팬이긴 하지만, 여기에서 이훈은 많은 것을 이뤘고 떠나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헤헤. 감사합니다.”
배영한은 오션스의 2년 계약을 거절했다. 다른 팀으로 가려는 것은 아니었다.
은퇴 결정.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거라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었고, 코치 연수 후 유소년 야구 지도자가 될 계획이라고 언론에 이야기했다.
특히 불도저스에서 함께 뛰었던 선수들이 배영한의 결정에 충격받은 듯했다. 전혀 그럴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였으니까.
박의현이 오기 전 오션스의 포수였던 조용수는 1년간 독립 야구단에서 뛰다가 트라이아웃에 참가했으나 실패한 후, 사직 야구장 앞에 족발집을 차렸다.
[용수족발 가본 사람?]└계산한다고 카드 줘도 흘릴 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넘 그러지들 마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름 정들었음
└정은 개뿔 난 걔 방출됐었는지도 몰랏음
└그래도 잘 됐으면 좋겠네
호세 킹은 마지막 도전을 위해 메이저리그로 떠났다. 상당 기간 오션스에서 뛰었던 호세 킹은 ‘나마스테!’라고 외치며 메이저리그로 향했다.
앤디 가필드는 필리스의 선발 투수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메츠 원정 경기에서 플라스틱 병뚜껑을 머리에 맞은 후, SNS에 자랑스럽게 업로드했다.
[시티 필드에서 누군가에게 이런 걸 맞는다는 것은, 내가 야구를 아주 잘 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죽어버려, 개자식아.
└이 새끼 유니폼을 샀던 과거의 내가 원망스럽다.
└메츠 놈들이 여긴 무슨 일로?
└다들 꺼져 줄래? 여긴 필리스 선수 SNS거든.
노경우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어떤 사람들은 순서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누가 불러주고 난 뒤에야 포기하는 게 맞지 않냐면서.
몇몇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비슷한 스타일인 천제현이 꽤 잘 안착했기에 노경우에게 관심이 있긴 했지만, 당연히 강건우만큼 적극적이진 않았다. 코너 외야수와 2루수의 포지션 차이를 생각해보면 더 그랬지만, 어쨌거나 오션스는 노경우에게 FA가 되기 전 장기 계약을 제시했다.
[노경우, 오션스와 6년 장기 계약 체결.] [노경우, ‘메이저리그보다 오션스가 좋다.’]서창열은 마지막 시즌을 준비했다. 강건우가 말하기를, 자기가 돌아올 때까지 현역으로 뛰고 있어 달라고 했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냥 마지막 1년을, 팀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나름대로 뭔가를 이루고 싶은 생각이었다.
은퇴 후에는 절대 야구 지도자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만두면 뭘 할 거냐는 배영한의 질문에 서창열은 이렇게 대답했다.
“사직 앞에서 치킨집이나 하려고.”
“치킨?”
“어.”
“왜?”
“길 앞에 팔짱 끼고 서서, 지나가는 사람 노려보면서 안 사가면 죽인다고 협박하면 금방 부자 되지 않겠냐?”
물론, 농담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종종 서창열의 농담을 진담으로 받아들이곤 한다.
2036년의 오션스 주전 라인업은 이랬다.
1번 타자 2루수 노경우.
2번 타자 중견수 유준.
3번 타자 지명 타자 양대근.
4번 타자 우익수 앨빈 펠튼.
5번 타자 3루수 이시욱.
6번 타자 좌익수 황석규.
7번 타자 1루수 주상욱.
8번 타자 포수 박의현.
9번 타자 유격수 정예성.
국민성과 이훈은 탄탄한 토종 선발진을 구축했다. 사실, 강건우가 오기 전의 두 사람을 생각하면 믿기 힘든 변화였다.
2군에서도 존재감이 별로 없었던 똥볼 투수 국민성.
발전 없는 만년 유망주 이훈.
국민성에게는 아주 작은 고민이 있었다. 외국 리그에 대한 욕심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만족하고 있다.
강건우는 자기에게 메이저리그 진출을 해 보는 것은 어떠냐고 말했었다. 주변에서도 그런 말을 종종 하긴 한다.
메이저리그와 일본 리그의 스카우트들이 자신에게 꾸준히 접촉해온다. 그런데 나갈 수 있는 시기가 다가오자 생각이 점점 사라졌다.
국민성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그냥 공을 던질 수만 있다면 어디라도 상관없었다. 그리고 여기가 마음에 든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한국 나이로 37세가 된 양대근은 풀타임 지명 타자로 자리 잡았다. 강건우가 돌아와서 투타 겸업을 하게 되면 자기가 또 1루수로 뛰어야 할 수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다른 1루수가 경기에서 빠지게 되면 투입될 수 있으니 1루 수비 훈련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강건우에게는 네가 돌아오길 기다린다거나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괜한 부담을 줄 수 있으니까.
강건우는 양키스와 2년 재계약을 체결했다. 단기 계약일수록 금액은 커진다. 자신의 능력을 더는 증명할 필요도 없는 선수고, 양키스 팬들에게 강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양키스 팬들의 불만은 왜 또 2년 계약이냐는 거였고, 강건우는 정유리가 혹시라도 이직할 생각이 생겼을 때 자신이 걸림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정유리는 이직 생각이 없었다. 양키스에서 완전히 인정받고 있고, 자신이 컨트롤 하고 있는 선수들의 성장을 계속 지켜보고 싶었다.
게다가 다움이도 이곳에 익숙하다. 자주 옮겨 다니는 것이 아이에게 좋을 리가 없다.
비교적 어린 나이, 그리고 아직 메이저리그에 익숙하지 않은 성별이지만, 능력으로 인정받아 핵심 코치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물론, 강건우나 휴 브레드먼의 도움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걸 부정하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휴 브레드먼은 가끔 무서워지곤 했다. 론버거 킨의 암살 예고나 오션스를 그리워하는 듯한 강건우뿐만 아니라, 다른 한국인들 때문이었다.
민승기는 양키스와 만날 때면 항상 전의를 불태웠다.
[양키스 입단 정조준, ‘내가 왔으니 양키스는 무적.’] [정조준, ‘양키스는 최고의 타자를 얻게 된 것이다.’] [JJJ, ‘레드삭스에겐 미안하지만, 한동안 지구 1위는 꿈도 꾸지 못할 것.’] [김권종, ‘몇 시즌을 뛰면서 강건우 같은 선수가 또 있는지 찾았지만, 아직 없었다. 이제 아마 다들 알겠지만.’]미국 야구 팬들이 한국 야구 선수들이 다 이상하다고 착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휴 브레드먼도 상대와의 신경전을 즐기고 발언에 거침없는 편이긴 하지만, 정조준은 가끔 이 사람마저 당황하게 하곤 했다.
하지만, 양키스 구단주는 그냥 좋아할 뿐이었다.
“양키스는 최고의 팀이지. 여기서 뛰는 선수들은 최고의 선수들이고. 최고의 선수들이라면 자신감을 표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그게 싫다면, 내 팀을 이기면 돼!”
뒷감당과 수습은 휴 브레드먼의 몫이 되었다.
분명 처음엔 안 그랬다. 여기서 입을 놀리는 사람은 거의 자기뿐이었고, 언론이나 타 팀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면서 즐겁게 지내고 있었는데.
“갱.”
“예. 감독님.”
“난 자네가 언론에 대고 자네 와이프 이야기만 하는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
강건우는 이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 번 웃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다른 이야기도 충분히 할 수는 있는데요.”
“흠, 예를 들자면?”
“레드삭스 유니폼을 불태우는 사진을 SNS에 올리면 제 친필 싸인이 들어간 양키스 유니폼을 선물하겠다거나.”
“그러지 마. 그랬다간, 보스턴 원정에 자넬 못 데려갈지도 몰라.”
“휴가를 받으면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겠군요.”
“자넬 쏘게 하지 마.”
“절 쏘면 월드시리즈는 어쩌게요?”
“…”
“농담이에요.”
“…”
“감독님?”
“난 가끔 그런 생각을 해.”
“어떤 생각요?”
“말 못 해.”
“왜요?”
“자네가 은퇴하면 말해줄게.”
“힘내요.”
“…”
“부산에 처음 도착했을 때를 생각해봐요.”
“오.”
“좀 도움이 됐나요?”
“좋아. 가서 유리에게 키스하고 경기나 준비해.”
“당신은 명장이에요. 선수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죠.”
휴 브레드먼은 그냥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었다.
가끔, 부산이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