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25)
#125
적임자가 있거늘
현대에 온 뒤로 군자에게 생긴 다양한 취미 중 하나는 ‘종합격투기’를 보는 것이었다.
종합격투기란 씨름판 같이 생긴 팔각의 경기장 위에서 두 선수가 목숨을 불살라 가며 싸우는 투기(鬪技) 종목이다.
주먹, 발, 팔굽, 무릎까지 모든 신체를 이용하여 격렬하게 투쟁하는 이들을 볼 때, 군자 역시 가슴 깊숙한 곳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오호라, 문명화된 현대에도 아직 저런 전사들이 존재하는구나!
그러나 그 전쟁 같은 격투기 경기 중에도, 남자 선수가 낭심을 맞은 순간엔 잠시 시합을 멈추고 휴식할 시간을 준다.
방금 전까지 적장의 머리를 뽑아 올 것 같던 기세의 선수도, 낭심을 강타당한 뒤엔 한없이 다소곳한 자세가 되어 회복에 집중한다는 말이다.
투우우우우우웅—.
가랑이로 밧줄을 받아낼 때마다, 군자는 불의의 습격을 당한 격투기 선수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아프구나, 이거 정말 고통스럽구나!
관객이 열어 놓은 스트리밍 채널에서 이 줄타기를 보고 있던 군자의 팬들도 단체로 멘붕에 빠졌다.
[헉] [;;;;;;] [저거 괜찮은거야?] [줄타기 보면 다 저 기술 쓰긴 하던데] [안돼에에에ㅔㅔㅔㅔ] [저러다 터지면 어떡해!!!!] [미친 못보겟어] [군자야 가랑이 멈춰!!!!!!!!] [OMG OMG STOP STOP] [내 소년의 소중한 중심을 절대 지키십시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자산이다.] [브라질 팬들은 전통 놀이에 반대! 당신의 달걀은 아직 건재합니다!] [ㅋㅋㅋㅋㅋ외국언니들 화난거봐] [아니진짜어떡해ㅠㅠㅠㅠ군자표정ㅋㅋㅋㅇ아 웃긴데 웃을수도없고]사뿐—.
안 되겠다, 이제 이 곳으로 뛰어오르는 것은 무리겠구나!
다시금 두 발로 밧줄 위에 선 군자였으나 통증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아랫배를 엄습하는 고통의 압력에 등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후들거리는 두 다리로는 이제 더 이상 뛰어오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군자는 웃었다.
“호호, 호호홋.”
공연의 5할이 익살이라면 나머지 5할은 임기응변이라.
비록 전에 없던 위기를 맞은 군자였으나, 이 역시 공연의 일부인 듯 부드럽게 넘길 수 있어야 진짜 공연가 아니겠는가.
마치 운명의 장난인 것처럼, 군자는 지금 여장을 하고 있었다.
그런 군자의 소중한 곳에 큰일이 나 버렸다?
이것은 실수나 뜻밖의 통증이 아니다. 변신의 완성이다.
“오호호홋—.”
하이톤의 웃음소리를 내며 군자가 밧줄 위를 사뿐사뿐 걷기 시작했다.
종전 보여주었던 거드름 가득한 사대부의 걸음걸이와는 달랐다. 몸의 선을 한껏 살린 그 걸음걸이는, 마치 군자의 성별이 정말로 바뀐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다.
“우하하하핫—!!”
“꺄하학, 어떡해에—!!”
그 임기응변의 익살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던 관객들마저도 웃음을 터뜨렸다. 군자는 지금 해학으로서 자신의 건재함을 보이고 있었다.
물론 아랫배엔 아직도 통증이 살살 감돌고 있었지만.
미간을 찌푸리는 대신, 군자는 마치 무희처럼 예쁜 미소를 지으며 밧줄 위를 우아하게 거닐었다.
걱정 가득했던 스트리밍 시청자들도 그 모습을 보며 안도할 수 있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앜ㅋㅋㅋ] [ㅠ군자 -> ㅠ군순 변신완료] [아닠ㅋㅋㅋㅋㅋ이거 줄타기 아니고 수술현장이었어?] [ㅠ군자, 경주에서 내면의 여성성 찾은 것으로 알려져···. ‘충격’] [ㅋㅋㅋㅋㅋㅋ우리 ㅠ군자 어뜩하니] [근데 몸 쓰는 방법 확 바꾸는건 소름이다] [진짜 저와중에도 군자 표현력ㅠㅠㅠㅠ] [난 최애 태웅인데 ㅠ군자 춤 진짜 잘추긴해] [맞아 ㅠ군자 표현력 진짜조은듯] [근데 왜 다들 유군자를 ㅠ군자라고 함?] [그러게 ㅇ은 왜 빼는건데] [방금 알 터졌자너]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OMG NOOOOOOO] [한국의 성전환 수술은 허가되어 있습니까? 나는 지금 울고 있다.] [이것은 음모입니다! 한국 정부는 당장 이 음모를 제거해 달라!] [정부가 음모 제거? 요즘은 나라에서 왁싱샵도 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누가 외국언니들한테 상황 설명좀 해줰ㅋㅋㅋㅋㅋ]군자 역시 바뀐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걱정 어린 표정은 사라졌으며, 다시 웃음기가 공연장을 메웠다. 임기응변이 제대로 통한 것이다.
관객들의 표정을 보니 아랫배의 통증 역시 가라앉는 것 같았다.
좋다, 위기는 넘겼으니 이제 더 본격적으로 놀아 보자꾸나.
처억, 처억—.
우아했던 걸음걸이가 다시 호방해졌다. 마치 멋진 여성 모델이 런웨이를 걷듯, 힘이 있는 동시에 선이 살아있는 몸동작.
그렇게 밧줄의 중앙까지 나선 군자가 두 팔을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유교우먼> 무대에서 보여준 적 있었던 걸리쉬 댄스, 왁킹이었다.
파라라락-.
“와아아아아—.”
“예뻐어—!!”
비록 타고난 성별은 남자였으나, 지금 밧줄 위의 군자는 그 타고남에 구애받지 않았다. 낭심의 통증이 오히려 군자에게 영감을 주었다. 유머로 극복한 위기는 어느새 기회가 됐다.
휘리릭, 휘리리릭-.
현란하게 팔을 사용하며 왁킹 안무를 선보이다가, 이번엔 다시 밧줄 위를 겅중겅중 뛰며 전쟁터의 군인처럼 움직였다.
투우우우웅—.
이어지는 것은 두 발로 높게 뛰어올라 뒤로 회전하는 백 덤블링 동작.
“꺄아아악—!!”
여성 관객들 사이에서 비명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으나, 회전한 군자가 새처럼 사뿐하게 밧줄 위에 착지하자 그 비명마저 박수갈채로 변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반응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알 터진 김에 걸리쉬까지 조져버리는 우리 ㅠ군잨ㅋㅋㅋㅋ] [군순이 춤선봐ㅠㅠㅠ잔망쩔어] [진짜 독보적인 캐릭터다ㅠㅠㅠㅋㅋㅋㅋㅋ] [다른애들이 저랬으면 그냥 폭소대잔치였을텐데] [워낙 몸을 잘쓰니까 그냥 저것도 다 공연같네] [아니 왁킹 왜 개잘하는뎈ㅋㅋㅋㅋㅋㅋㅋ] [군자야 다치지마 조심해야돼ㅠㅠㅠ] [후 군자 위험한 동작 할때마다 심장 내려앉음] [나두ㅠㅠㅠ근데 그래두 넘 멋지당]곡예와 걸리쉬 안무를 오가던 군자의 마지막 기술은 4연속 백 덤블링.
휘릭, 휘리릭, 휘리리릭-.
현란한 동작으로 완벽하게 기술을 성공시킨 군자가, 밧줄 한 쪽 끝에 서서 오른팔을 위로 치켜들며 공연을 마무리했다.
끝까지 손끝과 골반의 라인을 만들며 새로 얻은 유군순이라는 정체성을 유지하는 모습에, 팬들은 폭소와 박수를 함께 보냈다.
“푸하하하하학—.”
“우와아아아아아—!!”
마무리 동작이 끝나자 단원들이 황급이 뛰어와 군자를 도왔다. 줄에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의심이 가득했던 단장은, 이제 거의 신을 만난 종교인 같은 표정으로 군자를 우러러보고 있었다.
“의심해서 미안했네. 내 평생 본 줄타기 중에 가장 멋졌어.”
“과찬이십니다.”
“어떻게, 앞으로도 종종 우리와 함께 공연할 생각은 없는지···.”
“하하, 기회가 닿는다면 반드시 또 오겠습니다.”
기회가 닿는다면 오겠다는 군자의 말에 단장은 시무룩해졌다. ‘기회 닿으면 보자’는 말은 대표적인 인사치레였기에.
그러나 군자에게 인사치레용 거짓말 같은 것은 없었다. 당장은 본업에 충실해야겠지만, 군자는 정말로 언젠간 이곳을 다시 찾을 생각이었다. 줄에 올라 공연을 하던 순간은 군자 역시 짜릿했으니까.
공연이 끝났으니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관문은 귀가였다. 때마침 서은우 팀장과 이용중 실장이 구름 같은 관중을 헤치고 나타나 멤버들을 에스코트했다.
간신히 밴에 오른 멤버들의 어깨는 위축되어 있었다. 이 뜻밖의 외출은 매니지먼트 팀에겐 보고되지 않은 사안이었으니까. 분명 서은우 팀장이 멤버들을 혼낼 것이다.
“또 아주 화려하게 일을 벌이셨더군요.”
“···.”
“이번엔 또 누구 아이디어였을까요.”
군자는 어금니를 악물었다. 사실 이번 외출은 내가 제안한 것 아니던가. 동료들에겐 잘못이 없다. 누군가 혼나야 한다면, 그건 내가 되어야 할 것이야.
“팀장님, 이번 외출은 전적으로 저의 제안이었습니다.”
“아, 그래요?”
“예,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아주 잘하셨습니다.”
“예?”
혼쭐이 날 생각으로 꺼낸 말이었는데, 돌아온 것은 의외의 칭찬이었다.
“돌발행동이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걸 문책할 생각은 없습니다. 문책보단 오히려 포상을 내려야겠죠. 그 짧은 순간에 스트리밍 채널에 20만이 넘는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것도 비공식 중계 채널에서요.”
“그, 그렇군요?”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벌써 기사도 뜨고 있고요. 물론 우리가 따라가서 제대로 중계할 수 있었다면 중계품질은 더 좋았겠지만, 오히려 팬이 직접 찍은 스트리밍이었기에 더욱 계획되지 않은 이벤트 느낌이 났습니다.”
“아하.”
“유군자 씨는 설마 여기까지 계획하고 외출을 감행한 겁니까?”
“아닙니다. 그런 것까진···.”
“역시, 선비 답게 겸손하시군요.”
‘선비답다’는 서은우 팀장의 칭찬에 군자의 입꼬리가 하늘을 향했다. 입꼬리를 실룩거리는 군자를 보며 동료들이 장난 섞인 비난을 쏟아 냈다.
“와, 유군자 혼자 칭찬 독식하려고!”
“선비 형아, 혼자만 생색 내기예여!?”
“우리도 여장하고 나가느라 부끄러웠다고!”
“아하하핫, 난 재미있었어~”
그러나 동료들의 비난에도 군자의 입꼬리는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선비답다라, 참으로 듣기 좋은 칭찬 아닌가!
* * *
폭풍 같았던 경주에서의 시간이 끝난 뒤.
이번 프로젝트의 연출을 맡은 현시우는 본격적으로 캐스팅 작업을 시작했다.
“아하하핫, 일단 아사녀는 군자 확정이야~”
놀이마당 줄타기를 통해 액션을 소화할 수 있음을 증명한 군자였다.
물론 아직 연기력은 미지수였으나, ‘군자는 얼굴이 곧 개연성’이라는 지현수의 말에 현시우도 설득이 되고 말았다. 여장이 찰떡같이 잘 어울리는 것도 한 몫 했고.
석공 아사달 역할은 차인혁이 맡았다. 진중한 눈빛으로 묵묵히 정을 치며 돌을 깎는 석공의 모습은 차인혁과 찰떡이었다.
지현수는 아사녀의 사이드킥인 몸종 역할을 맡았다.
무슨 연기를 시켜 봐도 어색했지만, 군자를 따르며 찬양하는 연기만큼은 히스레저 수준으로 잘 해냈기에 현시우가 배역을 새로 만들어 주었다.
이어서 하현재는 꽃미남 보부상이자 정보상 역할, 권태웅은 불국사의 주지스님 역할, 기유찬은 불국사의 숨겨진 비밀병기이자 수호신인 광목천 역할을 맡았다.
모든 캐스팅이 비교적 수월하게 이루어졌지만, 한 명의 주요인물만큼은 캐스팅이 쉽지 않았다.
아사녀에게 거짓 정보를 제공하여 그녀를 혼란에 빠뜨리려던 첩자, 파계승.
간악한 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감쪽같은 미소로 그것을 숨길 수 있는 연기력을 가진 배우가 필요했다.
그렇다고 나이대가 있는 정극 배우를 캐스팅할 수도 없었다.
등장인물이 모두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인 아이돌 패러디물인 만큼, 결에 맞는 배우를 섭외해야 했으니까.
“아하핫, 이거 쉽지 않은데~”
결국 파계승 캐스팅 안건을 회의에 가져온 현시우였으나, 군자는 별 것도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대답했다.
“간악한 연기를 할 수 있는 자가 필요한 것이더냐.”
“아하하, 그렇지~”
“거기에 나이도 어리고, 용모도 훌륭하면 더 좋고.”
“아하하핫, 그렇게만 되면 백 점~”
“그렇다면 적임자가 있거늘, 무엇을 고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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