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40)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42화(42/385)
포커 페이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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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홈런을 맞을 수 있다. 평균자책점 1점대의 에이스라도 타율 1할의 백업 타자에게 홈런을 맞을 수 있는 것이 야구다.
하지만 2020년대 후반의 KBO는 ‘김박민’의 시대였다.
2020년대 초중반부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이 세 투수는 실력뿐만 아니라 스타성도 두루 갖춰 KBO 리그뿐만 아니라 국제 대회에서도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각자 다른 타입의 투수라는 점도 매력 포인트.
빼어난 외국인 투수들에게서 투수 타이틀을 빼앗아온 이 세 명의 선발 투수들의 올 시즌 공통점은 이거였다.
[국대 에이스특)강건우한테 초구 홈런 맞음]사람마다 셋 중 누가 더 뛰어난가 하는 질문에는 다르게 대답했다.
하지만 세 투수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강건우는 투수의 습성을 아주 잘 아는 선수였고, 차례로 국가대표팀 에이스 노릇을 하는 세 투수에게 홈런을 빼앗았다.
“아, 아, 아, 아, 아, 아.”
강건우는 덕아웃으로 들어가며 팀 동료들에게 헬멧을 차례로 두들겨 맞았다.
이런 타자가 있으면 팀 사기에 도움이 된다.
그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 세 선수를 상대로 홈런을 모두 친 선수다. 상대가 누구건 상관없이 홈런을 뽑아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아! 노경우! 아!”
“자랑스럽다! 야! 구! 천! 재! 강! 건! 우!”
“아!”
“우!”
“아!”
“윳!”
“아!”
“빛!”
“악!”
“깔!”
“윽!”
강건우 본인은 그리 탐탁지 않은 일이었지만, 사직 결의의 주인공인 노경우와 박의현이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헬멧을 두드렸다.
그 와중에 강건우는, 무표정한 얼굴의 국민성이 한쪽 구석에서 포크볼 그립이 아닌 투심 그립을 잡고 있는걸 확인했다.
노경우의 얼굴을 큰 손으로 북 긁어버린 강건우가 국민성의 옆에 앉았다.
“투심 던져보시게요?”
“가르쳐 줄 수 있어?”
“중지 조금 굽혀 보세요.”
“이렇게?”
“조금만 더 펴서.”
“흠. 힘 전달이 힘들 것 같은데.”
“던질 때 살짝 눌러주면 무브먼트가 극대화될 수 있거든요.”
“팔에 무리가 가지 않을까.”
“대흉근이랑 승모근을 활용하면 좀 괜찮아요.”
국민성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강건우를 바라봤다.
자기 나름대로는 경악한 표정이었고, 깜짝 놀라는 표현이기도 했다.
하지만 강건우가 보기에는 아무 반응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주변에 리액션이 좋은 사람들로 가득해서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몰랐다.
“오션스의 4번 타자! 오션스 하면 양대근! 오션스의 상징! 오션스의 거인! 양! 대! 근! 양대근 홈!런!”
덕아웃 벽에 붙어서 응원단장 흉내를 내고 있는 저 포수나.
“엉덩이, 후욱, 엉덩이, 후욱. 오늘은, 빠르게, 엉덩이, 짧게.”
하도 엉덩이를 흔들어대서 노덩우라는 별명이 생긴 저놈이나.
“건우야아아아아…누나 죽는다아아아…”
아니면, 관중석에 쓰러진 채 아직도 강건우 앓이를 하고 있는 정유리나.
“쟤 아직도 저러고 있어?”
“언니. 내비 둬. 좋아 죽겠다는데 어떡해.”
“하이고오. 집에선 밀당을 하니 어쩌니 난리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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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재의 강점을 꼽자면 우선 이닝 소화 능력이 있을 것이고, 그다음으로는 다양한 구종을 들 수 있다.
사실, 구위가 그렇게까지 좋은 편은 아니었다. 다만 뛰어난 제구력과 여러 구종으로 커버할 뿐.
거기에 단단한 멘탈은 가장 강력한 무기 중 하나였다.
딱!
“파울!”
양대근과의 풀카운트 싸움.
야구 팬들은 최고의 1루수를 뽑을 때 바이킹스의 김호근이나 선더버즈의 윤태호를 말하곤 하지만, 박용재가 생각하기에 가장 까다로운 1루수는 양대근이었다.
우선, 잘 속지 않는다. 자기가 치고 싶지 않은 공이 오면, 설령 삼진 아웃을 당할지언정 배트를 내지 않는다.
배트 컨트롤 능력도 상당하다. 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은 다 쳐 낸다.
그리고 어쩌면, 본인만 자신의 장타력을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박용재의 판단으로는 홈런왕 윤태호보다 홈런을 더 때릴 수 있는 실력이 있다고 보이는데도, 스윙을 아끼는 타입이다 보니 홈런 30개를 못 넘기고 있었다.
‘투심.’
어쨌거나, 불의의 일격을 당한 후에도 본인이 가장 까다롭게 생각하는 타자 중 하나와 침착하게 승부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투심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가장 중요한 상황이라면 어차피 정면승부다.
파앗!
날카롭게 제구된 투심 패스트볼이, 좌타자의 존 바깥을 향하는 척 타자를 속이려 들었다.
양대근의 배트가 살짝 나왔다. 흘러 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투심이 덜 꺾이며 존 안쪽을 노렸다.
딱!
배트를 도로 집어넣으려던 양대근의 배트 스피드가 빨라졌다. 궤적을 쫓아 나와 다운스윙이 된 배트가 투심을 살짝 밀어쳤고, 3유간 빠지는 안타.
‘하.’
박용재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3루수와 유격수가 차례로 몸을 날렸지만 어림도 없는 타구.
모자를 살짝 벗고 뒤통수를 긁었다.
‘오션스가 좀 피곤해졌네.’
분발해야 한다. 그래도 순위표에서 두 자릿수 순위는 좀 그렇지 않은가.
조금은 부러웠다. 아니, 많이 부러웠다.
‘강건우 같은 놈 하나 어디서 뚝 안 떨어지나.’
박용재는 그렇게 생각하며 야수들에게 괜찮다고 집중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음 타자는 울프팩.
팔뚝만 봐도 정신이 혼미해질 것 같긴 하지만, 저런 유형의 타자는 박용재가 가장 좋아하는 상대였다.
따악!
“아웃!”
초구 커브에 풀스윙. 그리고 공 끝을 건드려 유격수 라인드라이브 아웃.
박용재는 코를 긁으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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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와 투수를 둘 다 해봤다는 것은 큰 장점이 된다.
그리고 내가 뭐 그냥저냥 했던가.
사이 영 상도 탔고 메이저리그 MVP도 탔다.
MVP 중 한 번은 사이 영상을 탔을 때 동시 수상한 거였지만, 다른 두 번은 타자로만 뛸 때 받았다.
그때 나는 내가 잘 나서 받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유리가 없었더라면 난 그냥 공도 좀 던지고 빠따도 좀 치는 특이한 선수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사실, 대부분의 선수들은 조금씩이나마 투타를 같이 경험해본다.
한국에서도 고교 시절 투타 양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선수들이 많다. 프로 수준에서 안 통하니까 하나만 택하는 거지.
따아아아악-!
방금 가필드를 상대로 뜬금없이 홈런을 때려버린 메테오스의 저 타자는 프로에 입단할 때 투수로 시작했다고 한다.
손목 힘이 워낙 좋아서 메테오스에서 중심 타자로 키우려 한다는데, 그 손목 힘을 발휘해 버렸다.
경기는 그 홈런으로 인해 2대 1로 뒤집혔다.
물론, 투수를 하다가 타자로 포지션을 변경한 선수가 잠재력을 터뜨리면 팬들은 정말 기뻐할 것이다.
그 선수가 내년이면 서른이 되는, 소위 말하는 노망주일지라도 방금 그 홈런만 보면 드디어 터졌다고 말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가필드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자기 뜻대로 안 되면 분노를 종종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도 어떻게 꾸역꾸역 그 이닝을 막아내긴 했다. 3루수 황석규 선배가 강습 타구를 한 번 더듬었다가 1루로 송구한 것이 처음에는 세이프 판정이 나왔지만, 비디오 판독을 통해 아웃으로 정정되었다.
가필드는 그 뒤로 평정심을 되찾았다.
저런 타입의 투수에게는,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진정하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것뿐이다. 그 분노를 주변으로 전염시키지 않으려면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다.
뭐, 만약 내 메이저리그 커리어가 그대로 남아있다면 ‘닥치고 공이나 던져’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내 찬란하고도 불손했던 과거는 이미 날아가 버렸으니까.
우리가 이닝을 끝내고 덕아웃으로 돌아왔을 때, 가필드는 국민성을 발견했다.
국민성은 덕아웃 뒤쪽에서 내가 알려준 메커니즘대로 허공에 공 던지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가필드는 작게 혼자 중얼거렸다.
“퍽킹 앤디. 마음을 가라앉혀. 고작 홈런 하나일 뿐이잖아. 그래. 맞아. 앤디. 넌 괜찮아졌어. 저 친구를 좀 봐. 저 지옥에서 돌아온 장의사 같은 얼굴을 좀 보라고. 저런 걸 좀 배우란 말이야.”
나는 웃음을 애써 감춰야만 했다. 지옥에서 돌아온 장의사?
그것도 그렇지만, 가필드가 저렇게 혼잣말로 스스로를 다스리려는 게 좀 웃겨서.
“실실 쪼개는 거 보니 또 여친 생각 중?”
날 힐끔 보면서 말한 노경우 덕택에 표정이 싹 굳었다. 하긴, 신인이 역전 홈런 맞고 나서 덕아웃에서 웃고 있는 건 욕 먹기 딱 좋다고 유리가 말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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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 건-! 우-!”
9회 말. 오션스 팬들은 강건우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마운드에는 메테오스 투수 정윤석.
박용재가 8이닝 동안 109구를 던지고 1실점 후 내려갔고, 최고 155km/h를 던지는 파이어볼러 마무리가 두 타자에게 연속 볼넷을 내준 상황.
강건우가 타석으로 나오고 있었다.
휴 브레드먼 감독은 대주자를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다.
양대근의 출장 정지 때 외야수로 몇 번 기회를 얻었지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던 김지호는 착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황석규야 스피드가 꽤 빠르니 그렇다 치더라도, 배영한이 볼넷으로 나갔을 때는 대주자로라도 출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공격이야 어찌 됐건 팀 내에서 가장 빠른 발을 가진 김지호였다. 걱정하지 말고 조금만 기다려 보라던 수석 코치의 말도 아무런 위안이 되지 못했다.
전 감독일 때가 좋았다. 그때는 지금보다 외야수가 더 많았음에도 대주자나 대수비 기회는 많았으니.
어쨌거나, 마무리 투수는 땀을 뻘뻘 흘려대고 있었다.
박용재가 1회 말 홈런 한 방을 맞은 뒤로 혼신의 힘을 다 해 오션스 타선을 꽁꽁 틀어막아 냈다.
물론, 박용재는 자신이 승리 하나를 날려 먹더라도 그냥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해줄 사람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이런 상황이 된 것은 타자들 탓도 조금은 있다고 생각했다.
2점이 아니라 5점 정도를 냈으면 더 여유가 있었을 텐데.
“마! 공 던지기 싫나!”
“쫄았네!”
사직 야구장이 정말 싫기도 했다. 술 취한 팬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
두려움도 있었다. 무려 박용재에게 홈런을 뽑아낸 강건우가 상대가 아니던가.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했다. 초구.
“스트라이크!”
절묘하게 존 끝에 걸쳐졌다. 타자가 배트를 내지도 못 할 만큼.
약간은 심판의 도움이 있었다.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든, 볼을 선언하든 크게 치우칠 코스는 아니었기에 강건우도 별다른 불만을 표시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 일촉즉발의 상황.
관중석 한쪽에서 시작된 외침이 조금씩 커지기 시작했다.
“건우야! 유리 누나가 홈런 쳐달래!”
강건우가 팀에 들어온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션스 팬 중 강건우와 정유리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어지간히 주접을 떨어 댔어야지.
팬들 앞에서 유리 누나 사랑해를 외치기도 하고, 유력 스포츠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팀보다 중요한 단 하나가 유리 누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오션스 팬들은 그래도 괜찮았다. 청춘남녀가 서로 사랑한다는데, 그 사랑이 팀보다 중요하다는 걸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강건우가 얼마나 잘 하고 있는가.
부산에서는 야구 잘 하면 왕이고 대통령이다. 야구만 잘 한다면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이상 어지간하면 비난받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범죄를 저질러도 옹호해줄 사람들도 꽤 많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오션스 팬들은 기적 같은 역전승을 바라마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한편에서 시작된 누군가의 그 외침을 따라 하며 기도했다.
“마! 강건우! 유리 누나가 홈런 치라고 안 하나!”
유리가 부끄러움에 혼비백산 하고 있는 건 아무 상관 없었다.
“아! 엄마! 미쳤어?”
“왜? 니가 그렇게 말했잖아!”
“아! 뭐야 이게!”
유리의 ‘건우야! 홈런 쳐줘!’라는 외침이 건우에게 들릴 일은 없었겠지만, 사직동 쌍깃발로 유명한 오소희가 주변 팬들을 규합해서 한목소리를 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건우야! 유리 누나가 홈런 치란다!”
“건우야!!!”
“유리가!!!”
“홈런 쳐달란다!!”
점점 외침이 커졌다. 일견 정돈되지 않고 혼잡스러운 목소리였지만, 투수가 두 번째 공을 던질 준비가 거의 다 됐을 때는 강건우도 관중들의 외침을 어느 정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홈런 치라고?’
강건우의 눈에 총기가 돌았다.
이 상황이 꽤 재밌었다.
2만여 명이 넘는 관중이, 유리와 자신의 이름을 외치고 있다.
즐거운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완전히 고무된 강건우는, 거의 바운드 될 정도로 낮게 들어오는 커브를 말 그대로 후려쳐버렸다.
마치 골프라도 하는 것처럼.
따아악-!
오션스의 주루 코치가 타구를 보고 미친 듯이 팔을 돌려댔다. 주자들에게 보내는, 뛰라는 싸인이다.
황석규와 배영한은 죽어라 달렸다. 코치가 팔을 돌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타구는 절묘한 곳에 떨어졌다. 우익 선상 거의 끝부분.
너무 낮은 공을 때려서 그런지 타구에 역스핀이 걸렸고, 역방향으로 휘어져 우익수의 예상을 벗어난 곳에 떨어졌다.
황석규가 서서 홈을 밟았다. 그리고 배영한이 벤트 레그 슬라이딩(다리로 먼저 들어오는 슬라이딩)으로 홈을 찍었다.
베이스에 멈춰선 강건우가 정유리가 있는 방향을 향해 팔을 쭉 뻗어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깃발이 미친 듯이 나부끼고 있었고, 2만여 관중이 비명 같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누군가의 짓궂은 외침이 아까처럼 전염되어 퍼져나갔다.
“뽀뽀해! 뽀뽀해!”
멋있는 척 진지한 표정으로 끝내기 세레머니를 펼친 강건우의 입술이 씰룩댔다. 결국, 바보처럼 웃어버렸고, 정유리는 두 손으로 새빨갛게 변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아, 엄마 때문에 이게 뭐야…”
오소희는 깃발을 흔들면서 코웃음을 쳤다.
“가시내. 놀이터에서 뽀뽀 잘만 하더만. 숨으면 안 보일 줄 알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