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92)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94화(94/385)
여보세요 나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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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휴식이 주어졌고, 나는 그 시간을 유리와 함께 보냈다.
“확실히 빠르게 던질 때 양쪽 팔꿈치가 많이 올라가. 눈썰미 좋은 타자면 알아챌 수도 있지 않을까?”
유리가 안경테를 손끝으로 추켜올리며 말했다. 시험 기간에만 쓰는 안경인데, 나중에 수술했다가 고생을 좀 한다.
더 좋은 의사한테 수술하면 괜찮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그래서 유리의 말에 조금 다른 말을 꺼내서 대답했다.
“누나.”
“응?”
“누나 안경 쓴 거 되게 지적이다.”
“갑자기?”
“아니. 전부터 그렇게 생각했어.”
“흐으음.”
“엄청 예뻐.”
유리가 잠깐 정지했다. 고장 났나?
눈 수술을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긴 한데, 엄청 예쁘다는 말까지 거짓말은 아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재부팅이라도 됐는지 유리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해결 방법은? 느리게 던질 때도 팔꿈치 들어 올리면 부자연스러울 거 아냐.”
“시뮬레이션 조금만 더 해볼까?”
“다섯 개만 더 해보자.”
유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나는 SMC로 향하면서 유리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는데, 유리가 안경테를 만지작거리면서 히죽대는 걸 분명히 봤다.
뭐, 좋아하니 됐다. 조금 부끄러워하는 것 같긴 하지만.
166km/h를 던질 때와 146km/h를 던질 때의 투구 자세 차이는…
유리야 그 두 가지 폼을 동일하게 만들고 싶어 할 것이다. 유리는 선수가 아니라 스포츠 과학자니까.
항상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어서 경기장에 나갈 수는 없다. 완벽하면 당연히 좋겠지만 불가능한 것도 있고, 어느 정도는 타협해야 하는 부분도 있다.
강하게 던질 때 팔꿈치를 내리면 166km/h가 안 나오고, 느리게 던질 때 팔꿈치를 올리면 밸런스가 무너져 제구가 맘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거나, 나는 대표팀에 소집되어 집을 떠났다.
부모님과 유리네 가족은 경기 일정에 맞춰서 미국으로 따로 올 테고, 그간 우리는 떨어져야 한다.
“보고 싶을 거야.”
유리는 따뜻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보고 싶은 건 보고 싶은 거고 일본한테 지면…”
뒷말은 생략.
후.
메이저리그 MVP 짬밥을 제대로 보여줘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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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다들…”
대표팀 선수들을 소집되어 첫 미팅.
추성태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손바닥을 살짝 비비며 입맛을 다셨다.
“처음 보는 얼굴들이 조금 있긴 한데, 다들 내가 누군지는 알 거고…”
“어휴, 감독님. 뭐 좋은 걸 혼자 드셨길래 피부가 더 좋아지셨습니까?”
배영한이 능글맞게 말했다. 추성태는 살짝 인상을 쓰며 대답했다.
“야. 넌 또 왔냐?”
“감독님이 불렀으니까 왔죠.”
선수들 사이에서 낮게 웃음이 터졌다. 한때 불도저스 감독을 역임했던 추성태가 발굴한 선수 중 하나가 바로 배영한이었다.
“내가? 아닌데?”
적절한 긴장감도 필요하겠지만 긴장을 풀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몇 명의 뉴 페이스가 있으니 더더욱.
추성태 감독은 대표팀 붙박이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눴다.
“병재. 스윙 스피드 느려진 거 아냐?”
“느려지면 은퇴할라고요.”
“입만 살아서. 우주!”
“뒤에 숨어 있었는데 그걸 보셨어요?”
“야 이놈아. 그 덩치를 어디에다 숨겨?”
그렇게 말하고는 양대근에게 시선이 갔다. 대표팀에선 처음이지만, 어차피 한국 프로 야구는 두 다리만 건너면 선후배 사이다.
“숨으려면 여기 숨어야지. 양대근이. 반갑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휴. 내가 잘 부탁해야지. 너희가 잘 해야 내가 안 잘려.”
그리고 감독의 눈이 강건우에게 멈췄다.
“이야…”
“안녕하십니까.”
“강건우…우리 막내…”
감독은 강건우에게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하고는 말했다.
“야. 투수들. 너네 우리 막내한테 진짜 뒤지게 터지더라?”
투수진 최고참인 엔젤스의 정수호가 대답했다.
“감독님. 건우한테 맞은 건 안 부끄럽습니다.”
“뭐야? 이야기가 그렇게 흘러가?”
“공평하게 맞아서 괜찮습니다.”
“지성이는 안 맞았잖아?”
“지성이는 볼넷만 내줘서 그렇습니다.”
“와, 형. 왜 저를…”
“괜찮아, 괜찮아. 투수가 좀 뻔뻔할 줄도 알아야지. 내가 그래서 지성이를 좋아한단 말이야.”
“감독님. 뻔뻔한 게 아니라 영리한…”
“됐어, 이놈아.”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시작했고, 추성태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웃을 수 있을 때 웃어놔. 아, 뉴 페이스들은 남고 늙은이들은 나가서 알아서 훈련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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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태 감독은 널널해보이지만 훈련에서만큼은 빡빡한 사람이다.
빡빡하다?
처음에 국대에서 만났을 때는 빡빡한 수준이 아니었지. 이 사람의 지론은 ‘타격은 재능이지만 수비는 훈련이며 국대 경기는 수비가 좌우한다’이다.
노경우가 이런 사람 밑에서 좀 굴러야 하는데.
휴 브레드먼 감독님이 훈련을 빡세게 안 시켜가지고.
아무튼, 추성태 감독님은 내게 이것저것을 물었다.
“유격수 말고 다른 데 수비도 돼?”
“개인적으로는 전 포지션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다른 놈이었으면 고등학교 수준 가지고 까불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유격수 수비가 워낙 좋으니까. 뭐, 야수로는 거의 유격수로 나갈 테니 신경 쓸 거 없다. 투수로 등판할 때 특별히 유의할 점 같은 건 없고?”
나는 몸이 꽤 빨리 풀리는 편이다. 사실, 선발로 나가서 100개씩 던지는 것도 가능한 몸 상태다.
실전에서 그렇게 해본 적은 없지만, 과신하는 게 아니라 내 몸 상태는 내가 잘 아는 데다가 유리의 시뮬레이션에서도 그랬다.
무리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물론,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으나.
그건 그때 이야기고, 오션스의 불펜 상황이랑 대표팀은 좀 다르니까.
“몸은 좀 빨리 풀리는 편입니다. 팀에서는 두 경기 연투까지만 했고, 다른 특이사항은 없습니다.”
그래도 뭐, 선발로 나갈 일은 없지 않을까.
승기 형은 메이저리그에서 던진 적은 없지만, 김권종과 박용재, 다른 빅 3와 비교해 밀리진 않는다.
그리고 다른 선발 투수들도 있고, 단기전 특성상 투수진 운영이 조금 유기적일 순 있지만 딱히 문제는 없을 거다.
“그래? 좋다. 훈련 때 던지는 거 한번 보고…유격수 수비는 걱정 안 해도 될 거고, 타격은 뭐, 긴장만 안 하면 괜찮겠지?”
메이저리그 MVP 출신인 이야기나, 한때 일본인들 사이에서 별명이 관동 대지진이었다는 사실을 말할 수도 없고.
신인이니까.
“열심히 하겠습니다.”
“좋아, 좋아.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아, 팀에서 번트 한 번도 안 댔지? 댈 수는 있나?”
“시키신다면요.”
“번트 싸인 나갔는데 번트 치기 싫으면 홈런 때려. 번트 안 대고 홈런도 못 치면 곤란해. 무슨 말인지 이해했지?”
“예.”
아무리 홈런 타자라도 감독이 까라면 까라.
그렇게 말한 거겠지만, 나는 가짜 신인의 패기로 그냥 홈런을 때려버리는 것도 재밌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번트를 대 본 기억이 없다. 고등학교 때 해봤나?
어쨌거나, 굳이 따지자면 스몰볼을 추구하는 추성태 감독이기에 번트 훈련도 하기는 했다.
예전에는 메이저리그에서는 번트 안 댄다고 바득바득 우겼던 거 같은데.
탁!
내가 번트를 제대로 못 대자, 대표팀 선수들이 수군댔다.
“저놈이 못 하는 것도 있어?”
“아냐. 저놈이면 번트시키지 말라고 일부러 저러는 걸 수도 있어.”
“일리 있네.”
나를 음해하는 세력들은 대부분 투수들이다.
흠. 리그에서 너무 많이 쥐어팼나.
약간 억하심정이 느껴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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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상무 야구단과 연습 경기를 가졌다.
2군 리그에 참여하는 상무라 하더라도 군 문제를 해결하려는 1군급 선수들이 몇몇 있었고, 어떤 선수들은 부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와. 형님. 나도 올림픽 노려볼걸 그랬나 봐요.”
“넌 뽑히지도 못했어, 이놈아.”
“뽑힐 수도 있죠.”
“최지용이도 떨어지고 황보경태도 나가리 됐는데 네가 무슨 수로?”
“아,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가 할 말이…”
부상이나 다른 이유로 면제를 받는 게 아니라면 국제대회에 참가해서 예술 체육요원이 되는 것이 베스트.
차선책이 상무 야구단이다.
현역이나 상근, 공익으로 근무하는 것보다야 훨씬 나은 환경이지만 대표팀으로 메달을 따는 것만큼 좋을 리는 없다.
뭐, 그것도 메달을 따고 난 후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야구를 제대로 하려면 지겨워하는 법을 잊어야 한다.
매일 안타를 치고 홈런을 때리는 것을 지겹다고 느끼는 순간이 온다면, 그 지겨운 감정이 그리워질 만큼 안타를 때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상대가 약할수록 더 때려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이런 경기는 이겨야 본전이다.
상무 야구단이 2군 리그에 있기는 하지만 1군급 선수들도 있고, 나름대로 재능 있는 선수들만이 여기에 올 수 있다.
하지만 야구 팬들의 인식은 다르다. 국가대표가 상무 같은 팀을 압도적으로 이기지 못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타순은 이랬다.
정부원(중견수)-송병재(우익수)-서우주(지명타자)-정조준(좌익수)-윤태호(1루수)-강건우(유격수)-박정신(3루수)-조용한(포수)-이현동(2루수)
면담 때 긴장감에 관해 이야기를 한 것을 떠올려보면, 내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타순인 것 같긴 한데…
따아아아아악-!
뭐, 타순은 상관없다.
그래도 6번 타자 강건우보다는 3번이나 4번 강건우가 더 보기 좋으니까.
나는 상무 선발 투수 이성혁을 상대로 2점짜리 홈런을 때려냈다. 이성혁은 엔젤스 소속인데, 내게 맞아 나갔던 다른 투수들처럼 용감하게 자신의 주 무기를 던졌다가 호쾌하게 날아가는 타구를 구경해야만 했다.
“좋다! 강건우!”
“죽인다!”
“야야, 성혁이 기죽겠다.”
“봐주질 않네, 봐주질 않아.”
소속 팀과는 구성원이 다르다 보니, 약간 어색하긴 한데.
팀에서야 핵심이지만 여기서는 왼손 대타 요원쯤의 위치인 대근이 형이 씩 웃으며 날 축하해줬고, 내 홈런으로 홈을 밟은 조준이 형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야. 누가 홈런 많이 치나 내기할까?”
“형은 나한테 못 이기지.”
“하. 이 새끼가. 또 은근슬쩍 반말하네.”
“내가 언제?”
우리 대화를 들은 다른 대표팀 선배들이 한 마디씩 얹었다.
“공도 잘 잡고, 조준이도 잘 잡고.”
“이번 대표팀 막내 하나는 기가 막히네.”
“쟤는 야구 못 해도 데려가야 해. 조준이 킬러잖아.”
“아니, 이 싸가지 없는 놈 편밖에 없어?”
“이이제이라고 들어나 봤냐?”
“야. 건우는 너한테만 그러잖아. 넌 아무한테나 그러고.”
씩씩거리고 있지만, 캐치볼 한 번 해주면 풀린다.
벤치 한쪽에 앉아있던 승기 형이 또 이상하게 웃었다.
“큭큭큭. 강건우…”
“…”
“그 타격감, 내년까지 꼭 유지하도록…”
조준이 형은 놀리는 맛이 있는데, 승기 형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인생 2회차마저 당혹스럽게 만드는 민승기 당신은 도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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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대표팀 투수들은 상무 타자들을 압도했다.
빅 3는 이번 시즌에도 순항하고 있었다. 셋 중 가장 시즌 평균자책점이 높은 김권종이 2.49에 불과했고, 본인 컨디션 관리에는 다들 노하우가 있는 선수들이었다.
구위 체크를 위해 이닝을 끊어 던지는 사이.
따아아아아악-!
강건우는 두 번째 타석에서도 펜스를 넘겼다.
추성태 감독은 희미하게 웃으며 수석 코치에게 말했다.
“저놈 저거, 어쩌냐.”
“예?”
“만약 계속 저렇게 치면 말이야.”
“예, 감독님.”
“몇 번에 놓는 게 제일 좋겠어?”
“시즌 경기에서도 긴장하는 꼴을 못 봤으니까요. 그리고 외국인 투수들 올해 방어율 팍팍 오른 게 쟤 때문이라는 말도 있고…4번 놓으시죠.”
“에이, 김 코치. 언제적 4번이야?”
“예?”
“2번이나 3번에 놓는 거 한번 연구해보자고.”
물론, 다른 국가대표팀과 상대해서도 저런 성적이 나올지 어떨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현재 리그를 씹어먹고 있는 선수다. 단 두 번의 타석에서 저 어린 친구를 6번에 놓는 것은 낭비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세 번째 타석에서도.
따아아아아아아악-!
이쯤 되면 상무 투수들이 불쌍해질 지경.
3번 타석에 들어서서 3홈런에 6타점을 쓸어 담은 강건우가 홈을 밟고 들어오자, 추성태 감독은 옥시경을 준비시키고 강건우를 불렀다.
“시경이 수비 준비하고, 건우!”
“예!”
“예.”
“홈런 좀 아꼈다가 일본전에 치자. 이제 쉬어!”
강건우는 벤치에 앉았고, 다음 타석에 양대근이 대타로 나섰다.
“대근이가 출루가 꽤 좋지?”
“예. 자기 존이 확고한 선수라 출루가 필요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양대근이 출루가 좋은 것은 맞지만.
그건 약간 편견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따아아아아아악-!
3볼 1스트라이크에서 나온 과감한 스윙.
존 아래로 가라앉는 싱커를 그대로 걷어 올려 백투백홈런.
“이야. 오션스 애들 장난 아닌데?”
“스윙이 자비가 없는데요? 오늘 태호가 3타수 1안타…”
“태호 스윙 어떻게 보여?”
“맞으면 넘어갈 것 같습니다.”
“대근이 스윙이랑 비교하면?”
“…”
“왜 말이 없어?”
“어, 음. 대근이가 낫습니다. 지금은.”
“그래? 근데 뭐가 걸려?”
“스타성이…”
“스타성은 개뿔. 야. 메달 못 따면 우리 목이 매달릴 수도 있는데 그런 거 찾고 있어?”
“감독님 설마 방금 개그 하신 겁니까?”
“재미없냐?”
“…푸하하하. 아이코, 감독님. 제 배꼽 좀 찾아주십쇼.”
“됐다. 치워라. 오! 양대근이! 스윙 좋고! 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