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26)
#126
생애 첫 연기
“정무를 부르는 것은 어떻겠느냐.”
“엥? 아육시 쩡무여?”
“그래. 내 생각하기에, 파계승 역할엔 정무가 딱이다.”
“후으음, 확실히 양정무가 좀 비열한 느낌이 있기는 한데···.”
양정무의 이름이 나오자 몇몇 멤버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양정무우··· 난 좀 반댄데.”
“그래? 어째서?”
“걔 인성 문제 좀 있지 않냐?”
“하긴 막 착한 애는 아니긴 하져.”
“···그, 그래도 아육시 마지막 땐··· 착했는데···.”
“끝까지 나쁜 놈이 어딨겠냐. 게다가 처음엔 군자한테도 적대적이었잖아.”
동료들의 부정적 의견을 들으며 군자가 침음했다. 이 친구들은 아직도 정무를 안 좋게 보고 있구나···.
“그나저나 군자 넌 어떻게 대번에 양정무를 생각해 냈냐. 혹시 아직도 연락하고 지냄?”
“물론이지. 한번 인연을 맺은 친구 아닌가.”
“아무튼 오지랖도 넓어요. 할 말도 없지 않아?”
할 말 없지 않냐는 태웅의 말에, 군자가 무슨 소리냐는 듯 반문했다.
“아니, 전혀 그렇지 않은데.”
“그래? 걔랑 무슨 말 하는데?”
“정무는 질투가 많은 아이 아니더냐. 종종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는 문장을 써서 보내 주었다. 때로는 질투에 눈이 멀어 패가망신한 옛 이야기를 보내 주기도 했지.”
“그, 그래?”
“아, 얼마 전에는 성형외과 광고가 보이기에 바로 사진을 찍어 정무에게 보내 주었다. 그 아이는 안면을 고치는 데에 관심이 많지 않더냐.”
“그랬구나···.”
“안면의 붓기를 빨리 뺄 수 있는 요법을 보내 준 적도 있다. 또 어디를 고쳤다면 얼굴이 퉁퉁 부었을 것이니.”
“그런 거 보내면 걔가 뭐라디?”
“글쎄, 그냥 고맙다고 하더라만.”
“화도 안 내고?”
“화를 왜 내지?”
“···정무가 진짜로 착해졌나 보네?”
“그러게여. 울 쩡무 철 들었넹.”
갑자기 양정무에 대한 여론이 바뀌는 것을 보며 군자는 만족스레 웃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어쨌거나 동료들이 그 아이를 좋게 생각하니 잘 된 일 아닌가.
“그럼 맨날 군자 너만 선톡 보내는 거야?”
“아니, 정무가 먼저 연락해 올 때도 있다.”
“그래? 걔는 뭐라는데?”
“드라마에서 자신이 출연한 분량만 편집하며 모은 영상을 보내곤 하더라.”
“푸하학, 서로 하고 싶은 얘기만 하는구만.”
“그럼 너가 보고 평가도 해 주고 그러냐?”
“연기에 대해서는 모르니 평가는 할 수 없다만, 참으로 표독스러운 것이 널 처음 보았을 때와 비슷하다는 말은 해 주었다.”
“그 말에도 화를 안 냈다고?”
“오히려 좋아하던데? 표독스러워 보이고 싶었다고.”
“쩡무가 진짜 확실히 착해지긴 했넹.”
“그럼 우리도 양정무 모음집이나 좀 보자. 얼마나 표독스럽게 연기 잘하나, 갑자기 궁금해지네.”
곧 군자가 받은 양정무 모음집 영상이 회의실 스크린을 채웠다. 양정무는 막장 웹드라마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독하디 독한 전교2등 역할을 맡았다.
웹드라마인 만큼 TV드라마보다는 화제성이 떨어졌지만, 양정무의 독한 연기만큼은 모음 클립이 생성될 만큼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었다.
전교1등 앞에서는 생글생글 웃으며 표정을 관리하다가, 돌아서자마자 정색하며 적의를 드러내는 그 연기는 모두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조용히 좀 해 줄래? 아니, 혹시 조용히 말하기가 힘든가? 대가리가 텅 텅 비어서, 울림통이 너무 잘 울려서?]“저 앙칼진 거 봐라.”
[나 가난해. 우리 부모님도 가난하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도 가난해. 그렇게 가난을 대물림하다 보니까 빌어먹을 유전자도 가난해졌지. 그래서 그런지 난 운동도 못하고, 그림도 못 그리고, 노래도 못 불러. 근데 공부는 달라. 이 거지 같은 유전자로도 누구든 짓밟을 수 있거든. 그러니 내가 널 못 이기겠니? 평생 부족한 거 없이 살아온 너 같은 애한테?]“어우, 무섭다 무서워.”
“아하핫, 정무 연기 잘하는데~”
연출자 현시우는 양정무의 연기가 마음에 쏙 든 모양이었다. 다른 멤버들 역시 양정무의 연기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아하하하, 정무 부르자~ 난 정무 좋다고 봐~”
“현 감독이 골랐으면 우리도 다 찬성이지. 이제 애도 착해진 것 같고.”
“그럼 군자 네가 정무한테 연락 좀 해 줘.”
의견이 모이자 군자가 바로 양정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약속을 잡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오늘 스케쥴이 비어 있다는데, 지금 부를까.”
“지금? 걔도 은근 쿨하네.”
“아하하, 불러 불러~ 빨리 얘기할 수 있으면 좋지~”
머지않아 양정무가 솔라시스템 사옥 회의실에 나타났다.
“오오, 정무야. 이게 얼마 만이더냐!”
“군자 혀엉.”
모처럼 만난 군자가 반갑다는 듯, 양정무는 군자에게 포르르 달려가 그를 안았다.
“얼굴이 더 좋아졌구나. 혹 내가 보내준 광고를···.”
“아니거든! 그래도 칭찬 고맙네.”
군자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양정무는 다른 동료들에게도 자연스레 말을 걸었다.
“칠린 대박 났더라, 축하해.”
“고맙다. 너도 같이 했으면 좋았을 텐데···.”
“근데 태웅이 형, 무대 할 때 표정 너무 없던데?”
“엥? 갑자기 모니터링을 한다고?”
“혁이 형도 표정 너무 없어. 현수 형도 끼 좀 더 부려 보라고.”
“와, 얘 우리 무대 다 보나보네.”
“당연하지. 당신들이 제대로 안 하면 내가 칠린 할 거야.”
“푸하하, 그게 그렇게 마음대로 될 것 같냐.”
“그러니까 제대로 하란 말야···.”
“알았어 알았어.”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동료들과 스스럼 없이 대화를 주고받는 정무의 모습이 기특한 군자였다.
비록 까칠하게 말하긴 했지만, 아마 그것이 정무가 우리를 걱정하는 방법일 테다.
“그나저나 정무야, 그 박스는 뭐냐?”
“이거? 바리깡.”
“엥? 바리깡은 왜?”
“스님 역할이라며. 머리 밀어야 되는 거 아니야?”
양정무의 놀라운 의지에 모두가 감탄사와 웃음을 터뜨렸다.
“우와, 얘 완전 진심이네.”
“꼭 하고 싶으니까··· 회사에도 말해 놨어.”
“아하핫, 빡빡이가 될 필요는 없어~”
“그래?”
“아하하하, 진짜 스님이라면 몰라도 넌 파계승 역할이니까~ 게다가 대머리는 볼드 캡으로 연출하면 되고~”
“···휴.”
머리를 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양정무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정적인 연기력에 이 정도의 의지까지 보이니, 현시우의 입장에서도 양정무를 캐스팅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아하하하, 그럼 캐스팅은 끝났고~ 마침 다 모였으니까 시나리오 디벨롭부터 끝내 볼까~”
멤버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더하며 시나리오에 살을 붙여 나갔다.
이야기는 아사달 설화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탐 크루즈 스타일의 각색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가 됐다.
석공 아사달은 불국사 석가탑 제작을 위해 차출된다. 그러나 그 차출엔 석가탑 안에 들어갈 유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훔치기 위한 계략이 숨어 있었다.
탑은 불교 유물을 보관하는 일종의 금고 같은 것. 그 탑을 만드는 석공 아사달은 금고를 만드는 기술자인 셈이었다.
본래대로라면 완벽한 솜씨로 유물 도굴의 우려가 없는 탑을 만들었을 아사달이었지만, 두고 온 아내 아사녀가 못내 마음에 걸렸다. 마음이 흐트러지자 집중력 또한 무너졌다. 도굴꾼들은 바로 그 부분을 노렸다.
불국사 주지 스님으로 위장한 도굴 세력은 계속해서 아사달을 압박하고, 아내인 아사녀를 떠올리도록 만들었다. 마음이 심란해진 아사달의 손끝은 무뎌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 고향에 있던 아사녀가 이상한 꿈을 꾼다.
남편 아사달이 도굴꾼들의 계략에 넘어가는 꿈. 위화감을 느낀 아사녀는 당장 경주로 향한다. 남편 아사달의 마음을 안정시키고, 그의 작업이 완벽하게 끝날 수 있도록.
그러나 도굴꾼들의 입장에선 아사달과 아사녀가 만나선 안됐다. 그들은 ‘여자는 건축 중인 절에 들어올 수 없다’는 금기를 만들고, 첩자인 파계승을 내세워 아사녀에게 거짓 정보를 뿌렸다.
연못에서 기도를 하면 그 연못에 아사달과 석가탑의 모습이 떠오를 것이라는 거짓 정보.
그러나 아사녀는 그리 호락호락한 여성이 아니었다.
간악한 거짓을 말하는 파계승을 단번에 제압한 뒤, 아사녀는 불국사 담벼락을 뛰어올라 금줄을 밟고 아사달에게 향한다.
그렇게 아내 아사녀의 모습을 확인한 아사달은 다시금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완벽한 탑을 완성한다.
그렇게 지켜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도굴꾼들에게 도굴당하지 않은 채 현대까지 보존되었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 되었다.
“이렇게 막 고쳐도 돼여?”
“괜찮아 괜찮아, 주지스님도 괜찮다고 하셨는데 뭐. 재미있는 이야기만 만들면 된다고 하셨어.”
“그럼 난 좋아여. 첨에는 병맛이었는데, 은근 재미있는 것 같아.”
“첩자 파계승은 아사녀를 짝사랑하는 거지? 그래서 남편한테 못 가게 막은 거고?”
“딱이네. 양정무 쟤 군자 좋아 죽잖아.”
“아, 아니거든?”
“아니긴 무슨. 아까도 오자마자 안기더만.”
“안긴 게 아니라 내가 안은 거거든?”
“오구 그러셨져여.”
“으으···.”
“이렇게 보니까 로맨스에 첩보에 액션에··· 온갖 장르를 다 섞었네.”
“시우는 발리우드식 뮤지컬도 넣고 싶다고 하던데.”
“···그, 그건 조금 욕심 아닐까요···.”
“아하하핫, 발리우드 재미있잖아~”
어느 정도 시나리오 정리가 끝나고, 이제는 가벼운 리딩을 할 차례였다.
“아하핫, 대사가 다 나온 건 아니지만~ 가볍게~ 카메라 테스트 한다는 느낌으로~”
“우와, 나 연기는 진짜 처음이네.”
“야 정무야, 우리 연기 좀 가르쳐 주라.”
“···아카데미를 다녔어야지.”
“너도 우리 활동하는 거 봤을 거 아냐. 우리가 여유가 있겠냐?”
멤버들은 엄살을 피웠지만, 그래도 엄살 피운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연기를 선보였다.
가장 태연하게 연기를 해낸 것은 현재였다. 현재가 맡은 역할은 아사녀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는 보부상. 감초 같은 역할이기에, 현재의 재기 넘치는 연기 톤과도 잘 맞았다.
“아하하, 현재는 걱정 없네~”
지현수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었다. 아사녀 역할인 군자를 무조건 추앙하는 역할이었기에, 평소 하던 대로만 해도 배역과 찰떡같이 맞아 떨어졌다.
“지현수 쟤는 연기가 아니라 그냥 리얼이잖아.”
“군자가 그렇게 좋은가···.”
태웅의 연기 역시 나쁘지 않았다. 주지스님은 무조건 대머리 가발을 써야 했기에, 대머리 가발에 호기심이 넘쳤던 태웅 외에는 맡을 사람이 없었다.
반쯤은 강제로 결정된 배역이었기에 걱정이었지만, 다행히 태웅은 준수한 연기를 보이며 모두를 안심시켰다.
“오올, 형 연기 좀 하네여.”
“흐흐, 내가 또 언제 대머리 가발 써 보겠냐.”
대사가 거의 없는 석공 아사달과 수호신 광목천을 지나, 이제 군자의 차례가 됐다.
“아하하, 군자 여기 렌즈 조금 위에 보고~”
“어어.”
“아하하하, 긴장 풀고, 천천히 대사 해 줘~”
“···그래.”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군자가 천천히 대사를 뱉기 시작했다. 그의 생애 첫 연기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