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22)
#122
뜻밖의 외출
경주 숙소에서 보낸 어젯 밤, 군자는 도저히 잠이 들 수 없었다.
“···구, 군자 형··· 미션 임파서블 좋아해요···?”
“미선 임파서불이라?”
유찬의 제안으로 무심코 보기 시작한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순식간에 군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퍼엉, 콰아아아앙—.
조선시대에선 결코 볼 수 없었던 현란한 폭발.
필요에 따라선 자동차고 탱크고 건물이고 뭐고 그냥 빵빵 터뜨려 버리는 시원시원한 액션은, 점잖게 살아온 군자에게 엄청난 대리만족감을 선사했다.
시리즈의 1편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군자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유찬을 보며 말했다.
“이, 이것이 무엇이라고?”
“···미, 미션 임파서블··· 액션 영화예요···.”
“그렇구나!”
“···괘, 괜찮았어요···?”
“내 부귀영화엔 관심이 없어도, 액션영화에는 관심이 가는구나!”
“···라, 라임 짱···.”
한번 몰입하기 시작하니 시간은 화살처럼 흘렀다.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는 후속작도 참 많았다. 2편, 3편···.
후속작을 이어 보는 사이 유찬은 소로록 잠이 들었으나, 군자의 두 눈은 여전히 초롱초롱했다.
“탐구루주(探究樓主) 형님!”
특히 그의 마음을 빼앗은 것은 시리즈의 주인공인 배우 탐 크루즈였다.
아니,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무모할 수 있단 말인가.
군자 역시 가출을 위해 수시로 담장을 넘고, 저잣거리에서 광대들과 줄을 탄 바 있지만 탐구루주는 수준이 달랐다.
마치 목숨을 내놓은 듯한 그 죽음의 기예에 군자는 그만 감동하고 말았다.
“저 형님은 대체 목숨이 몇 개란 말인가.”
밤을 새워 시리즈를 모두 보았지만 군자의 흥분은 식지 않았다. 이른 아침부터 태웅과 현재를 붙잡고 어제 본 영화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태웅아, 현재야, 너희도 탐구루주 형님을 아느냐.”
“탐구루주? 탐 크루즈 말하는 거예여?”
“맞네. 쟤 어제 유찬이랑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보는 것 같더라.”
“아항. 그거 재밌지.”
“탐구루주 형님은 대체 뭐 하는 분이시더냐.”
“그 형? 매버릭이잖아.”
“매벌익(魅罰益, 도깨비처럼 무섭게 형벌을 더함)? 그것이 벼슬 이름인가?”
“어, 탑건 보니까 매버릭이 완전 벼슬이던데.”
“과연, 관직에 계신 분이었구나. 그나저나 탑건(塔建, 탑을 세우다)이라니. 그 분께서 탑도 만드셨나? 석가탑 같은?”
“TOP을 만드셨다기보단··· 그 분 자체가 TOP이시지.”
“오오, 과연 훌륭한 분이로다.”
“그치, 대단한 형이야.”
“흐음, 분명 다른 얘기 하는 것 같은데 희한하게 대화가 이어지넹?”
그렇게 머릿속이 탐구루주로 가득차 버렸으니, 아사달 설화를 각색하면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사녀가 연못을 보며 기도를 올린 이유가 무엇이더냐. 그 옆을 지나던 스님이 ‘연못에 기도를 올리면 석가탑의 그림자가 떠오를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었지?”
“그랬지. 근데 그게 왜?”
“허나 결과가 어떠했느냐. 그림자는 코빼기도 안 비추었고, 덕분에 석가탑은 무영탑(無影塔)이라는 별명만 얻었지 않느냐.”
“···마, 맞아요. 그래서 무영탑이라고···.”
“내 보기엔 그 스님이 첩자임이 틀림없다.”
“?”
“임무를 망치기 위해 가짜 정보를 흘렸음이야.”
“···누가 우리 군자 좀 미션 임파서블에서 꺼내 줘 봐.”
태웅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현재와 현수는 군자의 각색에 꽤나 흥미를 느낀 것 같았다.
“재미있긴 한데, 스님이 왜 굳이 그런 가짜 정보를 흘렸을까여? 뭘 위해서?”
“흐음···.”
잠시 고민하던 군자가 이내 답을 내놓았다.
“어쩌면 그 스님이 아사녀의 연적이었을지도 모르지.”
“푸하핫, 스님이 아사달을 사랑해서 아사녀한테 엿을 먹인 거라고여? 그럼 삼각관계넹.”
“···가, 갑자기 마, 막장 드라마···.”
“그럼 스님이 사실은 남자 승려가 아니라 비구니였다?”
“어허, 태웅아. 편견을 버리거라.”
“아··· 뭐 그래. 성별이야 그렇다 치고, 하지만 스님이잖아.”
“그렇지.”
“스님이 막 사랑을 해도 되는 건가? 스님은 원래 연애 못 하게 돼 있지 않냐.”
“훗, 그래서 불국사도 못 들어가고 그 근처를 배회하던 것 아니겠느냐.”
“허어, 심지어 파계승이었던 거야?”
“그러다가 아사녀를 만나 거짓 정보를 흘렸고.”
“열받게 앞뒤가 맞넹.”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그 스님은 첩자가 분명하다.”
처음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짓던 멤버들도 어느새 군자의 뇌절에 빠져들고 있었다.
“좋아, 뭐 그럴 수 있다 쳐. 그럼 각색은 어떻게 할 거야?”
“탐구루주 형님의 원칙에 따르면 첩자는 제거해야 하나, 그래도 불당 앞이니 살생은 금해야겠지.”
“휴, 그래. 잘 생각했다.”
“대신 첩자를 따돌리고 불국사 안으로 잠입한다.”
“그 다음은?”
“저 높은 담을 훌쩍 넘은 뒤, 금줄(禁-)을 밟고 뛰어올라 휘영청 밝은 보름달에 아사녀의 그림자를 떠오르게 하는 거다.”
“그 그림자를 아사달이 볼 수 있도록?”
“그래.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탐구루주 형님의 방식이 아니지.”
“아하핫, 그림은 예쁘게 나오겠는데~”
“···어, 어째··· 상당히 진보적인 설화가···.”
“근데 난 맘에 드는데여. 맘에 안 들던 부분이 쏙쏙 바뀌어서 좋음여.”
처음엔 각색에 다소 부정적이었던 태웅도 이제는 태도가 달라져 있었다.
“나도 좋아! 아사녀 액션씬은 내가 할 거다!”
“그럼 여장 해야 되는데 괜찮겠냐?”
“여장이 어때서? 난 괜찮은데?”
“아니, 팬들 눈이 괜찮겠냐고.”
“앗.”
“너 수염 레이저 제모 또 안 갔지?”
“아니 얘는 잔소리 할라고 아이돌 됐나 봐 진짜.”
“아이돌 턱이 왜 푸르스름한데? 니가 짱구 아빠야?”
태웅과 현수는 여장 문제를 가지고 투닥거리고 있었으나, 사실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 그런데 형들···.”
“응, 유찬아.”
“···그, 각색을 이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음? 그게 무슨 뜻이야?”
“···부, 불교 분들이 화 내시면···.”
“아하.”
“그럴 수 있지.”
“하긴, 저작권은 없다지만 불교 문화재에 관련된 설화니까.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긴 해.”
유찬의 문제 제기에 분위기가 살짝 가라앉았다. 분위기를 가라앉힌 것이 미안하다는 듯, 유찬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해요···.”
“아냐, 미안하긴 무슨.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였어.”
“아하핫, 그럼 어떡하지~”
“그러게여.”
짧은 침묵을 깬 건 인혁이었다.
“직접 여쭤보자.”
“에? 직접?”
“불국사가 바로 옆에 있으니까.”
“아하···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바로 다음 날, 멤버들은 다시 불국사를 찾았다. 이번엔 사찰을 보기 위해서가 아닌, 높으신 스님을 만나기 위해.
“번뇌가 있다 하셨지요.”
“예, 스님. 저희가 아사달 아사녀 설화를 각색하여 영상을 만들고 싶은데···.”
멤버들과 동행한 서은우 팀장이 설명을 맡았다.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스님은 껄껄 웃으며 박수를 쳤다.
“허허허, 설화를 각색하다니. 거 참 재미있겠군요.”
“···호, 혹시 기분 나쁘시진···.”
“기분이 나쁘다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설화는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아사달 아사녀 설화 역시 마찬가지지요. 사람에서 사람을 거치며 조금씩 변형되어 왔습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아는 아사달 아사녀 설화의 줄거리도 사실은 많은 변형이 이루어진 것이랍니다.”
“그것이 정말입니까?”
“그럼요. 본래 아사달과 아사녀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남매였다는 설이 더욱 유력합니다. 그러나 후대인들이 두 사람을 부부 사이로 만드니 이야기에 애틋함이 더해졌지요.”
“아하···.”
“이것이 이야기가 살아남는 방식이랍니다. 만약 내가 여기서 설화의 편집을 금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 구전(口傳)의 명맥을 끊어 버리는 일 아니겠습니까.”
“그렇군요.”
“하하, 여러분들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 보세요. 저 역시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자비로운 스님의 말씀을 들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온 칠린픽쳐스 멤버들은 쉴 틈도 없이 영상 제작에 착수했다.
시나리오는 군자의 의견대로 탐 크루즈 스타일을 가미하여 각색하기로 했으니, 이제 다음 단계는 캐스팅이었다.
모든 캐스팅이 중요했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캐스팅은 아사녀 역할이었다.
“아하핫, 약간의 여장이 필요할 것 같은데~”
“오오, 누가 가장 잘 어울리는지 뽑아 보자 이거지?”
“난 자신있어. 오늘 오전에 레이저 제모도 받고 왔다고.”
“형아들, 이건 라방 키고 하는 게 어때여? 팬들도 재미있어 할 것 같은데.”
별다른 예고도 없이 시작된 여장 콘테스트, 팬들은 순식간에 자리를 채웠다.
[ㅋㅋㅋㅋㅋ갑자기 여장콘테스트?ㅋㅋㅋㅋㅋ] [수련회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는 변장하고 불국사 가더니 오늘은 여장이야?] [누가 얘네 개연성 좀 찾아줰ㅋㅋㅋㅋㅋㅋㅋ] [그와중에 애들 메이크업 왜케잘먹음] [다들 피부가 넘 좋아서그래ㅠㅠㅠㅠㅠ] [유찬이는 진짜 나보다 예쁜듯;;]팬들의 투표에 따라, 가장 끔찍한 여장부터 한 명씩 탈락하는 룰.
의외로 꼴찌를 차지한 것은 권태웅이 아니었다.
“자아, 꼴찌는··· 이런, 안타깝습니당. 차인혁~”
“푸하학-.”
나름 예쁘게 화장도 하고 가발도 써 봤지만, 인혁의 태산 같은 체격은 애초에 여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에···.”
“이 형아 은근 욕심 있었나 보넹.”
꼴등에 시무룩해진 인혁이 7위 자리에 앉은 뒤, 바로 다음 탈락한 이는 권태웅이었다.
“6등은 권태웅~ 으으, 입술 진짜 싫다~”
“야 하현재, 넌 오버립도 모르냐?”
“에이, 누가 오버립을 인중까지 발라여.”
“이거 아니야?”
“어. 넌 그냥 쿼파치 먹다가 케찹 묻은 것 같은데.”
“젠장!”
7IN의 피지컬 2인방이 나란히 하위권을 차지한 뒤부터는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졌다.
“5위는 병약미소녀 지현수! 여리여리한 느낌이 좋은데 너무 아파보인다는 의견이 많았고여. 4위는··· 으윽, 저네여. 3등은 하고 싶었는뎅···.”
“아하핫, 내가 3등이야~”
지현수, 하현재, 현시우가 각각 5, 4, 3위를 차지한 가운데 남은 것은 군자와 유찬 뿐이었다.
최근 용모를 S급까지 끌어올린 군자는 이제 웬만한 여자보다도 아름다운 이목구비를 자랑했다.
가발 하나만 쓰고 별다른 추가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음에도 군자는 이미 미소녀가 되어 있었다.
[와아ㅏㅏㅏㅏ] [뭔뎈ㅋㅋㅋㅋㅋㅋㅋ] [왜이렇게예뻨ㅋㅋㅋㅋ] [와 군자야 다음활동때 장발한번하자젭라] [뭔 머리를 해도 어울리냐ㅠㅠㅠㅠ] [이쁜것도 진자 고급스럽게 이쁘다] [ㅠㅠㅠㅠ유찬이도봐줘ㅠㅠ] [우리갓기 피부 뽀송뽀송 반짝반짝 빛나는것좀보라구!!] [와아ㅏㅏ 이건 우열을 못가리겠다] [난 항복 그냥 둘이다해먹어줘]“아, 결승전은 너무 치열하네여~ 시청자 투표로는 도저히 승부를 못 내겠는데여! 그럼 결승전 결과는 다음 시간에 공개하겠습니당~”
[잠깐만] [이렇게 끝난다거?ㅋㅋㅋㅋ] [여장콘은 왜한건뎈ㅋㅋㅋㅋㅋㅋ] [아니 떡밥만 뿌리지 말고 회수를 좀 해줘퓨ㅠ] [현재야 가지마ㅠㅠㅠㅠㅠㅠㅠ] [여장왜함? 여장왜함? 여장왜함? 여장왜함?]“헤헷, 지금은 많은 걸 말씀드릴 수 없어영. 곧 알게 되실 거예여! 그럼 뿅!”
그렇게 라이브방송을 종료한 뒤, 멤버들은 아사녀 캐스팅을 위한 마지막 회의에 돌입했다.
군자와 유찬을 제외한 멤버들이 회의하는 모습을 보며 군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원래 같았으면 친동생 같은 유찬 앞에서 탐욕을 부리지 않았을 테지만 이 배역에는 욕심이 났다.
침투하고 잠입하는 역할 아니던가. 군자의 가슴 속엔 미션 임파서블의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었다.
“후으음, 둘 다 너무 예쁜뎅.”
“현시우 감독 생각은 어때?”
“아하핫. 어차피 액션 씬은 전부 대역을 써야 되니까, 조금 더 어울리는 사람을···.”
“잠깐만.”
대역이라는 말에, 군자가 현시우의 말허리를 잘랐다.
“아하하핫, 왜~”
“대역을 쓴다라? 어째서?”
“아하하, 그거야 액션은 위험하니까~”
“위험해? 무엇이?”
“담벼락도 넘어야 되고, 중간엔 줄도 타야 되는데~”
“그런 이유에서라면 굳이 대역을 쓸 필요가 없단다.”
“아하하핫, 위험할 텐데~”
“맞아여, 아무리 형이라고 해도 이건 위험함여.”
“그래 군자야. 이런 건 안전하게 가야지.”
현시우 감독을 비롯하여 모두가 군자를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응?”
“직접 보고 판단하는 편이 낫겠지.”
아무래도 직접 보여주는 것이 가장 낫겠구나.
군자는 동료들을 설득하는 대신 신발을 신었다. 손에는 프레젠테이션 때에 사용했던 부채가 들려 있었다.
“오면서 보았는데, 요 앞에 민속놀이마당이 있더구나.”
“어, 나도 보긴 봤는데···.”
“함께 가 보자꾸나.”
“자, 잠깐만! 여장하고 가게!?”
“뭐 어떠냐. 사람들이 우리를 못 알아보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세상에, 이 꼴을 하고 밖을···.”
그렇게, 여장 7인방은 메이크업도 지우지 못한 채 뜻밖의 외출을 떠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