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15)
#115
고마워
기자회견장에서 터진 핵폭발은 수많은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모든 폭발은 박영제와 그의 소속사 네이션스의 머리 위에서 터졌다.
아이돌 – 아이돌 간 학폭 문제도 초유의 사태인데, 거기에 이성 문제까지 터지니 이제 박영제의 아이돌 인생은 끝난 것 같아 보였다.
다스패치는 계속해서 독점 기사를 쏟아내며 박영제의 이면에 대해 보도했다. 마치 박영제의 나락행을 기다렸다는 듯. 대부분은 매니저인 홍현석도 몰랐던 일이었기에 소속사인 네이션스 입장에서도 미칠 노릇이었다.
“이건 또 뭐야? 박영제, 상습 마약투약 전 아이돌 JB와 밀회? 너 뽕쟁이랑도 만났냐?”
“아, 아니에요! 쟤랑은 그냥 산책하다가 우연히 만난 게 끝이라고요!”
“이제 내가 너 말을 못 믿겠다, 진짜 어떡하냐 영제야아.”
“어떻게 좀 해 봐요. 무슨 대처라도 해야 될 거 아니에요.”
“대처? 무슨 대처를 해? 맞고소라도 할까? 상대 측에서 저렇게 명확한 증거를 들고 나왔는데?”
“···.”
“애초에 너 말만 믿은 우리가 등신이었지, 어휴.”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일단 기다려 봐.”
모든 정황과 증거들이 박영제의 유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나 네이션스 측은 아직 박영제를 버리지 않았다.
벌써 수많은 팬들이 이탈했지만, 아직 박영제를 지지하는 세력도 분명히 있었으니까. 그들이 있는 한, 박영제의 상품 가치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판단이었다.
“이렇게 된 거, 모든 사람들을 다 설득시킬 수는 없어.”
지금이라도 결백한 척 하자. 물론 대부분은 믿지 않겠지만, 남은 팬덤이라도 지킨다면 성공일 터. 네이션스와 박영제의 선택은 또 한번의 거짓말이었다.
다음 날, 박영제는 사과문을 올리는 대신 라이브 방송을 켰다. 라이브 방송은 억울함을 성토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학폭 가해자가 아닙니다. 성희롱을 한 적도 없습니다. 녹취록은 조작된 증거입니다. 팬 여러분, 저를 믿어 주세요.
틈틈이 연기 아카데미를 다니며 익힌 눈물연기까지 버무렸다. 채팅창에 난입하여 깽판을 치는 어그로 덕분에 중간중간 감정선이 끊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꽤나 많은 팬들이 아직 박영제를 지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됐어, 이제 시간이 다 해결해 줄거야.”
그러나 솔라시스템과 서은우 팀장은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역시 예상대로 별 근거도 없이 눈물에 호소하는군요.”
“팀장님, 사람들이 저 말을 믿을까요?”
“대부분은 아니겠죠. 하지만 이 상황에도 박영제를 믿고 싶은 팬들이라면 다를 겁니다.”
“팬들의 믿음을 이용하기로 한 거네요?”
“그래 보입니다.”
“···진짜 끝까지 추하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예상했던 반응인 만큼, 대비책도 준비해 두었으니까요.”
제시한 증거들이 모두 조작된 것이라는 무지성 주장은 이미 예측했던 바.
머지않아 솔라시스템 측에서 2차 증거를 제시했다.
추가 녹취록, 디지털 포렌식 결과, 거기에 제보자들의 동의를 받아 녹음된 음성 녹취록까지. 1차로 공개된 증거들보다 훨씬 더 신빙성 있는 자료들이었다.
아무리 맹목적인 팬이라 해도, 정도를 넘어서는 순간은 돌아서게 돼 있다.
2차 증거 공개 이후 붕괴되는 박영제의 팬덤이 그를 증명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계약 상의 문제까지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다.
박영제를 모델로 삼고 있던 몇몇 광고주들이 일제히 손해배상을 청구해 왔다. 박영제의 두문불출로 피해를 입은 프로그램 제작사 측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이제 소속사 네이션스 측에서도 이 손해를 오롯이 감내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항 위반으로 인한 계약 파기, 거기에 소속사가 입은 금전적 손실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까지. 매일 박영제의 앞으로 여덟 자리, 혹은 아홉 자리 숫자가 적힌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지난 3년 간, 박영제가 이루어 놓았던 모든 것이 고작 사흘 만에 무너져 내렸다.
오디션을 통해 함께 데뷔한 동료들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
이제는 답이 없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난다 한들, 박영제가 다시 연예계에 발을 붙이기는 어려워 보였다. 연예인은커녕, 지금까지 번 돈을 모조리 빼앗기고 스무 살의 나이에 빚쟁이 성범죄자가 되기 직전인 박영제였다.
* * *
세상이 온통 논란으로 뒤숭숭한 와중에도, 7IN – 영의정 조합은 [노래해 듀오> 마지막 회차 촬영에 참여하여 결승전 경연을 마쳤다.
결승곡은 7IN 멤버들이 영의정의 제주도 집에 놀러 간 날을 생각하며 만든 어쿠스틱 풍의 노래 [심산유곡>.
그 와중에 박영제의 파트너였던 하연진은 끝까지 하차하지 않고 새로운 파트너를 직접 섭외하여 결승전에 참여, ‘영제 없는 영제팀’을 만들어 소소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노래해 듀오> 제작진과 함께한 1차 뒷풀이가 끝난 뒤, 솔라시스템은 따로 장소를 만들었다. 7IN 멤버들과 영의정 – 나우리 내외만을 위한 2차 뒷풀이 시간이었다.“짜안-!”
“수고하셨슴다-.”
초상집 분위기인 네이션스와 달리, 솔라시스템과 7IN에겐 축제의 시간이었다.
안 그래도 화제성, 팬덤 화력 모두 하늘을 찌르는 팀이었는데 여기에 영의정과의 콜라보레이션까지 더해지며 추가적인 인지도까지 야무지게 챙겼다.
발매된 음원 [유교우먼>, [십덕(十德)>, [심산유곡>은 모두 음원차트 1위를 기록했다. 물론 이후엔 천천히 순위가 하강하긴 했지만, TOP 10 진입도 어려웠던 타 경연팀들에 비한다면 압도적인 성적이었다.
경연 후 공개된 유튜브 클립 조회수 역시 타 팀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매 경연마다 보인 참신한 컨셉, 새로운 시도는 7IN의 팬들에게 새로운 덕질 요소를 듬뿍 제공해 주었다.
물론 박영제와 유군자 사이의 논란으로 인해 불편한 순간도 있었지만, 이미 군자는 모든 것을 잊은 듯 홀가분한 표정으로 술잔을 들이켜고 있었다.
“캬아-.”
영의정이 선물로 받아 온 ‘완 소주’의 목넘김이 기가 막혔다. 태웅과 현수는 찰지게 술을 마시는 군자의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다.
“군자야, 맛있냐!”
“그래. 전통 방식으로 증류한 술이라 그런지 아주 달다구리 하구나.”
“아무튼 전통이라면 정신을 못 차려요, 크크.”
“그나저나 군자 의외로 강단 있더라.”
“강단이라? 어째서?”
“아니, 난 또 선비 정신이네 관용이네 하면서 박영제 대충 봐 줄 줄 알았거든.”
지현수의 말에 군자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될 말이지.”
“어우, 목소리 단호한 거 봐.”
“무조건적인 관용이 선비 정신은 아님이야. 오히려 죄를 지은 자에겐 합당한 벌을 내리는 것이 더욱 선비다운 태도다. 그래야 사회의 기강이 바로 서고, 뭇 사람들도 스스로의 행실을 점검할 것 아닌가.”
“또 맞말 대잔치 하는구만.”
“선비 형아는 말투가 좀 병맛이라 그렇지, 막상 하는 말은 다 진리라니까여.”
“존잘러 도덕 쌤이 회춘한 것 같기도 하고···.”
군자가 웃으며 두 번째 잔을 들이켜려던 순간이었다.
콰아앙-.
통째로 대관한 바의 문이 거세게 열리며, 꼬질꼬질한 산발의 남자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하필 비밀경찰 차인혁은 바나나우유를 사 오겠다고 편의점에 간 상태였다. 나머지 인원들은 갑작스러운 산발놈의 등장에 얼어 있었고.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군자는 그의 얼굴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박영제, 저 자가 여긴 어인 일인가.
단숨에 군자의 앞까지 다가온 박영제는 테이블 위에 있던 ‘완 소주’ 병을 잡아들었다. 이미 그의 눈은 반쯤 맛이 가 있는 것 같았다.
“으아아아—!!”
완 소주 병은 군자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박영제의 손동작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이, 이런 미친!”
뒤늦게 태웅이 움직여 봤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완 소주 병은 그대로 군자의 머리를 강타할 것 같았다.
그러나.
스으윽-.
유연하게 움직인 군자의 왼손이 박영제의 오른손을 가볍게 저지했다.
그대로 손목을 잡아챈 뒤, 반대 손으로 완 소주 병을 빼앗아 다시 테이블 위에 고이 올려 두었다.
“전통 방식으로 증류한 술이다.”
“!”
“한 방울도 낭비하고 싶지 않구나. 나는 오늘 밤 이 술과 함께 불금을 달릴 것이니.”
“이, 이 새끼가···.”
박영제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두 눈은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었으며, 스트레스로 인한 피부 트러블이 두 팔을 뒤덮었다.
이성적인 판단 능력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게다가 박영제를 관리하고 감독할 홍현석 실장은 그를 철저히 방치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유군자에게 해코지를 하겠다. 박영제의 머릿속엔 오로지 그 생각 뿐이었다.
휘익-.
이번엔 박영제의 왼손이 군자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커다란 왼 주먹 속엔 라이터까지 꼭 쥐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박영제의 시도는 군자에게 닿지 못했다.
파앗-!
어째 주먹질까지 어설프구나.
숙부 유형원의 호위무사 무리와 겨루어도 결코 밀리지 않았던 군자였다. 유형원이 군자를 사로잡기 위해선 항상 네 명 이상의 호위무사 편조가 필요했다.
그러니 어쭙잖은 박영제의 주먹이 군자를 건드릴 수 있을 리 없었다.
휘익, 휘이익-.
두어 번의 어설픈 왼손을 피한 뒤, 군자는 잡고 있던 박영제의 오른손목을 휙 던져버리며 중심을 무너뜨렸다.
그 다음은 발을 스윽 뻗어 박영제의 오금을 톡 건드렸다.
“으헉-.”
중심이 무너진 박영제가 추한 꼴로 고꾸라지자, 뒤늦게 달려온 권태웅과 차인혁이 박영제의 몸을 단단히 구속했다.
“이 씨바아아알—!!”
이성을 잃은 박영제가 욕설을 내뱉으며 군자를 노려보았다. 이용중 실장이 나서서 그를 처리하려 했지만, 군자가 이를 저지하며 박영제의 앞에 섰다.
“어쩌자고 이러는 건가.”
“너, 너 이 새끼··· 지금까지 잘만 살았으면서···.”
“흐음.”
“지금까지 잘 쳐 지냈으면서 왜 이제 와서—!!”
“억울한가 보구나.”
“!”
“분명 가해자는 너고, 나는 도리어 피해를 받은 쪽인데. 창창하던 연예인으로서의 삶이 방해받은 것이 어지간히 불만인 모양이지.”
“···!”
“남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자가 가지는 불만이라기엔 지나치게 뻔뻔한 것 아닌가.”
“지금 내 인생이 어떻게 조져졌는지 네가 알아? 계약은 모조리 파기당하고, 위약금은···.”
“그래서?”
“뭐?”
“그래서 나한테 어쩌라는 거지? 내가 계약을 파기했나? 내가 괴롭혀 달라고 부탁했나? 내가 여성들을 성희롱하라고 시켰나? 아, 이제는 폭행까지 추가되겠구나.”
“!”
“모든 건 다 네 선택에 따른 행동이었지. 그렇다면 행동에 따른 책임도 스스로 지거라. 그게 선비 다운 태도다.”
“이 개새끼야, 난 선비 같은 거 관심 없다고!”
박영제가 악다구니를 쓴 순간, 마침 서은우 팀장의 신고로 달려온 경찰이 박영제를 연행해 갔다. 손목에 수갑을 찬 채 멀어지는 박영제를 보며, 군자가 후련하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역시, 선비 문화에 관심이 없는 자는 포졸이 잡아 가는구나.”
“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수갑을 차고 경찰차를 타는 박영제의 모습을 보니, 군자는 어쩐지 빚이라도 갚은 느낌이었다.
그가 당한 것에 비하면 아직 한참 부족할지 모르나, 부디 이것으로 조금의 원한이라도 푸실 수 있기를.
군자가 그렇게 생각한 순간이었다.
···우우웅···.
모처럼 상태창이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메시지의 형태가 지금까지와는 조금 달랐다.
[···.] [···고마워···.]“!”
현대에 온 뒤로는 언제나 딱딱한 메시지만을 출력했던 상태창이, 군자에게 직접 말을 걸어 온 거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