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62)
#162
위험한 영어
여러 개의 청량 컨셉 아이돌 퍼포먼스를 보고 나서야, 군자는 비로소 청량이 무엇인지 깨달은 것 같았다.
“옳거니, 이런 갬성이로구나.”
“그래. 이제 좀 이해가 되니?”
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확실히 아주까리기름의 느낌과는 다르다. 그보다 훨씬 더 산뜻하고 시원한 무언가가 상큼하게 팡팡 터지는 느낌이어야 한다.
이렇게 보니, 어째서 SHINO가 7IN의 약점으로 ‘청량’을 선정했는지 알 것 같았다. 확실히 ‘청량’은 그 동안 7IN이 해 왔던 무대들과는 반대되는 성격의 컨셉이었다.
“흐음, 그럼 이번엔 어떻게 무대를 꾸며 볼까.”
“이번에도 말장난으로 해 보는 건 어때여?”
“말장난? 어떻게?”
“‘명랑 청량’을 줄여서 ‘명량’으로 가는거져.”
“···허, 헉, 명량···.”
“와우···.”
“···서 팀장님한테 거북선 만들어 달라고 해야겠네.”
“아하하, 명량이면 이순신 장군은 누가 하지~”
“어어, 난 그건 반대야. 이번엔 가사에 제시어를 넣는 게 아니라, 명백히 ‘청량’을 컨셉으로 무대를 꾸며야 하는 미션이니까. 게다가 말장난은 우리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잖아. 무엇보다, 일본 친구들은 중국 애들이랑 다르게 우리를 크게 도발한 적도 없고.”
“하긴, 그렇네여. 갑자기 명량으로 급발진하면 진짜 시비 걸고 싶어서 미친 사람들처럼 보이겠넹.”
“그래. 이순신 장군 컨셉 무대는 나도 생각한 적 있는데, 그건 나중에 하자. 우선 지금은 청량 컨셉 무대를 만들어 보자고.”
청량, 청량이라.
그 때까지 잠자코 턱을 괸 채 생각에 잠겨 있던 군자가 아이디어 하나를 툭 던졌다.
“첫사랑.”
“음?”
“첫사랑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 보는 건 어떨까?”
“오, 첫사랑?”
“뻔하긴 해도 청량이랑은 잘 붙을 것 같네.”
“우리는 청량 쪽 무대는 해 본 적 없으니까, 이런 보편적인 키워드로 접근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여.”
“아하하, 나도 좋아~ 첫사랑 얘기 재밌잖아~”
“흐흐, 시우가 뭘 좀 아네.”
“군자야~ 첫사랑 얘기 해 줘~”
“으음? 내가? 어째서?”
“첫사랑 얘기 꺼낸 사람이니까~”
“흐음, 첫사랑이라···.”
“우왕, 진짜 말해 줄 건가 봐여!”
군자가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자 나머지 멤버들이 촉각을 곤두세웠다. 생각해 보니 군자의 연애사는 도통 들어 본 적 없는 멤버들이었다.
“군자 너, 연애는 해 봤냐?”
“누군가와 교제를 해 본 적은 없지만··· 짝사랑이라면 나도 해 봤다.”
“미쳤다. 그 얼굴로 짝사랑을 했다거여?”
“대체 그 축복 받은 존재는 누구래?”
“···구, 군자 형이 짝사랑···.”
“흥미로워.”
“무친, 혁이 형아 눈 반짝이는 거 봐여! 무서워!”
“하하, 다들 진정해라. 사실 별 이야기도 아니다.”
멤버들을 진정시키며 군자가 말을 이어 나갔다. 때는 군자가 열네 살이 되던 해의 가을이었다. 뜨거웠던 여름이 끝나고, 갈색 나뭇잎이 하나씩 떨어지기 시작할 때 즈음 군자는 첫사랑을 만났다.
“첫 만남은 우연이었다. 숙부 몰래 기루에서 비파 수업을 받다가, 저녁 즈음에 몰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를 처음 만났지.”
“오오, 어땠는데여?”
“예뻤어?”
“누구 닮았는데?”
“누구를 닮았는지는 모르겠다만, 눈이 아주 맑고 아름다웠다.”
“우와앙—.”
“우연히 눈이 마주쳤는데, 그녀는 절대로 내 눈을 피하지 않으며 나를 똑바로 응시했지.”
“우와아악, 대박, 대박.”
“···그,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내가 먼저 눈을 피해 버리고 말았다.”
“에잉, 졌네 졌어! 유군자 패배!”
“태웅아, 사랑은 승부가 아니란다.”
“그러냐? 초장부터 기선제압 당한 거 아님?”
“에효···.”
“뭐야, 유군자 너 왜 한숨 쉬어? 나 무시해? 나도 연애 해 봤거든?”
“어쨌거나, 그 첫 만남과 동시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지.”
군자는 태웅을 외면하며 첫사랑 썰을 계속해서 이어 나갔다.
“우연한 첫 만남이 그렇게 끝나고, 다시는 그녀를 만나지 못할 줄 알았다.”
“근데 또 만났구낭!”
“그래. 같은 길을 걷던 도중에, 우연히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그때는여? 설마 또 눈 피했어여?”
“아니, 이번엔 나도 용기를 냈다.”
“오오, 안 질라고 용 썼구만.”
“태웅아, 조용히 해 줘.”
“헐, 혁이 형이 누구 혼내는 건 처음 봐여!”
“서로 쳐다보기만 한 거야~?”
“아니. 한참 나를쳐다보던 그녀가 먼저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헌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을 보니 내 눈도 천천히 감기더구나.”
“그러고 나선? 어떻게 됐는데여?”
“이번엔 그녀가 먼저 내게로 다가왔지.”
“헐, 허얼, 허어얼—.”
“오오, 그럼 군자가 이긴 건가—!?”
“태웅아, 조용히 좀.”
“···그, 그 분이 먼저 말을 거셨어요?···.”
“아니, 말을 걸지는 않았다. 들릴 듯 말 듯 작은 속삭임만 남기고, 옷깃을 스치며 지나가 버렸지.”
“우왕, 뭔가 신비스러운 분이넹.”
“그래. 신비스럽다는 표현이 정확하구나.”
“그래도 둘이 뭔가 통하는 게 있었나 보다. 초면인데도 그렇게 서로 한참 쳐다볼 정도면.”
소년들은 어느새 군자의 첫사랑 이야기에 푹 빠져 있었다.
“그 다음엔여? 또 같은 곳에서 만났어여?”
“아니. 이번엔 감나무 아래에서 만났다. 잎사귀가 떨어지기 시작한 감나무를 바라보며, 그녀는 어쩐지 조금 울적한 표정이었지.”
“아하하, 이번에도 쳐다보기만 한 건 아니겠지~?”
“아니, 이번엔 내가 먼저 용기를 냈다.”
“오, 어떻게?”
“먼저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보았지.”
“헐, 갑자기 스킨십?”
“이 형아 완전 요망한 형아였네.”
“···그, 그래서 그 분이 잡으셨어요?···.”
“아니이···.”
“푸하학, 갑자기 우울해지는 거 봐.”
“내가 섣불렀지. 잠깐 내 손을 째려보더니, 내 손등을 팍 치곤 사라져 버렸다.”
“아이고, 아이고···.”
“어떡해여, 되게 보수적인 분이셨나 보다.”
“그럼 그렇게 끝이야? 다시 못 본 거?”
“군자가 졌네. 유군자 패배!”
“이 미친놈아, 연애에 승패가 어디 있냐고.”
하지만, 잠시 울적했던 군자의 표정은 다시 밝아졌다.
“그러나 만남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감나무 아래에서 그녀를 만났지.”
“은근히 질긴 인연이네여.”
“그래서, 이번엔 어떻게 했는데?”
“그녀는 또 감을 쳐다보고 있었지. 마침 내 품엔 기루에서 얻어 온 홍시가 하나 있었고.”
“우왕, 홍시!”
“품에서 홍시를 꺼내 조심스레 그녀에게 내밀어 보였다. 관심을 갖는 것 갖기에 절반으로 잘라서 과육을 보여주었지.”
“아니 이 형아 진짜 좀 이상하네. 스킨십이 안 통하니까 먹을 거로 유혹한 거예여?”
“아하하학, 그래서 성공했어~?”
시우의 질문에 군자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홍시 맛을 보더니, 그토록 도도했던 그녀가 달라졌다.”
“아니, 심지어 그 홍시 플러팅이 통했다거여?”
“그건 플러팅이 아니라 프루팅이다.”
“푸하하하학, 프루팅이래—.”
“혁이 형, 엄근진한 얼굴로 웃기지 좀 마여.”
“아니 이거 처음엔 아련했는데 왜 이렇게 갈수록 웃기냐.”
“···호, 홍시를 엄청 좋아하는 분이셨나 봐요···.”
“그래서, 그 뒤로는 잘 된 거야?”
“잘 됐다는 것의 기준은 모르겠다만··· 그 이후로는 종종 밤거리를 함께 산책했다. 홍시를 나눠 먹고, 때로는 그녀가 내 무릎 위로 올라오기도 했지.”
“헐, 허얼, 형아 애기 때 아님여?”
“과감했네 아주.”
“···그, 그럼 뽀, 뽀뽀는···.”
“후후, 역시 유찬이는 혈기왕성한 청년이라 그런 것에 관심이 많구나.”
“아, 아니에요! 전 그냥···.”
“하지만 우리는 입맞춤보다 눈맞춤을 더 좋아했단다.”
그러나 군자의 첫사랑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함께 눈을 맞추고, 머리를 쓰다듬고, 가끔은 홍시를 나눠 먹었던 군자의 첫사랑은 어느 날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고 했다.
“허얼··· 어떡해.”
“그냥 말도 없이 사라진 거야? 연락도 안 남기고?”
“어쩔 수 없지. 그 땐 스마트폰 같은 것도 없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그 때가 언젠데. 군자 너 대체 어떤 세상을 살아왔던 거야···.”
“어쨌거나, 그것이 내 첫사랑이었던 것 같구나.”
“···스, 슬퍼요···.”
“그러게. 갑자기 없어졌다니··· 그거 완전 잠수이별이잖아.”
“그나저나 궁금하네. 대체 어떤 사람이 군자 마음을 쌔비고 도망간 거야?”
“아하하, 사람~?”
“응? 시우 넌 뭐 아는 거 있냐?”
“글쎄에~ 하지만 난 군자가 누굴 좋아했는지 조금 알 것 같네~”
“뭐야, 나도 알려줘!”
그렇게 군자의 첫사랑 이야기가 끝난 뒤, 다른 멤버들도 첫사랑 이야기를 짤막하게 해 주었다.
“···저, 저는 아직 첫사랑은 없는 것 같아요···.”
“그래, 유찬이는 아직 애기니까.”
“하지만 너 좋아한 애는 있었을걸? 으흐흐.”
“저도 아직 없어여. 막 누가 엄청 좋아서 떨리고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은뎅.”
“그래? 난 너 연애 한 10번은 한 줄 알았지.”
“헤엑, 절대 아님여.”
“그럼 그 온갖 기갈은 다 어디서 배운 거냐?”
“으음, 글쎄여? 누나가 세 명이라 이렇게 컸낭, 헤헤.”
아직 첫사랑을 경험한 적 없다고 말한 유찬과 현재에 이어, 현수가 입을 열었다.
“난 초등학교 때 윗집 살던 누나···.”
“전형적이구만.”
“설마 누나가 이사 가면서 끝난 얘기임?”
“어? 어떻게 알았냐?”
“우우, 재미없어—.”
평범의 극치였던 현수의 이야기가 끝나고, 이번엔 태웅의 차례였다.
“난 태권도장 같이 다니던 애였는데.”
“태권도? 넌 진짜 몸으로 하는 건 다 했네.”
“여자한테 발린 건 처음이었거든.”
“푸하하하, 맞아. 초등학교 고학년 땐 원래 여자애들이 더 크잖아.”
“근데 그거 사랑 맞아? 승부욕 아니고?”
“지현수 니가 뭘 모르네. 사랑도 승부욕이야.”
“아니야 이 미친놈아···.”
시우와 인혁의 첫사랑은 한국인이 아니었다.
“아하하, 난 첫사랑이랑 잠깐 연애 했었지~”
“오오, 누구였는데.”
“에밀리 누나~ 아마 아직 파리에 있을걸~”
“허얼, 프랑스 분이셨구나. 뭔가 멋진데여?”
“나도 외국인이었다. 이름은 마리아였고···.”
“마리아? 그 분이 갱단 두목의 여자친구였던 거구나.”
“···아니야··· 독서클럽에서 만났던 친구야···.”
그렇게 흥미진진한 첫사랑 썰 풀기 시간이 끝나고, 멤버들의 마음은 어느 정도 하나로 모였다.
“그럼 청량청량 노래는 첫사랑 테마로 해 볼까여?”
“좋아, 진행시켜!”
“푸하학, 한 개도 안 똑같아.”
“···성대모사 아니었거든?”
“현재, 그런 말 하면 안 돼. 얘 성대모사에 부심 있다고.”
그렇게 7IN이 ‘청량’ 컨셉 경연곡의 테마를 잡아 나가는 동안, 일본 팀 SHINO는 영어 발음 지옥에 빠져 있었다.
SHINO의 약점을 정해 준 팀은 가디언즈. 가디언즈는 SHINO의 어설픈 영어 발음을 약점으로 지적했다. 그 때문에, SHINO의 이번 경연곡엔 많은 영어가사가 들어가야 했고.
마침 회의를 끝낸 군자는 다이너스티 캐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먼 발치에서 SHINO가 연습하는 소리가 들리기에, 흥미가 생긴 군자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Father, Mother···.
···And My Big Brother···.
···My Big, Big Brother···.
“흐음?”
가사를 듣던 군자의 귀가 쫑긋쫑긋 움직였다. 서구의 언어이자 현 세계 공용어인 영어는 군자도 언제나 관심을 갖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군자도 틈틈이 영어 공부를 했다. 이젠 기본적인 단어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는 군자였다.
하지만 저 가사는 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구나!
군자는 SHINO가 연습하던 가사를 중얼중얼 되뇌며 메인 홀을 거닐었다. 마침 그 모습이 벨로체의 멤버 한 명의 눈에 들어왔다.
“!”
그 모습을 보자 마자, 벨로체의 멤버는 황급히 7IN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알렸다.
“야, 빨리 메인 홀로 가 봐!”
“에? 왜여, 무슨 일 있어여?”
“군자가 메인 홀에서 부라자, 부라자 하면서 걸어다니고 있다고!”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