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20)
#120
지금까지 이런 PT는 없었다
문화재청 홍보 컨텐츠 제작의 결정권자들은 오전부터 번거로움 가득한 표정이었다.
“공 주무관, 오늘 경쟁PT 참가 팀이 하나 늘었던데?”
“아, 그게···.”
“아니 왜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하고 그래? 영상 제작 하루이틀 하는 것도 아니면서.”
“아···.”
“솔직히 우리 모두 다 알잖아, 어떤 결과가 나올지. 괜히 새 업체 입찰시키면, 그분들만 헛고생 시키는 거 아니겠어?”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모르긴 뭘 몰라, 우리도 입찰 지원서류 다 확인해 봤구만. 칠린픽쳐스? 업력이 1년도 안 되는 팀이던데?”
“그건 그렇긴 한데-.”
“국가기관이랑 협업해 본 경험도 없는 친구들이, 우리랑 일 잘 할 수 있겠어? 게다가 포트폴리오도 없고. 공 주무관이 왜 이 업체를 좋게 봤는지 모르겠네.”
“이, 일단 한번 PT라도 봐 주시면.”
“봐야지. 경쟁PT 참여 업체니까 보긴 볼 건데, 앞으로는 일을 이렇게 하지 말라는 거지. 우리한테 가장 중요한 게 뭐야? 안정성이야 안정성. 문화재청이 무슨 어그로 끄는 유튜버 집단도 아니잖아. 안정적으로 깔끔하게 홍보영상 뽑아 줄 업체 선정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네에···.”
아침부터 공유민에게 잔소리를 퍼부은 결정권자들은, 중앙 강당에서도 불편한 기색이었다.
“아이 참, 이런 건 그냥 빨리빨리 끝내야 되는데.”
예정에 없던 번거로운 일 하나가 늘었지만, 그렇다고 대충 보고 넘길 수는 없었다. 그래도 경쟁PT까지 참가한 팀인데, 어떤 내용을 발표하는지 들어는 봐야 했으니까.
“뭐 마음에 들 것 같지는 않지만···.”
“누가 아니랍니까.”
이윽고 공유민 주무관의 진행으로 경쟁 프레젠테이션이 시작됐다. 첫 번째로 올라온 팀은 석영필름. 전부터 문화재청, 선거관리위원회 등 몇 개의 국가기관과 협업한 경력이 있는 제작사였다.
경쟁PT는 지루하고 진부했다. 그러나 결정권자들에게는 ‘기존에 협업한 적이 있다’는 내용이 중요했다.
“잘 봤습니다. 석영필름은 기존에 문화재청과 작업을 해 본 적이 있네요?”
“네. 고려청자 홍보영상 제작 당시에 영상 두 개를 함께 제작한 바 있습니다.”
“좋아요. 우리가 어떤 톤을 원하는지 잘 알고 계시겠네.”
“하하, 물론입니다.”
이어서 올라온 제작사 영광기획, BB필름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 문화재청과 함께 작은 프로젝트 하나라도 진행해 본 경험이 있었고, 그 연을 통해 경쟁PT에 참여한 업체들이었다.
결정권자들의 마음은 그 중에서도 석영필름 쪽으로 향해 있었다.
천편일률적인 홍보영상만 제작하는 회사라지만, 일단 업력이 10년을 넘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석영필름의 대표, 주석영은 결정권자 중 한 사람인 주창수 사무관과 본관이 같았으니 먼 친척 뻘이었고.
“주 사무관님, 지금까지 어떻게 보셨습니까.”
“저야 뭐··· 석영필름한테 주고 싶지요.”
“하하, 역시 팔은 안으로 굽나 봅니다.”
“에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꼭 제가 청탁이라도 받은 것 같잖습니까~”
우스갯소리를 주고받는 와중, 마지막 팀인 칠린픽쳐스의 경쟁 PT가 시작됐다.
붓글씨로 쓴 듯한 프레젠테이션의 첫 번째 페이지가 떠오르자 마자, 강당이 반쯤 어두워지며 무대에 조명이 집중됐다.
“어? 뭐야?”
“공 주무관, 이게 무슨···.”
이어서 감청색 도포를 입은 훤칠한 남자 한 명이 쥘부채를 손에 든 채 홀연히 나타났다.
아마도 프레젠테이션의 발표자로 보이는 그는, 결정권자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등을 지고 있었다.
발표자가 등을 지다니, 이건 또 뭔 개수작이야?
그러나 세 명의 결정권자가 입을 채 열기도 전에, 발표자의 낭창한 목소리가 강당 위에 쩌렁쩌렁 울려퍼졌다.
옛날 옛적에, 그러니까 옛보다 훨씬 더 오랜 옛적에-.
발표자의 목소리가 강당을 채우자 마자 그 안의 모든 이들이 일순 압도당하고 말았다.
“파, 판소리?”
발표자가 내뱉은 첫 마디는 여지 없이 판소리의 ‘아니리’였다. 어설픈 흉내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문화재청 공무원이니, 우리 문화에 대해서는 나름의 조예가 있는 세 사람이었다.
거대한 바위를 오랜 시간 동안 깎아 만든 듯한 목소리. 폭포를 뚫고 지나갈 듯 쭉쭉 뻗는 발성. 능청스럽고 호쾌한 저 소리꾼의 태도와 몸짓.
판소리 깨나 봐 온 결정권자들이었으나, 발표자는 단번에 그들의 이목을 사로잡아 버렸다.
이윽고 발표자가 몸을 홱 돌리며 쥘부채를 파앗 하고 펼쳐 보였다. 단정한 갓 아래의 새하얗고 우아한 용모가 무대 위에 빛을 뿌리는 듯 했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남녀노소 누구든 능히 심장을 뛰게 만들 만큼 아름다운 자태였다.
저렇게 아름답게 생긴 판소리꾼도 있었나?
감탄하는 사이 프레젠테이션의 페이지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화면에 떠오른 것은 토함산의 전경을 그린 산수화.
산수화는 마치 카메라의 줌을 당긴 듯 확대되며, 곧 그 안의 아름다운 사찰인 불국사와 석가탑의 모습이 드러났다. 모든 풍경은 사진 대신 붓으로 그린 동양화로 표현되어 있었다.
저어기 남녘, 경주 토함산 자락에 부처님을 모실 절을 짓기로 허였는데-.
소리꾼의 낭창한 목소리는 불국사의 두 탑, 다보탑과 석가탑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10원짜리 동전의 그림으로도 유명한 다보탑은 우리나라 사찰의 탑 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프레젠테이션에 떠오른 그림은 그 다보탑이 아닌 단아하고 단정한 석가탑이었다.
그 중에서도 무영(無影)의 석가(釋迦)탑 만한 것이 없어, 오랜 동안 후대인들의 칭송을 받지 않았더냐-.
결정권자들은 칠린픽쳐스의 의도를 단번에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친구들은 석가탑을 주제로 영상을 만들 생각이군.
발표자가 소리를 내뱉은 순간부터. 아니, 어쩌면 그의 떡 벌어진 등을 본 순간부터 결정권자들은 무대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똑같은 인삿말, 진부한 자기소개로 시작한 타 제작사와의 발표와는 달리 칠린픽쳐스는 시작부터 본론을 던졌다. 그것도 문화재청 공무원들에게 꽤나 익숙한 방식을 통해서.
구성지고 능수능란한 발표자의 목소리는, 50대로 이루어진 결정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렸다. 심지어 이미 마음의 결정을 7할쯤 내린 주창수 사무관까지도.
“이거, 발표가 아니라 꼭 [불후의 띵곡> 무대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그러나 발표자는 잡담할 여유도 주지 않았다. 그 한층 더 감정 실린 목소리로, 좌중을 압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석가탑에 얽힌 전설, 아사달과 아사녀의 가슴 미어지는 이야기-.
파밧-!
발표자는 돌연 펼쳐 들고 있던 부채를 접곤, 그것으로 강당 안의 사람들을 호쾌하게 가리켰다.
너도 알고, 너도 알고, 우리 모오오두 안다지만!
힘있게 말을 맺는 순간, 프레젠테이션에 있던 석가탑은 마치 아지랑이처럼 흐물거리며 사라져 버렸다.
이 땅의 젊은이들에겐, 그 별명인 무영(無影)처럼 희끄무레한 이야기가 되었으니-.
파아아앗-!
다시 한번 펼친 쥘부채로 가볍게 부채질을 하며, 발표자는 좌중을 향해 웃어 보였다.
그 아름답고도 슬픈 석공(石工)의 이야기를,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들려 준다면 어떻겠느냐-.
발표자가 말을 맺자 마자, 이번엔 멀리서부터 목탁 소리가 들려옴과 동시에 프레젠테이션 화면에 커다란 달이 떠올랐다.
정갈한 목탁 소리를 베이스 삼아, 거기에 얹히는 국악기의 멜로디는 전통가요 [신라의 달밤>을 땄다.
50대 아재들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는 조합이었다.
“···신라의 달밤이네요.”
“어제 노래방에서 불렀는데.”
지금까지는 말하듯 내뱉는 ‘아니리’로 좌중을 제압했던 발표자가 이번엔 훨씬 더 구성진 창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신라의 달밤>을 레퍼런스로 한 국악기 멜로디 위에, 석가탑에 얽힌 아사달과 아사녀 전설을 주제로 한 판소리.그의 말처럼 모두가 알고 있는 전설이었으나, 그것을 판소리로 들으니 느낌이 또 완전히 달랐다.
2분 남짓한 판소리가 끝나자, 결정권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벌써 끝인가?”
“허어-.”
노래를 마치고 난 뒤에야, 발표자는 갓을 벗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결정권자들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제작사 칠린픽쳐스의 유군자이옵니다.”
이어서 제작사 소개와 구성원 소개가 이어졌다.
그냥 늘어놓았다면 분명 아무도 듣지 않았을 테지만, 이미 앞선 무대에 마음을 빼앗긴 결정권자들의 집중력은 최상이었다.
“아니 그러니까, 현역 아이돌로 구성된 영상 제작사라 이겁니까?”
“예, 그러합니다.”
“잠깐, 잠깐만. 팀 이름이 칠린이라고 했었나요?”
“예.”
“나 알 것 같은데? 우리 승희가 참 좋아하는 그룹인데.”
“나도 기억이 납니다. 우리 집사람이 이야기하는 걸 들은 적 있는 것 같아요.”
“유명한 분들이었군요.”
“하하, 아닙니다.”
“이런 유명한 분들이 우리 영상을 맡아 준다면, 우리한테도 당연히 좋은 일이겠네요!”
결정권자들의 태도는 지극히 호의적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수장인 주창수 사무관은, 아직 무언가가 마음에 걸린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
“이런 유명한 아이돌 그룹이, 어째서 문화재청 홍보 컨텐츠 같은 걸 만들려고 하는지. 그 부분이 궁금하네요. 분명 다른 좋은 기회가 있을 텐데.”
주창수 사무관의 의심 섞인 질문에 군자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문화재청과 저희가 상부상조(相扶相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재청은 파급력 높은 홍보영상을 만들 수 있어서 좋고, 또 저희는 그 과정을 리얼리티 예능으로 만들 수 있어서 좋을 것입니다.”
“···흐음, 알겠습니다.”
그렇게 칠린픽쳐스의 프레젠테이션과 질의응답 시간까지 끝나고, 세 명의 결정권자들은 최종 선발을 위한 회의를 시작했다.
사실 칠린픽쳐스의 발표가 끝난 뒤부터, 모든 결정권자들의 마음은 이미 기울어 있었다.
“공유민 주무관이 왜 그런 무리수를 뒀는지 알 것 같네요.”
“솔직히, 이 경쟁PT에 그 정도로 준비를 열심히 해 온 걸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예. 젊은 친구들이 참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 과정을 리얼리티 예능으로 만들어서 내보낸다는 건···.”
“아, 저도 그 부분이 조금 걸리긴 합니다. 어쨌거나 국가기관과 함께 일하는 과정을 부가컨텐츠로 만들겠다는 뜻이니까요.”
“뭐, 괜찮지 않겠습니까? 보안구역에서 촬영을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하지만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일을 벌여 본 사례가 없으니···.”
“그것도 맞는 말이지요.”
“흐음-.”
“주 사무관님,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저희는 주 사무관님 의견 따르겠습니다.”
나머지 결정권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
한참 고민하던 주창수 사무관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