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hitter hides fastball RAW novel - Chapter (98)
천재 타자가 강속구를 숨김-100화(100/385)
여보세요 나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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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는 내게 의미가 있는 땅이다.
좋은 의미일지 나쁜 의미일지는 제쳐두고…아니.
야구로는 좋았던 것과 나쁜 것이 혼재되어 있다.
그리고 유리와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이곳에서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시작했듯, 유리도 스포츠 과학자이자 인스트럭터로서 이 지역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나와 유리의 차이가 있다면, 나는 미국 반대편인 동부 뉴욕으로 떠났고 유리는 캘리포니아의 산호세에 남았다는 점이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나는 그게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게 모든 문제는 아니었다.
유리는 아이를 갖고 싶어 했고 나는 우리가 2,579마일(4,152km) 떨어져 지내면서 아이를 키우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난 그냥 공 좀 던지고 칠 줄 아는 멍청한 놈일 뿐이었다. 유리가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알지도 못하는.
그래놓고 나는 유리를 위하고 있다고 나 혼자 뿌듯해했을 뿐.
야구 선수라서 터전을 옮기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며 이제야 자리 잡기 시작한 유리가 뉴욕으로 옮겨 다시 시작하는 걸 반대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팀을 옮기는 것은 처음이었는데 왜 잘난 척 다 아는 척했는지 모르겠다.
시발. 입맛이 쓰다.
어쨌거나, 내가 보기에도 내가 쳤던 홈런 중에 가장 거대한 홈런 중 하나를 때린 후, 투수는 흔들렸다.
듣자 하니 포크볼을 던졌다가 홈런을 맞은 것은 2년 2개월 만의 일이라고 한다.
투수란 원래 그런 족속이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 자기 위주로 사고하고, 본인 혼자 이 게임을 떠받치는 거라고 착각하며, 자신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리고 완전히 그때의 나와 같은.
서우주-양대근의 4, 5번 타자는 배트 한 번 휘두르지 않고 볼넷으로 출루했다.
하지만 박정신의 타구를 일본 유격수가 엄청난 호수비로 막아냈다. 추가 득점 없이, 잔루만 남기고 이닝 종료.
수비 잘 하네.
“이야. 우리 막내 수비하는 거 보고 나서 그런지 저것도 그냥 별거 아닌 거로 보이네.”
“상대할 땐 개빡쳤는데 우리편이니까…”
“야야. 막내 이쪽 본다. 조용히 해.”
“시바. 눈치 보여서 살겠나. 건우 오늘 눈빛 왜 저러냐?”
대화 내용은 어쨌거나, 다들 낄낄 웃으며 내게 농담을 던지고 있었다. 대근이 형이 범인이다.
뭐…정확하게 말하자면 범인이라기보다는, 내가 여자친구랑 통화하다 울었다며 날 좀 배려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 원인이다.
나와 같은 소속팀의 주장으로서 날 챙겨주려고 했겠지만, 저 사람들은 내가 별 이상이 없어 보이는 데다가 아까 홈런 치고 홈 밟고 나서 관중석을 향해 두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보이는 걸 보고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저렇게 행동하고 있다.
원래 야구 못 하는 놈들이 신입 놀리기에 열중하는 법이다.
흠.
다음번 대표팀에는 노경우 데리고 와서 방패로 써먹어야겠다.
죽여달라는 말 나올 때까지 굴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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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우는 타석에 들어서면 잡생각을 털어버리는데 이골이 난 선수다.
인종차별적 발언을 내뱉어대는 관중과 기 싸움을 한 뒤 홈런을 때리고 그 관중을 바라보며 세레머니를 즐기곤 했다.
그때 유리가 자신을 따라오겠다는 말에 솔직하게 고맙다고 했더라면, 유리의 뜻대로 아이를 가져 이상한 오해를 사지 않게 잘 처신했더라면.
3회 말.
스코어는 여전히 1대 0.
김권종은 3이닝 동안 2피안타 1사사구로 총 3번 출루를 허용했으나 점수를 내주지는 않았다.
나카지마 마자타는 1회를 제외하면 완벽하게 틀어막았다.
그리고 2아웃 주자 없는 상황.
강건우는 나카지마 마자타의 초구 154km/h 몸쪽 패스트볼을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밀고 당기기는 필요 없고, 그냥 목숨 걸고 당기기만 하려는 각오로.
따아아아아아아악-!
[-Live- 일본 0 : 1 대한민국.]-2사 주자 없음.
-3번 타자 강건우.
-초구 타격(154km/h)
-좌측 담장 넘어가는 홈런(비거리 123m)
-오늘 경기 2번째. 대회 3호 홈런.(1점)
└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강건우한테 또 마자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피안타 2개가 전부 강건우 홈런ㅋㅋㅋㅋㅋㅋㅋㅋ
└씹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이새끼 몬데 자꾸 넘김????
└올림픽 되니까 꼴빠 체험 오지네;;;
└정보)올시즌 나카지마는 느프브에서 15번 선발 등판해 평균 7이닝 가까이 소화했는데 시즌 내내 홈런을 2개밖에 안 맞았다
└쪽국 투수가 뭐 잘못 먹었다고 보기에는 다른 타자들이 아예 못 치는데
└마 이게 바로 킹건우다 알겟나???
└쟤 뭔데 저렇게 툭 치면 넘어가냐??
└저게 툭 치는걸로 보임? 다시보기 잘 보셈 스윙 메커니즘 자체가 넘기는데 특화되어 있음 상하체 밸런스 개지리고 히팅 포인트가 어지간한 다른 타자들에 비해 확고하게 앞에 형성됨 그리고 대놓고 어퍼스윙인데 임팩트 순간에 배트 끝 살짝 올라가는거 보임?
└아니 난 그냥 감탄한건데 왜케 열심히 설명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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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보고 있으면, 타석에서 보는 것과는 투수의 공 궤적이 또 다른 느낌으로 보인다.
김권종의 공은 확실히 좋다. 슬라이더가 횡으로 훅 꺾이는 공과 종으로 뚝 떨어지는 두 가지로 날아오는데, 슬라이더를 던지는 폼이 동일해 구분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스트라이크! 아웃!”
두 가지 슬라이더의 무브먼트가 굉장히 좋다. 포심 구속은 최대 151km/h 정도에 불과하지만 제구가 뛰어나고 체인지업마저 수준급이라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좋은 활약을 펼칠 투수다. 7구째 체인지업이 절묘하게 존 끝자락에 걸치며 루킹 삼진.
음.
욕심 같아서는 김권종과 박용재 모두 오션스에 왔으면 좋겠지만.
원래 메이저리그로 떠날 선수들인지라.
어쨌거나, 일본 3루수 준 아베가 삼진을 당하고 심판에게 불만을 표시했다. 뭐, 저 코스는 내가 당하면 억울하고 상대 팀이 당하면 당연한 코스라서.
일본 응원단이 야유를 쏟아내고, 한국 응원단이 꽹과리를 때려댄다.
5회 초가 이렇게 끝났다. 김권종의 오늘 성적은 5이닝 3피안타 1사사구 6탈삼진 무실점.
하지만 상대가 상대이니만큼, 김권종으로서도 쉽지 않은 경기였을 거다. KBO 리그 경기에서야 7~8이닝 소화를 우습게 알지만, 5회가 끝났을 때 투구 수는 99개.
1차전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투수를 선발 포함 둘 밖에 안 썼기에 투수진은 널널한 편이다.
게다가 다음 경기는 조에서 가장 쉬운 상대로 평가되는 호주.
불펜이 일찍 가동될 수 있다.
“와. 쟤 진짜 장난 아냐. 재수 없으면 볼넷 내줄 뻔했어. 용한 형. 안 그래?”
특이한 투수들이 많다. 뭐, 내가 대표팀에서 활약하기 전에는 김권종이 일본전 전담 투수나 마찬가지였고 통산 일본전 평균자책점이 2점대였던 걸로 기억한다.
자기도 여기까지인 걸 알고 있는 듯하다.
강건우, 박용재, 김권종, 민승기.
원래 대표팀 빅 4였던 이 라인업에서 이닝 소화 능력은 가장 떨어지는 편이지만, 자기가 어디까지 잘 던질 수 있는지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는 투수이기도 하다.
“아. 불펜에 대훈이 형 벌써 몸 풀고 있네. 대훈이 형이면 믿을 만하지.”
감독도 일본전에 올인하려는 모양이다.
오늘 상황이 맞다면 나도 등판할 수 있으니 대비하고 있으라는 말을 들었다.
원래라면 대표팀 마무리를 맡을 법한 투수인 이대훈이 6회 등판이라면, 마무리 상황에서 내가 9회에 등판할 가능성도 있다.
뭐, 지명 타자 소멸 때문에 9회에 등판하는 게 가장 좋긴 하니까.
1이닝이 순식간에 삭제되었다. 나카지마의 여전한 호투, 그리고 이대훈의 삼자범퇴 이닝.
내가 선두 타자로 나선 6회 말에도 여전히 마운드에 서 있는 나카지마 마자타는, 내게 스트레이트 볼 넷을 허용했다.
쫄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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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쫄았네.”
정유리가 팔짱을 낀 채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2점을 모두 솔로 홈런으로 맞아 내줬으니 그럴 만도 한 일이다.
그 두 개의 홈런 외에는 실점이 없으니.
“유리야. 우리 건우 진짜 잘 하는 거지?”
“그럼요. 저 투수가 건우한텐 맞았어도 메이저리그 진출이 유력하거든요. 일본 대표팀 에이스라고 보셔도 되는 투수예요.”
“일본이 야구 잘 해?”
“잘 하는데 건우보단 못 하는 것 같네요.”
유리가 이상하게 웃었다. 그런데 그게 사실인 걸 어쩌겠는가.
한국의 다음 타자는 서우주.
그리고 서우주 타석에서, 강건우는 2루 도루를 감행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강건우! 강건우! 강건우!”
일본 포수 준페이 아오키도 어깨 강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선수.
하지만 강건우는 어깨 강한 것과는 별개로, 나카지마의 타이밍을 정확히 읽고 손쉽게 2루에 도달했다.
“보셨죠? 보셨죠! 우리 건우 발도 빠르고…”
정유리가 강건우에 대한 칭찬을 쏟아냈다. 아무리 주접이라도, 아들 칭찬인데 듣기 싫을 리가.
게다가 지금 강건우의 활약이라면 그 어떤 한국인이라도 칭찬을 퍼부을 법했다.
나카지마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저 자식은 도대체…’
말 같지도 않은 타구를 날리더니, 이제 도루까지.
그것도 준페이 아오키의 송구가 정확했음에도 세이프가 되었다.
문제는, 생각지도 못했던 3루 도루까지 성공시켜버렸다는 것이다.
“세이프!”
심판이 양팔을 옆으로 벌리며 세이프를 선언하자, 귀가 아플 정도로 한국 응원단이 난리를 쳐댔다.
순식간에 무사 3루. 포수가 마스크를 바닥에 집어 던지며 스스로에게 화를 냈고, 강건우는 밉상으로 웃고는 옷을 툭툭 털어냈다.
이런 상황이라면, 줄 점수는 주고 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자존심이 있지. 그냥 내줄 수는 없었다.
상대는 한국의 4번 타자. 홈런을 일 년에 30~40개씩 날려대는 타입은 아니지만, 질 좋은 타구를 양산하는 데다가 소위 말하는 클러치 히터다.
일본 벤치에서 내야 수비를 뒤로 살짝 물렸다. 맞더라도 내야에 타구를 머무르게 해 상황에 따라 홈 승부를 시도해볼 생각.
그러나 서우주는, 일본 벤치의 생각과는 달리 배트를 눕혀 들고 몸을 앞으로 향하며 스퀴즈 번트를 시도했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4번 타자에게 번트를 지시하는 감독도 부담스럽고, 평소에 번트를 잘 대지 않았던 서우주에게도 그렇고.
딱!
예상치 못한 번트.
번트 타구가 그렇게까지 좋지는 못했다.
투수 근처로 타구가 흘렀고, 나카지마가 투구 직후 몸이 기우뚱한 상황에서 공을 잡고 욕심을 내 홈으로 던지려고 했지만,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세이프!”
강건우의 득점.
그리고 느린 발로 최선을 다해 뛰어간 서우주도 세이프.
한국 팬들의 환호와 일본 팬들의 탄식이 이어지는 가운데, 추성태 감독이 씩 웃으며 대주자를 내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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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전에서는 이런 야구도 꽤 좋다. 무사 1루에서 대주자로 나선 예지호. 그리고 일본을 완전히 흔들기 위한 대근이 형의 번트 성공.
스코어 3대 0은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점수 차다. 아직 6회니 3이닝의 공격 기회가 남아있고, 일본 선수들도 만만치 않으니.
나카지마 마자타가 강판당했다. 나카지마는 마운드를 내려가 자기 덕아웃에서 글러브를 집어 던지며 화를 냈다.
아마 일본 팬들은 나카지마를 욕하고 있을 것이다. 걔들 이런 거에 좀 민감하더라고. 뭐, 보나 마나 자기가 점수 내주고 팀 분위기 망친다고 그러고 있을 테지.
어쨌거나, 박정신이 바뀐 투수가 던진 공에 허벅지를 맞고 출루했다. 야구가 굉장히 개인의 기량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팀 스포츠라고 불리는 이유 중의 하나는, 어딘가 흔들리면 팀 전체가 같이 흔들리곤 하기 때문이다.
추성태 감독은 멈추지 않았다. 스몰볼의 대가라고도 부를 수 있는 일본 국가대표팀을 믹서기에 갈아버리려고 작정이라도 했는지 더블 스틸을 시도했고, 심지어 그걸 성공시켜버렸다!
“일본 좆밥이네!”
“마! 섬으로 돌아가라!”
“죽인다!”
벤치에서도 꽤 흥이 올랐다. 고참 선수들이 벤치 난간에 붙어서 철제 난간을 두들기며 소란을 피워댔고, 조용한이 희생 플라이를 때려 1점을 추가했다.
이현동의 타구가 아쉽게 3루수 정면으로 향해서 이닝이 끝났지만, 4대 0이 되었다.
그리고 추성태 감독은 우타자가 다음 이닝 선두 타자로 나오자 언더 스로우 셋업맨인 용종혁을 올렸고, 1아웃을 잡아낸 후 투수를 채지성으로 다시 교체했다. 채지성은 첫 타자에게 외야 플라이로 아웃 카운트를 하나 따내고 다음 타자에게 볼넷을 내줘 또 교체.
1이닝에 투수 셋 교체?
지고 있는 팀은 리듬이 엉망이 되니 열받아 미치는 거지.
뭐, 꼬우면 이기던가.
심지어 봉재석이 올라가 타자를 상대하기는커녕 견제로 주자를 잡아내 버렸다.
덕아웃은 난리가 났다. 사실, 옮기기 힘들 수준의 쌍욕도 나왔다. 근데 원래 야구는 그런 법이다. 팬들은 모르지만 벤치에는 욕 전담 요원도 있다.
8회 초, 지난 이닝에 이어 그대로 마운드에 오른 봉재석이 1아웃을 잡은 뒤 솔로 홈런을 한 방 맞았다.
감독은 정수호를 올렸고, 추가 실점 없이 마무리.
일본 벤치가 몹시 조용했다. 약이 오를 대로 올랐을 거다.
수비를 마치고, 나는 벤치가 아닌 불펜으로 향했다.
“오, 건우. 알아서 왔네?”
“제가 던질 차례 아닙니까?”
“던질 수 있지?”
“유리 누나가 일본놈들 상대로 3연속 삼구삼진 잡아 오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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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건우가 마운드에 올랐을 때.
한국 팬들이 소리쳤고, 일본 타자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설욕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강건우의 전력분석 리포트는 닳을 때까지 봤다.
주 무기는 150km/h 초반에서 166km/h에 달하는 포심.
150km/h대 중반까지 나오는 투심에 두 종류의 체인지업, 그리고 낙차 큰 커브까지.
공략하기 쉬운 상대는 아니지만, 빠른 공에 포커스를 맞추고 들어가기로 했다.
토시노 와타나베가 배트를 짧게 쥐고 섰다. 어떻게든 출루해야 한다.
4대 1.
경기를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무조건 뒤집는다.
그런 생각으로 타석에 들어선 와타나베는 초구를 일단 지켜봤다.
“스트라이크!”
생각만큼 공이 빠르진 않았다. 하지만 바깥쪽 낮은 구석을 날카롭게 찌르는, 손대기 애매한 코스에 정확히 제구된 공.
전광판에는 148km/h가 찍혔다.
‘느리다.’
배트를 강하게 쥐었다. 그리고 다음 공에 스윙했다.
“스트라이크!”
헛스윙.
다시 체크한 전광판에는 158km/h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속았나.’
입맛이 쓰다. 짧은 인터벌에서 들어오는 이런 구속 차이라면 치기가 어렵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파울을 칠 요량으로 자세를 고쳐잡았다.
커브는 버린다. 포심과 투심이라면 어떻게든 때려내고, 체인지업은 커트.
하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너무 갖다 맞히는 데 집중해서 그런지, 존 위로 뜨는 공에 헛스윙.
코스보다는 깜짝 놀란 것이 컸다. 166km/h였다.
‘칙쇼!’
얕본 것도 아니다. 진심으로 맞부딪혔다.
그런데 이런 결과라니. 스스로가 용납이 안 된다.
다음 타석, 대타로 나선 타자도 삼진을 당했다. 이번엔 체인지업 두 개 이후 155km/h의 꽉 찬 투심.
할 말이 없는 수준.
일본 벤치가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그나마 다음 타자는 일본 타선의 핵심 중 하나인 타카오 마츠오카.
마츠오카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일단 한 방만 맞으면 뒤의 동료들이 해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딱!
“파울!”
제대로 맞지 못했다. 포수 뒤로 날아가는 파울.
2구째, 체인지업.
딱!
“파울!”
잡아당겨 3루 밖으로 향하는 타구.
3구 153km/h 투심.
따악!
“파울!”
우측 외야로 휘어져 나가는 파울.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이나마 타이밍이 맞아가고 있다.
물론, 160km/h를 훌쩍 넘기는 그 강속구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마츠오카는 다음 공에서 그게 나올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저 자신감 넘치는 선수가 뭘 노리겠는가.
삼진이다.
크게 심호흡하고, 눈을 잠깐 감아 고향의 가족들을 생각했다.
가족들에게 자신이 어떤 선수인지 보여줄 차례다.
굳건하게 발을 땅에 박아넣고, 166km/h 강속구를 맞받아칠 준비를 마쳤다.
한껏 고양된 집중력.
뭐가 오더라도 칠 수 있다는 자신감.
강건우가 공을 던졌고, 마츠오카는 눈을 부릅뜨고 스윙을 시작했다.
그리고 결과는.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강건우! 강건우! 강건우!”
“대-한민국!”
“스트라이크! 아웃!”
마츠오카는 중심을 잃은 채, 마스크를 집어 던지며 마운드로 달려나가는 한국 포수의 등을 바라보았다.
“나니…?”
분명히 그 공이 올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공은 분명, 전력 분석 리포트에 없었던 공이었다.
“스, 스라이다…? 혼또…?”
슬라이더.
분명 그건 슬라이더였다.
그것도, 일본 리그에서조차 본 적 없는 높은 수준의 슬라이더.
한국의 저 투수-오늘 2홈런에 2도루를 기록했던-는 대체 뭘까.
꽹과리 소리가 경기장을 뒤덮었고, 일본 관중들이 패잔병처럼 쓰레기를 줍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