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41)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43화(43/385)
동네 한 바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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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한은 이렇게 열심히 뛴 게 언제인지 떠올려보려 했다.
3시즌 전에 우승을 경험 할 때만 해도 야구에 열정이 있었다.
아니, 넘쳐났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야구가 즐거웠고 더 잘하고 싶었다. 승부욕이 넘치는 시기였다. 더 많이 우승하고 싶었다.
강건우에게는 부산 여자를 만나러 오션스에 왔다고 말하긴 했지만, 사실은 홧김에 한 결정이었다.
우승 이후 2년 연속 준우승.
한국 시리즈 우승 후, 2년 연속 부진한 결과를 두고 슬슬 배영한도 끝물이라는 악플이 많았다.
나이 먹고 스윙이랑 발이 같이 느려졌다느니, 뇌를 비우고 수비한다느니.
하지만 그런 비난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단지, 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에 지쳐버렸다. 마음을 편하게 먹고 적당히 즐기며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오션스행.
다른 곳보다 돈을 더 많이 주는 것도 이유의 하나였지만, 그것보다는 자기 자신을 갉아먹는 것이 타인의 비난이나 시선이 아닌 본인이라는 것이 가장 컸다.
‘여기선 그냥 내려놓고 적당히 하다 은퇴하면 되겠지.’
그럴 생각이었다.
개인 성적만 적당히 챙기다 때가 오면 그만둘 예정이었다. 주변의 기대가 크긴 했지만, 자기가 온다고 해서 이 팀이 우승권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저놈을 보고 있자니 파묻어뒀던 승부욕이 타올랐다.
한국 나이 30세면 야구 선수로 전성기다.
더 발전할 여지가 있을 수도 있지만, 2년 연속 준우승 후 배영한의 마음속에 그런 열정은 사라졌다.
‘저놈 진짜 천재네.’
강건우를 처음 봤을 때의 심플한 감상이었다. 그리고 그 감상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조금 다른 점은, 강건우를 보고 있으면 자꾸 영감이 떠오른다는 것이었다.
신인 시절부터 스윙 예쁘다는 소리를 워낙 많이 들어왔다. 그런데 강건우는 차원이 다르다.
저걸 훔치고 싶다.
사실, 어제 술을 마시긴 했지만, 평소의 10분의 1도 먹지 않았다.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야구 욕심이 당황스러웠다.
어쨌든, 그래서 전력 질주했다.
발목 부상 이후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를 지양해왔지만, 몸을 사리기에는 너무 뜨거웠던 걸지도 모른다.
약간의 고양감을 느낀 배영한은, 경기가 끝나고 감독의 길지 않은 피드백 이후 잠깐 주변 정리를 하고 강건우를 찾았다.
“우리 야구 천재 어디 갔냐?”
오늘 그리 뛰어난 활약을 보이지 못해 약간 의기소침해있던 노경우가 대답했다.
“유리 누나 만나러 갔는데요.”
“벌써?”
“끝나자마자 튀었어요.”
배영한이 허탈하게 웃었다.
“막내가 빠져가지고.”
하긴. 막내라기에는 멱살 잡고 팀을 이끌어나가고 있는 데다가 오션스 팀 분위기가 그리 빡빡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나쁘게 보면 기강이 없는 거지만, 좋게 보자면 서로 피곤한 일이 없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성적이 좋을 때의 이야기지만.
꿩 대신 닭이라고, 배영한은 자신이 홈에 슬라이딩했을 때 평소와는 다르게 포효하며 기뻐하던 양대근을 타겟으로 삼았다.
“양캡.”
“수고하셨습니다.”
“나랑 가볍게 맥주 한 잔 어때? 진짜로 한 잔.”
양대근은 배영한을 빤히 바라보다가, 뒤통수를 슬쩍 긁었다.
“와이프랑 집에서 치킨 시켜 먹기로 해서요…”
“뭐?”
“내일부터 또 원정이니까…”
“…”
“일주일은 못 보니까요…”
배영한은 그냥 웃었다. 그리고 노경우의 어깨를 잡았다.
“맥주 딱 한 잔?”
“형님.”
“어.”
“저 술 먹으면 다음 날 수비가 안 돼서요…”
“한 잔 가지고 안 될 수비면 원래 안 되는 거야.”
“형님.”
“왜?”
“전에도 한잔하자고 하셔놓고 궤짝으로 드셨잖아요.”
배영한이 어처구니없어하며 말했다.
“막내들 빠져가지고. 아, 됐어. 혼자 마실 거야!”
“행님! 저는 오늘 괜찮습니다! 이시욱을 찾아 주십쇼!”
“집에 가련다.”
“아,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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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완전 기고만장하다?”
유리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누나가 팬들 말 잘 들어주라며.”
“그래서?”
“2만여 오션스 팬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외쳤어. 팬들의 요구에 응하는…”
도끼눈을 뜨고 있던 유리가 갑자기 달려들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유리를 안았고, 유리의 숨이 내 코에 닿았다. 그리고 2만 오션스 팬들의 염원이 이루어졌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었더라?
유리는 내게서 살짝 떨어지며 능글맞게 웃었다. 어디서 이렇게 이상하게 웃는 법을 배워왔을까.
“야.”
“응.”
“홈런 못 쳤는데 가불 한 번 해줬다.”
“홈런 안 쳐도 해줘.”
“너 하는 거 보고.”
“내가 뭘 하면 될까?”
내 말을 들은 유리가 엄청 크게 웃었다. 조금 진정되니까 고개 까닥이는 유리 귀여워.
“야. 근데 이제 놀이터는 안 되겠다.”
“왜?”
“엄마가 우리 봤대.”
“보면 좀 어때.”
“미쳤냐?”
“지금도 보고 있을지도 몰라.”
“보면 좀 어때.”
“방금은 나보고 미쳤냐며?”
“우리 건우 누나한테 미친 거 아냐?”
“오.”
우리는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집 주변의 공원을 걸었다. 내일부터 3일간, 금토일은 창원 원정이다.
“파이러츠한텐 지면 안 되는 거 알지?”
“알지알지.”
“최소한 정조준보단 잘해야 해.”
“알지알지.”
정조준은 지난 시즌 MVP다. 그 전에 나랑 꽤 친하게 지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 형 야구 잘하지. 좀 재수 없는 성격이라서 유리가 원래 별로 안 좋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뭐, 그래도 슬럼프에 빠졌을 때 유리가 자세를 봐주고 나서는 유리를 거의 신 취급하긴 했지만.
“내가 누나 좋아하는 거 알아?”
“알지알지. 나도 너 좋아해.”
“…”
“알지알지 하는 거 아니었어?”
사람 심쿵하게 만들어놓고 말장난이나 하고.
조준이 형.
미안한데 내일은 형 취급 못 해주겠다.
“누나.”
“응?”
“누나 오션스 코치 됐으면 좋겠다.”
“나도.”
“그럼 원정 때도 매일 볼 수 있을 텐데.”
유리가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가까이서 이 얼굴을 볼 수 있다는 게.
“야.”
“응.”
“그럼 누나 좀 오션스에 꽂아줘라.”
“응.”
“올. 자신감?”
“사실 오션스 코치들보다 누나가 훨씬 능력 있어.”
“진짜?”
“응. 진짜야.”
“내 그럴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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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러츠 홈구장은 사직 구장과 비교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깔끔하게 느껴진다.
“여긴 파울 지역이 좁아. 그리고 바람 때문에 공이 잘 뻗어.”
양대근 선배의 말에 따르면, 그렇다고 한다.
그리고 그건 예상보다 훨씬 빨리, 조금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빨리 투심을 익혀버린 커크 심슨에게는 환영할 만한 소식일지도 모른다.
“헤이, 갱스터. 투수 코치를 하는 건 어때?”
감독의 발음 문제로 갱건우가 되더니 이제 갱스터까지 왔다. 하긴, 노덩우나 박입현 같은 별명보다는 훨씬 낫다.
생각해보면 우리 팀 선수들의 별명이 다 좀 그렇긴 하다. 이시욱 선배는 노루 새끼라는 자기 별명을 싫어한다.
“차라리 초코시욱이라고 불러도!”
초코파이 먹는 모습이 하도 많이 찍혀서 초코시욱이라 부르는 팬들도 있긴 하지만, 노루 새끼가 압도적이다.
대근이 형은 뭐, 이름이 양대근이라 그런지 양대갈이나 양대창으로 많이 불린다. ‘덩산’이라는 별명도 있다. ‘덩치는 산만한 새끼가…’의 줄임말이다. 덩치는 산만한 새끼가 뒤에는 여러 가지 바리에이션이 있다.
배영한은 불도저스 시절 오션스 팬들에게 개영한 좆영한으로 불렸지만 지금은 그냥 배영한인 것 같다. 잘 치면 갓영한으로 부르긴 하지만.
“야구천재. 너도 지금은 갓건우지 실책하고 병살 치면 족건우 되는 거 순식간이다?”
야구가 다 그렇지 뭐.
야구 팬들은 게임에서 지면 자기 팀을 욕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패배하고 나면 해체하라고 진심을 담아 외치다가도 다음 날 다시 야구장을 찾아서 승리의 오션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다.
미국에서 뛸 때도 그랬다. 홈런 치고 이기면 한국이 보내준 야구의 신이지만, 다음 날 병살 치고 경기에서 지면 야구를 조지러 온 빌어먹을 아시안이 되곤 했지.
어쨌거나, 오늘 상대인 파이러츠는 한국인 에이스인 손용기를 선발로 내세웠다.
능구렁이 같은 타입의 이닝 이터. 나이 차이 때문에 국가대표팀에서 같이 뛰어본 적은 없고 현역 시절에도 꽤 이름을 날렸지만, 코치와 감독으로도 명성을 날릴 사람이다.
철강왕 스타일에 제구 좋은 투수.
조금 비교하자면, 메테오스 에이스인 박용재의 하위호환이지만 오션스 한국인 에이스 김정용 선배의 상위호환 정도.
딱!
1번 타자 황석규 선배가 4구 체인지업을 건드렸다.
파이러츠 3루수 최지용이 살짝 빗맞아 느리게 바운드되며 굴러가는 타구를 맨손으로 캐치하더니, 자세를 제대로 잡지도 않고 1루로 강하게 송구했다.
황석규 선배는 발이 꽤 빠른 편이지만 최지용의 송구는 빠르고도 정확했다.
“아웃!”
최지용은 미래의 국가대표 3루수다. 일발 장타와 수비력 및 어깨를 갖춘 선수.
확실히 파이러츠의 전력은 탄탄하다. 뭐, 지난 시즌 우승팀이니 당연한 소리일지도.
유리가 파이러츠 팬이었다면 어땠을까.
흠.
그럼 소원 세 개 물어봤을 때 KBO 우승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으려나.
배영한은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다.
파이러츠 유격수 옥시경은 작은 체구를 가졌지만, 민첩한 움직임으로 수비 범위를 넓게 가져가는 수비형 유격수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풋워크였고, 정확한 송구.
“아웃!”
배영한은 어쩐 일인지 1루까지 전력 질주했지만, 공이 더 빨랐다.
“갱! 건! 우!”
그리고 이제, 내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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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러츠 선수들은 정규 시즌 오션스와의 첫 만남에서 오션스의 기를 확 죽여놓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빈볼을 던진다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평소보다 집중력 있게, 차분하게 승리를 따낼 생각이었다.
다른 팀들이 어떻게 오션스에게 당했는지 봤다. 프로 스포츠는 결과로 이야기한다. 이제야 겨우 정규 시즌의 10%를 조금 넘긴 일정을 소화했지만, 오션스는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강한 팀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그렇게 내버려 두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2018년 이후 오션스보다 낮은 순위로 시즌을 마감한 적이 없는 파이러츠다. 절대 그런 일을 벌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다.
따아악-!
하지만 선발 투수인 손용기의 제구가 조금 흔들리자, 강건우는 그대로 커브를 때려내 2루타로 연결했다.
아무리 제구력이 좋다고 한들, 만화처럼 존을 9개로 분할하는 것은 불가능이다.
국내 투수 중 손꼽히는 제구력을 가진 손용기라도 실수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강건우에게 2루타를 허용하자, 인터넷의 반응도 볼 만했다.
[갓건우한테 첫타석에 홈런 안 맞았으니 손용기>>>>>김박민임]ㄴㅇㅈ이지 ㅋㅋㅋㅋ
ㄴ2루타면 선방 맞찌
ㄴ국대 1선발 자격 있음
ㄴ손.용.기.쿤. 제법인걸? 강건우를 상대로 2루타에 그치다니 킄.킄.킄.
ㄴ컨셉 쓰레기같네;;;
그만큼 강건우에 대한 오션스 팬들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ㄴ아 근데 왜 주자 없음
ㄴ황석규 ㅂㅅ
ㄴ출루 했으면 1점인데 ㅡㅡ
ㄴ배영한 70억 받았으면 밥상 푸짐하게 차려야 하는 거 아니냐???
이 시점까지 배영한은 타율 3할 6푼을 기록하며 2번 타자로 충분한 성적을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션스 팬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는 듯했다.
사실, 이 팬들의 마음을 채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양대근이 선제 타점을 뽑아냈다.
따악!
“양대근! 양대근! 양대근!”
발 빠른 선수였다면 2루타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타구.
양대근은 1루에 멈춰 섰지만, 강건우는 빠르게 달려 공보다 빨리 홈에 도착했다.
ㄴ야 강건우 개빠르지 않냐?
ㄴ김지호보다 빠른거 같은데
ㄴ근데 왜 도루 거의 안 하지
ㄴ1루타보다 홈런이 많음 도루 할 기회가 잘 없음
ㄴ그래도 역시 양대근임 안타 지렸구요
ㄴ덩산 ㅈㄴ 느리네 진짜
ㄴ솔직히 건우 아니었으면 타점도 아님
ㄴ마 그래도 쳤으면 잘 쳤다고 좀 해주라
ㄴ누가 못 쳤다고함? 그냥 존나 느리다고 했지
ㄴ양대근만한 타자도 없는데 왜 자꾸 까냐고
ㄴ덩산맘 또 나왔냐
ㄴ다음 울풍기네
ㄴ와 진짜 타순 개깝깝하다 덩산 울풍기 노루새끼ㅋㅋㅋ
ㄴ백투백투백 칠때는 좋다고 난리친 새끼 너 아님?
ㄴ나 아님
ㄴ울풍기 초구 건드려서 광고 소환할듯
ㄴ예지력 상승
울프팩의 방망이가 돌았다.
따아아아악-!
어마어마한 소리가 났지만, 위로만 높게 치솟은 울프팩의 타구는 좌익수 정조준에게 쉽게 잡히며 1회 초가 끝났다.
그래도 1대 0. 선취점을 올린 오션스의 분위기는 괜찮았다.
이닝 교대, 그리고 커크 심슨의 등장.
파이러츠 홈구장이지만, 부산과 거리가 가까운 데다가 최근 오션스의 성적이 워낙 좋은지라 원정경기를 꽤 많이 찾아온 오션스 팬들이 노래를 부르며 심슨을 반겼다.
“더-심-슨-!”
“빰빠빠빰빰빰빠밤!”
커크 심슨이 관중들의 환호를 들으며 마운드를 밟고, 뒤를 돌아보며 강건우에게 말했다.
“잘 봐, 갱스터. 갱스터의 투심이 해적선을 어떻게 침몰시키는지 말이야.”
강건우는 저 투수가 한국어를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야. 뭐라고 하는 거야?”
“2루수한테 실책하지 말라고 전해달래.”
“아닌 거 알거든?”
“그럼 뭐라고 했게?”
“갱스터…파리…싱킹패스트볼…”
그냥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수비할 준비를 마쳤다. 한국어로 저런 말을 했다면 분명 노경우에게 놀림감이 됐을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