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84)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86화(86/385)
별의별 놈이 다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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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가필드는 한국이 꽤 재밌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재밌는 선수도 많고 팬들도 특이한 사람들이 많았다.
메이저리그 레벨의 선수와 루키 리그 레벨도 안 되는 선수가 한 팀에서 뛰고 있다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처음 올 때만 하더라도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더 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염세적인 그 태도를 바꾼 것은, 수준을 떠나서 꽤 즐거워졌기 때문이었다.
본인도 메이저리그에서 버티지 못하고 튕겨 나간 신세이기는 하지만, 다른 걸 떠나서 야구가 즐겁게 느껴진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무엇보다 팬들에게서 받는 느낌이 좋았다.
물론, 앤디 가필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강건우가 없었을 원래의 오션스가 어떤 분위기였을지.
강건우가 없는 오션스에서도 앤디 가필드는 에이스였다. 하지만 지금처럼 평균자책점 2점대의 에이스는 아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투구 내용에 비해 승운이 따르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때의 앤디 가필드는 야구를 즐기기는커녕 항상 화가 나 있는 사람이었다.
언제나 야수들 때문에 화가 나 있었고, 코치와 의견 충돌을 빚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앤디는 첫 시즌 이후 오션스를 떠나 다른 팀에 입단했었다. 일반적으로 외국인 선수에게 구단이 보류권을 가져 구단이 포기하지 않는 이상 5년간 KBO 내의 타 구단과 계약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데, 앤디 가필드의 에이전트가 보류권 포기 조항을 넣지 않으면 계약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덕분이었다.
오션스 구단 측은 앤디 가필드가 국내에서 무조건 통한다고 확신했고, 최하위 탈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조항을 삽입했었다.
그리고 앤디는 타 팀에서 활약 후 메이저리그로 복귀한다.
지금이야 그때의 오션스와는 완전히 다른 팀이고 이 시즌이 끝난 후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원정 경기이기에 오션스가 선공에 나섰다.
1번 타자는 황석규.
상대 선발 투수는 민승기.
앤디가 보기에 상대 선발 투수는 메이저리그 레벨이었다.
사실, 민승기가 오션스만 만나면 미친 호투를 보여주고 있기에 착시효과도 어느 정도 있다고 볼 수 있었다. 원래 KBO 최고수준의 에이스이긴 하지만, 오션스 상대로는 사실상 사기 수준이나 마찬가지.
첫 만남에서는 2실점 완투승. 강건우가 홈런을 하나 쳤고, 볼넷에 이은 득점까지 기록했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두 번째 대결에서는 9이닝 3피안타 1사사구 17탈삼진 완봉승. 한국 야구 역대 9이닝 최다 탈삼진 타이기록까지 세웠다.
그에 반해 상대하는 타자인 황석규는, 확실히 재능은 있으나 타석에서 유연성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빠른 공은 꽤 잘 치지만 유인구에 잘 속는 타입.
2루타를 많이 기록하고, 발도 빠르다. 20홈런에 20도루를 달성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기복만 줄인다면.
“스트라이크! 아웃!”
민승기의 143km/h 슬라이더에 배트가 속절없이 헛돌았다. 각이 엄청 좋진 않지만, 워낙 공이 빨라 타자를 속이기는 충분했다.
2번 타자, 배영한이 타석에 들어섰다.
배트 컨트롤이 좋다. 어지간한 공은 배트에 맞힐 능력을 가졌고, 여러모로 뛰어난 선수다.
앤디의 판단으로는 트리플A 혹은 메이저리그 왼손 대타 또는 대주자 정도 수준은 될 것 같은 선수.
딱!
배영한이 민승기의 4구째 148km/h 투심을 밀어쳤다. 타이밍은 좋았으나 살짝 빗맞은 타구. 3루수가 앞으로 달려 나오며 공을 잡아내 1루로 뿌렸고, 간발의 차로 아웃되고 말았다.
“하. 민승기 저놈 저거. 한 번 봐주기로 했는데 안 봐주네.”
그리고 다음 타자는.
“강-건-우-!”
“강건우! 강건우! 강건우!”
팬들의 환호를 가장 많이 받는 편인, 아직 18살이라는 것이 절대 믿어지지 않는 강건우.
“건우으야아아아아아아!”
앤디는 확신하고 있었다. 저 친구는 당장 메이저리그에 데려다 놔도 어마어마한 실력을 보여줄 거라고.
스타 플레이어들은 분위기부터 다르다. 배트를 빙글빙글 돌리며 터벅터벅 걸어가는 모습이, 마치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걸 아는 사람 같았다.
여유롭다. 강건우가 공을 때리는 모습은 훈련장이나 덕아웃에서 본 게 대부분이지만, 만약 자기가 투수라면 저 어린 유격수를 상대로 존 안으로 던지기 정말 싫을 거라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상대 투수도 자기가 주인공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홈런을 맞았었고 자신의 퍼펙트가 깨지는 2루타를 맞은 기억 따위는 스스로 지워버린 듯, 초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맹렬하게 꽂았다.
따아악-!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96마일(154km/h)의 공이 날아간 것도, 강건우가 빠르게 반응해 공을 때려낸 것도.
“어?”
“어어!”
“어어어?”
벤치의 선수들이 다들 당황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을 바라본 건 타구가 민승기의 머리 쪽으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앤디도 깜짝 놀랐다. 아무리 상대 팀 투수라지만, 저런 공을 잘못 맞으면 진짜 죽을 수도 있다.
스프링이 튕기듯 뒤로 확 넘어간 민승기를 보는 강건우도 상당히 놀란 표정이었다. 강건우가 저런 표정을 지은 것은 오션스 입단 이후 거의 처음이었는데, 심판이 먼저 민승기에게 달려갔다가 어처구니없다는 듯 주먹을 휘둘렀다.
“아웃.”
민승기는 자기 얼굴로 날아오는 강건우의 맹렬한 타구를 그대로 잡아냈고, 마운드에 누운 채 오른손으로 자기 머리를 잡고 큭큭 대며 웃고 있었다.
왼손에 낀 글러브에 들어간 공을 심판에게 보여주면서.
“큭큭큭. 이것이 바로…민.승.기.”
아직 다들 상황 파악이 덜 된 가운데, 민승기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분 나쁘게 웃으며 자기가 잡은 공을 자랑하듯 하늘로 던졌다 받았다.
그리고 여전히 이상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강건우에게 말했다.
“투수는 공을 던진 후에는 또 다른 내야수가 된다. 강건우. 잘 봤겠지.”
TV 화면에 강건우의 입 모양이 잡혔다.
[(Live) 부산 오션스 0 : 0 수원 다이아몬즈]-투수 라인드라이브 아웃.
-이닝 종료.
└?????
└민승기 죽은 줄 알앗네;;;;
└방금 강건우 입 ㅋㅋㅋㅋㅋㅋㅋㅋ
└민승기가 강건우한테 뭐라고 한거임???
└이 상황 뭐임;;;
└민승기 수비력 좋네;;;
└뭔데 ㅋㅋㅋㅋㅋㅋ 존나 관종새끼 심판 올 때까지 죽은 척 한 거 아님?ㅋㅋㅋㅋㅋㅋㅋㅋ
└휴;;; 오승기 안 다쳐서 다행;;; 승기야 건강하게 시즌 마치고 오션스 오자;;;
└꼴빠놈들 징그럽네 진짜
└아니 그래서 민승기가 뭐라고 했냐고
└민승기 : 내년에 오션스 갈 건데 얼굴로 치면 어케하냐 ㅡㅡ
└뭔 개소리여 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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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당황스러운 사람이다.
하지만, 최소한 KBO에서는 최고수준의 투수임은 확실하다.
우리는 국가대표로 함께 뛰었고, 저 형은 항상 푸념하듯 말했었다.
“나도 그냥…메이저 갈걸…”
동태눈깔 민승기.
나는 승기 형이 국대에서 했던 말을 유리에게 알려주진 않았었다.
유리는 승기 형이 오션스를 사랑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FA로 오션스에 입단할 때 드디어 마음의 고향으로 왔다며, 신인의 마음으로 오션스가 우승할 때까지 던지겠다고 말했던 것 때문이었을 거다.
내가 알던 사람과는 너무나도 달라서, 혹시 내가 과거로 돌아오면서 뭔가 크게 바뀐 게 아닌가 생각도 했다.
조준이 형은 그대로다. 내가 개인적으로 알던 사람들도 내 기억 속의 모습과 바뀐 점이 없다. 그 외에 알던 사람들도 그런데, 저 사람만 다른 이유가 뭘까.
딱!
다이아몬즈 타자 홍석헌이 앤디의 커브를 당겨쳤다. 타구가 내 쪽으로 왔고, 나는 자세를 낮추고 안정적으로 포구한 뒤 1루로 강하게 송구했다.
“아웃!”
앤디가 주먹을 불끈 쥐며 기뻐했다.
지금은 7회 말.
앤디는 지난번 9이닝 1실점 패전을 기억하고 있었고, 오늘은 저 이상한 투수에게 절대 지지 않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7회 말 2아웃이 될 때까지 0대 0으로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지는 중이다.
승기 형은 다른 타자를 잡아낼 때는 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았으면서, 날 잡아낼 때마다 세레머니를 펼쳤다.
내게 안타를 한 대 맞고는 나라 잃은 듯한 표정을 지었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대근이 형에게 파울 두 개를 맞더니 투심으로 땅볼을 유도해 이닝을 끝냈다.
이번 시즌이 끝나고 정말로 오션스에 올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올해 우승에 실패한다면 오션스 우승에 큰 힘이 될 거라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스트라이크! 아웃!”
“Yeah!”
앤디가 삼진으로 이닝을 끝낸 후, 허공에 어퍼컷하며 기뻐했다. 투수의 승패 기록은 별 의미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 오래지만, 패전을 좋아할 투수는 아무도 없다.
아무리 잘 던져도 상대 투수보다 못하면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일대일로 맞붙는 종목이다 보니, 맞대결하게 되는 투수와 비교될 수밖에 없어서 더더욱.
앤디는 7회 말을 무사히 끝마치고 내게 말했다.
“7이닝 무실점이면 좋은 기록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오늘은 아니야.”
앤디는 그간 접전 승부에서 패전을 떠안는 경우가 많았다. 그게 폭주한 민승기였을 때도 있었고, 어느 투수의 인생 경기였을 때도 있었다.
야구에는 수치화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떠돈다. 작게 보면 승부처, 크게 보면 큰 경기에 강하니 약하니 하는 것들.
그런 것들에 약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이게 상당히 기분이 나쁘다. 앤디가 상대 팀 에이스들과의 맞대결에서 몇 번 패배하자 그런 말이 꽤 나왔었는데, 그래서 더 지고 싶지 않은 듯했다.
“타자들을 대표해서, 미안해.”
앤디가 7회까지 던진 공은 고작 89개. 공격적이고 효율적인 투구를 하고 있고, 타자 입장에서 승리를 돕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승기 형이 미쳐 날뛰고 있어 쉽지는 않다.
“상관없어. 난 그냥 9이닝 무실점을 노릴 뿐이고, 너희들이 점수를 못 내더라도 괜찮아. 패전 투수가 되고 싶지 않을 뿐이거든.”
나 없을 때 멘탈이 터진 모습을 보였었는데.
공 문제가 아니라 이런 쪽에서 더 좋아지고 있는 걸까.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좋아. 무조건 하나 넘기고 올게.”
앤디는 그냥 씩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흠.
민승기 저 양반.
이쯤 되면 구위 좀 떨어질 법도 한데 안 떨어진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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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승기는 8회 초를 무실점으로 넘겼다. 투구 수는 정확하게 100개. 하지만 감독에게 이렇게 말했다.
“9회까지 던지겠습니다.”
다른 선수나 코치들에게는 언제나 화가 나 있지만, 민승기에게만큼은 온화한 정용호 감독이 대답했다.
“야구 올 시즌만 하고 말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은 눈물이 날 만큼 감동적이었다.
얼마나 책임감 있는 에이스의 모습인가. 팀이 최하위에 처져있고 감독 해임설이 공공연히 흘러나오는 가운데, 이건 스승을 위해 자신이 이 경기를 반드시 승리로 이끌겠다는 표현 아니겠는가.
민승기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꼭 던지고 싶습니다. 감독님. 부탁드리겠습니다.”
감독은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아서 숨을 급하게 들이쉬며 고개를 살짝 들었다. 야구 감독이란 직업은 얼마나 냉혹하고 가차 없던가.
해고당할 때 당하더라도 이런 제자 하나가 있으니 그저 마음이 따뜻해질 뿐이었다.
“…그래. 고맙다. 승기야.”
민승기는 감사하다고 말한 후, 자리로 가서 앉아서 생각했다.
‘9회 초 오션스 타순은 2번부터…’
배영한은 까다롭다. 그리고 그다음은 강건우다.
타자들이 1점만이라도 내주고 자신이 승리 투수가 되고 싶었다. 상대가 오션스가 아니라면 더 던지겠다고 고집을 부릴 일도 없었을 것이다.
‘오션스…’
한때 애증이었지만, 이제는 비틀린 애정만이 남은 이름이다.
오션스에 가서 강건우와 함께 뛸 것이다.
물론, 올스타전이나 올림픽에서 강건우와 함께 뛸 수 있다.
하지만 오션스에서 강건우와 함께 뛰는 것을 상상하면 참을 수가 없었다.
‘강건우. 마지막 타석을 화려하게 삼진으로 장식해주지.’
머릿속으로 전략을 세웠다.
아직 힘은 꽤 남아 있다. 하지만 상대가 강건우이니만큼, 그 타석에 집중할 생각이었다.
‘배영한에게는 적당히 땅볼을 유도…’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다이아몬즈의 선두 타자가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났다.
‘놈은 삼진으로 요리하고 싶지만. 후. 어쩔 수 없지. 운 좋은 줄 알아라, 배영한.’
그리고 두 번째 타자가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다.
오션스의 외국인 투수 앤디 가필드는 경기 초반에 삼진을 꽤 잡아내다가 후반으로 올수록 맞혀 잡는 피칭을 하고 있었다.
‘에이스는 삼진이 필요하지. 앤디 가필드. 너도 좋은 투수지만, 네가 만약 내년에 오션스에 남고 내가 오션스에 합류한다면 1선발은 나다.’
민승기에게 앤디 가필드와의 맞대결은 내년 오션스 1선발을 가리는 중요한 승부였다.
감독은 자신을 위해 더 던지겠다고 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지만,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1선발.
오션스의 1선발 투수.
오션스의 개막전 투수.
오션스의 한국 시리즈 우승을 확정 짓는 경기의 승리 투수!
필요하다면, 7차전 불펜 등판까지! 그것이 바로 에이스의 숙명!
‘그것만은 내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을 때, 2년 차 징크스에 시달리는 홍석헌이 속절없이 삼진을 당했다.
“양보할 수 없다!”
그렇게 소리친 민승기는 온몸에 느껴지는 전율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글러브를 잡고 마운드로 성큼성큼 향했다.
“형.”
민승기가 힘을 끌어모았다.
“승기 형.”
승리 투수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앤디 가필드 보다는 좋아야 한다.
“형! 승기 형! 글러브 잘못 들고 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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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한이 9회 초에 안타를 때렸을 때, 민승기는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내 구위가 떨어진 건가.’
배영한도 국가대표 외야수다. 낮게 떨어지는 공을 기술적으로 밀어 때려 유격수와 3루수 사이로 날려 보낼 능력은 있었다.
이게 오늘 경기 첫 안타이긴 했지만, 쉬운 상대는 절대 아니라는 뜻이다.
‘아니. 상관없다.’
민승기는 눈을 감고 스스로를 달랬다.
주자가 나가면 약해진다는 평가.
그딴 건 아무것도 아니다.
‘타인의 평가 따위는 신경 쓸 바 없다.’
자세를 추슬렀다. 민승기는 이 중요한 승부에서, 주자 배영한이란 존재를 마음속에서 지워냈다.
도루하더라도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주자가 2루 혹은 3루에 있더라도 다음 타자들을 삼진으로 잡아내면 된다. 그러면 아무 문제도 생기지 않는다.
마인드 컨트롤에 성공한 후, 타석에 선 강건우와 눈이 마주쳤다.
‘형형한 눈빛이로군…’
사실, 강건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살아 있으니 동태 눈깔이 아니라 명태 눈깔이라고 해야 하나.’
민승기가 포수의 싸인에 고개를 저었다.
‘멍청한 자식. 포심이다. 날 믿어라.’
몇 번 싸인이 오간 후에야 민승기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포심.
100구 이상 던진지라 손아귀 힘이 약간 떨어졌지만, 힘이 조금 떨어질 때 포심의 무브먼트가 약간 달라지는 것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익숙한 그 움직임이 아닐 거다. 강건우.’
주자가 리드를 크게 잡건 말건, 민승기는 마음껏 와인드업 동작을 취했다.
‘이걸 때려낸다면…’
이런 상황에서 도루는 공격팀 입장에서도 쉽지 않다. 도루자라도 당한다면 주자가 사라진다.
‘조금 더, 인정해주지!’
민승기가 공을 던질 때, 본인이 인지하지도 못한 외침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마치 기합을 넣기라도 하듯.
있는 힘껏.
“강건우우웃!”
찰나의 순간이었다.
강건우의 이름을 외치고 던진 회심의 포심 패스트볼이, 강건우의 배트에 맞은 것은.
따아아아아아아악-!
민승기는 생각했다.
‘아름다운…스윙이야…’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이건.
펜스를 넘겼다.
‘하, 하하…강건우…’
민승기가 무릎을 꿇고 털썩 주저앉았다.
‘네가…주인공인가? 이 내가, 주연급 조연이란 말인가?’
오션스 원정 팬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고, 강건우는 배트를 던져놓고 베이스를 돌기 시작했다.
민승기는 타구의 결과를 확인하지도 않고 주저앉은 채,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안경 아래로 뜨거운 눈물이 주륵 흘렀다.
‘아니, 아니야. 아직 수련이 부족한 것뿐이다. 난 조연이 아니다. 강건우는 하늘이 내려준 라이벌. 조금 더 강해져야 한다.’
100구를 넘긴 상황.
9회 초 노아웃에 2점짜리 홈런을 맞았으니, 당연히 투수 교체가 이뤄질 것이다.
‘내 반드시…널 뛰어넘고 말겠다…강건우.’
민승기는 한줄기 눈물을 닦지 않았다. 투수 교체 싸인을 받고 무덤덤하게 마운드를 걸어 내려왔고, 이 모습을 본 야구 팬들이 민승기를 ‘눈물의 왕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Live) 부산 오션스 2 : 0 수원 다이아몬즈]-9회 초.
-강건우 2점 홈런(비거리 121m)
└오ㅏ 민승기 존나 멋있네 진심
└상대팀이지만 이건 진짜 ㅇㅈ함
└좆같은 빠따새끼들 승부욕 자체가 없음 ㅅㅂ 승기야 미안하다 ㅠㅠㅠㅠ
└FA때 떠나도 할 말 없음 이건
└존나 씨발 이기고 싶어 하는 새끼가 팀에 승기뿐이네
└어떻게든 연패 끊어보려고 했는데 타자들이 안따라줌
└눈물왕자 민승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승기가 타자들 오늘 줄빠따 놔도 무죄임 이건
└와…진짜 소름이다 강건우도 쩔지만 민승기 진짜 개쩐다
└울지마 승기야ㅠㅠㅠㅠㅠㅠㅠ
└민승기의 눈물, 오션스가 닦아주고 싶습니다.
└씨발롬아 이 상황에서도 그딴 소리가 나오냐
└이 상황이니까 더 나옴ㅎ
└암튼 강건우는 야구의 신이라고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