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36)
#236
친목친목
“···아니, 이게 뭔···.”
양궁협회장 김명중이 당황하며 스마트폰을 고쳐 잡았다. 안경을 고쳐 써 보았지만, 화면 속 훤칠하게 잘생긴 얼굴은 분명 군자의 것이었다.
– 먼저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인데, 제가 늦었습니다.
“어어···?”
– 송구하옵니다, 회장님.
“으음, 허허···.”
게다가 이 빛나는 얼굴에 이런 구수한 말투. 영상전화 너머의 청년은 유군자가 분명했다. 주변에서 김명중 회장을 지켜보던 다른 위원들도 군자의 모습에 당황한 눈치였다.
“여, 여기서 군자가 왜 나오죠?”
“저건 한영이 아닙니까?”
“맞네, 고한영이.”
“아니 왜 덕준이, 한영이가 군자랑 같이···.”
말문이 막힌 김명중 회장과 위원들을 대신하여 덕준이 입을 열었다.
– 할아버지! 나 지금 군자랑 붓글씨 쓰는 중이야!
“부, 붓글씨?”
당황할 틈도 없이 수화기 너머로 군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덕준아, 조부님께 반말을 사용하면 어쩌자는 것이냐!’ 일갈하는 목소리. 옆에선 고한영의 숨 넘어가는 웃음소리도 함께 들렸다.
– 알았어, 알았어. 존댓말 쓰면 되잖아. 할아버지, 무슨 일로 전화하셨어요?
“어어, 그게 말이다···.”
잠시 통화의 용건을 잊었던 김명중 회장은 다시금 몇 분 전을 떠올렸다.
덕준에게 전화한 이유, 갑작스레 나타난 군자의 존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하기 위함이었다. 승부욕 강한 덕준에게는 군자의 등장이 불쾌한 일일 수도 있었으니까.
덕준이 군자에게 부정적이라면, 약간의 당부도 함께하고 싶었다. 당장은 싫을 수 있지만 그래도 잘하는 선수니 한번 어울려 보라고. 의외로 잘 맞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그러나 영상전화 속 소년들을 보곤 할 말을 잃어버린 김명중 회장이었다. 할아버지가 굳이 잔소리를 하지 않아도, 소년들은 벌써 서로 친목을 다지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 웬 붓글씨를 다 쓰니?”
– 아, 얘가 써 보라고 해서요. 집중력 끌어올리는 데에 이것만한 게 없다나.
“그, 그러니?”
– 회장님, 걱정 마십시오. 손자 분의 집중력 향상,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 푸하핫, 야! 너가 무슨 학원강사 선생님이야?
– 어허, 덕준아. 형님이라고 하라니까.
– 너가 왜 내 형인데! 나 빠른년생이라고!
– 빠른년? 앞으로는 날쌘 여성이라는 순화 표현을 쓰거라. 조부님 앞에서 비속어라니, 이놈!
– 아오, 진짜! 할아버지, 나 좀 구해 줘!
– 존댓말, 존댓말, 존댓말!
– 으악, 구해 줘요!
군자에게 털리는 것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덕준은 꼬박꼬박 할아버지에게 존댓말을 사용했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 김명중 회장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핫—.”
– 아 할아버지! 웃지만 말고! 요!
“한 시름 덜었구나. 덕준아, 좋은 시간 보내려무나.”
– 에? 그냥 전화한 거였어? 요?
“그냥 안부전화나 해 보았다.”
– 에이, 그래요? 알았어요! 다음에 제가 연락드릴게요.
영상전화를 끊고 주변을 둘러보니, 모든 위원들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아들이나 손자를 보는 듯 흐뭇함 가득한 표정.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허허, 거 참 귀엽지 않습니까.”
“허흐허, 내 손자지만 참···.”
“어떻게, 벌써 친해지기 시작했나 본데요.”
“그러게 말일세.”
“역시, 애들은 어른들이 터치 안 하는 게 최고인가 봅니다.”
“다들 본성이 착한 애들이니, 금방금방 가까워지는 거겠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김명중 회장은 궁금했다. 이렇게 빨리 가까워지다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위원들의 말대로 덕준이는 본성이 착한 아이지만, 그 엄청난 승부욕 때문에 당장은 분해 하고 있을 것 같았는데.
저 유군자라는 아이가 먼저 덕준이에게 접근한 걸까.
그러나 김명중 회장의 생각과는 달리, 먼저 접근한 쪽은 오히려 덕준이었다.
국가대표급 친선전이 끝난 뒤, 덕준은 고한영과 함께 장비를 정리하며 경기를 복기했다.
“형, 나 오늘 진짜 잘 쏘지 않았어요?”
“응, 잘 쏘더라. 오늘은 진짜 지는 줄 알았다니까.”
“맞아. 나 오늘 경기 잘했어요. 마지막에 실수를 좀 하긴 했지만···.”
“그 정도 실수야 뭐, 누구든 하는 거잖아.”
“그래서 그런가.”
“음?”
“졌는데 뭔가 아쉽지가 않네?”
실제로 덕준의 표정은 꽤나 후련해 보였다. 경기에서 질 때는 항상 이를 바득바득 갈며 눈물까지 글썽였던 그 동안의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어라, 그러게? 하나도 안 아쉬워 보이는데?”
“그래요? 형이 보기에도 그래?”
“응. 너 원래 지면 막 울면서···.”
“아이, 언제 또 울었다고 그래!”
“하하, 그럼 그냥 흐느꼈다고만 할게.”
“이 씨···.”
잠시 한영을 째려보던 덕준이 대화의 화제를 바꾸었다.
“아무튼! 아무튼 내가 생각해 봤는데, 그 동안 내가 그렇게 분했던 건 상대한테 져서가 아니었던 것 같아.”
“그러면?”
“그냥, 나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경기를 못 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오오, 뭔가 깨달은 거야?”
“깨달았다고 하면 너무 거창하고··· 그냥 그런 느낌이라는 거죠 뭐.”
“그렇구나. 그럼 군자님한테 진 건 안 분해?”
“아뇨! 그건 아니에요!”
“푸하하, 그건 또 분하구나.”
“경기력은 만족스러웠지만, 아무튼 3등이잖아요. 당신한테 또 진 것도 분하고!”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다음엔 꼭 이겨 먹어야죠.”
“근데 군자 님, 엄청 잘 쏘던데.”
“그래서 좀 배워 보려고요.”
“음? 배우다니, 뭘?”
한영의 질문에, 덕준은 큰 결심이라도 한 듯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영이 형, 나 지금 군자 님 대기실로 갈 거예요.”
“엥? 갑자기?”
“그 사람 집중력 봤죠? 완전 미친 수준이에요.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 긴장되는 와중에 바람 다 읽고, 무슨 노캔 이어폰 낀 것처럼 소음에 영향도 안 받고···.”
“그렇긴 하더라.”
“대체 어떻게 그렇게 집중력이 높은 건지, 한번 물어보려고요.”
“으음, 그렇게 들으니까 갑자기 나도 궁금해지네.”
“그쵸? 그쵸? 형도 같이 가요.”
“어?”
“아이, 같이 가 봐요.”
덕준은 한영의 손을 덥석 잡고 군자의 대기실로 향했다. 기자들을 피해 선수 대기실에 숨은 군자는, 자신의 장비를 차분히 정리하고 있었다.
“저, 유군자 님!”
덕준과 한영이 먼저 찾아온 것은 뜻밖이라는 듯, 군자의 얼굴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침을 꿀꺽 삼킨 덕준이 군자에게로 뚜벅뚜벅 걸어가 오른손을 쭉 내밀었다.
“그, 오늘 경기 즐거웠어요.”
“아···.”
“저, 정말 잘 하시던데요.”
“···감사합니다.”
군자도 처음엔 놀란 것 같았지만, 이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덕준의 손을 잡았다.
“덕준 님, 한영 님의 실력도 정말 출중하셨습니다.”
“그, 뭐··· 그래 봐야 졌는데요 뭐.”
“아닙니다. 변수가 아니었다면 아마 제가 먼저 무너졌을 것입니다.”
“어어, 그··· 제가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
“그게··· 하아, 그러니까, 으음—.”
운을 떼지 못하며 머뭇거리던 덕준 대신, 나긋나긋한 표정의 한영이 말문을 열었다.
“군자 님, 덕준이가 배우고 싶대요.”
“예?”
“어떻게 하면 그렇게 집중을 잘 할 수 있는지, 군자 님께 배우고 싶다던데요.”
“집중, 집중이라···.”
잠시 턱을 괸 채 고민하던 군자는, 이내 금방 답을 내 놓았다.
“함께 붓글씨를 써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붓글씨요?”
“예. 저의 정신 함양과 집중력 향상에 가장 큰 도움을 준 것이 붓글씨입니다.”
“그, 그럼 좀 가르쳐 주실 수 있나요?”
“하하, 물론입니다.”
군자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선비의 취미가 널리 퍼지는 것이야말로 좋은 일 아니던가. 게다가 동료가 될지도 모르는 국가대표급 선수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군자에겐 커다란 동기가 됐다.
그렇게 덕준의 집에 함께 모여 붓글씨를 쓰게 된 세 사람이었다. 나이대도 비슷하고, 모두 활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니 친목은 금방 형성됐다.
“어허, 덕준아. 손목은 언제나 중립을 유지해야지. 중봉(中鋒)의 원칙을 지켜야 한단 말이다.”
“으으, 어려워···.”
“어려워도 꾸준히 하다 보면 분명 도움이 된다. 한두 번 하는 것으로 집중력이 개선되진 않겠지. 그러나 언제나 가슴 속에 붓을 품고, 서예를 생활화하다 보면 네 마음도 호수처럼 차분히 가라앉을 것이야.”
“···정말이지? 그럼 너처럼 집중 잘 할 수 있다는 거지?”
“물론이다. 군자(君子)는 거짓말 안 한다.”
“우우··· 그 3인칭 말투는 또 뭔데?”
“오오, 한영이 형님! 처음부터 너무 훌륭하십니다. 혹시 서예를 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
“하하, 아니야. 오늘 처음 해 봐.”
“그렇다면 정말로 재능이 있으신 겁니다!”
“그래? 기분 좋은데~”
“이 씨, 왜 나만··· 나도 연습할 거야!”
붓글씨를 쓰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세 사람은 금방 가까워졌다. 때마침 양궁협회장 김명중에게 영상전화가 걸려 온 거다.
영상전화를 마친 뒤, 큰형인 고한영이 기분 좋게 웃으며 두 소년을 바라보았다.
“다행이다.”
“음? 뭐가요?”
“난 덕준이랑 군자가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까, 걱정 많이 했거든.”
“그래요?”
“특히 덕준이를 많이 걱정했지.”
“예? 나를? 왜요!?”
“근데 이렇게 보니까 걱정 안 해도 되겠어.”
“그래요, 걱정은 무슨···.”
“앞으로 같이 국가대표가 된다 해도 말야.”
“내 말이요. 같이 숙소를 써도··· 어? 잠깐만, 같이 국가대표요?”
“응. 이 시점에서 가장 국가대표에 가까운 게 우리잖아. 안 그래?”
“···그러네요?”
고한영의 말처럼, 지금 올림픽 국가대표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세 사람이었다. 물론 곧 있을 공식 선발전 결과가 나와 보아야 알겠지만, 세 사람은 이미 평가전에서 압도적인 기량으로 다른 선수들과의 격차를 선보인 바 있었다.
“선발전도 잘 해 보자.”
“예, 형님. 감사합니다.”
“나도 잘 할 거야. 열심히 해서, 같이 국가대표 해 보자고.”
“좋다, 아우야. 함께 잘 해 보자꾸나.”
“동생 아니라니깐!”
군자와 악의 없이 가까워진 덕준, 한영이었지만 두 선수의 마음 속에선 조용한 승부욕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평가전에선 패배했으니, 선발전에서는 그 결과를 뒤집어 보이겠다는 굳은 결의가 두 사람의 속을 가득 채웠다.
또한, 군자에게 패배한 수많은 선수들 역시 설욕을 다짐하고 있었다. 군자의 등장이 양궁계 전체에 거대한 활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뒤, 드디어 첫 번째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이 치뤄졌다. 국가대표 선발전인 만큼 관객과 방송 촬영 없는 조용한 환경에서 진행된 1차 선발전, 모두가 그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몇 시간에 걸친 기다림 끝에, 마침내 1차 선발전 결과가 온라인을 통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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