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01)
#101
점 하나
수십 대의 카메라에 빨간 불이 돌고, 무대 조명은 MC 정해진의 머리 위에 떨어졌다.
“당신을 위한 천상의 하모니! [노래해 듀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아육시 팬들에겐 익숙한 정해진의 힘찬 목소리와 함께, 카메라는 참가자를 향했다.
여성 솔로 댄스가수, 남성 발라더, R&B 싱어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여섯 참가팀이 대기석에 앉아 있었다. 물론, 7IN과 박영제도 함께였다.
이제는 음악 프로그램 MC에도 꽤나 능숙해진 정해진이, 출연자들을 한 명씩 바라보며 가볍게 아이스브레이킹을 시작했다.
“최고의 가수들이 최고의 파트너와 함께 최고의 음악을 만든다는 컨셉으로, 촬영 전부터 화제가 된 [노래해 듀오>인데요. 여기서 또 박영제 참가자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정해진의 시선이 자연스레 박영제에게로 향했다.
“아니 박영제 씨, 저희가 그렇게 입단속을 부탁드렸는데에.”
“아하하···.”
“파트너를 공개해 버리시면 어떡합니까아.”
“그게, 일단 열애설 해명은 해야 하니까요.”
여섯 개의 참가 팀 중, 촬영 전부터 파트너가 공개된 팀은 박영제 – 혜진 조합이 유일했다. 연예인들의 스캔들, 비화를 주로 캐는 언론 다스패치가, 박영제와 혜진이 한밤중에 함께 있는 모습을 포착한 것.
소속사 네이션스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사실 두 사람은 연인 관계가 아니라 퍼포먼스를 연습 중이었을 뿐’이라는 해명문을 냈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박영제의 파트너가 혜진임이 공개되어 버린 거다.
얼핏 불가항력으로 보였으나 사실은 소속사 네이션스가 꾸민 자작극이었다. 다스패치에게 돈을 주고 박영제와 혜진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도하도록 한 것.
열애설로 관심을 모은 다음, 사실은 [노래해 듀오>에서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고 발표하면 어그로를 왕창 끌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네이션스의 계산은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다. 특히 혜진이라는 인물이 가진 인지도가 꽤나 주효했다. 1020 여성들 사이에서 큰 지지를 받고 있는 캐릭터인 만큼, 혜진의 듀엣 무대에도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보였다.
MC 정해진 역시 이런 상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하하하, 그렇죠. 박영제 씨도 아이돌이니까. 열애설 해명은 하셔야죠.”
“그럼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오늘 혜진 님과 환상의 콜라보레이션 무대, 기대해 봐도 괜찮을까요~”
“혜진 님이요? 제 파트너가 혜진 님인가요?”
“아니이, 아직도 이러시는 겁니까~”
모니터 너머로 그 모습을 보며 김석훈 PD가 피식 웃었다.
“쟤네 뭐 하니?”
총괄 PD 입장에선 가소로운 블러핑이었다.
박영제와 네이션스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그런 언플을 한 것인지 뻔히 보였으니까.
하지만 네이션스의 언플로 [노래해 듀오>도 어느 정도 이득을 본 것은 사실이었다. 지난 일주일 간, 박영제 – 혜진 조합으로 어그로가 끌리며 [노래해 듀오> 역시 검색어 순위를 차지했다.
“그래, 이제 무대만 좀 잘 해 봐라 영제야.”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김석훈 PD는 메인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첫 번째 무대는 여성 솔로 공연주의 무대로 시작됐다. 그녀의 파트너는 성악가 출신의 뮤지컬 가수 위경필. 부드럽게 시작하여 장엄하게 끝나는 무대 구성은, [노래해 듀오>의 서막을 열기에 적절한 무대였다.
“좋아, 좋아.”
시작부터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이어진 두 번째, 세 번째 무대 역시 훌륭했다.
남성 발라더 곽현민은 요즘 홍대에서 잘 나간다는 인디밴드 ‘원란’과 함께 단단한 사운드의 락 무대를 꾸몄다.
이어서 무대에 오른 R&B 가수 메이브는 본인 소속 레이블의 래퍼들을 다 데리고 와서 흥을 폭발시켰고.
이제 네 번째 참가자, 박영제가 무대에 오를 타이밍이었다.
* * *
박영제가 무대를 준비하는 동안, 무대 아래 방청석에 옹기종기 모인 7IN의 팬들은 괜한 불안감에 속이 좋지 않았다.
아육시 때와는 달리 [노래해 듀오>는 꼴찌를 해도 별 상관이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탈락을 한다고 해서 멤버들이 아이돌로 데뷔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팬들부터 경연에 절여졌기 때문인지, 어쩐지 낮은 등수를 받는 것은 기분이 영 내키지 않았다.
꼴찌를 안 하려면 무대 준비를 열심히 해야 한다. 하지만 또 그로 인해 멤버들의 체력이 갈려 나가는 것도 싫었다.
이런 모순적인 감정 속에서, 팬들은 그저 소속사인 솔라시스템만 비난할 뿐이었다.
“아니, 왜 이런 프로그램에 나오게 해서···.”
게다가 하필이면 경쟁자인 박영제가 ‘베리타스’의 혜진을 섭외해 버렸다.
실력과 인지도, 걸크러쉬한 매력을 고루 갖춘 혜진은, 7IN의 파트너로 팬들이 ‘그나마’ 희망하던 아티스트 중의 한 명이었다.
그런데 그런 파트너를 경쟁자에게 빼앗겼으니, 팬들의 속이 좋을 리 없었다.
게다가, 7IN과 박영제가 같은 예능에 출연하게 되었다는 말이 나온 이후로 SNS에 떠돌기 시작한 괴담도 괜히 신경이 쓰였다.
박영제가 고등학교 때는 좀 불량했다느니, 유군자 역시 박영제와 동창으로, 그와 함께 어울려 다녔다느니.
확인해 보니 두 사람이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것은 확실했다. 그렇기에 더욱 불안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만 보면 군자는 학폭과 관계가 없는 것 같아 보였으나, 또 모르는 거다.
만약 정말로 학폭 이슈가 터진다면, 팬들도 더 이상 군자를 덮어 놓고 사랑할 자신이 없었다.
팬들은 군자의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 궁금했으나, 괜히 파헤치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랬다가 알기 싫은 진실이라도 나오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기에.
그저 지금은 7IN이 좋은 무대를 만들기를 응원할 뿐.
그리고 경쟁자인 박영제가 무대를 망치기를 기원할 뿐이었다.
“···망해라···.”
부질없는 저주를 날려 보는 팬들이었으나, 막상 무대에 오른 박영제와 혜진은 예상보다 훨씬 더 멋진 무대로 좌중을 완벽하게 압도했다.
박영제 – 혜진이 택한 컨셉은 탱고. 박영제와 혜진의 솔로곡을 절묘하게 매쉬업한 뒤, 라틴 풍의 메인 멜로디에 따라 새롭게 편곡했다.
솔직히 7IN의 팬들이 봐도 좋은 무대였다. 특히 댄스 브레이크에서의 호흡이 좋았다. 완전히 탱고 풍으로 전환된 댄스 브레이크 파트에서, 박영제와 혜진은 거의 실제로 사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격정적인 호흡을 보여주었다.
“뭐야 진짜···.”
“쟤네 진짜 사귀는 거 아님?”
“에이, 혜진이가 아깝지.”
“근데 왜 저렇게 호흡이 잘 맞냐구.”
“우리 애들도 무대 잘 해야 될 텐데···.”
불안에 빠진 7IN 팬들과 달리, 박영제와 혜진의 팬들이 앉은 자리에서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박영제에에—.”
“혜진이 너무 멋져—!!”
엔딩 포즈를 취함과 동시에 무대 위에선 검붉은 장미꽃잎이 흩날렸고.
박영제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한껏 느끼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됐다!’
연습 때보다 본 무대가 확실히 더 좋았다. 무대를 내려가며, 파트너인 혜진과 기분 좋게 하이파이브까지 쳤다.
“혜진, 수고했다!”
“네, 오빠도 수고하셨습니다.”
“담에 밥 한번 살게! 초밥 좋아하니?”
“어어, 회사에 한번 물어볼게요.”
“아하핫, 그래 그래.”
혜진의 철벽에 기분이 조금 상하긴 했지만, 그것도 지금의 이 승리감을 망칠 수는 없었다.
대기실로 돌아온 박영제는 매니저인 홍현석부터 찾았다. 그를 맞이하는 홍현석의 표정은 이미 승리 그 자체였다.
“됐다, 영제야!”
“괜찮았어요?”
“괜찮은 정도가 아니었어! 완전 씹어먹었다니까?”
“관객 반응은?”
“너도 위에서 봤을 거 아냐!”
“흐흐, 다들 좋아하긴 하더라.”
“야, 너 혜진이랑 아무 일도 없는 거 확실해? 무대 위에선 아주 스포츠댄스 커플이 따로 없던데?”
“일은 뭔 일이에요. 그런 거 없어요.”
“너 임마, 또 초밥 사주면서 작업 건 거···.”
“아이, 아니라니까.”
“그래, 뭐 아무튼 최고였어. 이제 칠린 애들이 뭘 하든 이걸 이기긴 힘들 거다.”
“그렇죠?”
“당연하지. 영의정이 뭐 돼? 그 누나라고 만능이겠냐고. 안 그래도 멀리 사시는 분인데, 뭐 무대 준비는 제대로 했겠냐.”
“노래는 뭐 한대요?”
“아, 그거. 안 그래도 큐시트 봤는데···.”
그렇게 이야기하며 홍현석이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노래해 듀오> 1차 경연 무대 순서가 적힌 큐시트였다.
“봐라, [유고유먼> 결국 이거야. 그냥 영의정 히트곡에 묻어가겠다는 거지.”
“엥, 유고우먼이 아니라 유교우먼인데요.”
“그래? 그러네?”
큐시트를 다시 한번 확인한 홍현석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반박했다.
“오타겠지 뭐.”
“아하.”
홍현석의 말이 납득이 간다는 듯, 박영제도 피식 웃었다. 리허설 때도 하는 둥 마는 둥 하더니, 겨우 영의정 불러다 놓고 한다는 게 10년 전 히트곡이라니.
“근데 리허설 때 MR 들어 보니까 국악기가 좀 들어간 것 같던데요.”
“뻔하지 뭐. [유고우먼>에 국악기 몇 개 붙여 놓고 국악 버전이라고 우기려는 거 아니겠냐.”
“아, 그래서 [유교우먼>이라고 써 있는 건가.”
“아, 맞네. 오타가 아니라 말장난이구만?”
“그런가 봐요.”
대기실 의자에 앉아 발을 쭉 뻗은 채, 박영제와 홍현석은 다음 무대를 감상했다.
무미건조한 다섯 번째 무대가 물 흐르듯 지나간 뒤, 마침내 마지막 순서가 다가왔다. 7IN과 영의정이 무대에 오를 시간이었다.
“아오, 저 순서도 내가 얼마나 지랄을 했는데.”
“···.”
“아니, 영의정 왔다고 대뜸 마지막 순서에 박는 게 말이야 막걸리야 뭐야.”
“뭐, 어쩔 수 없죠. 그 분 화제성 쩌는 건 사실이니까.”
“그, 그렇긴 하다만은.”
7IN 놈들이 주인공처럼 마지막 순서를 차지한 건 조금 열받았지만, 그래도 박영제는 너그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어차피 평가에서는 이길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어디 얼마나 구닥다리 무대를 하나 한번 볼까.
모든 조명이 꺼진 어두운 무대 위.
[유고우먼>의 시그니쳐 같은 전주의 기타 리프가 거문고 소리로 바뀌어 흘러 나왔다.모든 이들을 두근거리게 할 만큼 반가운 전주지만, 박영제와 홍현석은 그럴 줄 알았다며 박수를 쳤다.
“결국 추억팔이 맞네!”
“하하, 그러네요.”
그러나 가사가 달랐다.
Woman, Hey You Go Woman.
Now, Imma Yoo Gyo Woman-.
“···어?”
분명히 달라진 가사와 함께 리듬이 변주되기 시작했다. [유고우먼>의 메인 멜로디는 살아 있었으나, 노래는 이제 완전한 신곡이 되어 버렸다.
동시에 무대 위 조명이 밝아지고, 화려한 대궐을 묘사한 세트와 단청으로 장식된 LED가 현란하게 펼쳐졌다.
그 가운데에 선 영의정, 그리고 7IN 멤버들.
영의정의 눈 아래엔, 지금까지 본 적 없었던 점이 하나 찍혀 있었다.
Woman, Hey You Go Woman.
Now, Imma Yoo Gyo Woman-.
점 하나 찍고, 어제의 나를 찢고.
“···아니, 잠깐만···.”
영의정의 점을 보고 나서야, 박영제와 홍현석은 [유교우먼>이라는 제목의 진짜 의미를 깨달아 버리고 말았다.
“유고우먼에 점 하나 찍었다··· 그래서 유교우먼이라고?”
“미친···.”
대체 이건 어떤 또라이가 낸 아이디어지?
두 사람이 황당함에 얼어 버린 사이, 영의정과 7IN이 본격적으로 무대를 박살내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