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52)
#152
불놀이
영감은 언제나 상상도 하지 못한 곳에서 시작되어 가지를 뻗는다.
그렇기에 7IN의 프로듀서 지현수는 언제나 군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비록 작곡 능력은 없는 군자였으나, 그는 언제나 영감의 시발점이 되어 주었다.
‘Yeah’를 ‘예의’로 듣고, ‘Fxxk you’를 ‘법규라 여기며, ‘전화기’를 ‘전하 귀’로 알아듣는 군자에게 ‘Damn’이라고 제대로 들릴 리가 없었다.
저들은 어째서 대염(大炎), 대염이라 울부짖는 것인가.
가디언즈가 내뱉은 비속어, Damn이라고 쓰지만 댐이라고 정직하게 읽지 않는다. 들리는 대로 기록하자면 오히려 2음절에 가까운 발음이었다.
아무 의미 없이 습관처럼 튀어나왔던 비속어가 재해석된 순간, 7IN 멤버들의 머릿속에 불길이 일었다.
노예들을 하나로 묶는 감정은 언제나 분노였다. 평생을 양반으로 지낸 군자 역시 그걸 알고 있었다.
사전경연의 컨셉이 ‘눈보라 속 왕좌’였다면, 이번엔 불. 말 그대로 대염(大炎). 노예들의 가슴팍에 자리잡은 분노의 불길이다.
마침 가디언즈가 표현할 수 있는 사운드와도 꼭 맞는 컨셉이었다. 터져 나오는 분노를 표현하기에, 강한 락 사운드만한 것도 없었으니까.
무대의 막을 연 얼음 깨기, 불타 없어진 대염(大炎) 휘장, 이어지는 강렬한 밴드 음악까지.
휘장을 태워 버렸던 불덩이처럼 방청석에 앉은 팬들의 뱃속도 순식간에 뜨거워졌다. 춤은 잘 못 췄지만, 관객들을 자리에서 일어나게 만드는 것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는 가디언즈였다.
지이이이잉——.
강렬한 일렉기타 루프, 온몸을 쿵쿵 울리게 만드는 드럼과 가디언즈 메인보컬 채드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하나의 불덩이가 되었다.
Damn!
We got no respect.
Gonna shut your Fxxkin mouth,
with a Zip-zap-.
7IN의 팬들 역시 진작 일어나 방방 뛰고 있었으나, 그 와중에도 두 눈은 정신없이 무대 위의 소년들을 찾아 헤맸다.
밴드 음악을 기반으로 한 경연을 준비했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팬들에겐 7IN의 지분 역시 멋진 음악만큼이나, 아니 그보다도 더 중요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덩치의 인혁과 태웅이었다. 시작부터 조각 같은 근육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던 인혁, 그리고 그와 같은 옷차림의 태웅은 드러머의 양쪽에서 거대한 북인 대고(大鼓)를 두들기고 있었다.
쿠우웅, 쿠우우우웅—.
강렬한 킥 드럼 소리에 대고가 얹히자 지진이라도 난 듯 촬영 세트 전체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두 사람이 대고를 내려칠 때마다, 양 팔과 복근은 떨어지는 조명을 받으며 쩍쩍 갈라졌다.
Imma Imma Revolution
By my ill slave,
Behold this anger,
Through the big Damn-.
보컬 채드의 입에서 ‘대염’이 나올 때마다 무대 바닥에서 화염이 일었다. 그 화염이 가라앉자 거문고를 베이스처럼 다루고 있는 군자의 모습이 보였다.
둥, 다당, 두우웅—.
평소엔 선비처럼 고고하게 다루던 거문고였지만 오늘은 더욱 격렬하고 빠른 연주였다. 이펙터를 통해 변질된 거문고 소리는, 락 밴드의 베이스 기타 소리와도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대염, 이젠 불가능한 소화(消火).
나쁜 것만 골라 죄다 소각(燒却).
보컬 채드는 영어로 된 가사를 내뱉었지만, 한 번의 훅이 끝나자 이번엔 한국어가 그 자리를 채웠다. 7IN의 메인보컬 현재와 군자의 하모니였다.
악에 받친 노예들의 소란(騷亂).
이건 이미 소란 아닌 대란(大亂).
성대를 긁는 듯 파괴적인 채드의 보컬에 비해, 동양의 매력이 가득한 현재와 군자의 조합은 색다른 청각적 쾌감을 선사했다.
수많은 악기와 목소리가 결합된 무대였으나, 후방의 컨트롤러 앞에 선 지현수가 사운드 소스를 절묘하게 컨트롤하며 소리들을 하나로 잡아 주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한 손으로는 터치패드를 만지며 무대 컨셉인 ‘대염’에 어울리는 사운드 이펙트를 계속해서 삽입했다.
덕분에 관객석의 온도는 순식간에 치솟아 올랐다. 앞선 세 번의 무대가 아이돌로서의 모습을 어필하는 퍼포먼스였다면, 노예 계급의 무대는 말 그대로 에너지 덩어리 그 자체였다.
와아아아아아아—.
지난 무대와는 전혀 다른 질감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자리에서 일어나 점프하는 관객들 덕분에, 방청석은 해일이라도 일어난 듯 계속해서 물결 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불길은 꺼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작은 불씨가 계속해서 커지듯, 노예들의 대염은 공연장 전체를 집어삼킬 듯 붉게 타올랐다.
“꺄아아아아악—!!”
겨우 1분 만에 방청석에 앉은 팬들의 목청은 쉬어 버렸다. 지금까지 다양한 7IN의 퍼포먼스를 보아 온 팬들이었지만, 이만큼 원초적이며 강렬한 무대는 없었다.
주황색 점프수트를 베이스로, 스카치 질감의 디테일이 들어간 무대의상은 불과 싸우는 소방수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동시에 곳곳이 찢어진 디테일, 가슴팍에 달린 번호 명찰은 감옥에 갇힌 죄수가 떠올랐다.
두 가지의 컨셉 모두 오답이 아니라는 듯, 멤버들의 얼굴 곳곳엔 그을음이 묻어 있었으며 손목과 발목에는 쇠고랑을 연상시키는 커다란 실버 재질의 팔찌와 발찌가 보였다.
콜라보레이션 무대라고 해서 걱정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필 밴드와 콜라보를 해야 한다는 건 현장에 와서야 겨우 알았다.
앞선 세 번의 무대를 보며, 그 퀄리티와 스케일에 기가 눌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밴드 음악과도 완벽하게 어우러져 공연을 펼치는 7IN 멤버들을 보며 팬들은 다시 한번 자부심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애들이 짱이야—!!”
“군자야아아아아—.”
팬들의 환호성은 거대한 화염의 불쏘시개가 되어 주었다. 그 에너지를 느낀 듯, 무대 위의 멤버들 역시 끝을 모르며 타올랐다.
치솟은 불길이 천장에 닿을 듯 했다. 달아오른 체온 때문인지, 기화한 땀이 마치 멤버들의 몸을 휘감은 아우라처럼 보였다.
Imma Imma Revolution
By my ill slave,
Behold this anger,
Through the big Damn—!!
그렇게 절정까지 내달리듯 2절의 후렴까지 도착한 노래는 어느덧 잦아들며, 드럼과 대고 소리만을 남겼다.
쿠우웅, 쿠우우우우웅—.
그 리듬을 휘감듯 군자의 거문고 소리가 아련하게 흘렀다. 이번엔 이펙터가 빠진 순수한 거문고 소리였기에, 소리는 보다 처연하고 구슬펐다.
노예의 가슴 속엔 분노 외에 다른 감정도 존재할 터. 그 비애를 표현하듯, 노예의 옷을 입은 유찬과 시우가 나타났다.
다앙, 다아앙—.
거문고 가락에 맞춰 두 멤버가 무용을 하듯 무대 위를 유려하게 누볐다. 앞선 무대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분위기였으나, 이상하게도 동떨어진 다른 퍼포먼스라는 느낌은 없었다.
두 사람의 표정과 몸짓에서 노예의 애환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머리 위로 떨어진 핀 조명이 얼굴의 굴곡을 부각시켜, 감정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컨트롤러 앞에 앉은 현수가 사운드 소스를 추가하자 거문고 가락 위에 대금 소리가 얹혔다. 국악기 두 개의 선율이 얽히니 애절함은 한층 배가됐다.
그러나 구슬픈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여덟 마디를 채운 뒤 국악 2중주는 서서히 잦아들었고, 무대엔 또 한번 타악기 소리만이 남았다. 동시에 제각기 자리에서 악기를 연주하던 일곱 명의 7IN 멤버들이 무대 중앙에 도열했다.
휘익—.
시우와 유찬이 노예의 옷을 벗어던지자 작은 비명이 터졌다. 그러나 그 안엔 맨몸이 아닌 주황색 점프수트가 자리잡고 있었다. 나머지 다섯 멤버들의 것과 같은 의상이었다.
모든 멤버들의 의상이 하나의 톤으로 통일되자, 베이스 기타의 이펙터가 바뀌며 새로운 톤의 연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두웅, 두웅, 두우우웅—.
펑키한 베이스를 중심으로 리듬악기들이 소리의 층을 쌓았다. 일곱명의 7IN 멤버들은 자유롭고 가벼운 스텝으로 그 위를 훨훨 날았다. 주황색 점프수트를 입은 소년들의 모습은 마치 덩어리로 일렁이는 하나의 불꽃 같았다.
두둥, 두우웅, 지이이이잉—!!
타격감 좋은 베이스 위에 가벼운 일렉기타가 얹히자 경쾌함이 배가됐다. 국악기가 흐르던 순간의 구슬픈 느낌은 이제 없었다. 대신 자유를 찾은 노예들이 미소를 지으며 가뿐한 몸동작으로 군무를 선보였다.
평소처럼 칼 같이 맞는 춤사위는 아니었으나 오히려 그런 모습이 자유로움을 부각했다. 제멋대로 팔을 내던지고, 시선을 사방으로 던지며 환하게 웃는 소년들의 모습에 팬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분노에서 애수로, 또 애수에서 환희로.
노예가 된 자들의 감정 흐름에 따라 무대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그렇기에 각기 다른 요소로 구성된 퍼포먼스였음에도 통일성이 느껴졌다.
아까부터 모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있던 심사위원들도 모두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역시 7IN이야, 멋져—!!”
“가디언즈 연주 진짜 짱이네—!!”
그러나 표정이 좋지 않은 심사위원들도 있었다.
앞선 무대에서 역할 배분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했던 이들이 그랬다.
짜임새 있는 좋은 무대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완벽한 무대는 아니다. 가디언즈 멤버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악기 연주만 했으니까.
연주 외의 퍼포먼스는 1초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걸 아이돌 무대라고 볼 수 있을까.
테이보의 피호우캄 역시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연주하는 놈들은 춤 하나 안 추고 날로 먹은 거 아냐?”
물론 연주 역시 대단한 능력이며 음악을 구성하는 요소였지만, 앞선 무대에서 AKIRA의 부족한 댄스 파트를 지적한 바 있는 심사위원이었다.
이 무대 역시 같은 기준으로 심사한다면, 그 부분에서 감점을 면하기 어려울 터.
그러나 피호우캄이 회심의 미소를 지은 순간, 무대의 구성은 다시 한번 달라지기 시작했다. 안무가 자연스레 마무리되자 베이스와 일렉기타 소리가 잦아들며, 다시 한번 웅장한 타악기 소리가 공간을 메웠다.
쿠웅, 쿠우웅, 쿠우우웅—.
이번엔 조명까지 어두워졌다. 드럼 소리만을 남긴 채 암전된 무대를 보며, 모두가 ‘이게 끝인가?’라고 생각한 순간이었다.
쿠우우우웅—.
어두웠던 무대에 붉은 조명이 떨어짐과 동시에 무대 위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7IN과 가디언즈 멤버들, 거기에 열 명이 넘는 백업 댄서들이 고개를 숙인 채 무대 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쿠우우우우웅—.
다시 한번 떨어진 거대한 드럼 소리, 그에 맞춰 수십 명의 인원이 칼 같은 타이밍에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 그들의 눈 아래엔 턱까지 떨어지는 검은색 페이스페인팅이 되어 있었다.
“Hah—!!”
보컬 채드의 우렁찬 선창에 모든 인원이 동시에 기합을 넣으며 관객들의 고막을 쩌렁쩌렁 울렸다.
모두가 그 기세에 압도당한 순간.
무대 전체를 뒤덮을 듯한 화염과 함께, 마오리의 전통 의식인 ‘하카’ 군무가 시작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