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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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긍지를 가진 자
군자가 자신의 이상형을 선포한 순간,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던 숙소에 싸한 정적이 흘렀다.
“유, 유, 육···.”
육덕진 여자가 이상형임을 선포하는 신인 아이돌. 그 누구도 이런 그림을 상상하진 못했을 테니까.
그러나 그 와중에도 군자의 표정은 여전히 해맑았다.
“다들 표정이 어인 일인가?”
“···.”
“육덕은 좋은 것인데?”
“고만 해 임마!”
급기야 태웅에게 꿀밤까지 한 대 맞았지만 여전히 군자의 두 눈은 또랑또랑 결백했다. 꿀밤을 맞아 눈물 맺힌 눈으로 군자가 말을 이었다.
“요즘 나의 관심사가 오덕(五德)이라 그렇게 말한 것 뿐인데···.”
“—!?”
오덕(五德).
유교에서의 오덕이란 온화, 양순, 검소, 공손, 겸양의 다섯 가지 덕을 말한다. 충효(忠孝)가 주군과 부모님을 대하는 방식이라면, 오덕은 스스로를 갈고 닦는 거울과 같다.
매일 아침, 붓글씨로 오덕을 써 내려가며 마음을 정제하는 것이 하루 일과의 시작이었다. 아직은 미욱하지만, 언젠간 반드시 이 오덕을 모두 갖춘 사람이 되리라. 그것이 군자의 다짐이었으니까.
그러나 팬들에겐 조금 다르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군자야 잠깐만;;;;] [아닠ㅋㅋㅋㅋ뭔뎈ㅋㅋㅋㅋ] [오덕? 군자 오덕이엇엉?] [대체 무슨 애니메이션을 본거얔ㅋㅋㅋㅋ] [하긴 애니 보면 그런 체형이 많긴 하더라;;] [나 왜 울적해지지] [내 찌찌 듣지 마 너 잘못없어] [그래 군자도 남자였구나···] [그러니까 요즘 관심사가 오덕이라서 이상형이 육덕이 됐다는 거니]팬의 마지막 채팅에, 군자가 환하게 웃으며 화답했다.
“예, 바로 그것입니다.”
아직 연애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바가 없으나, 만약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무언가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 좋지 않겠는가.
오덕을 추구하는 군자였으나, 사실 유교의 오덕에는 아쉬운 점이 없지 않았다.
온화, 양순, 검소, 공손, 겸양, 모두 자신을 낮추고 둥글게 살아가는 것과 관련된 덕 아니던가.
그러나 현대 사회를 살아가며 느낀 것이 있었다. 자신을 낮추기만 해서는 안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지만, 가끔은 떳떳하게 고개를 들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자신의 능력을 믿음으로서 가지는 당당함, 다시 말하여 긍지(矜持).
그것이 군자가 생각하는 여섯 번째 덕이었다.
굳이 이상형을 꼽자면, 기존의 오덕(五德)에 이 긍지까지 갖춘 여성이라 말하고 싶었다. 그런 사람의 옆에서 그 드높은 긍지를 배우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팬과 동료들은 뭔가를 오해한 것 같았다.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지현수가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해 보기 위해 재치를 발휘했다.
“아, 아하핫, 줄임말인가 봅니다!”
“음?”
“육떡, 육류랑 떡볶이를 좋아하는 여자! 맞지 군자야?”
“난 줄임말 같은 것은 잘 모르는데.”
“!”
“육덕이 육덕이지, 무슨 다른 뜻이 있더냐.”
그러나 군자를 구해 내기는 역부족이었다.
언제나 웃던 현시우마저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것인지 군자에게 구원의 밧줄을 내밀었다.
“아하하하, 군자 말실수 한 것 같은데~”
“말실수라니?”
“아하하, 가슴 큰 사람이 좋다는 뜻은 아니잖아~”
“음? 가슴이 크면 당연히 좋은 것 아닌가?”
“아하하, 망했네~”
큰 가슴은 대범함을 뜻하는 것이리라. 육덕에 호방함까지 갖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거늘, 참으로 무용한 질문이구나.
사태는 점점 악화되어 가고 있었다. 방금 커피를 뿜었던 서은우 팀장이 티슈로 입가를 훔치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래, 이게 유군자였지.
생각해 보면 그 동안 너무 안일했다. 명품진품 이후로는 딱히 튀는 행동을 한 적이 없었기에 이제는 아이돌로서의 삶에 익숙해진 줄 알았다.
방심을 하면 안 됐다. 특히 라이브 방송 같은 걸 할 때엔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하필 라이브 방송이었기에 편집도 불가능했다. 영의정과 나우리까지 함께했기에 시청자 수 역시 평소보다 두 배는 많은 상황이었고.
여기서 갑자기 방송을 종료해 버린들 사태는 수습될 수 없을 것이다.
아마 ‘수상할 정도로 유두와 왕가슴에 집착하는 아이돌’ 따위의 캡쳐글만 양산하게 되겠지.
이제는 어떻게든 화면 속 멤버들의 수습 능력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영의정과 나우리를 믿기엔, 두 사람 모두 아까부터 웃음을 참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으니까.
그나마 영의정이 끅끅대는 웃음을 참으며 핸드폰에서 사진 한 장을 열었다. 육감적인 몸매가 그대로 드러난 자신의 20대 시절 화보집이었다.
“그러니까 군자 넌 이런 여자가 좋다는 거야?”
“오오, 영의정 대감 마님의 소싯적 사진이군요.”
“응. 설마, 그런 건 아니겠지?”
영의정의 입장에선 어떻게든 군자를 구제해 보려는 움직임이었다. 설마 이런 섹시화보를 보고 좋다고 하진 않겠지.
그러나 모두가 영의정의 몸매를 볼 때, 군자는 하필이면 사진의 본질을 보았다.
영의정 대감 마님이야말로 긍지로 똘똘 뭉친 분 아니던가. 이런 분이야말로 육덕을 갖춘 분이라고 할 수 있지.
“예, 이런 분이 좋습니다!”
“···오 마이 갓.”
“육덕을 갖춘 분 아닙니까!”
영의정과 서은우 팀장이 동시에 이마를 짚었다.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수습이고 뭐고, 당장 라이브 방송을 종료해야 할 것 같았다.
다급해진 서은우 팀장이 카메라 쪽으로 달려가 녹화종료 버튼을 누르려던 순간이었다.
“···자, 자, 잠깐만!”
“?”
유찬이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손을 번쩍 들었다.
“···구, 군자 형,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오해?”
“···그, 유, 육덕이 그런 뜻은 아니죠?···.”
“그런 뜻이라니, 무슨.”
“···와, 왕···.”
“왕?”
“···왕가슴이요···.”
“!”
더 이상 그 어떤 오해도 발생할 수 없도록, 유찬은 아주 정확한 워딩과 함께 약간의 손동작까지 취해 보였다.
“!?!?”
아이돌로서는 너무도 위험한 손동작이었으나 유찬은 군자를 구해 내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유찬은 믿고 있었다. 군자가 조금 엉뚱하고 이상하긴 하지만, 라이브 방송에서 커다란 가슴이 좋다는 미친 소리를 할 정도의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뭔가 오해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의 믿음에 화답하듯, 군자의 얼굴과 귀가 순식간에 시뻘겋게 물들었다.
“유, 유, 유찬이 네가 미친 게로구나!”
* * *
이후 군자의 설명과 함께 다행히 육덕 소동은 일단락됐다.
“저, 저는 왕가슴을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왕의 가슴이라면 모를까···.”
군자는 땀까지 삐질삐질 흘리며 오덕과 육덕의 개념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거의 폭동 분위기였던 팬들 역시 다시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휴] [난 진짜 군자가 미쳤는줄 알았지 모야] [군자야 우리 놀란 가슴좀 달래주렴] [ㅋㅋㅋㅋ진짜 칠린라방이 웬만한 개그프로보다 더웃겨] [라방에서 왕찌찌가 이상형이라고 말하는 아이돌이 있다?] [하긴 군자가 그럴리가 없짘ㅋㅋㅋㅋ] [평소엔 그렇게 선비같으면서]“외모적인 이상형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가슴의 크기 같은 것이 무엇이 중하겠습니까. 다만 긍지를 가진 분이라면, 제가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좋습니다.”
[그래그래 우리 모두 긍지를 갖고 살자구] [왕찌찌든 절벽이든 긍지만 가지면 된다 이거아녀?] [오 갑자기 가슴 커진 기분] [하 오늘 군자 덕에 돈 400만원 굳었네 개이득] [라방 볼때마다 느끼는건데 여긴 팬들도 반쯤 미친것같앜ㅋㅋㅋ]사태를 지켜보던 서은우 팀장도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우-.”
라이브 방송을 꺼 버렸다면 해명의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뒤늦게 해명한다고 해도 아마 회사에서 준비해 준 해명이라 여겼겠지.
조금 더 군자를 믿었어야 했는데.
한숨을 내쉬는 서은우 팀장을 보며, 이용중 실장이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팀장님, 자책하지 마세요. 잘 해결됐으니 된 거 아닙니까.”
“···.”
“제가 팀장님이라도 라이브 종료하려고 했을 겁니다. 아이돌이 라방에서 육덕 타령하는데, 누가 그걸 믿고 지켜볼 수 있겠어요.”
“···그래요.”
착하고, 성실하고, 예의바른 친구들이지만 함께 일하기 쉬운 타입은 결코 아니구나.
언제 어디서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는 서은우 팀장이었다.
그렇게 육덕 사태가 일단락된 뒤, 라이브 방송은 무사히 종료됐다. 마침 영의정과 나우리가 서울까지 올라왔으니, 이 기회에 2차 경연곡 회의까지 진행하기로 했다.
“2차 경연은 아마 1차 경연보다 준비할 시간이 짧을 겁니다.”
“흐음-.”
“가능하다면 신곡을 내는 게 베스트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몰라요. 곡을 만들어 낼 시간이 부족할 테니까.”
“하긴, 시간이 촉박하긴 해.”
“이번만큼은 기존 곡을 편곡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마침 영의정 누님의 곡 중엔 널리 알려진 히트곡들이 많으니···.”
기존 곡을 편곡하여 경연에 나서자는 것이 서은우 팀장의 의견이었다.
안정성 측면에서만 보자면 서은우 팀장의 의견이 옳았다. 2차 경연은 1차 경연보다 준비 기간이 짧은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게다가 1차 때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으니, 2차 경연은 히트곡 메들리만 해도 결승까지는 무난히 진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영의정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한 눈치였다.
“···누님, 왜 그러시는···.”
“흐음, 좀 별론데.”
“예?”
“나 이제 유고우먼 아니고 유교우먼이잖아.”
영의정은 눈 아래의 점을 가리키며 생긋 웃었다.
“모처럼 점까지 찍고 딴 사람 됐는데, 기존 곡 하면 재미없지 않아?”
“그, 그런···.”
“게다가 편곡도 쉬운 게 아니에요. 경연 퀄리티로 뽑으려면 거의 작곡만큼 품 들어갈 걸. 그치 현수야?”
영의정의 질문에 지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편곡도 빡세게 하면 시간 엄청 걸리죠.”
“그치? 그렇다니까. 괜히 기존곡 편곡해서 심심한 무대 하느니, 차라리 아예 신곡 뽑는 게 나을수도 있어. 우리 현수, 곡 엄청 빨리 쓰는 편 아닌가?”
“넵, 그건 자신 있습니다!”
지현수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지만 서은우는 아직도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현수가 아무리 곡을 빨리 뽑아도 한계가 있을 겁니다. 프로듀서진이나 세션 섭외도 시간이 걸릴 텐데···.”
“그건 걱정하지 마.”
“예?”
“내 신입 매니저가 미디 좀 만지거든? 악기도 좀 다룰 줄 알고.”
그렇게 말하며 영의정이 남편 나우리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유튜브로 ‘엘드리치 링 공략’을 검색하던 나우리가 화들짝 놀라며 반문했다.
“무, 뭔데? 나 뭐 해야 돼?”
“응. 앞으로 오빠가 내 매니저 겸 프로듀서 겸 세션이야.”
“나 집에 가도 되는 거 아니었어?”
“미쳤어? 매니저가 연예인 두고 어딜 가?”
“가게 해 준다며!”
“응.”
“근데 왜···.”
“언제 가게 해 준다고는 말 안했잖아.”
“아악!”
나우리가 머리를 감싸쥐며 절규하는 동안, 서은우는 빠르게 신곡 회의를 진행해 나갔다.
“나우리 선배님께서 도와주시기로 한 것 같으니···.”
“아직! 아직 아닙니다 팀장님!”
“아냐, 서 팀장. 이미 결정됐어~”
“아아악-.”
“좋습니다. 그러면 신곡 컨셉부터 잡아 보죠.”
컨셉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마자, 군자의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오덕과 육덕, 그것이 오늘 라이브 방송의 화두였지.
그렇다면 훨씬 더 많은 덕을 가진 이를 주제로 삼아 보면 어떨까.
“열 가지의 덕···.”
“음?”
”십덕(十德)을 주제로 하면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