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53)
#253
평소와 다른 표정
“정확한 계획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만··· 아마 머지않아 여러분들을 다시 만나뵙게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군자의 대답은 추상적이었지만 팬들을 만족시키기엔 충분했다. ‘머지 않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은, 곧 새로운 앨범으로 컴백할 것임을 암시하는 대답이었으니까.
다음 앨범은 아마도 10개 가량의 트랙으로 구성된 정규 2집일 테다. 월드클래스 프로듀서 ‘윌리 그린’이 메인 프로듀싱을 맡았고, 편곡진과 믹싱 엔지니어들도 국내를 넘어선 세계 최고의 기술자들과 계약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앨범을 낼 생각은 없었다. 앨범 컨셉, 음악의 퀄리티, 퍼포먼스의 완성도까지 모든 것에 심혈을 기울일 예정이었다.
군자의 야무진 대답에 많은 팬들은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으나, 그 중 몇몇은 걱정어린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이제 팬들도 멤버들의 성향을 모두 잘 알고 있었다. 하나를 해도 대충 하는 법이 없었기에, 빡빡한 일정은 분명 멤버들의 체력과 정신력을 갉아먹을 터였다.
계속 침만 꼴깍꼴깍 삼키던 한 팬이 결심했다는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무 안 서둘러도 돼요!”
내가 이런 오그라드는 말을 하다니. 스스로가 놀라웠지만, 그럼에도 그 순간의 마음은 진심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덕질의 즐거움보다 멤버들의 안위를 더욱 생각하고 있었다.
용기 있는 한마디를 꺼낸 팬은, 말을 마치자 마자 부끄럽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지만.
“맞아요, 쉬엄쉬엄 해도 돼요.”
“기다릴 수 있어요!”
그 의견에 동의한다는 듯, 다른 팬들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형들, 항상 건강해야 해요.”
그 사이엔 그 희귀하다는 남자 팬의 걸걸한 목소리도 섞여 있었으며.
“건강이 제일 중요하지, 그렇고 말고.”
“그래요, 아들들. 내가 항상 너무 너무 응원해~”
딸과 함께 생일찻집을 찾은 50대 중년 부부의 목소리도 들려 왔다.
그 수많은 목소리들을 들으며 군자는 또 한번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걱정은 곧 사랑이다. 누군가를 걱정한다는 것은, 자신이 그만큼 그를 많이 아낀다는 뜻임이라.
돌이켜 보면 숙부는 결코 그를 걱정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군자가 종종 숙부를 걱정했었다. 자신이 숙부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숙부가 느낄 실망감에 대해 걱정했었더랬다.
그러나, 아마 이런 관계야말로 진정한 사랑이겠지.
소년들과 팬들은 진심으로 서로를 걱정하고 있었다. 팬들이 소년들의 과로를 걱정하는 것처럼, 소년들 역시 항상 팬들의 안위를 생각했다.
차가운 시월의 저녁 바람이 외투 사이에 스밀 때면, 팬들이 고뿔에 걸리지나 않을까 우려했다. 곧 수학능력시험이 다가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가장 먼저 팬들 생각부터 났다.
참으로 아름다운 관계 아니던가.
마음 같아서는 백 번, 천 번이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으나 차마 민망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대신 팬들을 향해 연신 손가락 하트를 날리는 군자였다.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식으로 수줍은 마음을 표현한다지?
난데없는 군자의 하트 빔을 맞은 팬들이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아무런 개연성 없이 튀어나온 하트였으나, 사실 개연성이 무슨 상관이랴.
“하아, 너무 귀여워어···.”
“군자, 나도—.”
“하하, 받으시오. 여기 있소이다.”
“허으윽, 나도 나도—!!”
팬들에게 하트를 퍼붓는 군자를 보며 인혁과 유찬은 조용히 입을 틀어막았다.
“···구, 군자 형은 정말 대단해요···.”
“유찬아.”
“···네, 혁이 형···.”
“우리도 하자.”
“···!”
큰 결심을 했다는 듯 인혁이 입술을 앙다물며 엄지와 검지를 겹쳤다. 거의 솥뚜껑만한 인혁의 XXXL 사이즈 손가락 하트는, 웬만한 여성 아이돌의 손 하트보다도 커다란 것 같았다.
“끄아악—.”
인혁의 특대 사이즈 하트에, 인혁을 제일 좋아하는 팬들이 심장을 부여잡았다. 손가락 하트 같은 것은 안 할 이미지의 인혁이었기에, 종종 보이는 애교에 팬들의 심장은 호되게 폭행당하곤 했다.
“···그, 그럼 저도오···.”
뒤이어 유찬도 빨개진 얼굴로 손가락 하트를 뿅뿅 날렸다. 잔뜩 수줍어 하면서도 할 건 다 하는 유찬의 모습도 팬들을 기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후우우—.”
광란의 하트 샤워 시간이 끝나고, 이제 약속했던 15분도 거의 다 흘러가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질문 하나 정도만을 더 받을 수 있는 상태. 초반부터 계속해서 열심히 번쩍번쩍 손을 들어올리던 남성 팬에게 마지막 질문 권한이 돌아갔다.
“어어··· 조금 진부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혹시 아이돌로서 칠린의 목표 같은 것이 있나요?”
“흐음—.”
질문을 받은 군자가 턱을 괴며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질문하신 팬 분은 진부한 질문이라 했으나 의외로 진부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이돌로서의 목표라. 그래, 우리의 명시적인 목표는 무엇이지? 생각해 보니 그저 아이돌로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에 만족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목표는 딱히 없었다.
음원 차트 1위를 하라는 둥, 음악 방송 1위를 하라는 둥. 상태창이 임무를 내려 줄 때엔 그나마 목표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엔 그마저도 주어지지 않았으니···.
인혁과 유찬 역시 당장 목표가 무엇이냐는 질문엔 대답하기가 어려운 듯 군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난처한 표정의 동료들을 위해 군자가 마이크를 잡았다.
굳이 거짓 목표를 만들 필요는 없다.
“지금으로선, 명시된 목표는 없습니다. 그저 아이돌로서 하루하루 살아가며, 팬 분들과 소통할 수 있음에 만족합니다.”
“와아아—.”
팬들은 군자의 대답에 만족한다는 듯, 환한 미소와 함께 박수를 보내 주었다.
“자, 이동하실게요. 팬 분들, 길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지막 질의응답을 끝으로 이용중 실장이 현장을 정리했다. 마지막까지 팬들은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이며 7IN을 배려했다. 덕분에, 인력이 많지 않았음에도 이용중 실장은 수월하게 멤버들을 차량으로 에스코트할 수 있었다.
“오? 오! 칠리느 칠리느. 나 넘으 팬이야. 사랑그해!”
“오오, 타나카 공 아니시오.”
“칠리느, 내 유튜브 한 번만 나와 줘. 나도 떡그상그 하고 싶···.”
“자아, 가겠습니다아—.”
“아악, 매니저 싸느르해—.”
나가는 길엔, 마침 퇴근길에 오른 타나카와 잠시 인사도 나눌 수 있었다.
많은 것을 남긴 팬미팅이었다. 생일찻집을 왔을 뿐인데 뜻밖의 계를 탄 팬들은 200% 만족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군자의 표정은 다소 복잡했다.
“···유찬아, 인혁 형님.”
“음?”
“생각해 보니, 지금 우리에겐 명확한 목표가 없었습니다.”
“···그, 그건···.”
“바쁘게 달려 오느라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입니다. 사실 명확한 목표가 없이도 팬 분들과 소통하며 즐거운 아이돌 생활을 이어 오기도 했고요.”
“네 말이 맞다, 군자.”
“하지만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는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
“달성 가능한 목표든, 그렇지 않든. 적어도 누군가가 우리에게 ‘목표가 무엇이냐’ 물을 때, 또렷하게 대답할 무언가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그 말도 맞는 것 같아요···.”
잠자코 군자의 말을 듣고 있던 인혁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래, 맞아.”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그렇다면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까.”
“그건···.”
인혁의 질문에 이번엔 군자의 말문이 막혔다.
명확한 목표를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정작 무엇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지는 쉬이 떠오르지 않았으니까.
이제 아이돌 3년차에 접어들고 있으나, 아직 모든 것이 낯선 군자였다. 당장 코앞의 한 걸음, 한 걸음도 새로운데, 멀리 있는 목표를 정한다는 것이 결코 쉽진 않았다.
“···죄송합니다, 형님. 제가 별 대안도 없이···.”
“아니, 널 질타하는 게 아냐.”
“···.”
“그럴 수 있어. 다 그럴 수 있지.”
“···형님.”
“천천히 생각해 보자.”
그렇게 말하며 인혁이 가볍게 웃어 보였다. 좀처럼 웃지 않는 인혁이었으나, 이렇게 한 번씩 짓는 미소는 언제나 군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감사합니다 형님.”
“아냐, 내가 더 고마워.”
“아닙니다, 제가 더 고맙습니다.”
“···아, 아니에요, 제가 더···.”
“어허, 막내가 어딜 끼느냐. 내가 더 고맙단다.”
“절대 아니야. 내가 제일 고맙다.”
“아닌 게 아니라, 제가 제일 감사합니다.”
“···두, 둘 다 아무 것도 몰라요···.”
‘풍산즈’로 묶인 세 사람이 감사 배틀을 벌이는 모습을 보며 이용중 실장은 혼자서 피식피식 웃었다.
“참, 싸워도 웃기는 걸로 싸우는구만?”
“아, 그렇지. 실장님! 실장님께도 항상 감사드립니다!”
“아니거든? 내가 더 고맙거든?”
그렇게, 세 멤버를 실은 차는 한강 다리를 건너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 * *
10월 중순 이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정규 2집 앨범 준비작업이 시작됐다.
이번 정규 앨범의 메인 프로듀서를 맡은 ‘윌리 그린’, 스칼렛 홀은 아예 자신의 프로듀싱 & 믹싱 사단을 통째로 전용기에 태워 솔라시스템 작업실로 날아왔다.
“오오, 뭐야. 장비가 별로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여기도 우리 작업실이랑 별 다를 것 없는 수준이구만? 작업 하는 데엔 전혀 아무런 지장이 없겠어!”
솔라시스템의 레코딩 장비와 프로듀싱 시스템은 세계 최고의 프로듀서 스칼렛 홀이 보기에도 부족함이 없는 수준이었다. 시설을 구축한 장본인 서은우 팀장은, 감정을 숨기려 노력했으나 꽤나 뿌듯해 보였다.
“감사합니다, 홀 씨. 아무쪼록 편하게 계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아이, 우리는 맨 바닥에서도 잘 자니까 걱정 안 해도 돼요. 그것보다 솔라시스템이 얼마나 음악에 진심인지 알 수 있어서 좋네요. 이런 작업실이라면, 쇼파에서 쪽잠 자면서도 즐겁게 작업할 수 있겠어.”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아, 연주 세션은 현지에서 섭외할 수 있나요? 아니면 우리가 미국에서 불러 와야 하나?”
“물론, 현지 최고 수준의 세션을 섭외해 놓은 상태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현지 세션을 불러 오셔도 괜찮겠지만, 분명 홀 씨의 마음에도 쏙 드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자신감 멋진데요.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역시 잘 부탁드립니다.”
“그럼 뭐 질질 끌 것 없이, 바로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시작해 볼까?”
여독을 풀 생각도 없다는 듯, 스칼렛 홀은 멤버들을 불러모아 작업 스케치를 시작했다. 앨범에 담고 싶은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의 파편을 끌어모아 스토리라인을 구상하는 작업이었다.
“다들 오랜만이지?”
“네에, 보고 싶었어여~”
“후후,여전히 사랑스럽구만. 하지만 이번엔 엄청 무섭게 할 거니까, 각오하라고.”
그렇게 말하며 군자의 얼굴을 흘끗 본 스칼렛 홀이었다. 모두 다 반가웠지만, 솔직히 군자가 가장 보고 싶었던 스칼렛 홀이었으니까.
“···엥?”
그런데, 군자의 표정이 어쩐지 평소와는 조금 달라 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