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199)
#199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홈마 석혜린은 다양한 아이돌을 골고루 덕질하는 일명 ‘잡덕’이었다.
잘생긴 남자 아이돌이라면 딱히 가리지 않고 오프를 뛰며 하이퀄리티의 개인 사진을 뽑아내는 출중한 능력 덕분에, 그녀의 SNS에는 꽤나 많은 팔로워가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7IN의 첫 단독 콘서트는 빠질 수 없는 빅 이벤트였다. 최근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는 그룹이 바로 7IN이었으니까. 그녀의 팔로워들 역시 7IN의 콘서트 사진을 바라고 있었다.
굳이 따지자면 본진은 따로 있었으나, 이렇게 모두가 바라고 있으니 석혜린은 의무감을 가지고 7IN의 콘서트 티켓을 구했다. 예매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으나, 이미 아이돌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녀에게 정가 티켓 구하기는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전망 좋은 R석에 앉은 석혜린은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망원렌즈를 마운트시킨 고성능 DSLR을 다리 사이에 숨긴 채 시큐리티들을 예의주시했다.
“저 강친은 요렇게 요렇게 왔다갔다 한단 말이지.”
마치 잠입액션 게임을 플레이하듯, 석혜린은 시큐리티들의 이동 패턴을 철저히 연구했다. 강친들이 제 아무리 보안 단계를 격상한다 해도, 홈마들은 언제나 그랬듯 항상 답을 찾아 왔다.
첫 곡이 시작하기 전, 석혜린은 이미 안전한 셔터 타이밍을 모두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조명도, 배경도, 화이트노이즈도 완벽하게 세팅된 상태. 이제는 저격수가 목표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듯 셔터 버튼만 누르면 된다.
“후우, 좋아···.”
그 때까지만 해도 석혜린은 차분했다. 7IN이 잘생기긴 했지만, 과한 기믹은 딱히 취향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기에 오늘은 덕심을 넣어 두고, 공무원 마인드로 셔터만 찰칵찰칵 누르다가 칼퇴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바로 옆 자리에도 석혜린과 비슷한 ‘잡덕’이 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옆자리에 앉은 친구는 이 순간까지도 영업을 위해 열정을 불사르고 있었다.
“너 이제 큰일 났다. 얘네 퍼포 보면 진짜 못 빠져나옴.”
“에이, 에바야. 나 본진 없는거 알잖아.”
“그 본진이 오늘 생길 거라니까?”
“너 그렇게 설레발 치다가 내가 별로라고 하면 어쩌려고 그래.”
“별로라고 할 일 없으니까 괜찮아.”
“오오, 자신감 뭐야.”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석혜린의 귀에도 쏙쏙 들어왔다. 퍼포먼스를 보면 팬이 될 수밖에 없다고? 글쎄, 과연 그럴까.
지금까지 잡덕 홈마로 살면서 수많은 그룹의 공연을 직접 관람해 온 석혜린이었다. 퍼포 장인이라는 벨로체, 남자 아이돌 끝판왕 루나틱의 무대도 꽤나 많이 봐 왔지만, 무대만으로 그녀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데뷔 이후 첫 단독콘서트인 만큼, 퀄리티보다는 멤버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더욱 잘 비춰지는 방식의 퍼포먼스를 구상했을 것이다. 감동적인 얼굴들은 이미 수없이 봐 온 석혜린에게, 그런 식의 퍼포먼스는 크게 와 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오늘은 일만 하고 가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석혜린이 DSLR 본체를 손에 쥔 순간, 마침내 조명이 암전되며 첫 곡이 시작됐다.
그 때까지도 시큐리티들의 동선에 집중하고 있었던 석혜린이었으나, 공연이 시작된 이후부터는 마음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혜린을 놀라게 한 것은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는 현란한 와이어 액션이었다.
아니, 첫 단콘에서 저런 미친 퍼포먼스를 한다고?
시도 자체도 놀라웠는데, 더 황당한 것은 그 고난이도의 퍼포먼스를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표정까지 예쁘게 짓고 있다는 것이었다.
저게 된다고? 볼쇼이 서커스단 출신들이신가?
어찌 됐든 표정이 좋으니 셔터는 정신 없이 일을 해야 했다. 가만히 있어도 얼굴이 너무 작아서 포착이 어려운데, 그 조그만 얼굴이 사방 팔방으로 날아다니니 추적이 거의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시큐리티의 삼엄한 감시를 피하며, 공중을 날아다니는 작은 얼굴들을 쫓으며, 석혜린은 마치 사격대회에 나간 김민경씨라도 된 듯한 마음으로 셔터 버튼을 찰칵찰칵 눌렀다.
그렇게 허공을 날던 멤버 중 한 명이 별안간 바닥으로 후욱 하고 떨어졌다.
“허억—.”
무슨 사고라도 난 것 아닌가 싶어 가슴이 철렁한 석혜린이었으나, 잠시 후 그것이 연출된 퍼포먼스임을 알고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아이 씨, 놀랐잖아.”
환하게 웃으며 팬들을 안심시켜 주는 현수, 군자, 태웅, 인혁의 표정을 향해 연신 대포 렌즈를 겨눴다. 뚝 떨어지는 현수를 본 것 때문인지 뭔지, 괜히 석혜린의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병약미 넘치는 현수의 다크서클과 슬리데린 같은 미소가 자꾸 마음에 걸리는 것 같았다.
이게 그 현수교 효과인가 뭔가 그건가?
순간 헤벌레해질 뻔한 멘탈을 부여잡으며 석혜린이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입덕은 개뿔, 난 일하러 온 거다. 우리 구독자 분들을 즐겁게 해 드리러 온 거지, 내가 즐거우려고 온 게 아니라고. 애써 다시 한번 DSLR을 움켜쥔 석혜린이었으나, 이미 두근거리기 시작한 심장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현수를 시작으로 멤버들 하나하나가 모두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와이어 액션은 끝났지만 지상에서도 하현재는 마치 중력을 거부하듯 사뿐사뿐한 스텝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고 놈 참 표정 예쁘게 짓네. 뭐 어떻게 찍어도 B컷이 없구나. 감탄해 마지않으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하현재 다음은 현시우의 차례였다. 잡덕들이 유독 사랑하는 7IN 멤버가 현시우였다. 딱히 캐릭터를 팔 필요도 없이, 얼굴만으로도 사람을 끌어당겨 버렸으니까.
저렇게 생긴 사람은 무조건 아이돌을 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분명 찡그린 순간 셔터를 누른 것 같은데, 잠시 후 LCD 화면에 비친 시우의 얼굴은 기적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아니 이게 뭐지? 마법이라도 부리는 건가? 찍덕으로 잔뼈가 굵은 석혜린마저 당황하게 만드는 신기였다. 뭘 찍어도 사진이 예쁘게 나오니 찍을 맛이 났다.
퍼포먼스가 이어지며 현시우와 기유찬이 포지션을 바꿨다. 자연스레 석혜린의 손 역시 유찬의 얼굴을 따라 올라갔다.
이게 그 잘생긴 애 옆 잘생긴 애, 뭐 그런 건가.
얼핏 봐도 유찬은 시우보다 8cm 가량은 커 보였다. 하지만 그 기럭지에도 유찬의 얼굴엔 댕댕미가 넘쳤다. 평소엔 수줍음 가득한 소년이었지만, 일단 무대에 올라서면 그 누구보다도 무해한 미소를 뿌리며 팬들을 즐겁게 하는 유찬이었다.
“뭐야, 얘는 또 왜 귀여워···?”
혜린에게도 그 미소가 와 닿은 것 같았다. 분명 여리여리한 막내인데, 얼굴은 화사하게 웃고 있는데, 어쩐지 거부할 수 없는 손길이 혜린을 잡아끌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시큐리티에게 카메라를 빼앗길 뻔한 혜린이었다.
“···후우, 후우···.”
간신히 시큐리티의 감시망을 피한 혜린이 다시 한번 호흡을 고르며 기회를 엿보았다. 그 사이 유찬은 뒷 라인으로 물러났으며, 태웅과 인혁이 전방으로 나섰다.
185cm이 넘는 장신 듀오의 시원시원한 춤선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을 뻥 뚫리게 했다. 이 바닥에서 춤 하나는 가장 빡세게 춘다는 벨로체에게도 밀리지 않을 것 같은 파워와 에너지였다.
체지방 10% 안팎의 근육돌 두 명이 그렇게 격하게 춤을 추니 자연스레 팔과 어깨의 근육 데피니션이 선명하게 드러나 보였다. 번질번질한 땀과 핀 조명이 두 사람의 피지컬을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다.
“오··· 세상에···.”
몸 좋은 아이돌은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혜린이었지만, 그녀는 오늘 자신도 모르던 취향을 찾고야 말았다. 머리는 근육을 거부했으나 셔터 위에 올라간 손가락의 의견은 다른 것 같았다.
찰칵, 찰칵—.
그래, 몸 좋은 아이돌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잖아?
이건 그 분들을 위한 사진이야, 그럼 그럼.
열심히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지만,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사진을 찍고 있다기엔 혜린의 입은 너무도 빨간마스크 같았다.
그렇게 정신없이 셔터를 누르던 중, 이번에도 시큐리티에게 들킬 뻔한 혜린이었다.
저 험상궂은 시큐리티도 근육근육한데, 분명 똑같은 대흉근 삼각근 광배근인데, 어째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는 거지?
첫 번째 곡이 그렇게 정신없이 지나가고, 이어서 두 번째 곡이 시작됐다. 첫 곡인 [괴력난신>에선 빈티지한 감성이 들어간 도사 옷을 입었던 소년들이, 이번엔 깔끔한 핏의 정장을 입고 무대 위에 올랐다. [아육시>에서 보여주었던 [Suit Up> 전주가 흐르며, 소년들의 구두가 일제히 같은 각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과하게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아이돌 수트 착장의 정석. 그 블랙 & 화이트의 조화에 혜린은 자신도 모르게 헉, 하는 소리를 냈다.
원래 기본이 가장 어려운 거라고, 기본이.
혜린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다. 과한 컨셉과 의상도 꼴불견이었지만, 사실 기본 착장인 수트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살리는 아이돌도 드물었다.
하지만 7IN 멤버들은 달랐다. 이게 첫 단독콘서트를 하는 아이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앞선 곡과 전혀 다른 컨셉의 퍼포먼스를 소화하면서도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남은 여섯 멤버들의 얼굴을 한 명씩 담은 혜린의 카메라는 이제 정중앙의 군자를 찾았다. 무대 시작부터 헉 소리를 냈던 혜린이었지만, 군자의 얼굴이 뷰파인더에 담긴 순간엔 헉헉헉헉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 사람, 진짜 뭐야!
분명 조선돌, 선비돌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한복이 가장 잘 어울리는 아이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깔끔한 수트를 입은 군자의 모습은 혜린의 심장을 그대로 얼어붙게 만들었다. 직전까지는 신나는 얼굴로 열심히 셔터를 눌렀던 혜린이지만, 이번에는 심장이 아파서 버튼도 제대로 누를 수가 없었다.
“와아, 와아아···.”
바로 옆에 앉았던 잡덕녀 역시 입을 쩍 벌린 채 넋이 나가 있었다. 입덕은 뭔 입덕이냐고 했던 그 사람은, 이미 10분 전에 자신이 했던 말을 완전히 잊은 것 같았다.
혜린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후아, 후아아··· 어떡하지···.”
최애돌의 온갖 병크를 다 겪고 난 뒤, 이제 다시는 본진을 만들지 않겠다 다짐한 혜린이었다. 그러나 소년들, 그리고 군자의 매력은 그런 혜린의 다짐을 너무도 쉽게 허물어 버렸다.
정신을 반쯤 잃어버린 와중에도 혜린은 시큐리티의 동선을 꼼꼼하게 챙겼다. 저 근육괴물 시큐리티도 분명 수트를 입고 있는데, 어떻게 이렇게 느낌이 다른 거지?
그렇게 두 번째 무대까지 끝난 뒤, 혜린의 옆자리 관객들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야··· 너 말이 맞네···.”
“그치? 그치? 내가 뭐라 그랬냐고오.”
“와아아··· 근데 얘네 인성 문제는 없지?”
“아이, 뭔 인성 문제야! 지금 남돌판에서 가장 클린한 게 유군자라고.”
“진짜?”
옆 자리 관객들의 말에 괜히 안도감이 드는 혜린이었다. 잘생겼도, 매력 미쳤고, 병크 터질 확률도 극히 낮다 이거지?
“헤헤···.”
세상 사무적인 마인드로 콘서트장에 온 혜린은, 어느새 R석의 그 누구보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무대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