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51)
#151
Ice & Fire
모든 동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군자는 ‘Damn’을 자신이 들은 대로 풀어냈다.
언제나처럼 품 안의 백지와 붓펜으로. 간단한 한자까지 곁들인 설명에, 멤버들의 동공이 확장됐다.
“오잉? 이걸 이렇게 읽는다고?”
“내 귀엔 이렇게 들렸다.”
“어어··· 근데 되게 그럴싸한데여?”
“하긴, 외국인들은 Damn을 ‘댐’이라고 읽진 않더라. 오히려 이 쪽이 더 원어 발음에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아하하하, 맞아~ help는 헬프가 아니라 해협이라구~”
“맞네. 그거랑도 비슷하네.”
“나 갑자기 머릿속에서 아이디어가 막 샘솟는데.”
“···저, 저두요··· 엄청 좋은 키워드 같아요···.”
“좋아, 그럼 아예 가디언즈 분들이랑 같이 대화 나눠 볼까? 혁이 형, 통역 좀 해 줘요.”
교착 상태에 빠져 있던 경연곡 회의가 군자의 아이디어를 기점으로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한자공격에 뇌정지가 온 가디언즈 멤버들도 인혁의 친절한 설명에 고개를 끄적이며 박수를 쳤다.
“Cool idea—!!”
“좋아여, 그럼 이 방향으로 디벨롭해 볼까여?”
“오케이, 그럼 일단 합주실부터 가자!”
* * *
첫 경연을 위한 준비 시간 열흘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중국 – 일본 연합으로 이루어진 귀족, 평민 계층의 참가자들은 일찍이 경연곡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특히 중국의 테이보, QUAN은 이미 많은 컨셉과 초안을 들고 있었기에 무대 준비는 한결 수월했다. 모두 해외 유명 프로듀서들의 손을 거친 세련된 초안들이었다.
게다가 테이보 – SHINO, QUAN – AKIRA는 모두 퍼포먼스를 기반으로 한 아이돌이었기에 무대 구성 역시 쉽게 갈 수 있었다.
자금력이 충분한 중국 소속사들은 테이보, QUAN에 아낌없는 지원을 퍼부었다.
엄청난 돈을 들여 경연 세트를 꾸몄고, 최고의 실력을 가진 백업댄서 크루를 섭외하여 퍼포먼스의 빈약함을 채웠다.
“역시 물량공세만한 게 없구만.”
그렇게 완성된 무대는 꽤나 웅장해 보였다.
백업댄서까지 30명이 한번에 무대 위에 섰으며, 오케스트라 풍으로 편곡된 음원은 듣는 사람에게 한 순간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됐어, 이거면 왕 자리도 노려 볼 수 있겠어.”
리허설을 마친 뒤 테이보의 리더 피호우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된 리허설이라는 점이 못내 아쉽긴 했다. 이 리허설을 보고 노예 놈들의 전의가 아예 꺾여 버리길 바랐는데.
“노예 애들은 어떤 무대 준비했을까?”
“몰라, 궁금하지도 않고.”
멤버의 질문에 피호우캄은 신경 쓸 가치도 없다는 듯 피식 웃고 말았다.
애초에 가디언즈 같은 팀을 섭외한 것이 패착이었다. 락 밴드와 퍼포먼스 그룹이라니, 함께 무대를 하는 장면이 도저히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았다.
귀족, 평민 신분 팀들에게 주어진 미션의 난이도가 노멀이라면, 노예 계급의 팀들은 슈퍼 하드 모드의 미션을 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다 본인들 복이지.”
모든 리허설 무대가 끝난 뒤, 드디어 본 경연을 위한 준비가 시작됐다. 중국 팀들이 공수해 온 엄청난 규모의 무대 세트가 설치되고, 백스테이지에선 수십 명의 백업 댄서가 쉴 새 없이 몸을 풀었다.
400명의 방청객이 자리를 잡고, 다국적으로 구성된 전문 심사위원단까지 착석하자 드디어 첫 번째 경연의 막이 올랐다.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른 것은 ‘왕’ 계급의 벨로체.
벨로체의 대표곡 [Kingdom> 에 아프리칸 스타일을 곁들인 편곡. 마치 이 정글 같은 다이너스티 캐슬에서 왕으로 군림하겠다는 벨로체의 의지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쿠우웅, 쿠웅—.
중독성 강한 아프리카풍의 타악 리듬에, 벨로체 멤버들은 단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완벽한 안무를 선보였다.
컨셉에 맞게 꾸민 그린 – 골드 위주의 의상에 열대 식물을 컨셉으로 한 악세서리들까지. 벨로체의 무대는 경연이라기보다 기승전결이 완벽한 하나의 공연 같았다.
우와아아아아아아—.
무대가 끝나자 마자 쏟아지는 환호성과 박수갈채. 첫 번째 무대였음에도 이미 모든 심사위원들이 기립하여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이어진 심사평 역시 칭찬일색이었다.
“젠장···.”
그 무대를 본 다음 주자들은 입술을 짓씹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신분 상승으로 왕권 찬탈을 노리던 테이보와 SHINO 멤버들은 더더욱.
왕이 되려면 저 무대를 이겨야 한단 말이지.
그러나 그들에겐 믿는 구석이 있었다. 200명의 중 – 일 방청객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조작이 가능한 자체 투표 점수까지.
그들의 무대에도 엄청난 자본이 투입됐다. 다른 건 몰라도 무대의 화려함과 웅장함만큼은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는 귀족, 평민들이었다.
“이길 수 있어!”
“그래 좋아, 가자!”
다음으로 무대에 오른 것은 귀족 계급의 테이보 – SHINO 연합.
귀족 연합 무대의 컨셉은 다분히 미래지향적이었다. ‘닌자 아이돌’을 컨셉으로 가진 SHINO가 있었기에 컨셉추얼한 무대를 준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테이보의 선택은 현란하고 화려한 EDM.
지잉, 지이잉—.
무대는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꽉 차 있었다. 귀가 피로해질 정도로 빽빽한 편곡의 EDM, 30명 이상의 메가 크루로 구성된 백업 댄서 팀은 중반부엔 트론 댄스까지 선보이며 관객들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무대 뒤에서 트론 댄스를 지켜보던 태웅이 볼멘 소리를 내뱉었다.
“어, 저 네온사인 댄스··· 우리가 [노래해 듀오>에서 했던 거 아냐?”
“뭐, 트론 댄스라는 건 원래 있었던 퍼포니까···.”
“아니, 그래도 우리 무대랑 동선이나 구성이 너무 비슷한데?”
메가크루 트론 댄스 구간은 보기엔 현란했으나 7IN 멤버들에게는 찝찝함을 남겼다. 그러나 그 압도적인 스케일이 나름의 감흥을 주었던 것인지, 관객석의 환호는 점점 높아져 갔다.
우와아아아아아—.
기승전결 모두 강강강강으로 채워졌던 무대. 그러나 경연에선 분명 이런 식의 무대 구성이 효과적이었다. 그를 증명하듯, 심사위원석의 한국 심사위원단도 이 무대에 칭찬의 코멘트를 남겼다.
“굉장히 화려하고 빈틈없는 구성이네요. 보통 이렇게 무대를 만들면 산만하고 어중간해지기 쉬운데, 그 와중에도 일관성을 잃지 않은 것 같아 좋았습니다.”
적국이라 할 수 있는 한국 심사위원단의 칭찬에 어깨가 으쓱해진 귀족들이었으나, 칭찬은 칭찬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다만 기승전결이 없었다는 것은 조금 아쉽네요. 현란하긴 했지만,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이런 무대를 꾸몄는지도 사실 크게 와 닿진 않았습니다.”
“···.”
“다음 무대부터는 현란함을 조금 빼고, 스토리텔링에 더 집중해 준다면 더 멋진 무대가 나올 것 같아요.”
기승전결이 없어서 아쉬웠다는 한국 심사위원단의 평가.
테이보와 SHINO는 공손하게 고개를 꾸벅 숙였지만, 속으로는 코웃음을 치고 있었다.
기승전결? 스토리텔링? 그런 건 뭐 하러 준비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관객들의 반응이다. 현란한 무대는 관객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기에 가장 적절한 도구고.
관객석의 절반을 차지한 중국, 일본 방청객들은 목청이 터져라 두 팀을 응원했다. 그것이 귀족 계급 참가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심사위원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정도 반응이라면 왕족 자리도 충분히 노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어진 QUAN – AKIRA의 무대는 QUAN의 주특기인 무술을 컨셉으로 만들어졌다.
평균 연령대가 높은 AKIRA 멤버들에게는 단순한 무술 동작으로 이루어진 안무를 주고, 어려운 동작은 QUAN 멤버들과 기예단 출신으로 구성된 백업 댄서들이 가져가는 방식의 구성.
정작 핵심 멤버들은 쉬운 퍼포먼스만 한 셈이었지만, 워낙 바글바글한 무대 구성 덕에 그것이 어색해 보이진 않았다.
“좋아, 좋아···.”
테이보에겐 평민들의 무대도 중요했다.
이들이 계급을 사수해야 노예들이 평민으로 올라오지 못한다. 만약 7IN의 신분이 한 단계 올라 평민이 되는 순간, 귀족들은 더 이상 그를 부려먹을 수 없게 되어 버리니까.
그렇기에 평민 계급인 QUAN – AKIRA가 좋은 무대를 펼쳐야 했다. 다행히, 피호우캄이 보기에도 평민들의 무대는 충분히 훌륭했다. 관객들 역시 귀족의 무대 못지않은 환호를 보내고 있었고.
와아아아아—.
물론 이어진 심사평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었다.
“AKIRA 멤버들은 전혀 춤을 추지 않던데, 합의된 사안인가요?”
“이 편곡과 컨셉은 QUAN 멤버들에게 최적화된 것 같은데, 곡의 방향성을 이야기할 때 두 팀의 의견이 충분히 조율된 것인지 궁금하네요.”
“물론 멋진 무대였지만··· 이건 콜라보 무대라기보단 AKIRA가 QUAN의 백업 댄서로서 무대에 섰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아니, 오히려 백업 댄서보다도 쉬운 동작만 했으니 그보다도 비중이 낮아 보였습니다.”
“그렇다고 무대가 최악이었던 건 아니에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무대는 좋았습니다. 다만 멤버들 간의 역할 배분 측면에선 아쉬움이 있네요.”
역시 혹평이 섞여 있었으나, 괜찮았다.
이제 곧 오를 노예들의 무대엔 오로지 혹평만이 이어질 테니까.
앞선 모든 무대가 끝난 뒤, 드디어 7IN과 가디언즈의 조합이 무대 위에 올랐다.
와아아아아아—.
환호성 소리가 잦아들고, 멀리서부터 큰 북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지만 무대 위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
“어디 있는 거지?”
모든 방청객들, 경쟁 구도의 팀들마저 고개를 갸웃거린 순간, 누군가가 외마디 함성과 함께 천장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밧줄에 묶인 커다란 얼음 덩어리가 하강함과 동시에, 바닥에서부터 무대 장치가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무대 장치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몸집의 인혁이었다.
그의 복장은 소방관을 연상케 했다. 다만 점프슈트의 절반은 아래로 벗겨져 있었기에, 그리스 신전 속 석상 같은 상체 근육이 모두 훤히 드러나 있었다.
꺄아아아아아아—.
그 모습 하나만으로 이미 여성 방청객들은 국적 불문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옆에 놓인 커다란 나무망치를 들어올린 인혁이 얼음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퍼어어억, 퍼어어어어어어억—!!
통렬한 타격음과 함께 부서져 내리는 얼음덩어리들. 인혁이 망치질을 할 때마다, 그의 상체 근육은 자기주장을 하려는 듯 울끈불끈한 윤곽을 드러냈다.
퍼어억, 퍼어어억, 퍼어어어억—!!
귀족, 평민들까지 절로 움츠러들게 만들 만큼 어마어마한 힘이 느껴지는 동작. 사방으로 튄 얼음덩이가 그들의 얼굴에 떨어지자 절로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마침내 인혁이 얼음덩이를 산산조각 내 버린 순간.
그 속에 있던 장치가 해제되며 커다란 휘장이 아래로 주욱 늘어졌다.
검은 휘장에 쓰여진 붉은 한자는 ‘大炎(대염)’, 그 의미는 거대한 화염.
끝까지 펼쳐지자 마자 휘장의 아랫단에 불이 붙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얼음 속에 갇혀 있던 휘장이 불덩이가 되자, 그 순간을 기다려 왔다는 듯 묵직한 록 사운드가 공간을 가득 메웠다.
“Damn—!!”
노예의 가슴 속 분노의 불씨를 지피기라도 하듯.
리드보컬 채드의 불꽃 같은 목소리가 쭉 뻗어져 나오며 관객들의 고막을 후려갈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