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44)
#144
지지 마십시오
‘다이너스티 캐슬’로 떠나기 전, 서은우 팀장은 멤버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여러분. 다른 나라의 아이돌과 대화를 나눌 때, 꼭 당부하고픈 말이 있습니다.”
“헤헤, 다 알아여. 자나깨나 말조심! 논란 만들지 않기! 그런 거져?”
“아뇨, 그런 부분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엥? 그럼 뭔데여?”
“지지 마십시오.”
“예?”
“어떤 신경전이 벌어지든, 밀리는 모습을 보여선 안됩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며 서은우 팀장은 멤버들의 손을 단단히 잡았다.
“물론 대놓고 싸우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신경전이 벌어졌을 때 온순하게 행동해선 안됩니다.”
“그럼 어떡할까요? 막 으르렁거려요?”
“적어도 만만하게 보여선 안되겠지요.”
“흐흐, 혁이 형도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비주얼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절대 밀리지 마십시오.”
신경전에서 밀리지 마라. 그것이 서은우 팀장의 유일한 당부였다.
물론 싸우기 위해 [다이너스티>에 출연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잡아먹히기 위해 출연한 것도 아니다.
국내 그룹으로만 이루어진 서바이벌이라면 막내답게 선배 그룹에 대한 예의를 철저히 갖추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이너스티>는 성격이 다르다.
각국의 아이돌들과 7IN 사이엔 그 어떤 선후배 관계도 없었다. 게다가 논란과 갈등을 신봉하는 김석훈 PD의 특성 상, 작은 갈등이라도 발생하면 그것으로 서사를 쌓아 가려 할 것이다.
이런 정글 같은 환경에서 자칫 약해 보였다간, 중심 서사에서 밀려나 쩌리로 전락해 버릴지도 모른다. 아무리 무대를 잘한다고 해도, 시청자들은 서사가 있는 팀의 무대를 선호하게 되어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팀장님.”
군자는 그저 분부대로 했을 뿐이다.
중국 친구들이 먼저 신분제가 어쩌고, 조공국이 어쩌고 하며 시비를 걸어 왔다.
그래, 맞는 말이다. 조선이 명나라에 조공을 바치긴 했지. 그것은 왜(倭)와 명(明) 사이에서 입지를 확보하기 위한 조선의 외교적 자구책이었다.
그 역사적 사실을 두고 조선이 명나라의 조공국이었다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명의 역사가 그토록 자랑스럽다면, 어찌 근대에 들어서 스스로 그 유산을 파괴하였는가?
조선처럼 외세의 침략을 받아 어쩔 수 없이 불타 버린 것도 아니다. 그들은 본인들의 손으로 과거의 역사를 부정했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원점에서 출발하겠다는 괴상한 명분 하에, 군자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또 본인들이 명의 후손이라니, 이 무슨 해괴한.
중국 친구들의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졌으나 군자는 정말 순수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명의 후손인가, 모택동의 인민인가?
“비호우캄 님 맞습니까?”
“피호우캄이다!”
“어쨌거나, 비호우감 님의 주장이 모순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는지요?”
“피호우캄이라니까!”
“예 예, 비호감 님.”
“이 자식이 진짜!”
“어쨌거나 우리는 지나간 역사를 따지러 온 것이 아닙니다. 2022년을 살아가는 아이돌로서, 경연을 펼치러 온 것 아닙니까.”
“!”
“하지만 과거의 방식을 선호한다면 그 또한 굳이 피하지는 않겠습니다.”
“무, 무슨···.”
“활을 쏘든, 한시(漢詩)를 짓든, 무엇이든 받아들이겠단 말입니다. 과거의 방식이든, 현대의 방식이든, 나는 비호감 님께 질 자신이 없으니.”
말을 마친 군자가 마이크를 동료들에게 건네며 새초롬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일본 아이돌은 연신 침만 삼키며 눈알을 굴렸지만, 미국 아이돌들은 거의 축제라도 온 듯 요란하게 소리를 질렀다.
“군자, 마 보이!”
“Yeah, Yeah, Yeah—!!”
미국 친구들의 열렬한 환호에 군자도 살포시 손을 들어 화답했다.
“하하 그래, 예의 예의~”
분위기가 군자 쪽으로 넘어가자 피호우캄이 입술을 짓씹었다. 부들부들 떨면서도 그는 마이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분위기를 뒤집어 볼 생각인 것 같았다.
“그래, 두고 보자고. 마지막에 누가 웃게 될지 말이야.”
“예? 전 지금도 웃고 있습니다만?”
“아니, 하아···.”
애써 멋지게 마무리 멘트를 던져 보려 한 피호우캄이었으나 군자의 무지성 반격에 이성은 다시 한번 아득히 날아갔다. 결국 피호우캄의 이마에 핏대가 서고 말았다.
“너··· 너 뭐 돼?”
“예?”
“데뷔한 지 1년도 안 된 그룹 아닌가?”
“이제 4개월쯤 됐습니다.”
“그래? 난 벨로체는 들어 봤어도 칠린은 처음 들어 보는데.”
“허어, 그렇군요.”
피호우캄의 조롱에도 군자는 그저 인자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아직 세계적으로는 우리의 인지도가 부족하구나. 더욱 정진하라는 의미일진저.
“하하, 아직 우리의 인지도가 부족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유튜브를 찾아 보시면 저희 영상이 아주 많답니다.”
“무, 뭐라고? 유튜브?”
“어엇, 혹시 유튜브를 볼 줄 모르시는 겁니까? 제가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만···.”
유튜브 보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는 군자의 말에, 옆에 앉아 있던 현재가 군자를 쿡 찌르며 말했다.
“형아, 형아!”
“음?”
“중국은 유튜브 못 보게 돼 있다거여!”
“아뿔싸!”
본의는 아니었으나 결과적으로 군자가 다시 한번 피호우캄을 물먹인 셈이었다.
서로 신경전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마지막은 기분좋게 마무리하는 편이 낫지 않겠나.
그렇게 생각한 군자가 먼저 피호우캄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다.
“뭐 그럴 수 있지요. 우리도 비호감 님을 모르고 비호감 님도 우리를 모르니, 피차일반 아니겠습니까.”
“···.”
“이 기회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 봅시다.”
군자는 산뜻하게 웃었지만 피호우캄은 이미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그 와중에도 마이크를 잡고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이번엔 테이보의 멤버들이 피호우캄을 만류했다. 더 이상 대화를 나눠 봐야 피호우캄의 멘탈만 깨질 것이 자명했기에.
“자, 10분만 쉬어 가겠습니다. 그리고 바로 사전 경연 준비하겠습니다!”
거의 행복사 직전까지 간 김석훈 PD가 만면에 미소를 띄우며 휴식시간을 선언했다. 카메라가 꺼지자 마자 7IN 멤버들이 군자를 둘러쌌다.
“형아, 어쩌자고 그랬어여!”
“후후, 서 팀장님이 기싸움에서 밀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니, 그래도 그렇게 두들겨 패 버리면 어뜩해.”
“···주, 중국 사람을 말로 때렸어요···.”
“와, 근데 미치긴 했더라. 주하성 두들겨 패던 랩 실력 어디 안 가던데?”
“머릿속에서 비트가 들렸어···.”
“이따가 실장님한테 털릴 것 같긴 한데, 어쨌든 중국 애들 벙찐 거 보니까 후련하긴 하더라. 미국 애들 환호하는 거 봤어?”
“유쾌한 친구들이더라거여, 크크.”
“무튼 우리도 기싸움 밀리지 말자. 눈에 힘 빡 주고!”
“···이, 이렇게요?”
“아니, 그건 그냥 화난 사슴 같잖아. 좀 더 도깨비처럼 해 보라니깐.”
7IN이 눈에 힘 주는 법을 연습하고 있는 동안, 김석훈 PD와 연출진은 긴급 회의를 벌였다.
말은 긴급 회의라 했지만, 사실 김석훈 PD의 표정은 전혀 긴급해 보이지 않았다.
“피디님, 이거 어떡합니까.”
“뭘 어떡해?”
“아니, 아이돌들이 저렇게 역사 갖고 디스 배틀을 하는데 그냥 두시면···.”
“뭐가 문제니, 비속어를 쓴 것도 아니고 폭력을 쓴 것도 아닌데.”
“예? 그럼 문화대혁명 어쩌고 하는 분량을 그냥 내보내시려구요?”
“내 기억으로는 문화대혁명이라는 워딩이 나오진 않았는데? 그리고 정 문제 될 것 같으면 그 분량 잘라서 중국 송출 버전만 따로 만들지 뭐.”
“예?”
“지금 나만 기뻐? 나만 흥분돼? 다들 표정들이 왜 그래?”
행복한 표정의 김석훈을 보며 조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아, 진짜 들었던 것보다 더 대단한 분이시네요.”
“칭찬 고맙고~”
“칭찬 아닙니다! 그리고 피디님, 칠린 좋아하시는 거 아니었어요?”
“좋아하지. 아니 사랑하지.”
“그럼 지켜 주셔야죠! 한국인들이야 통쾌하다고 좋아하겠지만 중국인들은···.”
“근데 난 방송 재미있게 만들어 주니까 좋아하는 거고. 내가 걔네를 왜 지켜줘? 내가 매니지먼트도 아니고, 부모님도 아닌데.”
“아니, 하아···.”
“무튼 군자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잖아. 시비는 중국 애들이 먼저 걸었고. 전후관계 가감 없이 내보내면 적어도 악편이라는 개소리는 못 할 걸?”
“그거야 그렇겠지만··· 피디님 또 찍히실 텐데요?”
“찍으라고 해. 어차피 [다이너스티> 같은 기회가 또 올 것 같니? 일생 한 번 뿐인 기횐데, 어영부영 미지근한 맹탕이나 만들다가 갈 거야?”
그렇게 말하는 김석훈 PD의 눈빛이 광기로 번뜩였다.
“졸라 맵게 만들어야지. 중국 애들도 마라탕 좋아하잖아. 욕하면서도 결국은 보게 될 걸?”
* * *
짧았던 쉬는 시간이 끝나고, 사전 경연을 위한 무대 세팅도 마무리됐다. 이제 [다이너스티>의 첫 신분을 결정하기 위한 사전 경연이 코앞이었다.
“이미 말씀드렸지만, 이번 사전 경연 결과는 오직 여러분들의 평가에 의해 결정됩니다. 신분을 결정짓는 경연인 만큼, 평가 역시 신중해야겠죠?”
자체 투표로 결과가 결정된다는 말에, 지현수는 불안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야, 우리 시작부터 너무 싸운 거 아님?”
“왜?”
“아니, 자체 투표로 결과 나온다잖아. 테이보 애들이랑 싸웠으니까 쟤네는 우리 점수 엄청 낮게 줄 것 같은데···.”
“에이, 설마. 그리고 꼴랑 한두 팀이 점수 좀 낮게 준다고 결과가 달라지겠어? 여기 일곱 팀이나 모여 있는데.”
“그런가···.”
“괜한 걱정 하지 말고 무대나 잘 하자고. 일본 친구들은 우리한테 호의적인 것 같던데 뭐. 아까도 막 캬바레 캬바레 하면서 주먹 흔들던데?”
“캬바레가 아니라 간바레겠지.”
“아무튼,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고.”
태웅은 괜한 걱정 하지 말라는 투로 지현수의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인고의 대기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첫 번째 사전 경연의 막이 올랐다. 가장 먼저 무대에 올라선 것은 일본의 ’SHINO’. 6인의 닌자라는 독특한 컨셉을 가진 팀이었다.
다소 산만했던 SHINO의 무대가 끝나고, 6인의 닌자들은 머리가 땅에 닿을 듯 목례를 하며 각국의 언어로 감사를 표했다.
“캄사하므니다!”
“씨에씨에!”
“상큐!”
대단한 무대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7IN 멤버들은 최선을 다해 열화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무대 퀄리티야 어쨌든, 그걸 준비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을 테니까.
다음으로 올라온 것은 마찬가지로 일본 팀인 ‘아키라’. 아키라는 [다이너스티>에서도 데뷔 연차가 가장 높은 원로 보이그룹으로 모든 멤버들이 30세 이상인 고령 그룹이었다.
무대가 시작되니 시간은 순식간에 흘렀다. 그 다음은 중국의 ‘QUAN’이 무대 위에 올랐다. QUAN은 특이하게도 한 멤버가 변발을 하고 있었는데, 그 비주얼이 괜한 것이 아니라는 듯 소림사 무술을 기반으로 한 무대를 선보였다.
“우와, 변발···.”
태웅은 변발을 보며 부러워 하는 것 같았으나 다른 멤버들은 QUAN의 퍼포먼스에 주목했다. 확실히 일본 팀들보다는 더 절도 있고 파워가 있는 무대였다. 소림사 무술이라는 컨셉 역시 꽤나 재미있어 보였고.
그 다음은 군자와 마찰이 있었던 ‘테이보’의 무대.
파앙, 파아앙—.
테이보는 괜찮은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안무, 동선, 표정, 의상까지, 한국 아이돌들 사이에 있다고 해도 평균 이상이라 봐도 무방했다.
다만, 그들의 퍼포먼스에선 ‘어디선가 본’ 향기가 너무도 강하게 났다.
테이보의 무대가 끝나자 마자, 벨로체의 파엘이 군자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쟤네는 루나틱 짝퉁이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루나틱 모조품이라고.”
“아아, 저도 그런 인상을 받았습니다.”
곳곳에 루나틱의 디테일을 교묘하게 복제하여 넣어 놓았다. 루나틱 뿐만이 아니었다. 벨로체, 페이버릿 등등, 성공한 K-아이돌 그룹들의 오리지널리티를 조금씩 가져와 누더기처럼 이어붙인 무대였다.
“저건 명의 후손이 아니라 그냥 한국의 후손 같은데?”
“안무의 수준은 지금까지 본 팀 중에 가장 높습니다.”
“그건 그렇긴 하네.”
인정하면서도 파엘의 심기는 불편해 보였다. 무대에만큼은 진심인 파엘이었기에, 테이보의 짜깁기 무대가 더욱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테이보의 무대가 끝난 뒤, 이번엔 미국 팀이 무대에 올랐다. 한 – 중 – 일 각국에서 두 팀이 나온 것과 달리, 미국에선 한 팀만이 경연에 참가했다.
지이잉, 지이이잉—.
록의 나라답게, 미국 아이돌 팀 ‘가디언즈’는 밴드를 기반으로 한 무대를 선보였다. 연주는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지만, 이걸 아이돌 무대라고 보아야 하는지는 약간의 의문이 들었다.
“안무가 거의 없네.”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게 ‘가디언즈’의 무대까지 끝난 뒤, 드디어 한국 아이돌들의 차례가 돌아왔다.
먼저 무대에 오른 것은 후배 그룹 7IN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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