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70)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72화(72/385)
숨기다 만 강속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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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게 장난은 아니라고 생각해. 자네도 그랬을 거라 믿어. 사실, 평범한 일은 아니지. 마운드에 누군가를 세우는 것은 내 권한이니까. 아마 다른 선수였다면 내게 자문을 구했을 텐데, 자네는 다른 길을 찾은 것 같더군.”
투수 코치 론버거 킨은 능글맞게 미소지으며, 표정과는 다른 내용을 입 밖으로 꺼내놓았다.
사실, 나도 이 사람의 말에 동의한다. 투수 코치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도 변명거리는 있다.
“어떻게 생각하실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내 귀는 꽤 잘 열려 있지.”
“이전 투수 코치님은 모든 투수에게 포크볼을 던지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래. 그랬다고 들었어.”
“개인적으로 포크볼이 저랑 안 맞는다고 생각해서 따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투수 코치가 바뀌지 않았더라면 전 타격에만 집중했을 겁니다.”
“그건 부상 우려와 관련된 이야기인가?”
“예.”
어쨌거나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니까.
론버거 킨 투수 코치는 슬쩍 웃었다.
“자넨 독특한 선수야.”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특히 여기서는. 다른 선수들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거든.”
“그런가요?”
“우리 팀의 어떤 선발 투수는, 내가 여기 온 뒤로 ‘Yes’라고 밖에 말 한 적이 없을 정도지.”
확실히는 모르지만, 아마도 국민성일 것이다.
그건 그렇다. 우리 감독도 다른 선수들이 자신에게 명확한 의사 표현을 잘 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기도 했다.
선수들은 외국인 감독을 조금은 어색해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인 감독과는 다르게 몇 시즌 후에는 떠날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 감독들이야 감독직에서 물러나더라도 어차피 야구계 선후배로 엮여서 어떻게든 만나게 되니까.
나는 명확하게 말했다.
“절 마무리로 쓰면 체력에 문제가 있는 기존 마무리 투수를 셋업맨으로 쓸 수 있을 겁니다. 좌투수와 우투수로 셋업맨을 구성해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거고요.”
“그건 자네 구위를 보고 결정해야지. 그리고 프로에서 던져본 적은 없지 않나?”
한국인 코치였다면 건방지다고 욕부터 나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론버거 킨의 표정에는 흥미로움이 서려 있었다.
“저는 올해 4월이 되기 전까지는 프로에서 홈런을 쳐 본 적도 없었죠.”
“흠.”
“그리고 제 OPS는 1.4가 넘고요.”
“투수와 타자는 달라.”
“제가 던지는 걸 보면 다르게 생각하실 겁니다.”
“좋아. 난 놀랄 준비가 되어 있어. 제법 많이 놀랐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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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훈련장에서 힘을 살짝 숨겼다.
이유는 부상 우려다.
일반적으로 슬라이더나 포크볼, 싱커 등의 구종은 부상 우려가 크다고 알려져 있다.
투수가 공을 던지는 것은 구종 불문하고 신체에 무리가 많이 가는 행위지만, 팔꿈치를 비트는 동작이 주가 되는 구종이 더 심한 편이다.
사실, 강속구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일부러 구속을 조금 줄여서 던졌다.
150km/h를 조금 넘기는 수준으로 유지하되, 제구에 더 신경 쓰기 위함이기도 하다.
뭐, 필요할 때가 온다면 더 빠르게 던질 수도 있다. 유리와의 훈련에서 시뮬레이션했을 때는 162km/h까지는 나올 거라고 예상됐다.
다른 구종도 던질 줄은 다 알지만, 일단은 포심과 체인지업 위주로 던질 예정이다.
150km/h 속구를 던지다가 갑자기 160km/h가 나왔을 때 타자가 얼마나 제대로 반응할 수 있을까.
혹은.
포심과 체인지업 이지선다를 머릿속에 넣고 타석에 섰는데 슬라이더나 커브가 나온다면?
“…”
“괜찮았나요?”
“제기랄. 솔직히 말하지. 자네가 송구하는 걸 보고 투수로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 그 어깨가 탐났거든.”
“지금은요?”
“이미 다 큰 투수는 키우는 재미가 그리 많지 않지.”
반응은 이 정도다. 다만 보직에 대한 고민은 좀 더 해야겠다고.
물론 박의현에게는 실전에서 다른 공도 던질 거라고 언급을 해둬야 한다. 포수까지 속이면 곤란하다.
어쨌거나, 우리는 서울에서 엔젤스와의 경기를 준비했다.
나는 출장 정지 기간이기에 덕아웃에 앉을 수가 없다. 관중석에서 보자니 좀 그래서 혼자 숙소로 돌아와 경기를 봤는데, 돌아오기 전 국민성의 얼굴에서 처음으로 표정 변화를 느꼈다.
“…”
“…괜찮으세요?”
“…아니.”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국민성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건, 나 또한 투수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국민성은 씁쓸한 표정(눈을 살짝 감고 아랫입술을 아주 살짝 깨물었다)을 지었고, 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래도 내일은 뛸 수 있다. 앤디는 내게 지난주는 끔찍했지만 이번 주는 행복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어쨌거나.
국민성은 5이닝 2실점을 하면서 투구 수 109개를 기록했고, 다시 불펜이 가동됐다.
뭐…우리 불펜이 어땠는지는…
-유리 누나 :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건우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유리 누나 : 불펜 어떡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서프라이즈 해주려고 했는데.
메신저에서 유리가 울보가 되어버려서 이렇게 말해줬다.
-나 : 내가 던질게
-유리 누나 : 건우가 던져줄래?ㅠㅠㅠㅠㅠㅠㅠㅠㅠ
-유리 누나 : 진짜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유리 누나 : 빵동님이 허락했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울보 유리가 귀여워서 더 놀려주고 싶었는데 그냥 전화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줬다.
“가족들한텐 비밀로 해. 서프라이즈 어때?”
-아, 당근빳따지!
메신저로는 울보였지만, 전화로는 씩씩했다.
“누나 귀여워.”
나도 모르게 진심이 튀어나왔다. 스마트폰 너머에서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여보세요?”
끊겼나?
아닌데?
-…야. 강건우.
“아, 끊긴 줄 알았네.”
-너…
“응?”
-…전에 귀여운 것 보다 섹시한 게 더 좋다고 하지 않았냐?
내가 그랬나?
언제?
30년 전쯤? 고등학생 시절의 강건우는 그런 놈이었던 걸까.
근데 귀여운 걸 어떡하라고?
“난 귀여운 누나도 좋고 섹시한 누나도 좋아. 근데 어떤 모습이라도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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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스, 엔젤스에 9대 4로 패배하며 시즌 첫 6연패.]└느그가 프로가????
└6연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꼴션스 불펜 무슨일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불펜 터지는거 보니 강건우 있었어도 제자리 찾아갔을듯
└건우 없어서 불펜 터진거임
└신인 하나 없어서 팀 터지는 게 정상?
└씹새들아 갓건우는 걍 신인이 아니다
└이딴팀도 프로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용길의 야구회로) 강건우가 사라지자 승리도 사라졌다.]└아니 진짜 선수 하나 빠졌다고 팀이 이렇게 개판이 될 수가 있나?
└수비 안정감 제로 됨 ㅋㅋㅋㅋㅋㅋ
└타선도 엉망 되더라
└오합지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강건우는 대체 오션스에서 어떤 싸움을 해온 걸까
└오션스에서 싸운 게 아니라 아이언스 홈에서 싸웠지
└정29현 참교육자 강건우 센세…
└엔젤스 팬인데 존나 소름 끼치는 소리 들었음. 시즌 초반에 우리 2루수 부족해서 고은태 데려오려다가 단장이 포수 안 내준다 해서 무산됐다고 ㄷㄷㄷㄷㄷ
└그 틀드 했으면 오늘 고은태 터졌을지도 모름
└엔젤스 너넨 낼 뒤졋다 건우 돌아온다
└좆건우가 우리 선수는 안 패겠지?
└인성 오지던데 팰수도 있음 ㄷㄷㄷㄷㄷㄷ마우스피스 물고 경기해야 할듯 ㄷㄷㄷㄷㄷㄷ
[휴 브레드먼 감독, ‘때로는 힘든 시기도 있다. 그걸 이겨내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엔젤스 박재정 감독, ‘선수 하나 없다고 해서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잘 한 것이니 우리 선수들을 칭찬해달라.’] [징계 해제 강건우. 바로 실전에 투입될까.] [프로 스포츠에 선후배 간의 위계질서가 필요한가.]#
“우우우우우우우우!”
저 야유가 나를 향한 것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모른다기보다는, 신경 쓸 필요는 없다.
“평소처럼 플레이해줬으면 해.”
나보다 다른 사람들이 더 걱정이 많다. 나는 감독님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준비됐습니다.”
“두 가지 모두?”
“물론입니다.”
감독님은 내게, 이닝 중간에 투입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못 박았다.
이닝 중간에 들어가게 된다면 불펜에서 몸 풀 시간이 부족하다.
그리고 KBO 규정상, 포지션 플레이어가 마운드에 서게 되면 지명 타자가 소멸하게 된다. 타선의 핵심인 양대근 선배가 빠지게 되기에 내가 등판할 기회가 쉽게 오지 않을 수도 있다.
코칭 스태프의 결정이겠지만, 투수로 투입된다면 항상 꾸준하게 강력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 이유다.
내가 마운드에 서면 유격수 자리에 공백이 생기는 것뿐만 아니라 양대근이라는 강력한 타자의 공백도 함께 생기게 되기 때문이다.
원정 경기이기에 1회 초 공격.
대근이 형은 선수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침착한 얼굴이다.
“안 그랬으면 좋겠는데, 엔젤스 선수들이 자극하면 고참들이 건우 좀 보호해줘라.”
처음 만났을 때와 많이 바뀌었다. 배영한이 능글맞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예. 양캡이 까라면 까야지.”
어쨌거나. 경기가 시작됐다.
우리 선발은 앤디. 엔젤스 선발은 마르크 파냐.
시즌 전 시범 경기 개막전 때 만났던 투수다. 홈런을 때렸었고, 그 날 나는 5안타 경기를 펼쳤다.
그래도 시범 경기와 정규 시즌 경기는 다르다.
우리 타순은 내가 징계로 빠지기 전과 거의 비슷하다.
바뀐 점이 있다면 이시욱 선배가 5번, 울프팩이 6번이 됐다는 점.
그리고 김성훈이 빠지고 유준이 9번 중견수 자리를 차지했다는 부분이다.
따악-!
황석규 선배의 타구가 꽤 잘 맞았는데, 엔젤스 우익수 송병재가 달리면서 잡아냈다.
“흠. 사직이었으면 홈런인데.”
물론 잠실이 크긴 해도, 절대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근데 황석규 선배의 그 재미없는 농담을 들으니 돌아온 게 조금은 실감 난다.
처음 오션스에 입단 했을 때는 막막했는데, 이제 그래도 꽤 정이 든 것 같다.
딱!
배영한의 타구는 유격수 정면.
TV로 볼 때도 약간 느꼈는데, 타자들의 타격감이 조금은 무뎌져 있는 듯했다.
배영한은 마르크 파냐 상대로 4할 정도의 통산 타율을 기록 중이지만 나쁜 타구가 나왔다.
야구란 원래 그렇다. 수위급 타자들도 안 좋을 시기가 있다.
하필 대부분의 타자들이 동시에 약간 슬럼프를 맞이했던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나 하나 없다고 죄다 질 수는 없는 일이다.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영향을 미쳤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게 다는 아닐 거다.
대기 타석에 있다가 타석으로 걸어가자 야유가 쏟아진다. 배영한이 미묘하게 웃었다. 설마 날 걱정해주는 건가.
야유는 익숙하다.
난 언제나 야유의 대상이었고, 투타 겸업이라서 상대 팀에게 더 자극을 받곤 했다.
이런 건 별 것 아니다.
“오늘은 주먹질하지 말자. 야구로 승부하자고, 야구로. 응?”
포수의 가벼운 도발에, 그냥 고개 숙여 인사하고 타석에 들어섰다. 뭐라고 대꾸하거나 인상을 쓰면 구실만 만들어줄 뿐이다.
그리고 여기에 서서.
내가 가장 잘 하는 걸 하면 된다.
야구만 잘 하면 뭐든지 용서받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고은태와의 그 일이 내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할 뿐이다.
투수는 156km/h의 빠른 공을 던진다. 6경기 정도 쉰 데다가, 어마어마한 구설에 휘말렸으며, 자신들의 홈구장에서 야유를 받으며 타석에 들어선 20살짜리 애송이를 상대로 기선제압을 안 하면 그건 에이스라 불릴 자격도 없지.
투수가 공을 던졌고, 왼쪽 무릎을 유연하게 뻗으며 스윙을 시작했다.
공기가 가볍다.
내 배트의 스위트 스폿과, 묵직하고 빠르게 날아드는 공이 한 점(點)에서 만났다.
따아아아아아아아악-!
여기는 엔젤스의 홈구장이지만, 원정 응원석에는 오션스 팬들이 가득하다.
내가 타석에 들어설 때는 야유가 가득했지만, 내가 홈런을 때렸을 때는 환호가 이 구장을 가득 메웠다.
“강-건-우우우우! 강! 건! 우! 강건우! 오션스 강건우-!”
“갱! 건! 우!”
“건우야아아아아아악!”
이 정도면 복귀 타선치고는 꽤 괜찮았던 것 같은데.
오션스의 원정 팬들은 내 홈런에 미친 듯이 기뻐했고, 나는 홈을 밟고 덕아웃으로 들어가며 죽어라 두들겨 맞았다.
“와! 와! 와! 와!”
“강건우 진짜 미친놈!”
“복귀하자마자 홈런이야?”
“이! 나쁜! 제일 나쁜! 강건우!”
…노경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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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우가 1회 초에 솔로 홈런을 때려내며 경기 감각이 죽지 않았음을 증명했지만, 경기는 박빙으로 흘러갔다.
-아! 강건우! 무릎 높이로 튀어 오르는 타구를 깔끔하게 잡아내서! 병살! 병살입니다! 1사 만루 위기를 벗어나는 앤디 가필드!
-강건우 선수가 돌아오니 오션스 내야의 안정감이 달라지는군요. 정말 좋은 수비였습니다.
앤디 가필드는 지난 경기에서 보여준, 감정적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환하게 웃으며 든든한 유격수에게 박수를 보냈다.
5회가 지났을 때 스코어는 1대 0.
마르크 파냐는 홈런 하나에 흔들릴 만한 투수가 아니었고, 앤디 가필드와 수준 높은 투수전을 펼쳤다.
6회, 1대 0.
7회, 1대 0.
그리고 8회.
투구 수가 이미 100개를 넘긴 앤디 가필드가 마운드를 넘겼다.
좌투 셋업맨 김정혁이 8회를 무사히 막아냈다. 좌타자가 즐비한 엔젤스를 상대로 삼자범퇴.
강건우는 어쩌면 오늘은 마운드에 올라갈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근 조형오는 개점휴업 상태였다.
휴 브레드먼은 욕을 먹으면서도 조형오를 세이브 상황이 아닐 때 등판시키지 않았다. 엔진스와의 3차전에서 2점 차이일 때도 조형오를 아꼈고, 9회 초에 드디어 조형오가 모습을 드러냈다.
“스트라이크-아웃!”
마무리 투수가 건재하고 강건우는 아직 실전에서 공을 던진 적이 없다. 감독이 조형오를 올린 것이 절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딱!
“아웃!”
감독과 투수 코치의 선택이 옳았다고 주장이라도 하듯, 조형오는 2아웃까지 깔끔하게 막아냈다.
타석에 엔젤스 4번 타자 미다 발데스가 올라왔다.
타율 0.351에 홈런 11개를 기록하고 있는 강타자가, 거짓말처럼 조형오의 4구째 투심을 펜스 밖으로 넘겨버렸다.
“발데스! 발데스! 발데스!”
“무적 엔젤스!”
잠실이 뒤집힐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엔젤스 팬들은 역전 가능성에 흥분했고, 오션스 팬들은 드디어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이었다.
[씨발 연패 끝나나 했더니 좆형오가 귀신같이 조지네]└은퇴해라 제발
└타자들 ㅆㅂ 뭐함
└족같네 진짜 간만에 이기나 했더니
└어쩐지 한동안 안 처맞는다 했다 ㅆㅂ
조형오는 그래도 다음 타자에게 범타를 유도해냈다. 6연패 후 승리할 기회를 잃어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에 조형오는 고개를 푹 숙이고 벤치로 돌아왔다.
하지만 엔젤스 팬들의 환호성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노경우가 적시타를 때려 스코어를 2대 1로 만들었고, 연장전 10회 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하지 못한 투수가 마운드로 올라왔다.
“이봐, 버거 킹. 자네 생각이 틀렸다면 우린 엄청난 분노를 마주 보게 될 거야.”
강건우를 등판시키겠다고 밀어붙인 론버거 킨이 대답했다.
“어차피 올릴 투수도 없어요. 조에게 2이닝을 던지게 할 수도 없고.”
[뭐임??? 강건우 등판?????]└먼데 ㅆㅂ 2대 1로 이기고 있는데 경기 포기임?
└건우 투수도 잘 함
└씨발 그건 고딩때 이야기고;;;
└프로에서 첫 등판을 이런 상황에서 시킨다고? 감독 또라이 아님?
└감독 처돌앗네;;; 깜빡이도 안 켜고 훅 들어오누;;
└아니 무슨 강건우가 만병통치약이냐?????
└강건우 등판? 무슨 일임?
└감독 정신 놓은듯ㅋㅁ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던질만한 투수도 없긴 함
└박은수는?
└근데 나 같아도 마무리 상황에서 박은수 올릴 바에 도박 함 걸어보겠다
└아니 6연패 중인데 도박 걸 상황이냐고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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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의아한 얼굴이다.
심지어 우리 팀 선수들까지도.
나는 지난 공격 이닝에 몸을 풀었다. 박의현도 경기 전에 나와 호흡을 맞출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조금 당황한 듯했다.
“포심이랑 체인지업만 던질 겁니다.”
“조, 좋다! 야, 야구 천재 강건우! 너만 믿는다!”
내가 본 박의현 중에 가장 말을 짧게 한 박의현이 아닐까.
데뷔전치고는 꽤 충격적인 상황이긴 하다.
그나마 하위 타선이라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선수들도 있긴 하지만.
여기서 자신 있는 건 나뿐인 듯하다.
타석에 선 엔젤스 유격수 윤세환이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자존심이 상했을까.
일단, 선구안이 좋고 장타력이 꽤 뛰어나지만 컨택 능력은 조금 부족한 선수다.
투수와 타자의 대결에서 데이터가 없으면 투수가 유리한 법이다.
싸인은 높은 코스 포심.
나도 그게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실전은 워낙 오랜만이라 조금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공 던진 짬밥이 있지.
싸인에 고개를 끄덕이고, 투구를 시작했다.
인터벌이 긴 것은 선호하지 않는다.
결정하는 순간, 타자를 공격하는 것이 내 투구 철학이다.
“스트라이크!”
전광판을 슬쩍 보니 152km/h가 찍혔다.
타자는 공을 하나 지켜보겠다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뒤에서 노경우의 얼빠진 감탄이 들려온다.
“오, 시발. 우와.”
유격수 자리에는 내가 없는 동안 경기에 나섰던 김연우.
수비력이 못 봐줄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2구.
포심.
“스트라이크!”
윤세환에게는 불운한 일일 거다.
내가 공을 던진 데이터는 본 적도 없을 것이고, 내가 올라올 거라 생각지도 못했을 테니까.
몸쪽 깊은 공에 헛스윙한 윤세환이 숨을 깊게 몰아쉬며 다시 자리를 잡았다.
배트를 쥔 그립이 조금 변했다. 짧게 쥐고 어떻게든 출루하려는 의도다.
이제 체인지업의 차례다.
안정적인 흐름으로 공을 던진다.
몸을 대각선으로 살짝 비튼 뒤, 왼쪽 발을 안정적으로 내디디고, 공을 쥔 오른손을 몸 뒤로 숨겨서 상·하체를 균형 있게 돌리며 최대한 앞에서 공을 놓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공을 던지더라도 완벽하게 동일한 투구 폼이다.
공이 날아간다.
그리고, 허공에서 살짝 멈춘 듯하다가 역회전하며 떨어진다.
“스트라이크! 아웃!”
서클 체인지업에 속절없이 헛스윙 삼진.
내가 이걸 던질 거라고 예상했다면 몰라도, 노 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데이터가 없다면 누구라도 속을 수밖에 없다.
마운드에 서 있을 때면 일이 쉽게 풀릴 때도 있다.
어떤 투수들은 공 3개로 삼진을 잡는 것보다 공 하나로 그라운드볼을 유도해 아웃을 따내는 것을 선호한다.
딱!
“아웃!”
그게 바로 이런 상황이다.
타자가 3루 땅볼로 물러난 후, 엔젤스는 대타를 내세웠다.
10회 말, 2아웃.
초구 포심은 파울.
2구째 체인지업도 파울.
3구도 파울.
4구 파울.
5구 파울.
꽤 끈덕지게 들러붙는 타자에게, 조금 숨겨두려고 했던 더 빠른 공을 던지기로 했다.
글쎄.
그냥 변덕일 수도 있지만.
파울로 계속 커트 당하니까 나도 모르게 숨어있던 승부욕이 튀어나왔다고 해야 할까.
공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그리고 왼발을 더 강하게, 어깨높이를 조금 더 높게. 근육을 폭발적으로 뭉친 다음, 터뜨리듯 강렬하게.
존 중앙에, 최대한의 힘을 다해서.
파앙!
“스트라이크! 아웃!”
심판의 삼진 콜을 들으며 전광판을 바라보자 162km/h가 찍혀 있었다.
유리가 좋아하겠지?
하지만 그런 생각을 미처 다 끝내기도 전에, 나는 우리 팀 선수들에게 파묻혀버렸다.
“우와! 이 미친놈!”
“야! 강건우! 강건우!”
“야구 천재!”
“미친 강건우!”
아.
그만 때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