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47)
#147
군자의 창
지상파 음악 프로그램 1위는 군자에게 세 가지의 보상을 안겨 주었다.
첫 번째는 두 개의 포인트, 두 번째 보상은 이 몸의 원 주인인 ‘유군자’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두 개의 보상은 이미 사용했지만, 아직 보상 하나가 미사용인 채 남아 있었다.
[진정환(鎭靜丸) (10/10)]‘진정환’이라는 이름을 가진 보상. 덧붙은 설명도 기억이 난다. 분명 상태창의 폭주를 제어해 주는 용도라 했었지.
상태창의 폭주라. 당시엔 와 닿지 않았지만, 시야를 뒤덮은 푸른 창을 보니 이제는 알 것 같았다. 이게 폭주가 아니라면 무엇이 폭주란 말이더냐.
지금이 이 보상을 사용할 적기인 것 같구나.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군자의 눈앞에 새로운 상태창이 퍼뜩 떠올랐다. 수많은 상태창이 증식하는 와중에도, 그 창만큼은 어떻게든 군자의 눈에 들겠다는 듯 더 강하게 빛나고 있었다.
“···창이야···.”
마치 상태창이 군자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폭주는 상태창의 의지가 아닐 터. 군자와 상태창은 어디까지나 동반자다. 이 진정환이라는 보상을 준 것도 아마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의심하지 말자. 내 오랜 친우를 믿자.
손가락을 뻗어 푸르스름한 창을 누르니, (10/10)으로 표기되어 있던 숫자가 (9/10)으로 변동됐다. 동시에,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던 푸른 창들이 빠르게 소거되기 시작했다.
“후우, 후우우···.”
그러나 아직도 상태는 좋지 못했다. 여전히 조선의 풍경과 현대의 풍경이 뒤죽박죽 겹쳐 있었고, 귓전에는 고약한 숙부의 목소리가 울리는 듯 했다.
···자야···.
···군자야···.
···얌마! 너 상태가 왜···.
군자의 정신을 되찾아 준 것은 동료들의 목소리였다. 진정환의 효능으로 시야에서 상태창이 사라지자 비로소 동료들의 모습이 보였다. 여섯 개의 희뿌연 얼굴이 군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군자! 괜찮아!?”
“형아, 숨 좀 쉬어 봐여!”
“안 되겠다, 일단 탁 트인 곳으로 옮기자. 얘 폐쇄된 공간 싫어하잖아. 그것 때문일지도 몰라.”
군자가 증상의 원인을 설명하기도 전에 멤버들이 먼저 움직였다. 태웅이 말을 꺼내자 인혁이 망설임 없이 군자를 번쩍 들쳐 업었다. 노예 숙소엔 엘리베이터도 없었으나, 인혁은 군자를 업고서도 계단을 성큼성큼 올랐다.
순식간에 옥상에 도착한 인혁이 조심스레 군자를 내려놓았다. 그 사이 침대 시트를 챙긴 현재가 재빨리 군자의 몸 아래에 시트를 펼쳤다.
“파하아—.”
탁 트인 공간에 몸을 눕히자 비로소 호흡을 되찾은 군자였다. 두어 차례의 심호흡과 함께 맥박 역시 정상 수치를 되찾았다. 차분한 표정으로 군자의 맥을 짚던 시우가 평소 같은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맥 돌아왔어~”
“휴우—.”
“군자야, 말할 수 있겠어? 괜찮아?”
“천천히 말해도 돼여. 일단 충분히 호흡부터 하고!”
“···구, 군자 형··· 아프지 말아요···.”
겨우 정신을 차린 군자가 동료들을 향해 애써 웃어 보였다.
창이가, 친구들이 나를 구한 게로구나.
“···미안하다, 내가 걱정을 끼쳤구나.”
그러나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자 마자 태웅의 손바닥이 군자의 어깨를 찰지게 찰싹 때렸다.
“아야, 아프단다!”
“그러니까 뭔 헛소리를 하고 앉았어.”
“허, 헛소리라니···.”
“친구가 숨 넘어가는데 당연히 도와줘야지. 그게 네가 미안할 일이냐?”
“그, 그거야···.”
“사실 미안해야 할 건 우리지.”
“···?”
“넌 신경도 못 쓰고, 그냥 노예 됐다고 짜증만 부리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태웅이 다시 한번 군자의 어깨를 톡 쳤다. 군자는 히익 하며 쫄았으나, 이번엔 아까 같이 찰지고 강한 타격이 아니었다.
“미안하다. 앞으로는 내가··· 아니지, 우리가 더 신경 쓸게.”
“···.”
“군자야, 괜찮겠어? 못 버틸 것 같으면 아예 제작진 분들께 얘기할까? 지하에선 도저히 못 살겠다고?”
“···.”
“맞아여. 룰이고 머고, 사람이 답답해서 숨도 못 쉬는뎅.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건, 우리한텐 형아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고여.”
“···.”
“나도 동의한다.”
“···저, 저도요···.”
“아하하, 하차하면 노예 해방이네~”
방금까지만 해도 부채감을 느끼고 있던 군자였다. 그러나 마치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 주고, 함께 싸워 주겠다는 동료들의 말을 들으니 절로 힘이 났다.
물론 노예 숙소가 답답하고 무섭긴 했으나, 마냥 버티지 못할 수준은 아닐 것 같았다. 또 상태창이 폭주한다면 지금처럼 진정환을 사용하여 가라앉힐 수도 있고.
게다가, 무엇보다 믿음직스런 동료들이 옆에 있지 않은가.
“나는 괜찮다. 여기서 하차하고 싶진 않구나.”
“정말 괜찮겠어?”
“그래.”
그렇게 말하며 군자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우리를 노예로 만든 자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도,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지.”
“그건 맞아. 그 비열한 놈들, 100% 우리 멘탈 깨려고 짠 거라고.”
“여기서 하차했다간 그들의 뜻대로 되는 것 아닌가.”
그건 안 될 말이지.
군자는 하차 대신 싸우기로 결심했다. 11월의 찬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뒤, 군자와 멤버들은 다시 층계를 내려갔다.
노예 숙소로 들어가자 마자, 태웅과 인혁이 재빨리 침대 일곱 개를 줄줄이 이어 붙였다.
“자, 앞으로 우리는 붙어서 자는 거야.”
“센터는 무조건 선비 형아로 해여.”
“당연하지. 거기에 양쪽으로 세 명씩 붙이고···.”
“···제, 제가 군자 형 옆에서 잘래요···.”
“싫은데? 누구 맘대로?”
“···너, 너무해···.”
“내가 군자 옆에 있을 거다.”
“엥, 형은 또 왜요?”
“아사달은 아사녀의 남편···.”
“아니, 이 형 아직도 그 세계관에서 못 빠져나왔네.”
“다 됐고, 가위바위보로 결정해.”
결국 최측근 호위무사는 가위바위보로 결정됐다. 혈투 끝에 군자의 양 옆을 차지한 것은 태웅과 유찬. 가장 먼저 군자와 짝을 이루었던 두 명의 소년이었다.
“크으, 역시 우리가 근본이지.”
“···구, 군자 형, 손 잡고 자요···.”
“무, 뭣이라? 손을 잡고 자자니!?”
“괜찮아, 뭘 기겁을 하고 그래. 손만 잡고 잘게.”
“그것은 또다른 고문 아니더냐!”
“푸하학, 그렇게 싫어?”
“나, 나는 그냥 이렇게 침대만 붙여 놔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구나···.”
“그래? 그럼 그러든가. 대신 또 숨 못 쉬겠으면 바로 신호 줘.”
태웅의 말이 끝나자 이번엔 시우가 조그만 버저 하나를 내밀었다. 버저를 누르니 ‘간식’이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이것은 또 무엇이더냐.”
“아하하, 우리 집 귀요미가 쓰던 건데~”
“귀요미?”
“신호 보낼 때 이거 써~ 살짝만 눌러도 소리 나니까~”
“···고맙구나.”
“더 필요한 건 없어여? 초콜렛 줄까여?”
“잠 잘 오는 음악 틀어 줄까?”
“나는 불침번을 서겠다.”
“아 형, 뭔 불침번이에요. 형이 무슨 바바리안이야?”
졸지에 여섯 동료들의 챙김을 받는 입장이 되었으나, 이상하게도 부담스럽지만은 않았다. 다시 누운 잠자리는 종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으나 어쩐지 아까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우우웅···.
이제 막 눈을 감으려는데, 눈앞에 상태창이 퍼뜩 떠올랐다.
[···미안해···.]“!”
상태창은 그에게 사과를 하고 있었다.
아직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였으나, 이제 군자는 안다.
이 상서로운 빛무리는 이 몸의 옛 주인과 깊이 관련되어 있을 테다. 아마도 병증인 상태창과 그의 영혼이 결합되어, 다른 형태의 무언가가 된 것이겠지.
그러나 병증은 여전히 병증이다. 이 몸의 옛 주인도 병증의 폭주를 완벽하게 통제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같은 상황이 발생했겠지.
상태창은 그 폭주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고맙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 상태창과 이렇게 소통한 것은 처음이었다.
군자는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해 할 것 없다. 지금까지 숱하게 그의 도움을 받아 왔으니. 그가 아니었다면, 군자 역시 병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요절해 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괜찮다. 그리고 언제나 고맙구나.
마음 속으로 그렇게 되뇐 순간, 상태창이 형태를 바꾸며 새로운 무언가를 출력해 냈다.
“!”
허나 이번엔 문자가 아니었다. 상태창은 마치 창문(窓門) 같은 형태로 바뀌어, 그 너머로 비치는 푸르스름한 하늘을 모사하고 있었다.
“···창이로구나.”
유리창 하나 없는 지하였으나 군자에겐 군자만의 창이 있었다. 그것을 깨닫자, 남아 있던 불안감마저 씻은 듯 날아가 버렸다.
“엥? 창? 무슨 창?”
“아니다. 편하게 자려무나.”
“뭔 소리래···.”
눈을 감자 마자, 구름처럼 몰려온 수면이 군자의 몸을 포옥 덮었다.
나란히 붙은 일곱 개의 침대, 그리고 눈앞의 상태창 덕분일까. 군자가 다시 눈을 뜨는 일은 없었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숙소의 스피커가 일곱 소년들을 깨웠다.
[노예 신분의 참가자들은 모두 다이너스티 캐슬 메인 홀로 모여 주십시오.]서둘러 침구를 정리하고 메인 홀로 올라가니, 다른 팀은 보이지 않고 같은 노예 계급인 가디언즈 멤버들만 똥 씹은 표정으로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다.
“아하, 이런 식으로···.”
그제야 노예 계급을 먼저 부른 저의를 파악한 멤버들이었다.
노예면 노예답게, 일부터 하라는 거구나?
곧 7IN에게도 노역이 배당됐다. 간이 의자를 옮겨 평민, 귀족, 왕 계급의 참가자들이 앉을 자리를 만드는 일이었다. 신분제 사회답게 각 신분마다 주어진 의자도 달랐다. 왕 계급의 의자는 안마 기능까지 붙어 있었다.
“와, 이거 안마도 되는데여?”
“하아, 한번만 앉아 보고 싶다.”
“에이, 안 돼여. 아마 앉았다간 바로 반란으로 간주돼서 벌점 먹을 걸여.”
“진짜 더러운 신분제 같으니라고···.”
노예들이 바닥을 쓸고 자리를 만들어 놓으니 곧 상위 계급의 참가자들이 나타나 그 자리를 차지했다.
왕 계급의 벨로체, 귀족 계급의 SHINO와 테이보, 평민 계급의 QUAN, AKIRA가 차례로 착석했다. 노예 계급에게는 겨우 지푸라기로 만든 것 같은 방석 하나만이 주어질 뿐이었다.
“God Damn!”
“What the Fxxking straw cushion!”
“Ahh, my butt!”
가디언즈 멤버들이 까칠까칠한 방석에 엉덩이 공격을 당하고 있는 사이, 어느샌가 나타난 MC 정해진이 단상 앞에 섰다.
“다이너스티 캐슬의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집사 정해진입니다.”
“와아아—.”
“어젯밤, 여러분들의 첫 신분이 결정됐습니다. 모두 자신의 신분에 만족하십니까?”
“네에에에—!!”
상위 계급의 의자에 앉은 멤버들은 우렁차게 대답했으나 노예들은 불만 섞인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지푸라기가 엉덩이를 콕콕 찌르는 방석보다는 안마기 달린 왕좌가 훨씬 나아 보였으니까.
“하하, 이 방석은 안빈낙도(安貧樂道) 그 자체로구나.”
물론 그 와중에도 그 방석을 즐기는 미친놈도 있었지만.
“헐, 이제 잠도 잘 오니까 노예에 만족하기로 한 거예여?”
“그건 절대로 아니지.”
그 미친놈 역시 언제까지고 노예 신분에 머무를 생각은 없어 보였다.
“기회가 온다면, 반드시 뒤집을 테다.”
그런 노예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는 듯, MC 정해진이 말을 이었다.
“물론, 첫 신분에 만족하지 못하는 참가자들도 있을 겁니다.”
“···.”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전평가에 의해 결정된 첫 신분은 말 그대로 첫 신분일 뿐. 다이너스티 캐슬에서 지내는 동안, 여러분들은 신분 상승의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
“그리고 그 신분 상승의 첫 번째 기회를, 지금 이 자리에서 공개하겠습니다!”
“!”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