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17)
#217
스칼렛 홀이 누군데
전화기 너머 릴 핌프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상기되어 있었다.
“허어··· 그러셨소···.”
간단한 대답만 하며 한참 동안 스마트폰을 들고 있던 군자가, 마침내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르며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핌프 형아 맞져?”
“왜? 뭐라는데?”
“뭔 일을 갑자기 벌리진 않았···.”
“회사와 담판을 지었다는구나.”
“엥?”
“지금 막 계약 해지 통보까지 했다는데.”
“에에엥?”
“아니, 뭘 그렇게 쿨하게?”
“그러게 말이다. 참으로 화통한 친구 아니더냐.”
빛보다 빠른 일 처리 속도에 군자도 어이가 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결심을 굳혔기로서니, 이렇게 빨리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손절을 해 버리다니.
그러나 릴 핌프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군자와의 대화를 마친 뒤, 릴 핌프는 그 길로 소속사인 CB뮤직으로 돌아가 사장 존 맥과이어와 대면했다. 10년을 함께해 온 사장이었으나 릴 핌프의 목소리에 온정 같은 것은 없었다.
“존, 기회는 딱 한 번 뿐이야.”
“피, 핌프?”
“그리고 내 손에 들린 이게 가짜 에어건인지 아니면 진짜 글록인지, 그건 나만 알고 있고.”
“하하, 또 뭔가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오해는 지랄, 내가 등신인 줄 알아?”
“!”
“조작했어, 안 했어?”
“···.”
“했어, 안 했어?”
“···다 우리 미래를 위한 거였어, 핌프!”
“···.”
“그, 그렇게 안 하면 1등 할 거라는 보장이 어디···.”
“존 맥과이어, 너는 내 이름에 똥칠을 했어.”
그렇게 말하며 릴 핌프는 자신의 사장을 향해 반짝이는 총구를 겨눴다. 히익 하는 소리를 내며 책상 아래로 숨는 맥과이어를 향해, 릴 핌프는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파아앙—.
“—!?”
발사된 것은 진짜 9mm 총알이 아닌 에어건용 플라스틱 BB탄.
총알이 책상을 때리고 튕겨 나가자, 겁에 질린 존 맥과이어 사장이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왜, 오줌이라도 지렸냐?”
“피, 핌프···.”
“이게 내 마지막 온정이다, 존. 너랑 내 관계는 끝이야.”
“!”
“당장 계약 전면 해지해. 해약 조건이네 뭐네, 개소리만 해 봐. 그 땐 에어건 대신 진짜 글록으로 네 관자놀이에 통풍구를 내 줄 테니까.”
그렇게 계약을 정리한 뒤, 릴 핌프는 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잔뜩 상기된 목소리로, 감사의 의미를 담아. 군자가 아니었다면 릴 핌프는 여전히 자신도 모르게 멋없는 짓거리를 하고 있었을 터였다.
그렇게 군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달한 릴 핌프는 곧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군자가 말한 대로, 선비의 자질인 ‘Hyo’를 몸소 실천하기 위함이었다.
“엄마, 나 회사랑 끝냈어.”
– 뭐? CB뮤직이랑 헤어졌단 말이냐?
“어. 이제 난 뻐킹 인디펜던트라고, 하하.”
– 잘했다. 내가 전부터 그 맥과이어라는 놈이 찜찜하다고 했지.
“엄마 말이 맞아. 그 동안 내가 그냥 무작정 믿었던 거지.”
– 갑자기 안부전화를 하지 않나, 망할 사기꾼 놈을 손절 치지 않나··· 어째 이렇게 갑자기 사람새끼가 다 되었니?
“다 친구 덕분이지. 이번에 멋진 친구를 한 명 사귀었거든.”
– 친구?
“응. 군자라고, 싸우쓰 코리아 출신인데 꽤 괜찮은 놈이야.”
– 그래, 그 친구한테 감사 인사는 했니?
“당연하지! 전화로 고맙다고 말했어.”
– 뭐? 그냥 고맙다고 한 마디 하고 말았다고?
“어?”
– 이 놈아, 금수 놈을 사람 만들어 줬는데, 고작 고맙다는 전화통화 하나로 퉁칠 생각이었니?
“아니 그건 뭐···.”
– 감사를 표하려거든 제대로 해야지! 핌프, 내가 널 그렇게 가르쳤더냐?
“하, 쓰읍··· 것도 맞는 말이네.”
그렇게 어머니와의 전화를 마무리지은 릴 핌프는 잠시간의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이 고마운 친구에게 성의표시를 할 수 있을까. 그의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렇지, 그러면 되겠구만!”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마자, 그는 다시 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첫 번째 전화를 받은 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다시 전화가 울렸다. 이번에도 릴 핌프의 전화였다.
“안녕하시오, 소인 유군자 전화 받았소이다.”
– 군자! 너 지금 어디냐!?
“숙소이오만.”
–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
“예정대로라면 내일 모레 오후에 비행기를 탈 예정입니다.”
– 그래? 그럼 내일 하루는 여유 있는 거지?
“예?”
– 지금 바로 애틀랜타로 가자! 너희한테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
“소, 소개하고픈 사람이 있다고요?”
– 알아 두면 절대로 후회하진 않을걸? 10분 후에 너희 호텔 앞으로 차 보낼게. 일단 만나자고!
릴 핌프는 마치 폭풍이 몰아치듯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낸 뒤 전화를 끊었다. 통화가 종료된 뒤에도 군자는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또 핌프야? 이번엔 뭐라는데?”
“···누굴 소개해 주고 싶다는데.”
“음? 누구를?”
“그것은 나도 모르겠다. 애틀랜타로 가자는 말 이외엔 별다른 단서가 없구나.”
“흐음, 왜 하필 애틀랜타일까여?”
“애틀랜타는 프로듀서들의 성지야.”
“오오, 혁이 형이 그렇다면 그런 건뎅.”
“···무, 무서운 분을 소개해 주려는 건 아니겠죠···.”
“뭐 무서우면 얼마나 무섭겠냐. 사실 난 릴 핌프도 좀 무서웠다고. 근데 알고 보니까 괜찮은 놈이었잖아?”
“아하하하핫, 난 찬성이야~ 어차피 여기에 있어 봐야 호텔에서 빈둥빈둥밖에 안 할 걸~”
“나도 시우와 같은 의견이다. 무엇보다 친우가 기꺼이 나서서 새로운 인연을 소개해 준다는데, 마다할 이유는 없지.”
“릴 핌프, 걔가 너무 괴짜라는 게 걸리긴 하지만···.”
그렇게 말하며 소년들은 일제히 이용중 실장을 바라보았다.
“으이구··· 기다려 봐, 팀장님이랑 전화 좀 해 보고.”
잠시 본국의 서은우 팀장과 연락을 취한 이용중 실장이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가도 좋대. 대신 경호 인원 대동하고.”
“경호요?”
“응. 당장 경호 인력부터 알아봐야겠네.”
“그건 제 미국 친구들한테 부탁해 보겠습니다.”
“혁이 형, 그때 그 가죽점퍼 성님들이요?”
“응.”
“근데 그 형님들은 서부 쪽 계시지 않나? 오실 수 있어요?”
“마침 환경 컨퍼런스가 있어서 동부 쪽으로 와 있대. 부를 수 있어.”
“오오오.”
“그 형님들 정도면 서 팀장님도 안심하실 것 같은데여, 헤헤.”
그렇게, 소년들은 순식간에 애틀랜타행 리무진에 몸을 실었다.
릴 핌프가 보낸 고급 리무진은 동부 해안을 달려 애틀랜타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은 릴 핌프는 신나는 트랙리스트로 분위기를 띄웠다.
“근데 핌프 형! 우리 누구 만나는 거예요?”
“그럴 미리 말해 주면 재미없지. 아무튼 엄청난 인간이라는 것만 알면 돼.”
“으으, 궁금해 죽겠는데.”
“야, 군자랑 친구들. 그냥 다른 거 다 필요없고, 딱 하나만 기억해. 그 사람을 만나면 가장 자연스럽고 꾸밈 없는 너희 모습을 보여줘. 잘 보이려는 노력 같은 거 하지 말라고. 알겠지?”
“아하하핫, 어차피 얘네들 전부 연기도 잘 못하는걸요~”
“그래? 그거 잘 됐구만.”
리무진은 그렇게 한참을 달려 애틀랜타 외곽의 대저택에 도착했다. 세련된 고층 건물이 늘어선 애틀랜타 중심부와는 완전히 다른, 한적하면서도 고급스런 분위기를 자아내는 저택이었다.
“우와··· 이게 다 대리석이야?”
“대관절 누가 이런 허연 대궐에 산단 말이더냐. 임금이 따로 없구나.”
끝없이 펼쳐진 저택 내 정원을 감상하다 보니 어느새 소년들은 저택의 본관에 도착했다. 궁전 같이 높은 천장은 돔 형태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사방이 온통 비싸 보이는 물건들 뿐이었다.
“진짜 짱이당···.”
소년들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으나 정작 릴 핌프는 마치 제 집 안방을 드나들듯 시큰둥한 태도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며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스칼렛! 스칼렛!”
릴 핌프의 목소리가 돔 천장에 반사되어 쩌렁쩌렁 울리자, 커다란 후드 티를 입은 40대 여성 한 명이 부스스한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패트릭이야?”
“젠장, 그 이름으로 부르지 좀 말라니까!”
“그래, 핌프 핌프.”
‘스칼렛’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여성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비록 머리와 옷차림은 후줄근했지만 군자는 단숨에 알아챌 수 있었다. 이 분은 보통 분이 아니시구나!
‘스칼렛’이라는 이름의 여성이 계단을 내려오자 마자 군자를 비롯한 소년들은 예를 갖추어 인사를 올렸다. 소년들을 빤히 바라보던 여성의 동공이 한순간 크게 확장됐다.
“어?”
“···?”
“핌프, 너가 이 친구들 데려온 거지?”
“그렇지. 재미있는 애들이라 소개해 주고 싶어서.”
“나 얘네들 알아. [다이너스티> 재미있게 봤거든.”
“그래?”
“아마 그룹 이름이··· ‘7IN’ 이었지? 반갑네, 반가워.”
40대 여성은 티 없이 웃으며 소년들과 차례차례 악수를 나누었다. 언뜻 격 없어 보이지만 어딘지 모를 무게감이 느껴지는 여성의 태도에, 소년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끌려 가는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도 릴 핌프는 ‘스칼렛’이 소년들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 약간은 분한 모양이었다.
“뭐야, 이미 알고 있었어? 재미없게!”
“핌프, 세상 모든 걸 재미 본위로 생각하는 그 습관 좀 버려. 세상엔 재미없는 일이 훨씬 더 많아.”
“나도 알아. 그러니까 그렇게 살고 싶지 않은 거라고.”
“그래, 어련하시겠어? 그래서, 네가 보기엔 이 친구들도 재미있는 친구들이다?”
“당연하지. 근래 본 애들 중 최고야. 스칼렛 당신도 알고 지내면 좋을 것 같아서.”
“그래, 뭐 그러니까 이렇게 연락도 없이 쳐들어왔겠지만···.”
40대 여성의 시선이 릴 핌프에게서 소년들에게로 움직였다. 빤히 소년들을 응시하던 여성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보니까 자기소개를 안 했네.”
“···.”
“반가워, 스칼렛 홀이라고 해. 더럽게 재미없는 이름이지?”
“···.”
“어어, 안 웃겼나 보네.”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인 스칼렛이 자기소개를 이어 나갔다.
“아마 세상 사람들은 ‘스칼렛 홀’이라는 재미없는 이름보다 ‘윌리 그린’이라는 가명에 더 익숙하겠지.”
“···?”
“반가워, 프로듀서 윌리 그린이라고 해.”
“···!!!”
‘윌리 그린’이라는 이름을 들은 현수, 인혁의 입이 동시에 떡 벌어졌다.
“위, 위, 윌리 그린이요—!?”
“응, 그게 나야.”
그렇게 말하며 스칼렛 홀은 활짝 웃었다.
“어어··· 어어어··· 영광입니다, 그린 님!”
“부끄럽게 영광은 무슨. 내가 좀 아싸여서 대화 스킬이 부족하거든? 우리 그냥 바로 작업실로 갈까?”
현수와 인혁은 감격에 찬 눈빛으로 폭풍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당연했다.
포크부터 힙합까지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역대급 천재, 현역 작곡가 중 가장 많은 빌보드 수록곡을 가진 괴물 프로듀서. 그들의 눈앞에 선 ‘윌리 그린’이 바로 그런 존재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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