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
가수가 하고 싶어?
문원 유씨(文園 柳氏) 15대손 유군자는 무용과 가창에 천부적이었다.
그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를 때엔, 저잣거리의 모든 이들이 신분의 구분도 없이 환호성을 지르곤 했다.
그리고 그것이, 유군자가 뒤주에 갇힌 이유였다.
* * *
군자야, 너는 춤을 추어선 안된다.
노래 역시 불러선 안되느니라.
올곧은 선비가 되거라, 네 이름처럼 군자(君子) 같은 삶을 살거라.
그게 네 인생의 유일한 목표일지니.
그것이 숙부 유형원의 입버릇이었다.
여섯 살에 부모를 여읜 유군자는 숙부인 유형원에게 입양됐다. 소년의 양친이 사망하자 마자, 유형원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유군자를 슬하에 거뒀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유군자를 통해 문원 유씨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끔찍한 저주를 푸는 것.
유가의 핏줄을 타고 난 남자들은 하나 같이 화랑처럼 곱고 아름다우며, 비할 바 없이 총명하고 강인했다.
그러나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요절해 버렸다.
원인은 성인식 무렵 팔에 발병하여 이내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창병(피부병).
발병 이후부터는 항상(常) 존재하며, 곧 전신을 덮을 만큼 거대해지는(太) 이 피부병(瘡)을 유가에서는 상태창(常太瘡)이라 불렀다.
상태창은 가문에 내린 저주 그 자체였다.
어의까지 지냈던 의원도 병증을 다스리지 못했다. 좋다는 약재는 모두 달여 먹어 보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유군자의 아버지인 유주원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유형원에게 형 주원의 죽음은 충격이었다.
오랜 유가의 역사에서도 가장 뛰어난 재능이라고 평가받던 주원이 아니었던가.
그런 주원의 몸에도 반딧불이 같은 색상의 창병이 퍼져 버렸다. 마지막 순간엔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던 형의 모습을, 유형원은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그 날부터 저주에 대한 유형원의 광적인 집착이 시작됐다.
저주는 선대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양반가에 태어났음에도 천한 것들과 어울리다가 관직을 빼앗기고 유배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2대 선조 유예성. 가문의 남자들이 서른을 넘기지 못하게 된 건 그 이후부터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유가에 누적된 업보 아닌가.
저주를 풀기 위해선 완벽하고 고결한 선비를 배출해 내야 한다.
그것이 유형원이 내린 결론이었다.
허나 안타깝게도, 이미 여러 부정부패에 연루된 유형원은 청백리와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스스로도 그 사실을 알았기에 조카인 유군자를 거두었다. 유형원과 달리, 유군자는 아직 그 어떤 이물질도 묻지 않은 화선지 같았으니까.
유군자를 완벽한 선비로 만든다. 그를 통해 가문의 저주를 해소한다.
유형원의 계획은 꽤나 그럴싸해 보였다. 유군자의 빛나는 재능은 소년 시절부터 군계일학 그 자체였으니.
열 살도 되기 전에 사서오경을 독파했고, 열세 살에는 말을 타고 꿩 사냥의 선두에 섰다.
금기서화(琴棋書畵)로는 팔도에 견줄 동년배가 없었으며, 수려한 용모와 기품 있는 몸가짐은 모두를 매료시킬 정도였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나가는 군자를 보며 유형원은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종종 기생, 광대들이나 즐길 법한 가무에 관심을 갖긴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뭐, 그 나이대의 소년들에겐 자연스러운 일 아니던가.
그저 종아리에 피가 맺히도록 매질을 한 뒤, 세뇌처럼 같은 문장을 반복하여 읊어 주기만 하면 된다.
군자야, 너는 춤을 추어선 안된다.
노래 역시 불러선 안되느니라.
올곧은 선비가 되거라, 네 이름처럼 군자(君子) 같은 삶을 살거라.
그게 네 인생의 유일한 목표일지니.
군자는 반항이라는 것을 몰랐다.
유형원이 회초리질을 할 때마다, 그 커다란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만 뚝뚝 흘릴 뿐.
그 모습을 보며 유형원은 확신했다.
이제 이 아이에게 자아란 없다.
그저 뛰어난 선비가 되기 위해 수기치인(修己治人)하는 꼭두각시일 뿐.
군자의 총명함이라면 대과 급제는 따 놓은 당상일 터. 곧 관직에 나가고 뛰어난 선비로 인정받는다면 이 지긋지긋한 저주와도 이별할 수 있겠지.
유형원의 확신엔 변함이 없었다.
그의 몸을 뒤덮은 끔찍한 창병과도 곧 이별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느 날, 지저분한 저잣거리에서 군자가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기 전까진.
“우와아아—!!”
환호하는 관객 사이엔 중인도 아닌 상민, 심지어 천민들까지 섞여 있었다.
그들 앞에서 저열한 가무를 선보이는 군자의 모습은, 세상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지난 십여 년 동안 유형원 앞에선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었던 얼굴. 순간 유형원의 두 눈에 불이 퍽 들어왔다.
그 천박하기 그지없는 모습은, 유가 저주의 시작인 선조 유예성의 모습과 다를 것이 없었다.
“저 아이를 잡아 오거라.”
형원의 손짓 한 번에 호위무사들이 움직였다.
그 와중에 맨주먹으로도 셋을 쓰러뜨린 군자였으나, 예닐곱 명의 호위무사를 당해 낼 재간은 없었다.
군자에게는 끔찍한 고초의 시작이었다. 이번엔 회초리가 아닌 곤장이었다.
둔부와 대퇴의 살이 죄다 터져 나갈 때까지 곤장질을 당한 군자는, 하인들에 의해 구겨지듯 뒤주에 갇혔다. 그가 열일곱이 되던 해의 일이었다.
두터운 나무문의 빗장이 닫히던 그 순간까지도, 군자는 제 숙부를 향해 소리쳤다.
“숙부님, 제발 제 말 좀 들어 주십시오!”
“닫아라.”
“상태창을 다스릴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한 번만···.”
“뭐 하느냐, 당장 닫지 않고.”
“숙부님!”
콰앙-.
닫힌 문 너머로 유형원이 낮게 읊조렸다.
“뉘우치거라.”
“···.”
“오로지 군자의 길만을 생각하라고 했다.”
“···.”
“그 이외의 모든 것은 죄악이니.”
“···.”
“철저히 뉘우쳐야 할 것이다.”
문 너머로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군자는 고개를 떨궜다.
군자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숙부는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그가 가문 역사상 최초로 상태창(常太瘡)을 다스리는 데에 성공했다고 해도.
···우웅···.
군자의 팔에 새겨진 창병이 말을 걸듯 공명했다. 유형원의 몸에 퍼진 병증과는 달랐다. 빛깔은 같았으나, 훨씬 더 정갈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그것은 마치 팔뚝에 쓰여진 형광의 붓글씨와도 같았다.
“창아.”
군자는 그것을 ‘창’이라 불렀다. 허나 피부병(瘡)이 아닌 노래(唱)라는 의미를 가진 이름이었다. 노래는 군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다.
가문의 다른 어른들과 달리, 군자는 단 한 번도 창병으로 인해 고생해 본 적이 없었다.
그들과 군자의 차이는 단 하나였다. 군자는 춤 추고 노래하기를 즐겼다. 앞에 있는 관객이 누구든, 그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기꺼이 몸을 움직이고 목청을 뽐냈다.
세상은 그런 일을 하는 자들을 광대라 부르며 천민으로 취급했다. 천민이란 상민만도 못한, 노예와 같은 계층의 사람을 말한다. 허나 군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릴 적부터 숱하게 많은 책을 읽었다. 가장 많이 등장했던 구절은 ‘백성을 이롭게 하라’. 무릇 선비라면 백성을 이롭게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롭다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배불리 먹고, 따스히 자는 것만이 이로운 것일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백성을 웃게 하는 것, 즐겁게 만드는 것. 그것 역시 더할 나위 없이 이롭지 아니한가.
숙부 몰래 경단을 사 먹으러 나간 저잣거리, 그곳에서 광대들의 공연을 보고 확신했다. 저들이야말로 진정 백성을 이롭게 하는 존재들이다.
그 뒤로, 군자는 숙부 몰래 가무(歌舞)를 연습했다. 처음엔 서툴렀으나 마음만은 즐겁기 그지없었다. 좋은 글을 읽거나 활을 쏘는 것도 좋았지만, 춤추고 노래하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놀랍게도,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출 때마다 팔의 병증은 모양을 달리했다.
피부병처럼 사방에 퍼져 있던 형광색 두드러기가 한 데 모였다. 마치 서책처럼 네모난 모양을 만든 병증은, 심지어 글씨 모양을 만들며 그에게 말까지 걸어 왔다.
[가야금을 연습해 봐.] [저잣거리에서 춤춰 볼까?]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거야.]마치 도깨비에게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꿈이나 허상이 아니었다.
상태창이 내린 임무를 완수할 때마다, 그의 가창과 무용 실력이 눈에 띄게 발전했으니까.
뻣뻣하기 그지없었던 몸이 유연해졌다. 불협화음을 만들던 목소리도 어느새 아름답게 변했다.
그 변화를 체감하자 비로소 깨달았다. 상태창은 저주가 아닌 축복이다. 이것을 제대로 다룰 수만 있다면, 병증을 고치는 것은 물론이며 더 많은 백성들을 이롭게 할 수 있다.
허나 그런 군자의 깨달음도 숙부 앞에선 무의미했다.
좁은 뒤주 안에선 몸을 가누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간신히 쪼그려 앉은 자세를 취한 군자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고였다.
곤장을 맞았기에 느끼는 서러움과는 달랐다. 이제야 제 뜻을 펼쳐 보일 수 있게 되었는데, 뒤주 안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도 없느냐!”
문을 쾅쾅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 보아도 하인 한 명 나타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숙부가 그리 지시했을 테니.
그냥 숙부에게 거짓 사과를 하고, 나가서 상태창 다루는 법을 보일까.
하지만 소용없는 생각이었다. 숙부는 애초에 군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을 것이며, 이것을 본다고 해도 도깨비나 귀신의 장난이라고 생각할 테니.
논어(論語)에도 나온다, 공자는 괴력난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공자 말씀이 목숨보다 중한 양반들은, 이런 신묘한 것을 봐도 아마 존재 자체를 부정해 버릴 테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이 뒤주를 가득 메웠다. 이렇게 나간다고 한들, 원하는 삶은 살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숙부의 말에 따라 선비의 길을 걷게 되겠지.
반항이라도 해 볼까. 하지만 군자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주먹으로 호위무사 몇 명은 쓰러뜨릴 수 있다. 칼이나 활을 준다면 한 개 분대를 상대할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에서 개인이 권문세가를 상대로 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끝없는 울적함이 온 몸을 휘감았다. 엉덩이와 허벅지는 이미 감각이 없어진 지 오래였다. 쪼그려 앉아 무릎을 감싼 채, 군자는 창에게 말을 걸었다.
“창아, 거기 있느냐.”
“···.”
“노래 한 곡 뽑아도 되겠느냐.”
···우웅···.
한번 해 보라는 듯, 상태창이 공명했고.
이윽고 군자가 입을 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더할 나위 없이 구슬프며 절절한 곡조였다.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내가 님 찾아 떠났을 때 님은 나를 찾아왔네.”
황진이의 시 ‘상사몽’에 나름의 음률을 붙여 자유롭게 부르는 노래.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 날 밤 꿈에는.”
“같이 떠나 오가는 길에서 만나기를.”
이별의 정한을 노래한 시, 그러나 군자에겐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한 안타까움으로 들렸다.
바라건대, 이번 생이 아니면 다음 생이라도 자유롭게 노래하며 춤추고 싶구나.
그렇게 마지막 소절까지 완창한 뒤,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상태창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음?”
[노래하고 춤추는 게 좋아?]이건 또 무슨 소리야.
하지만 군자는 이미 상태창의 위력을 알고 있었다. 이 형광의 서책은 결코 헛소리를 하지 않는다.
황급히 소매로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새로운 문자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네가 자유롭게 노래하고 춤출 수 있는 세상이 있는데.]“저, 정말로 그런 세상이 있단 말이냐?”
[그 세상에선 가무에 능한 사람들이 융숭하게 대접받는단다.]“그래! 그것이 이치에 맞다!”
[가수, 혹은 아이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지.]가수? 아이돌?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지만 군자는 신이 났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옳게 된 세상 아닌가.
“창이야, 그 세상이 대체 어디더냐.”
[300년 후 조선.]“음?”
[내가 거기로 널 데려다 줄까?]“무, 뭐라!?”
[군자야, 가수가 하고 싶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