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11)
#111
강약약강은 패는게 국룰
“손절··· 당했냐고 했냐?”
툭 던진 군자의 질문은 아주 훌륭한 가성비를 자랑했다. 몇 글자 되지도 않는 질문 하나가 박영제를 단단히 열받게 만들었으니까.
언제나 팩트로 때리는 것이 가장 아픈 법이다. 박영제의 분노는 그가 실제로 손절을 당했음에 기인했다.
‘한시 사건’이 터지고,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베리타스’의 소속사 O2뮤직이 박영제의 네이션스 측에 연락을 취해 왔다.
내용은 간단했다. 더 이상 박영제와 함께 듀엣 무대를 꾸밀 수 없겠다는 것.
“아니, 갑자기 하차라니요? 황 실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 죄송합니다. 저희 혜진이가 기존에 진행하던 스케쥴이랑 겹쳐서···.
“뭔 스케쥴이 어떻게 겹쳤는데요? 그런 것도 체크 안 하고 섭외요청에 응하신 겁니까? 예?”
– 원래는 이렇게 매일 연습해야 되는 프로그램인 줄 몰랐습니다. 그 점은 저희가 사과를···.
“갑자기 이렇게 나오시면 저희는 어떡합니까, 예? 상도덕이 있으셔야죠!
– 죄송하게 됐습니다. 어쨌든 저희는 [노래해 듀오> 출연은 더 이상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황 실장님!”
홍현석 실장은 상도덕을 찾으며 길길이 날뛰었지만, 이미 돌아선 O2뮤직의 마음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이 아수라장에서 빠져나오겠다는 강력한 의지였다.
“형, 절대로 안 하겠대요?”
“몰라, 뭔 말도 안 되는 핑계 대면서 얼버무리는데···.”
“이번 사건 때문인 거죠?”
“그런 것 같아. 이 새끼들은 무슨 사실 확인도 안 된 루머 가지고 이 지랄 호들갑을 떨어? 도대체 무슨 소스로?”
“···.”
잠자코 입을 다문 박영제를 향해 홍현석 실장이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섰다.
“영제야, 너 지금이라도 솔직히 얘기해야 된다. 정말 유군자 괴롭힌 적 없냐?”
“···모르겠어요. 정말 없는 것 같은데···.”
“없는 것 같은데가 아니라 이 자식아, 잘 기억해 봐. 겨우 4년 전 일이잖아.”
“안 괴롭혔어요, 정말 난 모르는 일이라고요.”
“그래? 확실하지?”
박영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 장난이었는데. 안 그래?
어쩌면 약간은 괴로워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겨우 그거 가지고 학폭이라고? 그 정도 가지고 나를 가해자라 부른다고?
무엇보다 학폭위에 회부된 적도 없고, 지금까지 크게 문제가 터진 적도 없는데.
그저 동급생한테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이제 막 꽃피기 시작한 연예계 활동이 송두리째 날아간다는 건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래, 그럼 끝까지 가자. 일단 나도 유군자 뒤 좀 파 봐야겠다.”
“유군자 뒤를요?”
“그래. 생각해 보면 걔도 좀 이상하지 않냐? 너랑 같은 반 했던 건 중3이랑 고1 때라면서.”
“그랬죠.”
“그런데 왜 갑자기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그 이후엔 소속사 들어간 기록이나 오디션 본 기록도 없고. 그러다가 갑자기 아육시에서 미친놈 컨셉으로 뿅 튀어나왔단 말이지. 이거 아무리 봐도 이상하지 않냐고.”
“그렇기는 해요.”
“어쩌면 이 새끼도 뭔가 있을지 몰라. 알아보고 맞불을 놓든가 해야지, 이렇게 처맞기만 하다간 열불 터져 죽겠다.”
홍현석의 말에 박영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영제 역시 요즘 유군자 때문에 열불이 터져서 미칠 지경이었으니까.
만약 유군자의 흠결을 찾아낼 수만 있다면, 그 이상의 소득은 없을 거다.
“그럼 듀엣 파트너는 어떻게 할까요? 제가 혜진이한테 개인적으로 연락···.”
“아냐, 혜진이는 됐다고 해. 우리 소속 애들 중에서도 너랑 듀엣 할 만한 애들 많다.”
“네.”
“오히려 잘됐어. 혜진이랑 콜라보는 한번 봤으니까 식상하잖냐. 같은 소속사면 연습 스케쥴 잡기도 좋고, 얼마나 좋아.”
“그렇긴 하죠.”
궁여지책으로 같은 소속사 아이돌과 짝을 이뤄 무대를 준비한 박영제였다. 홍현석 실장은 차라리 잘됐다고 했지만, 솔직히 노래든 춤이든 혜진이 세 배는 더 나았다.
쿠웅, 쿠우웅-.
“후우, 잠깐 쉬자.”
“네? 선배님, 아직 두 번 더 남은-.”
“아, 좀 쉬자고.”
“···넵.”
잠시 연습을 멈출 때마다 박영제의 머릿속엔 혜진이 떠올랐다
걔는 대체 왜 날 손절한 거지? 소속사에서 시킨 건가? 그렇다면 소속사는 왜? 무슨 정보라도 있나? 그냥 단순히 몸 사리는 건가? 아니면 내가 기억 못하는 내 과거에 대해서 듣기라도 한 건가?
이젠 박영제 본인도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경연 촬영 날까지, 박영제는 안 그래도 열받고 혼란스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 옆에서는 군자가 손절을 당했냐느니 어쨌냐느니 하며 소금을 뿌리니, 박영제의 속이 뒤집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막상 군자를 보니 한 가지만큼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렇게 뺀질뺀질 까부는 놈이 어떻게 학폭 피해자가 될 수 있는데?
이 새끼는 학폭 피해자 같은 게 아니다. 중고등학교 때 장난 좀 쳤다고, 거기에 앙심을 품고 오히려 나를 묻으려는 쪼다 같은 새끼지.
“자, 이제 세 번째 차례죠? 박영제 씨,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참가자 숫자가 적다 보니 금방 박영제의 차례가 돌아왔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연습은 나름 열심히 한 박영제였다.
이미 쪽은 팔릴 대로 팔렸다. 이제는 박영제도 명예를 되찾고 싶었다.
지잉, 자가자가장—.
편곡도 가장 자신있는 스타일을 살렸다. 일렉 기타 사운드를 기반으로 90년대 락발라드 풍을 가미하여, 경연에서 유리한 시원시원한 고음을 잔뜩 넣은.
고음과 바이브레이션의 연속, 아이돌 무대라고 하기엔 조금 올드했지만 경연엔 이만한 편곡도 없다. 새로운 파트너 하연진도 다른 건 몰라도 고음 하나는 쩌렁쩌렁 잘 질렀으니까.
“흐어어어어—.”
“끼야아아아—.”
그렇게 고음 차력쇼를 하듯 힘겹게 무대를 끝낸 박영제였다. 120% 만족스런 무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나 많은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이 정도면 급조한 것 치고는 나름대로 퀄리티 있는 무대였다.
이제 네 번째 무대는 7IN – 영의정 조합 차례였다.
첫 번째 무대인 [유교우먼>은 충격적으로 좋았지만, 두 번째 무대는 절대로 그만한 퀄리티가 나올 수 없을 것이다. 박영제는 확신하고 있었다.
첫 무대야 연말 시상식 준비하는 느낌으로 한 달 내내 연습할 수 있었겠지만, 이번 무대는 준비기간이라고 해 봐야 고작 2주 아닌가. 게다가 콜라보 파트너는 제주도에 사는 영의정이다.
연습을 하면 얼마나 했겠어?
그러나 7IN – 영의정의 무대가 시작한 순간부터 박영제의 확신은 천천히 무너져 갔다.
어두운 무대 위,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비브라폰(실로폰과 비슷한, 매우 청아한 소리를 내는 멜로디 타악기) 소리가 메인 멜로디를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도옹, 대애앵-.
청아하고 깔끔한 비브라폰 소리는 시작부터 관객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한 루프(두 마디)의 비브라폰 연주가 끝나자, 비브라폰 소리는 곧 8비트 게임 느낌의 미디 사운드로 변하여 곡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몽환의 터널을 지나 게임 속 세상으로 빠져드는 듯한 곡의 전개.
게임 사운드 샘플을 기반으로 한 비트가 완전히 펼쳐지자, 근미래 FPS 게임 속에 등장할 법한 테크웨어를 입은 멤버들이 튀어나와 후렴을 부르기 시작했다.
I Got 10 New Virtues,
I Got 10 New Virtues.
Imma 예의 바른 Persons,
아마 이것이 우리의 법률.
8비트 사운드 샘플을 사용하여 익살스러운 느낌이 가미되었지만, 탄탄한 베이스라인과 중독성 있는 멜로디가 곡의 분위기를 잡아 주었다. 무엇보다 중앙에 선 영의정의 존재감이 치트키나 마찬가지였다.
I Got 10 New Virtues,
Not a 10 New BXXches.
Imma 예의 바른 Persons,
아마 그대와 우리는 천륜.
게임을 테마로 했기에, 폴리곤처럼 움직이는 팝핀을 기반으로 후렴 안무를 구성한 7IN – 영의정이었다. 연습기간이 부족했음에도 안무엔 빈틈이 없었다.
멤버들의 안무는 마치 게임 그래픽을 보는 것처럼 정교하게 맞물려 떨어졌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첫 후렴이 끝나자 마자 모든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단숨에 올라간 함성 소리를 비집고 가장 먼저 무대 중앙을 차지한 것은 군자였다.
덕이 없어도 내 공덕이니,
덕이 열개면 십덕 일지니.
물론 아니지 니코 니코니,
덕목을 갖춘 십덕 일지니.
모두가 군자의 무대에 환호했으나 박영제만은 불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일지니’ 가사가 반복될 때마다 군자가 박영제를 쳐다보았으니까.
일지니? 일진이?
왜 가사를 저따위로 쓴 거야?
그러나 박영제의 불편함과는 무관하게, 스튜디오의 열기는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우리는 천개의 덕 가진 천덕꾸러기,
부덕의 꾸러미 너희 굴욕임.
누더기 두벌이 나의 물욕임,
굿거리 장단이 우리 무력임.
쭉쭉 뻗는 발성에 라임을 폭격처럼 때려 박는 군자의 벌스가 끝나자 마자, 이번엔 태웅의 차례가 돌아왔다.
강강약약이 인생의 모토!
강약약강에 선사해 고통!
군자에 이어 태웅의 시선 역시 자꾸 박영제를 스쳤다. 특히 ‘강약약강’이라는 가사를 뱉을 때마다 날아오는 태웅의 성난 시선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저 새끼가···.”
그러나 막상 태웅을 정면으로 쳐다보기는 쉽지 않았다. 테크웨어를 입었음에도 권태웅의 커다란 덩치는 박영제에게 위압감을 주기 충분했으니까.
강강약약이 인생의 모토!
강약약강에 선사해 고통!
강한 놈들 상대론 강하지,
약한 이들 앞에선 강아지.
강강약약이 인생의 모토!
강약약강에 선사해 고통!
빡센 놈들 상대론 빡세지.
마치 골프왕 여제 박세리.
강약약강은 없으니 국물,
강약약강은 패는게 국룰!
아이돌 가사라고 하기엔 약간은 폭력적이었으나 권태웅은 연연하지 않았다. 언제나처럼 권태웅은 하고 싶은 말을 가사에 그냥 직설적으로 적었다.
무대 위에선 모두를 바라보아야 하지만 유독 박영제에게 시선을 자주 꽂았다. 나중엔 아예 시선을 피하는 박영제였지만, 그럼에도 권태웅은 박영제의 뒷통수가 뚫어질 듯 그를 바라보았다.
강약약강은 없으니 눈물,
강약약강은 패는 불문율!
못하는 건 용서가 돼도 열심히 안 하는 건 못 참는다.
약한 사람들은 지켜주어야 하지만 강약약강은 못 참겠다.
어벤져스를 17번이나 돌려 본 권태웅의 으리으리함은 박영제의 야비함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자체로 하나의 폭행 같던 권태웅의 벌스가 끝나고 다시 후렴구가 시작됐다.
I Got 10 New Virtues,
I Got 10 New Virtues.
Imma 예의 바른 Persons,
아마 이것이 우리의 법률.
두 번째 후렴구가 끝난 뒤, 비트는 시나브로 잦아들며 다시 무대가 어두워졌다.
끼리리릭, 대애앵-.
태엽 감는 소리, 비브라폰 소리와 함께 연주자의 머리 위로 핀 조명이 떨어졌다. 청아한 비브라폰 연주는 나우리의 솜씨였다.
이젠 ‘영의정 남편’으로 익숙했지만, 원래는 수십 가지의 악기를 다루는 유능한 뮤지션인 나우리였다.
도옹, 대앵, 대애앵-.
유려한 비브라폰 독주와 함께, 7IN과 영의정이 마치 태엽을 감은 장난감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주가 멈춘 순간엔 건전지가 다한 것처럼 동작을 멈추고, 다시 연주가 시작되면 생명을 부여받은 폴리곤 덩어리처럼 움직였다.
어느새, 연주자 나우리의 손은 비브라폰에서 더 다양한 소리를 표현해 낼 수 잇는 전자 마림바 쪽으로 옮겨갔다. 즉석으로 만들어 내는 전자음과 함께하는 댄스 브레이크 파트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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