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82)
#182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회의실에 들어온 식칼을 손에 쥔 것은 군자와 유찬이었다.
“흐으음···.”
도토리묵과 식칼을 보자마자 백중헌은 퍼포먼스를 예측할 수 있었다. 도토리묵이야 워낙 칼에 잘 썰리는 식재료였으니, 아마도 도토리묵을 빨리 써는 퍼포먼스를 선보일 테지.
백중헌의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군자와 유찬이 준비한 것은 날카로운 식칼로 빠르게 도토리묵을 썰어 버리는 퍼포먼스였다.
그러나, 그 스피드만큼은 백중헌조차도 상상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파바바바바바바밧—···.
“—!?!?”
무공이라도 사용하듯 현란하게 날린 검격에, 갈색의 도토리묵은 속절없이 입방체 형태로 썰려 나갔다.
“우와아아아아—!!”
회의실의 모두가 환호성과 함께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 놀라운 칼솜씨에는 백중헌마저 입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시상에···.”
평소 무협지를 즐겨 읽던 백중헌이었기에 감동은 더했다.
“이건··· 이건 분명 먹히겠는데유.”
“정말입니까?”
“나같은 남자 손님들은 무조건 좋아할 수밖에 없을 것 같고, 여자 손님들도 안 좋아할 이유가 없쥬.”
“감사합니다!”
“마침 식당 위치가 산 아래라는 것도 절묘한 게, 꼭 산에서 도를 닦고 내려온 절정고수 같잖아유?”
극찬에 신이 난 군자는 계속해서 멋진 검술을 선보였다.
파바바바바밧—.
“삼각 썰기이옵니다!”
“오오오—.”
파바바바바바바밧—.
“쐐기 모양 썰기랍니다!”
“오오오오—!!”
파바바바바바바바밧—!!
“꽃과 나무를 동시에 표현해 보았습니다!”
“뭐야, 이것도 된다고—!?”
파바밧, 파바바밧, 파바바바바바—···.
“후후, 이번엔 백 선생님 얼굴 모양입니다!”
“이건 뭐 어떻게 한 거야—!?”
“무서워! 똑같잖아!”
신기에 가까운 군자의 기술에 모두가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퍼포먼스는 퍼포먼스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군자와 유찬이 완벽하게 썰어 놓은 도토리묵은, 마치 컨베이어 벨트를 지나가듯 멤버들의 앞으로 지나갔다. 썰어 놓은 도토리묵을 메뉴로서 완성시키는 것은 멤버들의 몫이었다.
양념을 뿌리고, 고명을 얹고, 플레이팅의 디테일까지 잡으니 순식간에 손님에게 내도 손색이 없을 만한 비주얼의 도토리묵이 완성됐다.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며 백중헌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퍼포먼스의 수준도 수준이거니와, 메뉴를 만드는 데에 필요한 효율까지 생각한 훌륭한 기술 아닌가.
“이건··· 뭐 손 볼 것도 없어유.”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오히려 내가 배워야겠구만.”
“헤헷.”
“솔직히 여러분들 섭외됐다고 했을 때, 내가 많이 가르쳐야 될 줄 알았어유. 그런데 반대로 내가 자극도 받고, 영감도 얻어 가유. 진짜 고맙네.”
백중헌을 포함해 회의실의 모두는 의욕이 가득해 보였다. 모두 3월에 있을 [맛집메이커> 촬영에 총력을 기울일 생각이었다.
“양 피디님, 3월까지 식당 로케이션 섭외 가능하겠쥬?”
“해야죠, 무조건 해야죠. 칠린 여러분들이 이렇게까지 디테일하게 준비해 주셨는데, 저희도 힘 써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 생각도 그래유. 만약 가게 안 구해지면 내 힘으로라도 어떻게든 빼 볼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우리는 식당 준비만 열심히 하자구유.”
“넵 선생님,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길어질 줄 알았던 제작회의는 7IN의 활약 덕분에 순식간에 마무리됐다.
많은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모든 제작진이 만족한 듯한 표정이었다. 특히 백중헌은 누구보다 흐뭇한 표정으로 멤버들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나누었다.
“칠린이라고 했쥬?”
“넵, 선생님.”
“아니, 내가 선생님이라고 해야겠어유. 나 오늘 완전 팬 됐어유.”
“헤헷, 감사합니다!”
“그럼 3월에 보자구유. 그때까지 건강하시고.”
짧지만 강렬했던 [맛집메이커> 제작회의를 그렇게 마치고 난 뒤, 7IN 멤버들에겐 꽤나 긴 휴식기가 주어졌다.
“실장님, 그러면 저희 24일 크리스마스 라이브 이후로는 쭉 일정이 없는 거예여?”
“어, 그러네. 24일에 크리스마스 라이브 하고, 31일에 신년 카운트다운 하고, 명절에 한복 행사 하나 있긴 한데··· [맛집메이커> 촬영까지는 쭉 일정 없어.”
“후후, 그러면 드디어 때가 온 거네요.”
“음? 무슨 때? 실컷 놀 때?”
“에이 실장님, 무슨 말씀이세요. 이제 정규앨범 준비해야죠.”
모처럼 활동 휴지기가 생겼지만, 멤버들은 마냥 놀고 먹으며 쉴 생각이 없었다.
[맛집메이커> 촬영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3개월.10곡 이상이 수록된 정규앨범을 준비하기엔 짧은 텀이긴 했지만, 정규앨범에 대한 멤버들과 솔라시스템의 의지는 강력했다.
“이제 곧 7IN도 2년차 아이돌이 됩니다. 조금 힘들겠지만, 이제는 정규앨범 준비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입니다.”
“에이 팀장님, 아니에요. 앨범 준비는 회사 분들이 더 힘드시죠.”
“못 믿으실지도 모르겠지만, 저희는 일하는 게 즐겁습니다.”
“예에?”
멤버들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회의실을 돌아보았다.
자리에 앉은 솔라시스템 직원들은 하나같이 턱끝까지 다크서클이 내려와 있었지만, 모두 꽤나 행복한 표정이었다.
“헤헤, 우리는 정말 즐겁다구~”
“걱정 안 해도 돼 얘들아~”
“즈, 즐거우신 거 맞죠?”
“물론입니다. 모두 최고의 아이돌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신다면 감사하겠지만, 그래도 건강은 챙기시는 게···.”
“그리고, 상여금도 많이 받았습니다.”
“아하?”
“실제로 대부분의 직원이 자진하여 야근을 하고 있답니다.”
“···이야아, 역시 금융치료만한 게 없군요?”
첫 정규앨범인 만큼, 솔라시스템 측에서도 많은 것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체적인 앨범의 컨셉과 스토리라인, 뮤직비디오 제작은 물론 앨범 발매와 동시에 진행되는 대형 쇼케이스, 투어 공연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여러분의 인기는 우리가 체감하는 것 이상으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특히 해외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습니다. 속단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마 정규 1집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차트 진입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와아···.”
“여러분들의 미니 앨범 뮤직비디오, 경연 영상의 조회수가 상승하는 추이를 보면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이미 7IN은 글로벌한 그룹이 되어 가고 있어요.”
“···뭔가 실감은 안 나지만 엄청 가슴이 웅장해지는데여.”
“그렇기에, 이번 정규앨범 발매 후엔 월드투어 일정을 가져 보면 어떨까 합니다.”
“워, 워, 월드 투어요?”
월드투어라는 거창한 단어에 멤버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러나 요즘 아이돌들에게 월드 투어는 더 이상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K-POP은 이미 전 세계에 굳건한 팬덤을 보유한 인기 장르가 되었고, 7IN은 그 K-POP 아티스트들 중에서도 가장 뜨거운 인기를 구가하는 그룹이었으니까.
하지만 서은우 팀장은 이번에도 먼저 멤버들의 의견을 물었다.
“월드투어에는 많은 이점이 있습니다. 해외 팬들에게 여러분들의 이름을 각인시킬 수 있음은 물론이고, 엄청난 경제적 부가가치도 발생할 겁니다. 쉽게 말해, 정산액의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저, 정산···.”
“유찬아, 눈이 너무 반짝반짝 빛나는구나.”
“···아, 아니에요 그런 거!···.”
“정산은 좋은 거죠. 회사의 입장에서도 높은 수익이 발생할 월드투어를 마다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이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기에 앞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묻고 싶었습니다.”
침을 꿀꺽 삼키는 멤버들을 향해, 서은우 팀장이 질문을 던졌다.
“제 질문은 간단합니다. 여러분들, 월드 투어 하고 싶습니까?”
잠시 서로의 얼굴을 보던 멤버들은, 굳이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아도 이미 뜻이 통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로 입을 연 것은 태웅이었다.
“방금 전까지 일곱이서 꽁냥대면서 제이라이브 하고 왔는데 갑자기 월드투어라니··· 좀 실감이 안 나긴 하는데, 사실 월드투어 하면 좋을 것 같기는 해요. 해외 팬 분들도 만날 수 있고, 팀장님 말대로 돈이 나쁜 것도 아니고요.”
“···.”
“그런데, 솔직히 저희는 아직 국내 팬분들을 더 자주, 가까이서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 같아요.”
“···그렇군요.”
“아직 국내 단독 콘서트도 해 본 적 없는데, 벌써 월드투어부터 한다는 건 조금 어불성설 아닌가 싶기도 하고.”
태웅의 말에 군자가 기특하다는 듯 어깨를 주무르며 활짝 웃었다.
“세상에, 태웅아!”
“그치? 군자 너도 같은 생각이지? 우리 다 통한 거지?”
“네가 이제 사자성어를 인용해서 대화를 하는구나!”
“아니 젠장할, 거기에 감탄한 거였어?”
“물론 본론에도 충분히 공감한단다.”
군자가 태웅의 말을 받으며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물론 모든 팬분들이 다 소중합니다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준 것은 국내 팬 분들의 힘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맞는 말입니다.”
“모든 예법엔 언제나 순서가 깃들어 있지요. 하다못해 반찬을 먹는 예법에도 순서가 있는데, 국내 팬 분들보다 해외 팬들을 먼저 만나러 간다는 것은 순리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의 의견은 해외 투어보다 국내 단독 콘서트가 우선이다, 이렇게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일곱 멤버들이 모두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넵, 저희는 국내 콘서트부터 하고 싶어여!”
“김칫국일지 모르겠는데, 돈은 어차피 많이 벌어도 쓸 시간도 없는데요 뭐.”
“···죄송합니다, 저희가 너무 일정을 많이 잡아서···.”
“아니에요 팀장님. 배려해 주시는 거 다 아는데요 뭐.”
“그건 그렇고, 저희 앨범 구성품 아이디어 가져왔는데 한번 같이 보실래요?”
월드투어를 마다하고, 대신 소소한 앨범 구성품 아이디어를 가져왔다는 멤버들을 보며 서은우 팀장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이제는 어깨에 뽕도 좀 들어가고, 연예인병에 좀 걸릴 때도 됐는데, 이 소년들은 어찌 된 일인지 근본을 잃는 일이 없었다.
처음엔 군자 때문에 붙은 ‘선비돌’이라는 애칭이었지만, 이제 서은우 팀장의 눈에는 멤버 하나하나의 인격이 보였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아육시라는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보물 같은 일곱 소년들이 데뷔할 수 있었던 것은 실로 엄청난 행운이었다.
생각해 보면 데뷔가 유력했던 멤버들은 거의 대부분이 탈락했다. 반면 군자와 친목을 나누며 아래서부터 올라온 멤버들이 최종 승자가 되며 7IN으로 데뷔했고.
선비가 자연스레 선비를 모이게 만든 걸까?
어찌 됐든, 이 팀을 맡을 운명이었던 서은우 팀장에겐 잘 된 일이었다.
구성품 아이디어요? 어떤 아이디어입니까?”
“그 왜, 앨범에 포토카드 넣어서 드리잖아요. 요즘엔 그 포토카드를 끼울 수 있게, 앨범에 탑로더도 같이 넣어 드리는 경우도 있다던데.”
탑로더란 PVC로 만들어진 일종의 작은 보관함이었다. 팬들에게 포토카드란 무엇보다 소중한 물건이니, 이 포토카드를 보관하기 위해 탑로더를 별도로 구매하는 경우도 많았다.
“네, 맞습니다. 팬 분들이 포토카드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으니, 카드를 보관할 수 있는 탑로더를 구성품에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그 탑로더를 그냥 기성품으로 하지 말고, 재미있는 물건으로 자체제작 해 보면 어떨까 싶어서요.”
“탑로더를 재미있는 물건으로 대체한다고요? 어떤 식으로 말입니까?”
“저희가 그림을 그려 와 봤는데, 이런 식으로···.”
군자가 그려 온 그림을 본 서은우 팀장의 눈이 단숨에 휘둥그레졌다.
“이, 이건···!”
이건 무조건 이슈가 될 수밖에 없는 아이템이다.
아니, 이 아이들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