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97)
#197
큰 거 왔다
새벽 4시, 비즈니스 호텔에서 깨어난 두 덕후가 목욕재계(沐浴齋戒)로 아침을 맞았다.
위이이이이잉—.
팡팡팡팡—···.
머리 말리는 소리, 뒤이어 들리는 규칙적인 퍼프 소리.
평소엔 대충 눈꼽만 떼고 집을 나서는 연지와 유민이었지만, 오늘만큼은 베이스 화장부터 철저히 신경썼다.
물론 콘서트장에서 멤버들이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최애를 영접하러 가는 날인 만큼 몸도 마음도 준비된 상태이고 싶은 두 사람이었다.
“언니, 나 군자 꿈 꾼 거 알아요?”
“그래? 나돈데!”
“대박, 우리 같은 꿈 세계에 있었나 봐요!”
“그래에? 내 꿈은 살짝 야했는데에~”
“헐, 언니··· 부러워요···.”
“푸하핫, 장난이야 장난! 부럽긴,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은근 밝힌다아.”
“저도 이제 성인이라구요, 헤헤.”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심박수는 계속해서 상승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7IN과 군자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이 두 사람을 설레게 만들었다.
목욕재계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럼에도 아직 바깥은 동이 트기 전의 어둑어둑한 상태였다. 일교차가 큰 4월 새벽 추위를 견디기 위해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서 콘서트장 방향으로 총총총 걸어갔다. 콘서트에 앞서 판매하는 7IN의 굿즈를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이번에 굿즈 다 너무 예쁘게 나왔던데, 언니도 봤죠?”
“당연하지. 난 살 수 있을 만큼 전부 다 살 거야.”
“흐으으, 군자 포카 나왔음 좋겠다.”
“오늘은 우리 둘 다 운 좋지 않을까? 완전 좋은 꿈 꿨잖아.”
대화를 나누며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길게 늘어진 줄이 보였다. 엄청나게 이른 아침에 출발했음에도, 굿즈 판매 부스엔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우와아···.”
누군가는 이 줄을 보며 ‘참 열심히들 산다’며 조롱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지와 유민은 그런 조롱 따위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런 개소리에 반응하느라 시간낭비 할 바에야 최애 영상 하나 더 보고, 최애 사진 하나 더 저장하는 것이 물질적, 정신적 개이득임을 벌써 깨달아 버렸기 때문이다.
몰입하는 것 하나 없이 남들 조롱이나 일삼는 인간들보다는, 적어도 연지와 유민이 훨씬 더 건강한 덕질 생활을 즐기고 있음은 사실이었다. 두 사람 모두 덕질을 시작하며 오히려 더 밝고 건강한 인생을 살게 되었으니까.
“군자 덕질의 매력을 모르는 인간들이 불쌍해.”
“누가 아니래요.”
오전 8시가 되자 마침내 부스의 문이 열리며 줄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긴 줄의 중간중간엔 LED 화면이 배치되어 있었다. 팬들의 무료함을 달래 주겠다는 듯, 화면에선 멤버들의 모습이 차례로 떠오르고 있었다.
[기다리느라 힘드시죠? 조금만 더 힘내요! 스트레칭도 하고, 서로 어깨도 주물러 주고! 자아, 요렇게 요렇게···.]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영상의 등장, 팬들은 다리 아픈 것도 잊으며 환호를 보냈다.
[좋은 의미를 담은 아름다운 물건을 많이 준비해 두었습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시면 우리 만날 수 있답니다. 이제 조금만 더!]영상 속엔 당연히 군자의 모습도 보였다. 그걸 보니 새벽부터 쌓였던 피로가 싸악 날아가 버리는 것 같은 연지와 유민이었다.
그렇게 줄은 조금씩 줄어들어, 마침내 연지와 유민이 판매 부스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많은 직원들의 엄격한 통제로, 판매 부스 내부는 질서정연하기 그지없었다.
부스에 들어서자마자 사방으로 눈이 돌아가는 연지와 유민이었다. 과소비는 자제하자고 마음먹었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두 사람 모두 1인당 구매 한계치에 달하는 굿즈를 손에 든 채 부스를 나오고 있었다.
“돈이··· 월급이 녹았다?”
“언니이··· 이게 뭐 어떻게 된 일이죠?”
“그러게에? 하하하···.”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두 사람의 만면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이 맛에 돈 벌지, 이 맛에 알바 하지!
모처럼 플렉스했으니 이제 물건을 확인할 차례였다. 콘서트 시작까지는 아직 시간 여유가 꽤 있었으니 다시금 숙소로 향한 연지와 유민이었다.
숙소 침대에 굿즈를 쫙 펼쳐 두고 물건을 하나씩 확인했다. 포장을 개봉할 때마다 우와 우와 소리가 절로 나왔다.
7IN 정규 1집 앨범의 이름은 [七巧 : 7 Pieces]. ‘七巧’의 독음은 ‘칠교’다. 어렸을 적 갖고 놀던 칠교 퍼즐을 컨셉으로, 일곱 개의 조각이 모여 하나의 완전체가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했다.
앨범의 의미를 전달하듯, 굿즈 이곳저곳엔 칠교 퍼즐 모양의 아이콘이 삽입되어 있었다. 특히 연지와 유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스마트폰 케이스와 책갈피 굿즈였다.
“하, 자개야··· 자개라고···.”
“어떻게 이렇게 고급스럽고 예쁘지··· 휴우—.”
네이비색 바디에 은은한 자개로 들어간 칠교 아이콘은 두 사람의 마음을 쏙 사로잡았다.
군자가 직접 고안했다는 책갈피 굿즈 역시 너무도 귀엽고 고급스러웠다. 단단한 책갈피 본체엔 역시 자개로 칠교 무늬가 삽입되었고, 금속 테두리를 두른 펀치홀엔 붉은 실로 만든 수술 장식이 달려 있었다.
“책도 안 읽는데 책갈피가 이렇게 마음에 들 일이야?”
“히히, 그러니까요. 이제부턴 책 좀 읽어야겠어요.”
“후우, 우리 군자는 [논어>부터 읽으라던데 어떡하지?”
“그니까요. 농어는 먹어봤어도 논어는 어려울 것 같은데···.”
“푸하학··· 아, 웃었어. 자존심 상해!”
굿즈 언박싱의 마지막 순서는 역시 포토카드. 총 열네 장의 포토카드가 랜덤하게 들어 있는 포토카드 세트엔, 일곱 멤버들의 다양한 포토카드가 골고루 들어 있었다.
“우왕, 엄청 골고루 나왔어요!”
“나도 비슷해. 다행히 군자는 두 장 들어있네.”
“저두요! 헤에··· 예쁘다···.”
물론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최애인 군자의 포토카드가 세 장 이상 들어 있었다면 두 사람은 분명 더 행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아쉬움은 오래 가지 않았다.
“[미션 임파서佛> 촬영 때 군자가 그랬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군자 카드가 두 장 씩인 건 좀 아쉽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한 장도 안 나올 수도 있었는데 두 장이나 나온 거잖아?”
“맞아요. 게다가 군자가 최애일 뿐이지, 사실 다른 멤버들도 다 좋아서 괜찮아요, 헤헤.”
“그래? 그럼 내 군자 포카랑 너 태웅이 포카 바꾸자고 해도 안 바꿀 거야?”
“앗, 그건 좀···.”
“푸하핫, 장난이야. 안 바꿔 줄 거야~”
침대 위에서 굿즈를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오후 1시가 됐다. [七巧 : 7 Pieces> 앨범 음원 발매 및 뮤직비디오 공개의 시간이었다.
티저 영상을 통해 신곡의 컨셉, 뮤직비디오의 톤&매너를 실컷 궁예질한 두 사람이었지만 그럼에도 본편 뮤직비디오의 내용을 쉽게 예측할 수는 없었다. 분명 뭘 상상하든 군자와 소년들의 모습은 그보다 멋지고 예쁠 것이다.
“후우, 후우···.”
긴장감 속에 첫 번째 타이틀곡 [사냥의 시간> 뮤직비디오가 공개됐다.
영화 [관상>을 방불케 할 포스 넘치는 등장 씬. 멤버들의 얼굴이 하나씩 클로즈업될 때마다 연지와 유민은 맞잡은 두 손에 힘을 꽉 주었다. 특히 군자가 나온 순간엔 손에 힘이 너무 들어간 나머지 두 사람은 동시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악!”
“아야야, 언니! 아파요!”
“미안 미안, 근데 나도 아팠어!”
“으으, 근데 어쩔 수 없었어요··· 하아, 이 부분 한 번만 다시 볼까요···?”
“그거 참 좋은 생각이야···.”
뮤직비디오의 주제는 명쾌하고 직관적이었다. [사냥의 시간>이라는 제목처럼, 첫 번째 타이틀곡 MV는 ‘사냥’을 주제로 전개되어 나갔다.
한국적인 비주얼의 삼림에서, 털 장식이 달린 의상과 카모플라쥬 패턴으로 존재감을 숨긴 멤버들이 사냥감을 쫓듯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멤버들의 존재감은 위장(僞裝)으로도 쉽사리 숨길 수 없었다.
기척을 숨기며 사뿐사뿐 내딛었다가, 품에서 날카로운 발톱을 꺼내 들듯 격렬해지는 안무가 연지와 유민의 심장을 콱콱 움켜쥐었다.
“푸하아—.”
조금이라도 숨을 좀 쉬어 보려 할 타이밍엔 어김없이 군자의 원샷이 나오며 두 사람의 숨통을 턱 막히게 했다.
신이 온 정성을 다해 깎아 만든 듯한 콧날, 분명 선한 분위기임에도 거역하기 힘든 품위를 담은 군자의 눈빛에 두 사람은 넋을 잃고 말았다.
“···더, 더 잘생겨진 것 같아···.”
“제 말이요··· 너무 너무 섹시해요···.”
무언가를 찾아 헤매듯 삼림을 누비던 멤버들이 발견한 것은, 마치 룬 문자같이 생긴 작은 조각. 연지와 유민은 그 조각이 무엇인지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어, 저거 그··· 굿즈에 있던 그 조각 아니에요?”
“맞아, 칠교네 칠교!”
‘사냥’ 외에도 뮤직비디오엔 하나의 컨셉이 더 숨겨져 있었다. 세 가지 테마로 나누어진 배경에서 칠교 조각들을 찾는 것.
새로운 사냥감을 찾기 위해, 그리고 나머지 조각들을 찾아내기 위해, 소년들은 삼림에서 황야로 공간을 뛰어넘어 이동했다.
그린과 블랙의 컬러 테마를 가져갔던 삼림 씬과 달리, 황야 씬은 온통 노랗고 붉은 빛이 가득했다. 이번엔 웨스턴 풍의 착장을 갖춰 입은 일곱 소년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깔끔한 군무를 선보였다.
타앙, 타아앙—!!
7IN의 군무는 언제 보아도 극락 그 자체였으나, 매그넘 리볼버를 장전하여 발사하는 모션을 형상화한 포인트 안무는 두 사람을 정말 극락으로 보내 버렸다.
저런 센스 넘치고 임팩트 있는 포인트 안무는 또 어떻게 만든 건지, 또 어떻게 저렇게 멋지게 잘 소화해 내는 건지.
매그넘 슈팅 안무의 충격이 끝나기도 전에, 사냥용 로프를 던지는 듯한 두 번째 포인트 안무가 이어졌다.
“하아, 그냥 저 밧줄에 꽁꽁 묶이고 싶다···.”
“언니, 그 말 꼭 트로트 가사 같아요···.”
“몰라 몰라, 내 마음이 딱 그래···.”
두 번째 후렴으로 돌입하며 뮤직비디오의 속도감은 점점 올라갔다. 이제 일곱 소년들은 말을 타고 황야를 달리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합성 같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장면 역시 소년들이 직접 말을 탄 것이 분명해 보였다.
달리는 말 위에서도 한 치 흐트러짐 없이 선두에 선 군자의 모습은 멋지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멋졌다. 손을 맞잡고 있던 연지와 유민은 어느새 양 손으로 자신의 심장 언저리를 꼭꼭 누르며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하아··· 미쳤다 진짜···.”
“언니, 한번 더?”
“으응, 반복재생 좀 하자···.”
열 번을 보아도, 스무 번을 보아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남은 분량이 줄어드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로 예술적인 뮤직비디오였다. 이 모든 연기를 멤버들이 해 냈으며, 연출까지 시우가 직접 했다는 것 또한 기특했다.
진짜 우리 애들은 못 하는 게 없나 봐. 내 최애라서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니라, 진짜 만능돌이라니까···.
팔불출 같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사이 뮤직비디오는 어느새 말미에 이르렀다.
브릿지 이후의 테마는 바다.
삼림에서 황야로 향했던 일곱 소년들은 이제 투명한 바닷물에 발을 담근 채 청량미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배경도 참 아름다웠지만, 미소도 너무 좋았지만, 무엇보다 연지와 유민을 두근거리게 한 것은 바다에 어울리는 소년들의 시원한 의상이었다.
“···허어···.”
“···헤헤···.”
음침한 미소를 애써 정화시키며, 두 사람은 입가에 흐르는 타액을 스윽 닦았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