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45)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47화(47/385)
동네 한 바퀴 -5-
#
대구 엔진스와 부산 오션스는 KBO 원년부터 연고지와 팀명, 모기업이 바뀌지 않고 계속 이어져 오고 있는 둘뿐인 팀이다.
하지만 두 팀의 공통점이라고 해봤자 원년 구단이라는 점이나 영남 지방에 연고지를 뒀다는 것 정도밖에 없다.
통산 승리와 통산 승률 1위 팀. 그리고 특정 팀 상대 한 시즌 최다 승리(오션스 상대로 18승 1패).
물론 암울한 시기도 있긴 했지만, 한국 시리즈 최다 진출 팀인 엔진스는 오션스와 비교하기 힘든 역사를 쌓아 올린 팀이었다. 사실 오션스는 암울한 시기가 더 많았으니.
최근 성적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팀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대구 엔진스.
그리고 올해 초반 성적이 좋긴 한데 언제 팬들의 분위기가 바뀔지 알 수 없는 부산 오션스.
두 팀의 시즌 1차전 선발 투수는 국민성과 염윤현이었다.
코치진이 그리 선호하지 않는데도 감독이 거의 독단적으로 1군 기용을 결정한 국민성과 엔진스의 기대주 좌완 파이어볼러 염윤현의 맞대결.
양 팀이 쌓아온 역사만큼이나 차이가 있어 보이는 선발 매치업이었다.
최고 구속이 138km/h인 국민성은 구종 자체도 평범해 보였다. 포심, 체인지업, 그리고 슬라이더가 안 맞아서 익힌 서드 피치 컷 패스트볼.
반면, 최고 152km/h까지 던진 적 있는 염윤현은 포심에 슬라이더, 서클체인지업과 포크볼까지 던질 줄 안다.
그 누구도 큰 기대를 갖지 않았던, 8라운드 출신의 평범한 투수와 고교 시절부터 주목받았던 좌완.
사실, 오션스 팬들조차 국민성의 진가를 잘 몰랐다. 지난 경기 7이닝 3실점 호투에 기뻐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대치가 높은 것은 아니었다.
평균 구속이 130km/h 초중반에 불과하고 화려한 변화구를 던지는 것도 아닌, 널리고 널린 투수.
그게 바로 야구 팬들이 보는 국민성이었다.
1회 초, 오션스가 1점을 먼저 따내고 시작했다. 제구 안 되는 좌완 파이어볼러 염윤현이 선두 타자에게 볼넷을 내주며 위기를 자초했으나 엔진스의 자랑 부동산 트리오 중 키스톤 콤비인 이현동과 김산이 깔끔한 수비로 병살타를 유도했다.
[국민성 잘 던지면 좋겠는데 왜케 기대가 안 되냐]ㄴ그래도 날 풀리면 구속 좀 더 올라오지 않을까?
ㄴ데뷔전이라 긴장해서 구속 안 나왔을 가능성 있다고 봄
아니었다. 국민성에게는 138km/h도 1군 데뷔 기회에 기뻐서 조금 오버한 구속이었다.
ㄴㄹㅇ임 뭔가 비밀무기 있을 거 같지 않냐??
그것 또한 아니었다. 물론 투심을 배우고 있긴 했지만, 아직 1군 무대에서 제대로 써먹을 만큼 익숙해지진 못했다.
ㄴ국민성 2군 성적 어땠는지 아는 사람 없음?
ㄴ2번 등판해서 9이닝 6실점 함
ㄴ백퍼 비밀무기 있네 2군에서도 그런데 어케 1군에서 뛰냐
6실점 중 자책점은 1점에 불과했다. 상식적으로, 1군에서도 쓸 포수가 없는데 2군 포수의 수준이 어땠겠는가.
130km/h대의 패스트볼을 포구하려다 놓치는 것이 오션스 2군 포수의 현실이었다.
어쨌거나, 국민성은 엔진스 1번 타자 김산을 상대로 초구부터 3구 연속으로 볼을 던졌다.
ㄴ조졌네
ㄴ아
ㄴ시발ㅋㅋㅋㅋㅋㅋㅋㅋ
ㄴ공 느린 애들이 이게 문제임 공 느리니까 자신 없어서 존 밖으로 빼고 그러다 몰리면 처맞고 ㅅㅂ
팬들이 보기에는 그랬다. 데뷔전에서 QS+(7이닝 3실점 이하)를 기록했고,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이 앞서 볼질을 한다고.
하지만 국민성은 볼 세 개를 내줬다고 딱히 흔들리진 않았다. 이 투수는 무실점 투구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스트라이크 존을 점검해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조금 아슬아슬한 코스로 던졌을 뿐.
물론, 3구는 조금 아쉬웠다. 그리고 등 뒤에 서 있는 강건우를 힐끗 바라본 후, 체인지업.
“스트-라이크!”
포심이라 생각하고 휘둘렀다면 유격수 방면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지만, 타자는 휘두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볼 세 개에 스트라이크 없으면 치기 좋은 공이 와도 안 휘두르는 타입.’
대담한 생각이었다. 타이밍이 안 맞으면 유격수 앞 땅볼이 될 가능성이 있겠지만, 체인지업이 간파당했더라면 장타로 연결되기 쉬운 코스였다.
‘그럼 3볼 1스트라이크라면?’
타자의 머릿속에 없을 것이 분명한 투심 패스트볼이라면 충분히 범타를 유도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국민성은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아직 완성도가 그리 높진 않다. 위기를 한 번 쉽게 넘길 수도 있는데 경기 첫 타자에게 쓰기엔 아깝다.’
그리고 다음 시도는, 과감하게 존 중앙으로 포심.
따아아아아악-!
언제나 모든 일이 생각한 대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김산의 배트가 세차게 돌았고, 타구는 펜스를 살짝 넘겼다.
ㄴ밑천 떨어짐 ㅋㅋㅋㅋㅋㅋㅋㅋ
ㄴ시바 아까 한 점은 더 냈어야 했다 진짜
ㄴ투수 교체해야 하는 거 아니냐???
ㄴ퍽동님 존나 여유로움 ㅆㅂ
ㄴ근데 교체하면 누구 올리냐 ㅋㅋㅋㅋㅋㅋㅋ
오션스 팬들은 국민성의 오늘 첫 투구를 보고 이미 경기가 끝났다며 비관하고 있었지만.
‘차라리 잘 됐다. 홈런 한 방 맞고 정신 차리면 된다. 아까 타자들이 1점 냈으니 이제 동점일 뿐이고 주자도 없다.’
국민성은 좌절하는 대신 그렇게 생각하며 아주 살짝 미소지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그건 절대 미소가 아니었다.
ㄴ홈런 처맞고 인상 쓰는 거 보소 ㅅㅂ
ㄴ뭘 잘했다고 멋있는척함???
ㄴ눈깔 쑤셔버리고 싶네
다음 타자를 상대로 유격수 앞 땅볼을 유도했다. 강건우는 빠른 타구를 손쉽게 처리해 1루로 던졌다.
ㄴ건우 수비 보니 눈정화되네
ㄴ갓.건.우.
ㄴ겅누 아니었으면 안타코스임
ㄴ건우한테 절해라 읍민성 ㅡㅡ
그 다음 타자의 타구는 유격수 라인드라이브.
ㄴ면민성 건우빨로 살아남네
4번 타자 타구도 유격수 방면 땅볼.
“아웃!”
ㄴ동민성 운 좋다??
ㄴ아웃 하나 잡을 때마다 승격되는거임?
ㄴ승격은 무슨;;; 읍>면>동 순이다 빠가사리야
ㄴ그게 중요하냐? 3타자 연속 범타인데??? 뭐가 중요한지 모르냐??? 너 이새끼 엔진스 팬이지???
ㄴ이새끼 왜 급발진함;;
1회 말이 끝난 후, 국민성은 강건우에게 눈빛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강건우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왜 째려보지. 내 수비가 마음에 안 들었나? 진짜 잘 막은 거 같은데?’
#
구속이 빠르면 좋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국민성은 1회 말 선두 타자에게 홈런을 한 대 맞은 후, 느린 구속으로도 엔진스 타자들을 효율적으로 막아냈다.
“볼넷!”
볼넷을 내주기도 했다. 존 끄트머리를 집요하게 공략하는 타입이니 자연스럽게 볼넷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아직 상대 팀에서도 국민성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국민성은 볼넷으로 타자를 내보내고 나면 조금 패턴을 바꾼다. 존 바깥쪽 낮은 코스에서 중간 지점의 낮은 코스로.
딱!
느린 포심만 여덟 개를 던지고 난 후 이어지는 체인지업.
낙차가 큰 편은 아니지만 완만하게 휘어지며 타이밍을 빼앗는데, 패스트볼을 생각하던 타자의 배트를 피해 갈 정도는 아니지만, 땅볼을 유도하기에는 충분하다.
“아웃!”
“아웃!”
제구 좋고, 피해 가는 피칭을 하지만 은근히 배짱도 좋다.
대충 알 것 같다. 저런 식으로 위기를 피해 나가곤 하지만, 제대로 분석 당하고 나면 쉽지 않을 거다.
배짱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제구가 좋긴 해도 다른 무기도 필요하다.
내버려 둬도 언젠가는 투심으로 빛을 볼 선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투심을 던지라는 아이디어를 던져준 것뿐이고, 투심을 던진다 하더라도 국민성을 일본 프로야구팀의 핵심 선발로 만든 투심을 던질지 그보다 떨어지는 투심을 던질지는 모른다.
그래도, 오늘 경기까지는 투심 없이도 괜찮을 것 같다. 아니, 투심을 하나 던지긴 했다. 3회 말 무사 만루 상황에서 존 중앙으로 그걸 던져버리더라. 그 상황에서 1점을 내주긴 했지만, 병살로 급한 불을 껐을 때는 나도 조금 식은땀이 흘렀다.
그런 상황에서 한 번도 안 던져본 투심이라니.
따아아아악-!
어쨌거나, 위기 다음 기회라고, 4회 초에 이시욱 선배가 만루 홈런을 터뜨렸다.
“봤나! 이게 바로 그랜드 노루포다!”
노루라는 별명이 싫다더니, 자기 입으로 홈을 밟으며 그렇게 외쳤다.
그것 말고도 타점이 꽤 나왔다.
23살의 좌완 파이어볼러 염윤현은 3.1이닝 5실점을 기록한 후 볼넷만 두 개를 더 내주고 강판당했고, 올라온 불펜 투수가 삼진으로 투 아웃을 만들었지만 황석규 선배에게 적시타를 또 맞았다.
그리고 꾸역꾸역 던진 국민성이 6.1이닝 3실점을 기록한 가운데 오션스가 14대 7로 승리했다.
#
[부산 오션스 14 : 7 대구 엔진스.]ㄴ시민성 퀄스 ㅅㅅㅅㅅㅅ
ㄴ씹ㅋㅋㅋㅋ홈런 처맞고 면민성 되더니 시민성까지 승격했네 ㅋㅋㅋㅋ
ㄴ도민성 정도는 괜찮지 않냐?
ㄴ도민성 하고 싶으면 QS+ 정돈 해야 하는거 아님?
ㄴ킹정이지 ㅋㅋㅋㅋ 완봉하면 국민성됨 ㅋㅋㅋ
ㄴ자기 성씨 찾으려면 완봉까지 해야 하냐? 야빠새끼들 쪼잔한거 보소 ㅋㅋㅋㅋㅋ
ㄴ그럼 퍼펙트하면 뭐임?
ㄴ월드민성 시켜줌
ㄴㅉㅉㅉ빡통들아 쟤 건우 없었으면 0.2이닝 8실점하고 바로 2군행이었다
ㄴ그래도 이현호 보느니 국민성이 훨 나음
ㄴ그건 이현호를 선발로 쓰는 오션스가 미친거고
[데뷔 2경기 만에 2승 달성한 오션스 투수 국민성, ‘기쁩니다.’]ㄴ???
ㄴ얘 한국말 못함?
[국민성이 3회 말 병살을 유도한 구종은? ‘강건우한테 배운 투심입니다.’]ㄴ강건우 뭐임
ㄴ심슨도 갓갓우한테 투심 배웠다고 하지 않음?
ㄴ투코 짜르고 건우 플레잉 코치 시키면 안 되냐???
[대구 원정에서 만루포 작렬 이시욱!] [든든한 강건우, 오션스 내야 수비의 희망!]ㄴㄹㅇ수비가 급이 다름
ㄴ타격도 급이다르다 야알못새끼야
ㄴ칭찬 해줘도 지랄이야 씹새끼가
ㄴ싸우지 마 븅신들아
ㄴ오션스팬특)뭔말해도 욕부터 침
ㄴ일반화 하지 마라 개새끼야
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바로 증명해버림ㅋㅋㅋㅋㅋㅋㅋ
#
“난 괜찮다.”
엔진스와의 시즌 2차전.
8이닝 2실점으로 호투한 가필드가 타자들에게 한 말이었다.
“승리는 다음에 따내면 되니까 가서 포기하지 말고 승리해줘.”
종종 다혈질적인 모습을 보이는 투수이기는 하지만, 그런 모습을 타자들 탓으로 돌리지는 않았다.
114개를 던졌다. 끝까지 던지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시즌은 이걸로 끝이 아니니까.
나는 오늘 볼넷만 세 개를 얻었다. 엔진스 선발 투수 채지성은 날 노골적으로 피해 갔고, 하필 다른 타자들의 타격 컨디션이 영 올라오지 않았다.
채지성의 영리한 피칭에 당했다고 하는데 맞을지도 모르겠다.
평균 이상의 포심에 꽤 좋은 커브. 괜찮은 슬라이더와 싱커에 빼어나진 않지만, 잊을 만하면 던져서 타이밍을 뺏는 체인지업까지.
말 그대로 팔색조라는 별명이 아주 잘 어울리는 투수였다.
어제의 대패를 만회하려는 듯, 타격에서 시원한 경기를 보여주진 못했지만 엔진스 야수들은 수비 상황에서 집중력을 발휘했다.
어쨌든 우리는 이날 2대 1로 패배했다.
내가 경기를 보고 있는 팬이라면 좀 답답했을 것 같은데, 유리는 오히려 날 걱정해줬다.
-유리 누나 : 마! 남자가 한겜 졌다고 처지고 그러는 거 아니다!
-유리 누나 : (사진)
-나 : 나 이거 프사 해도 돼?
-유리 누나 : 안돼
-나 : 왜??????????????????????
-유리 누나 : 안된다고 누나가 말했다
-나 : 알겠어…
-유리 누나 : 기죽은 척해도 안 됨
-나 : ㅠ.ㅠ
-유리 누나 : 울어도 안 됨
-나 : 철벽 수비 장난 아니네
-유리 누나 : 엣헴
유리는 날 위로하려는지, 입술을 내밀고 뽀뽀해주는 듯한 사진을 찍어서 보내줬다. 자기도 보내줘 놓고 부끄러운지 프로필 사진으로는 쓰지 말라고 했지만.
하긴. 이 귀여운 건 나 혼자 봐야지. 아까우니까.
그리고 다음 날 경기.
나는 엔진스 외국인 투수 제임스 베리를 상대로, 시범 경기에서 그랬던 것처럼 몸쪽으로 바짝 붙인 140km/h 후반대의 포심 패스트볼을 받아쳐 펜스를 그대로 넘겨버렸다.
“강-건-우우우! 강! 건! 우! 강건우! 오션스 강건우-!”
“갱! 건! 우!”
“마! 이게 바로 강건우다!”
가끔 어떤 투수들은, 한 번 당해놓고도 한 번 더 시도하곤 한다.
이게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을 못 해서 그렇다기보다는, 뭐라고 해야 하나. 그냥 가끔 그렇게 승부욕이 타오를 때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엔진스 포수 백준섭은, 그때처럼 홈 플레이트에서 일어나서 크게 소리쳤다. 약간 데자뷰 같은 느낌이었다.
“야! 제임스! 괜찮아! 플리즈 릴랙스! 저스트 1이닝! 아, 씨바. 1이닝이 영어로 뭐더라! 야! 아무튼, 릴랙스!”
투수보다는 포수가 더 흥분한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1회 초부터 쓰리런이니 유리가 기뻐하고 있는 얼굴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베이스를 돌아 덕아웃으로 들어오자, 박의현이 두 손을 허리에 올리고 비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내게 말했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상대한 모든 팀에게 홈런을 때리다니! 이제 한 팀 밖에 안 남았다! 나, 박의현! 비록 너보다 나이는 많지만 널 정신적 스승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구나! 장하다! 강! 건! 우!” “
“…제발 가서 좀 앉아요.”
“무슨 소리냐! 넌 이 야구에 미친 남자 박의현의 진실된 칭찬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천! 재! 타! 자! 강! 건! 우!”
“…”
“잘! 생! 겼! 다! 강! 건! 우으아아아악! 코치님! 귀! 귀!”
“정신 사납다, 박! 의! 현!”
타격 코치가 코치다운 일을 한 게 몇 번째더라.
오늘이 처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