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18)
#218
물개박수
윌리 그린의 작업실에 당도한 지현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그린 님, 그린 님, 제가 정말 정말 너무 너무 팬입니다. 정말··· 정말 존경해 왔습니다.”
“하하, 팬은 무슨. 나도 [다이너스티> 정말 잘 봤어요. 창작곡 쓴 프로듀서가 그 쪽?”
“아아··· 예에, 부끄럽지만··· 누추하지만 그렇습니다.”
“곡에 엣지가 있어서 좋았어요. 클리셰적인 진행을 피하려는 게 보이더라고. 덕분에 [다이너스티>에서 7IN이 기억에 남았어요.”
“아아··· 윌리 그린 님께서 내 곡을 칭찬해 주셨어!”
현수는 정말 성은(聖恩)이라도 입은 듯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흐흐, 그렇게 좋냐?”
“말 시키지 마라··· 지금 내 감정선 망치지 말아 줘···.”
“아니 무슨 평생 군자만 모시고 살 것처럼 하더니, 이래도 되는 거야?”
“그, 그건 얘기가 다르지.”
“다르긴 개뿔! 군자가 유일한 주군이네 뭐네 하더니, 이건 완전 배신인데에?”
“아, 아니야! 그렇지 않아.”
“글쎄에, 그렇지 않지 않은 것 같은데. 군자야, 너 안 섭섭하냐?”
“으음?”
“지현수 이 놈이 너 배신한 것 같은데, 안 섭섭하냐고.”
“하하, 섭섭하다니. 그런 것 없다.”
“그래에?”
사실 거짓말이었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군자는 사실 조금 섭섭했다.
그 동안 현수의 과도한 찬양이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었으나, 이렇게 그 찬양이 누군가에게로 옮겨가는 것을 눈앞에서 보니 괜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괜찮은 척 미소를 지어 보이며, 군자는 차오르는 잡념을 꾹꾹 눌러담았다.
섭섭한 티를 내는 것은 소인배의 태도. 허나 소인배처럼 보일까 걱정하는 것부터 소인배 아닌가. 그렇다면 이 순간엔 티를 내는 것이 소인배인가, 티를 내지 않는 것이 소인배인가. 어쩌면 이제 소인배는 확정이요, 더 소인배인가 덜 소인배인가의 문제만 남은 것일까···.
“···결국 나는 소인배인가···.”
시무룩해진 군자와 달리, 나머지 멤버들과 릴 핌프는 잔뜩 신이 나 있었다. 특히 미국 문화에 익숙한 인혁과 작곡 담당 현수의 눈은 그 어떤 때보다도 더 초롱초롱 빛났다.
맛있는 음료수와 함께 어색한 분위기는 빠르게 풀려 나갔다.
“스칼렛! 이 음료수 너무 맛있는데요?”
“그래? 병 당 3000달러 (대략 300만원) 짜리 샴페인이니까 당연히 맛있어야지.”
“예에에—!?”
“푸하하, 농담이야 농담. 그냥 무알콜 샴페인이니까 많이 마시라고.”
“전 윌리 그린이 여자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너무 남자 이름이니까···.”
“뭐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이제는 딱히 내가 남자랑 뭐가 다른지도 잘 모르겠고~”
“맞아요 맞아. 성별이 중요한가요? 음악만 좋으면 장땡이지.”
“그래, 너 말 참 잘하네.”
그렇게 한참을 웃고 떠들던 중, 스칼렛 홀이 차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핌프, 고마워. 아까는 성별이 뭐가 중요하냐고 했는데, 솔직히 이렇게 귀엽고 잘생긴 친구들이랑 노니까 오랜만에 아주 신이 나는구만.”
“으으··· 스칼렛, 그게 뭔 구린 발언이야. 멋대가리 없어.”
“그래? 하지만 사실인걸.”
“스칼렛, 요즘 외롭구나?”
“흐흐, 이제 개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
“좋은 친구들이 생긴 것 같아서 즐거워. 그런데 핌프 네가 여기로 누군가를 데려왔다는 건, 그들이 좋은 사람일 뿐만 아니라 뛰어난 뮤지션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겠지?”
“···당연하지.”
“하지만 핌프, 그리고 칠린 여러분.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아이돌 음악 시장에 대한 믿음이 크지 않아.”
“···.”
어느새, 스칼렛 홀의 얼굴에선 웃음기가 사라져 있었다.
“물론 돈 잘 버는 시장은 맞지. 하지만 그 바닥에 진짜 아티스트라고 부를 만한 팀이 있을까? 솔직히 잘 모르겠네.”
“···.”
“아이돌 시장에서, 내가 본 건 아주 잘 가공된 상품들이었어. 오해하지 마,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니까. 나 역시 상업 필드에서 일하는 프로듀서고, 상업적인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는 잘 알고 있거든.”
“···.”
“하지만 그게 내 가슴을 뛰게 하진 않더라.”
“···.”
“어쩌면 나는 가공된 원석에는 반응하지 않는 변태 늙은이일지도 몰라, 흐흐.”
그렇게 말하며 스칼렛 홀은 웃었지만 7IN 멤버들은 아무도 웃지 않았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게 내 편견일지도 모르지.”
“···.”
“릴 핌프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거든. 음악의 ‘M’도 모르는 멍청이가 나를 반하게 만들 거라고는 생각 못 했으니까.”
“···.”
“너희들에게도 비슷한 걸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그래서 말인데, 여러분들. 이제 음료수 마시면서 떠드는 건 그만두고, 아무거나 녹음해 보는 건 어떨까 해.”
말을 마친 스칼렛 홀은 바로 자리를 옮겨 콘솔 장비들의 전원을 켰다. 호화로운 집 인테리어와 달리, 녹음 스튜디오는 근본을 갖춘 클래식한 구조였다.
스튜디오엔 그 동안 스칼렛 홀이 수집해 온 세계 각국의 수많은 악기들이 진열돼 있었다. 그 중엔 대한민국의 전통악기인 거문고와 가야금의 모습도 보였다.
“유군자라고 했지?”
“예.”
“악기 연주, 한번 해 볼래?”
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악기 쪽으로 다가갔다. 이번엔 ‘선비의 악기’인 거문고 대신 가야금을 선택한 군자였다. 열두 개의 현으로 이루어진 가야금은 거문고보다더 서정적이며 가녀린 음색을 내는 악기. 스칼렛 홀 역시 그 속성을 알고 있었다.
“거문고 대신 가야금을 골랐네.”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군자를 보며 스칼렛 홀이 피식 웃었다.
악기의 소리가 섬세할수록 연주자 역시 섬세하여야 한다. 연주 기술이 악기의 소리를 따라잡지 못한다면, 아무리 예쁜 소리가 나는 악기라 한들 기계가 연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을 터.
자신있게 가야금을 선택한 것을 보니, 아마 학원이나 소속사에서 가야금을 가르쳐 주었나 보다.
군자가 첫 음을 내기 전까지만 해도, 스칼렛 홀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군자의 연주가 시작된 순간, 스칼렛 홀의 얼굴에서 웃음기는 사라졌다.
BPM을 따라가는 정교한 연주가 아닌, 산조(散調) 형식의 자유로운 연주. 언제나 메트로놈에 의존하여 작곡 작업을 하던 스칼렛 홀에게는 신선하기 그지없는 주법이었다.
그러나 언뜻 무질서해 보이는 그 연주가 스칼렛 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손끝에서 나는 가야금의 처연한 음색, 현과 현 사이를 오가는 군자의 손길, 음이 엮어 내는 이야기를 따라 연기를 하듯 바뀌는 군자의 표정. 그 모든 것엔 엄청난 몰입도가 있었다.
“···세상에···.”
녹음을 활성화시켜 놓은 채, 스칼렛 홀은 그저 군자의 연주를 감상하기 시작했다.
군자의 연주가 이어질수록 그녀의 편견은 빠르게 무너져 갔다.
“핌프, 너 대체 어떻게 이런 친구들을 알게 된 거야?”
“SNS로 키보드배틀 뜨다가.”
“···뭐라고?”
굳이 릴 핌프의 헛소리에 대답할 생각도 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군자의 연주를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이 감성, 이 표현력은 절대로 아이돌 소속사가 몇 달 안에 뚝딱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태초에 존재했던 재능과 오랜 시간의 훈련이 만나 만들어진 진짜 보석이다.
선율이 구슬프게 흐를 땐 눈물마저 고일 정도였다. 멤버들을 자극하기 위해 다소 강한 단어들로 아이돌의 상업성을 비판했던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정말, 정말 멋지네···.”
군자의 가야금 산조 연주는 갈수록 템포를 올리며 종장을 향해 나아갔다. 자진모리 장단을 넘어 휘모리로 이어지는 순간엔 스칼렛 홀 뿐만 아니라 스튜디오의 모든 이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군자의 연주에 반응했다.
마침내 울려퍼진 마지막 음과 함께 군자가 연주를 마치자, 모든 사람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브라보! 세상에, 너무 너무 놀라운데?”
“과찬이십니다.”
“아냐, 호들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난 알아. 그냥 악기 연주 하나 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고!”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다는 듯, 스칼렛 홀은 바로 작업용 PC 앞에 앉아 키보드와 마우스를 만지기 시작했다.
“스칼렛, 갑자기 뭐야?”
“이렇게 좋은 소스를 땄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스칼렛 홀은 즉석에서 군자의 가야금 연주를 이용하여 새로운 비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BPM을 정하고, 오리엔탈 풍의 타악기를 삽입하고, 가야금 소리를 중심으로 현악을 쌓아 나가니 순식간에 세련된 비트가 탄생했다.
“우와···.”
“놀랄 것도 없어. 이건 연주가 다 한 비트라고.”
방금 전까지 가야금을 연주했던 군자가 이번엔 마이크 앞에 섰다.
“군자, 이번엔 방금 만든 비트를 그냥 틀어 줄 거야.”
“예.”
“내가 뭘 원하는지 알겠어?”
“해 보겠습니다.”
자세한 의견을 교환하진 않았지만, 군자는 어쩐지 스칼렛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앙, 다아앙—.
순식간에 만들어진 비트였음에도, 타악기와 가야금 소리의 밸런스는 완벽에 가까웠다. 샘플링 또한 절묘하여 가야금의 선율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듣고만 있어도 군자의 입에서는 절로 가락이 흘러 나왔다.
“옛 절은 쓸쓸히 어구 옆에 있고···.”
가야금을 메인으로 한 비트 위에 군자가 자연스레 목소리를 얹었다. 가사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았으니, 옛 시조의 구절을 가사 삼아 목청을 높였다.
“저녁 해는 교목에 비치어 서럽구나—.”
그 순간만큼은 아이돌의 발성법을 완전히 놓아 두고 본래의 절절한 창법으로 가사를 읊조리는 군자였다.
한국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스칼렛과 릴 핌프였지만, 그들의 눈앞에도 노을져 가는 강산(江山)의 풍경이 펼쳐진 듯 했다.
“Oh, my···.”
“어때 스칼렛, 아직도 얘네들이 그냥 상품으로 보여?”
“조용히 좀 해 봐, 가사 씹히잖아.”
“쳇, 어차피 알아듣지도···.”
“쓰읍, 조용히!”
어느새 스칼렛 홀은 군자의 노랫소리에 푹 빠져 있었다.
“연기 같은 노을은 스러지고, 승려의 꿈만 남았는데···.”
“긴긴 세월만 첩첩이 부서진 탑머리에 남았네—.”
즉석에서 창작한 멜로디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가야금 소리와 노랫말은 절묘하게 어우러져 쓸쓸한 정서를 만들어 냈다. 이미 군자의 즉흥 연주와 노래를 많이 들어 본 멤버들이었지만, 군자의 노래는 그들의 마음조차 먹먹하게 했다.
가야금 소리가 잦아들며 군자의 노래도 조용히 끝을 맺었다. 어느새 군자도 노래에 완전히 몰입한 듯, 마지막 가사를 내뱉는 순간 성대의 떨림이 마이크를 통해 고스란히 스튜디오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노래가 끝나자 마자, 쇼파에 앉아 있던 스칼렛 홀이 벌떡 일어나 물개 같은 박수를 보냈다.
지금까지 보였던 나른한 태도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개쩐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