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89)
#189
형광바지 패거리
기본적으로 군자는 유순한 성격이었다.
개성 강한 동료들과 합숙하면서도 갈등 한 번 빚은 적이 없었고, 누군가와 부딪힐 것 같으면 먼저 예의바르게 굽히는 것이 생활화된 소년이 군자였다.
그러나 선을 넘는 이들에게까지 마냥 유순하지는 않았다.
시대를 건너뛰어 오기 전부터 그랬다. 군자가 가야금을 배우던 기루는 횡포 부리는 날패들의 천국이었다.
어느 정도의 심술이야 군자도 기생들도 그러려니 했지만, 종종 기생들을 물건 이하의 것으로 취급하는 쓰레기들도 있었다. 내세울 만한 가문도 아닌, 고만고만한 양반가의 못 배워먹은 자제들이 주로 그러했다.
군자는 놈들의 횡포를 참지 않았다. 선을 넘는 불의를 목격한 날엔, 서슴없이 각시탈로 얼굴을 가리고 놈들의 면상을 두들겨 팼다.
퍼억, 퍼어어억—.
“어이쿠—.”
“으아악—!!”
“이, 이 놈이··· 허윽—.”
각시탈 쓴 귀신의 소문이 돌자 날패들은 더 이상 기루에 출입하지 않았다. 사서오경의 가르침에 따라 세상을 살아가려 한 군자였으나, 때로는 주먹이 공맹(孔孟)의 말씀보다 효과적일 때도 있었다.
형광바지 패거리는 총 셋. 꽤나 위협적인 덩치를 가지고 있었으나 군자는 그들이 딱히 두렵지 않았다. 허리춤에 단도를 찬 양반 놈들과도 망설임 없이 드잡이질을 했는데, 하물며 맨몸의 지방덩어리들 쯤이야.
저벅, 저벅—.
군자의 발걸음엔 거침이 없었다. 형광바지 패거리 역시 군자의 존재를 인식한 듯 고개를 돌렸다.
“뭐여 저건.”
“또 기생오래비야? 시벌, 여기 호빠야?”
그러나 그 때, 누군가가 군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맛집메이커>의 조연출 한지현이었다.
“군자 씨, 여기는 저희가 정리할게요.”
“···하지만···.”
“나와 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데, 이런 신세까지 질 순 없죠. 맡겨 주세요.”
단호한 어투로 군자의 개입을 막은 조감독 한지현은, 이내 크게 숨을 들이쉬며 형광바지 패거리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양홍석 PD가 아직도 그들과 대치 중이었지만, 왜소한 체격의 양홍석 PD는 그들에게 어떤 위협도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저기요, 선생님들.”
“선생 아닌디요? 학교도 안 나왔는데 뭔 선생?”
“아줌마는 또 무슨 용건이신데?”
“나가 주세요. 지금 촬영 중이라는 말, 이해 못 하세요?”
“그러니까 우리는 밥을 먹어야겠다니깐. 식당에서 밥 찾는 게 죄야?”
“죄송한데 점심 영업 끝이에요. 나가세요.”
“뭔 소리야, 저기 3시까지라고 써 있구만. 손님을 기만해? 우리가 좆으로 보여?”
“그냥 빨리 나가 주세요. 예?”
그렇게 말하며 한지현은 형광바지 패거리를 향해 손을 뻗었고.
“시발, 어따가 손을 대!”
파아앗—.
형광바지 패거리 중 한 놈이 그 손을 냅다 쳐내자, 한지현의 팔이 힘없이 뒤로 홱 돌아갔다.
“아악—!!”
“푸하핫 시발, 엄살은.”
그 모습을 본 군자의 눈에 불이 퍽 들어왔다.
기루에서 각시탈을 썼던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이 자들은 선을 넘었다.
조연출 한지현 때문에 멈췄던 발걸음이 다시 움직였다. 이제 양홍석 PD, 한지현 조연출에 이어 군자 역시 그들의 앞에 섰다.
“팔뚝에다 잉어를 그려 놓으셨구려.”
“뭐? 갑자기 뭔···.”
“잉어는 입신(立身)과 출세(出世)의 상징이거늘, 이런 인성으론 출세는커녕 평생 촌부로 썩게 될 거요.”
“푸하하, 얘 컨셉 독특하네? 뭐 잘못 드셨어요?”
“내 기회를 줄 터이니, 지금이라도 뉘우치고 조용히 사라진다면···.”
“아 시발, 밥 달라고 밥!”
군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지현의 손을 친 양아치가 군자의 뒷덜미를 덥석 잡았다.
“···!”
현대로 건너온 뒤, 그 누구도 군자를 그런 식으로 다룬 적이 없었다. 뒷덜미를 잡아 바닥에 찍어 누르는 것은 숙부 유형원의 방식이었다.
어린 군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 짓을 할 때마다, 숙부 유형원은 군자의 뒷덜미를 잡아 바닥에 짓이기며 짐승 같은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군자에게 좋은 추억일 리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끔찍한 기억이었다.
현대로 건너오며 좋은 추억만을 쌓아 왔기에 잊고 있었지만, 형광바지 패거리의 물리적 접촉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퍼뜩 떠오르게 했다.
그 이후로는 몸이 절로 움직였다.
최우선 응징 대상은 군자의 목덜미를 잡은 양아치였다. 뒷덜미를 잡은 손을 번개처럼 낚아챈 뒤, 그대로 팔과 어깨를 통째로 잡아 돌리자 양아치의 비대한 거구가 공중을 회전했다.
쿠우우우우웅—!!
“흐어읍—.”
등으로 떨어진 양아치는 숨소리도 내지 못하며 고통스러워 했다.
“시발, 뭐야 이 새끼!”
“그래 한번 죽어 보쟈 새꺄.”
남은 형광바지 두 놈이 비속어를 내뱉으며 임전 태세를 취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휘이익—.
비대한 몸집의 형광바지가 휘두르는 주먹은 부질없이 허공을 갈랐다.
휘이익, 휘이이익—!!
두 번째, 세 번째 주먹까지 피해 낸 뒤, 이번에도 군자의 억센 손아귀가 놈의 손목과 어깻죽지를 잡아챘다.
꽈아악—.
“!”
붙잡힌 순간 탈출을 불허하는 수준의 악력. 두 번째 양아치 역시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촬영장 구석의 잡동사니 더미 쪽으로 메다 꽂혔다.
쿠당탕탕—!!
비대한 몸뚱이가 구르는 소리가 촬영장을 가득 메웠다. 주먹 하나 뻗지 않았지만, 군자는 벌써 형광바지 패거리 두 명을 제압하는 데에 성공했다.
“시, 시발, 뭐야 이 새끼—!!”
남은 형광바지 한 놈은 잔뜩 겁을 집어먹은 것 같았다. 충격적인 장면에 술까지 전부 깬 듯, 붉었던 얼굴은 어느새 파랗게 질려 있었다.
이미 싸울 의지를 상실한 듯한 모습. 그러나 군자는 아직 진정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허억, 허억—···.”
거친 숨을 몰아쉬며 군자가 마지막 형광바지를 향해 걸어갔다. 뒷덜미를 잡혔던 순간, 되살아난 끔찍한 기억이 아직도 군자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꺼, 꺼져! 시발, 꺼지라고!”
뒷걸음질을 치던 형광바지가 다짜고짜 쇠뭉둥이를 주워 들었다. 거치 카메라를 설치할 때에 사용하는 간이 삼각대였다.
후우웅—.
삼각대 자루가 위협적으로 허공을 갈랐으나 군자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이런 시발, 이 새끼 진짜 뭐야···.”
완전히 코너에 몰린 형광바지를 보며, 군자가 오른손에 힘을 꽉 준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뒤에서 군자의 등을 와락 안았다. 태웅과 유찬이었다.
“군자, 이제 된 것 같아.”
“···구, 군자 형···.”
난데없는 백허그에, 분노로 물들어 있던 군자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그 사이, 인혁의 커다란 그림자가 마지막 형광바지의 몸을 덮었다.
“이리 내.”
“어, 네, 넵.”
명령어 하나로 삼각대를 빼앗은 인혁은, 손가락으로 조용히 문 쪽을 가리키며 나직이 읊조렸다.
“나가.”
“아, 알겠습니다!”
“친구들 주워서.”
“네, 네엡—!!”
정신을 차린 마지막 형광바지는 패거리를 수습하여 순식간에 식당을 떠났다. 언제나 그렇듯, 사태가 일단락된 뒤에야 경찰차 소리가 들려 왔다.
양홍석 PD와 한지현 조감독이 사정청취를 하는 동안, 멤버들은 군자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군자, 너 괜찮냐.”
함께 동고동락한 멤버들은 알 수 있었다. 군자의 상태는 확실히 평소와 달랐다. 물론 할 땐 하는 성격의 군자였으나, 이토록 호전적인 모습을 보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허억, 허억—.”
아직 마음이 완전히 진정되지는 않은 듯, 군자의 숨소리는 여전히 크고 거칠었다. 멤버들은 그런 군자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수, 숨 크게···.”
“그래, 일단 심호흡 좀 해.”
“괜찮아여 형아, 이제 그 자식들 다 갔다구여.
“자, 후우, 후우.”
멤버들은 군자의 옆에서 호흡을 맞춰 주었다. 안무나 화음을 맞추는 것이 아닌, 정말 액면 그대로 들숨과 날숨의 타이밍을 맞추며 군자가 진정할 수 있도록 도왔다.
“후우, 후우우—···.”
“그렇지, 그렇지.”
“···아,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그런 동료들의 도움 덕분인지, 군자는 천천히 제 호흡을 되찾아 갔다.
“후우우—.”
긴 날숨을 내뱉으며, 한결 편해진 표정으로 군자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료들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군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엥?”
“노비 숙소 때에 이어서, 또 걱정을 끼쳤다.”
“아이, 진짜. 너 자꾸 섭섭하게 이럴래?”
“뭘 자꾸 걱정을 끼쳤대여! 이 형아가 가만 보면 사람 섭섭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니깐.”
“군자야, 힘들 땐 우리한테 의지해도 돼.”
“아하핫, 우리가 도움 안 되는 존재라면 그게 더 섭섭할 거야~”
“그래, 시우 말 잘했다. 친구 좋다는 게 뭐냐? 이럴 때 서로 돕고, 의지도 하고 그러는 거지. 넌 너무 버팀목만 하려고 해.”
그렇게 말하며 태웅이 도끼눈을 떴지만, 군자는 알고 있었다. 이건 짜증이 아니라 다정다감함이다. 멤버들은 군자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있었다.
“···고맙다.”
“그래 그래, 미안하단 말은 하지 말고 고맙다고만 해라. 훨씬 듣기 좋구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이건 나중에 얘기하자. 지금은 정신도 없고, 설명하기도 힘들 테니까.”
배려 넘치는 현수의 말에 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료들에 대한 믿음이 깊어 갈수록, 그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었다. 군자가 어디에서 왔는지, 또 어떤 신비한 존재와 함께하고 있는지.
그러나 제 아무리 가까워졌다 해도, 그런 말을 믿어 줄 것 같진 않았다. 결국 군자는 그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터 놓고,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는 것은···.
···우우웅···.
그래, 지금으로선 창이 너밖에 없구나.
상태창도 군자의 놀란 마음을 달래 주려는 듯, 그의 쇄골 언저리에서 빛나며 진동했다. 그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정말로 심장 박동이 조금은 안정되는 것 같았다.
심장의 안정을 찾자 마자 군자는 한지현 조연출을 찾았다.
“조연출님, 괜찮으십니까.”
“네? 저, 저요?”
“아까 손을 가격당하지 않으셨습니까.”
“아아, 그거요? 괜찮아요! 그 자식들, 폼만 잡았지 순 물주먹이더라고요.”
“그래도 꼭 의원을 만나 보십시오.”
“넵!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조금 아프긴 했지만, 군자의 걱정에 한지현은 통증이 다 아무는 느낌이었다.
보통은 의사를 만나 보라고 하는데, 의원이라니. 참 지독한 컨셉충이다 싶었으나 아무렴 어떤가. 군자의 빛나는 얼굴이 모든 것을 중화시켜 주었다.
사실 촬영 전까지만 해도 군자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한지현이었으나, 이 순간을 계기로 그녀 역시 군자의 팬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모든 위기 상황이 마무리된 뒤, 양홍석 PD가 멤버들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안일했습니다. 이런 돌발상황이 생길 가능성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아니에요, 저희도 그런 개진상이 올 줄은 몰랐는데요 뭐.”
“다친 분은 없으신지···.”
“네, 다 괜찮습니다.”
“아마 그 놈들이 합의금을 요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합의금은 저희가 전부 부담할 테니···.”
“아뇨.”
합의금 얘기가 나오자, 인혁이 단호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예?”
“합의금 같은 거 요구 안 할 겁니다.”
“그, 그걸 인혁씨가 어떻게···.”
“제가 그렇게 만들 수 있어요.”
“···예?”
어쩐지 무시무시한 신뢰감이 느껴지는 인혁의 말에, 양홍석 PD와 멤버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그래요. 인혁 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뭐. 어쨌거나, 오늘 촬영은 여기서 접어야 할 것 같습니다. 돌발 상황이 생기기도 했고, 오늘은 여러분들도 쉬는 게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사실 오전과 점심 장사 촬영본만 추려도 한 회차 분량은 충분히 뽑아낼 수 있을 것 같고요.”
“넵, 피디님.”
“아, 그리고 그 형광바지 패거리가 등장하는 장면부터는 그냥 카메라 꺼 두었습니다. 방송적으로 도움도 안 될 뿐더러, 여러분께도 그다지 좋은 기억이 아닐 테니까요.”
“넵.”
“그럼 오늘은 여기서 촬영 마무리하고, 내일 뵙겠습니다.”
“넵, 내일 뵙겠습니다!”
형광바지 삼돌이 패거리 사건은 7IN 멤버들과 제작진만이 아는 비밀로 남는 듯 했다.
그러나 방송가에 영원한 비밀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