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66)
#266
귀신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올림픽에서는 매년 다양한 기록이 쏟아진다. 그 중에서도 대중을 가장 열광케 하는 단어는 역시 ‘세계신기록’. 이번 2024 파리 올림픽에서는 어떤 종목에서 가장 먼저 세계신기록이 나올지, 수많은 미디어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하계 올림픽 취재에 잔뼈가 굵은 베테랑 기자들은 부정적인 시각이었다.
올림픽 무대에서 세계신기록이 나오기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가장 먼저, 날씨가 선수들을 도와 주어야 한다. 적당한 일조량, 일정한 풍향, 최적의 습도가 갖춰지지 않으면 세계신기록은 좀처럼 쉽게 나오지 않는다. 매우 미세한 차이로 기록이 작성되는 하계올림픽 종목들의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두 번째로, 선수들의 멘탈이 바위처럼 단단해야 한다. 주목도가 떨어지는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와 달리, 올림픽은 말 그대로 지구 전체가 즐기는 축제다. 마이너한 종목에도 수천의 관객이 모여들고, 수백 대의 카메라가 그들을 향하며, 거기에 방송 중계까지 따라붙는다.
게다가 육상, 수영 등의 종목에서 세계신기록 작성이 유력해 보였던 최고의 선수들이 부상으로 대거 낙마하기까지 했다. 그렇기에 2024 파리 올림픽에서 많은 세계신기록을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올림픽을 취재하기 위해 파리 현지에 모인 외신 기자들은 아쉽다는 듯한 표정으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엔 올림픽에서 스타가 탄생하길 기대하긴 어렵겠어.”
“아무래도 그렇죠. 하계 메이저 종목인 육상, 수영에서 기대주들이 전부 나가리 돼 버렸으니까요.”
“젠장, 올림픽이 코앞인데 컨디션 관리 좀 잘 하지···.”
“첫번째 세계신기록은 어디서 나올까요?”
“세단뛰기의 카일 샘프러스가 이번엔 분전할 것 같기는 해. 여자 장대높이뛰기에선 넬슨 가델라가 잘하고 있고··· 물론 날씨가 도와줘야겠지만 말야.”
“후우, 하필이면 날씨도 똥망이네요. 해라도 쨍쨍하면 또 모르잖아요, 맞죠?”
“그러게. 세계신이 팍팍 나와야 취재하는 입장에서도 신이 나는데···.”
우울한 대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한 기자가 분위기를 바꿔 보겠다는 듯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그나저나, ‘팀 코리아’ 양궁 선수들 봤어? 이번에 SNS에서 엄청 화제던데.”
“아, 그 잘생긴 친구들 말이지?”
“지난 올림픽에선 팀 코리아의 펜싱 선수들이 인기가 많았지, 아마?”
“경쟁력은 있대?”
“‘고한영’과 ‘김덕준’은 계속해서 국가대표에 선발됐던 선수들이야. 특히 고한영은 현 세계 랭킹 1위로, 이번 개인전에서도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고. 자국 대표 김덕준, 중국의 리장량, 미국의 다니엘 레골라스만 조심한다면 아마 고한영이 금메달을 따겠지.”
“그런데 그 팀에 웬 가수가 한 명 있다던데.”
“아, 그 친구··· 나도 봤어. 국가대표 선발전 1등 했다더라.”
“뭔가 이상하지 않아? 현역 가수가 국가대표 선발전 1등이라니··· 게다가 대한민국 양궁 국가대표 선발전이 얼마나 빡센지, 너희도 다 알잖아.”
“뻔하지 뭐. 적당히 실력 있는 선수니까,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서 올림픽 대표로 올리고 싶었던 거 아닐까.”
“에이, 설마 그랬으려고. 얼핏 들었는데, 팀 코리아의 양궁 국가대표 선발은 100% 실력 본위로 이뤄진다던데.”
“하지만 고인 물은 썩는 법이야. 게다가 인기 많은 아이돌에게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힐 수 있는 찬스가 왔는데, 아무리 청렴한 협회라 해도 이런 기회를 놓치겠어?”
“흐음, 그런가···.”
“하지만 조금 이상한데. 그 ‘유군자’라는 친구, 개인전뿐만 아니라 단체전에도 로스터에 올라가 있다고. 이러면 단체전에선 메달을 기대하기 어려워지는 거 아냐?”
“대승적인 합의를 했겠지. 어차피 김덕준에겐 앞으로 여러 번의 올림픽 출전 기회가 있고, 고한영은 이미 지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두 개나 딴 메달리스트야. 아이돌 가수랑 올림픽 한 번 같이 나가는 게, 이 선수들에겐 큰 손해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지.”
“···뭐, 그렇게 생각하니 또 그렇네···.”
“어쨌거나 아쉬운 결정이야. 다른 나라도 아니고, 대한민국 양궁협회가 이런 결정을 내리다니 말야.”
그 때, 또다른 기자가 타블렛 PC를 들고 헐레벌떡 무리에 합류했다. 타블렛 PC엔 경기 중계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다들 팔자 좋구만, 로비에서 잡담이나 하고 말야.”
“아직은 본선 경기들이 시작하기 전이니까. 마지막 여흥을 즐기는 거지.”
“여흥 즐길 시간 없어. 첫 번째 세계신기록이 나오기 직전이라고!”
‘세계신기록’이라는 말에 기자들의 눈빛이 일순 바뀌었다.
“무슨 종목인데?”
“양궁.”
“뭐? 양궁? 지금 퀄리피케이션 라운드 중인 거 아니었어?”
“바람이 좀 있는데다가 ‘팀 코리아’때문에 매스컴도 몰려들어서, 기록은 안 나올 줄 알았는데···.”
“누구야? 리장량? 다니엘? 아니면 이번에도 고한영인가?”
그러나 타블렛을 든 기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처음 듣는 이름일 거야. K-POP에 관심이 있었다면 들어 봤을지도 모르고.”
“엥?”
“유군자. 한국의 유군자가 신기록을 작성할 것 같아.”
“어어—!?”
방금 전까지 군자의 한계에 대해 말하던 기자들은 모두 얼 빠진 표정이 돼 버렸다.
“그 아이돌 친구 말이야?”
“그래, 그 눈에 띄는 친구 말야.”
“저, 점수는? 몇 점이래?”
“종전 신기록은 고한영이 세운 701점이었지.”
“그래, 그랬었지.”
“68발째 쏜 지금··· 점수는 672점이야.”
“—!?”
“68발의 화살을 쏘는 동안 딱 8점 잃었다고! 믿어져?”
쐐애애애액, 퍼어어어어어억—!!
그 사이, 타블렛PC 속 군자의 화살이 한 번 더 과녁의 정중앙에 꽂혔다.
[유군자, 10점.]“···미친···.”
“이게 말이 돼? 세계신기록이 이렇게 큰 폭으로 박살난다고?”
“유군자 뿐만이 아니야. 팀 코리아의 고한영, 김덕준도 완전 미친 폼이야. 고한영이 665점, 김덕준이 664점··· 아마 이 페이스대로라면 두 선수 모두 개인 신기록을 갱신하겠지. 하지만 유군자 이 친구는 차원이 달라. 그냥 모든 참가자들을 학살하고 있다고!”
쐐애애애애액, 퍼어어어어어어억—!!
무자비하게 날아간 70번째 화살 역시 과녁의 한복판을 꿰뚫었다. 이제 점수는 692점. 10점을 추가하면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는 가운데, 군자에겐 두 발의 화살이 남아 있었다.
“···이, 이게 뭔 미친···.”
“이게 가능하다고? 말도 안 되잖아···.”
“아니, 집중력이 무슨—.”
기자들은 입을 다물지 못하며 중계 화면을 보고 있었다. 호텔 로비의 기자들 뿐만이 아니었다. 첫 세계신기록 작성을 감지한 수많은 기자와 팬들이 경기장에 몰려, 관중석은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타블렛 PC의 작은 스피커로 들어도 귀가 찢어질 듯한 함성.
그러나 그 와중에도 군자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마지막 두 발의 화살을 준비하고 있었다.
* * *
“후우우—.”
슬슬 어깻죽지가 아파 온다. 지금 당기는 이 부분을 회전근개라고 하던가. 진천의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알려주신 대로, 어깨를 부드럽게 움직이며 관절을 풀어 준다.
모든 동작은 루틴에 어긋나지 않게, 철저히 나만의 박자에 맞추어.
사실 지금까지 몇 발의 화살을 쐈는지도 모르겠다. 점수표를 보지 않은지도 꽤 됐다. 처음엔 옆 사로의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며 경기를 진행했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그 사소한 대화마저도 실종되어 버렸다.
이 순간엔 세상에 오로지 화살과 과녁, 그리고 자신밖에 없다는 듯.
군자의 정신은 오롯이 화살로 과녁을 맞추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쐐애애애애액, 퍼어어어어어어어억—!!
[유군자, 10점.]“후우우—.”
다시 한번 긴 호흡을 내뱉는다. 경기 진행요원이 무어라 말을 하는 것 같았으나,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마치 물 속 먼 곳에서 대화를 하는 것처럼 그의 목소리가 멀리 들린다.
하긴, 굳이 들을 필요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지금은 경기 중 아니던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화살로 과녁의 정중앙을 맞추는 것. 그리고 그것은 군자가 가장 자신있는 일 중 하나였다.
다시 한번, 화살 끝을 만지며 날개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잡고. 시위의 탄성을 느끼며 화살을 걸어 당긴다.
꽈아아악—.
손끝의 감각은 그 어떤 때보다 예민하다. 회전근개의 통증은 없다. 물리치료사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근육 이완법이 제대로 통한 듯 하다.
이 대회가 끝나면 큰 감사인사를 올려야겠구나.
천천히 과녁을 향해 왼팔을 정조준한다. 난잡한 바람을 느끼며 어깨와 팔의 위치를 미세하게 조정했다.
시간을 끌면 안된다. 정신의 삼투압을 따라 잡념이 스며들기 전에,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로. 그저 이 화살을 과녁 정중앙에 보내는 거다.
쐐애애애애애액—.
호쾌하게 날아간 화살은 이번에도 군자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다.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억—!!
[유군자, 10점.]“후우우우—.”
정해진 대로 큰 날숨을 내뱉으며 호흡을 정리한다. 이제 다시금 다음 화살을 준비해야 한다. 회전근개를 풀어 주기 위해 어깨를 만지려는데, 뭔가 이상했다. 고요하기 그지없었던 경기장이 아우성으로 가득했다.
···우와아아아악···.
···군자야, 군자야아아···.
분명 경기 중일 터인데, 덕준과 한영이 그에게 달려와 몸을 부둥켜 안았다.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도 군자는 그들을 끌어안았다. 아니, 이 친구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두 사람의 어깨 너머로 본 경기장 풍경은 종전과는 조금 달랐다. 마치 경기가 끝난 것처럼, 수많은 관객들이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과 함께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그 천둥 같은 환호성에, 극한까지 치솟았던 군자의 집중력도 천천히 흐트러졌다. 아니, 이래서는 아니된다. 정신을 한 데 모아야 완벽한 궁술을 선보일 수 있거늘, 나의 동료들은 어째서 나를 끌어안는···.
그러나 그 순간, 덕준의 고함 소리에 군자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군자야, 군자야아아—!! 너가 1등이야—!!”
“···?”
“세계신기록이라고!! 712점, 이건 그 누구도 못 깨—!!”
“그게 무슨—.”
“아니 얘, 아직도 집중하고 있나 보네! 정신 차려 이제! 푸하하핫—.”
그제야 군자는 경기가 끝났음을 알아차렸다.
[유군자 : 712] [고한영 : 704] [김덕준 : 703]‘팀 대한민국’의 세 명이 모두 700점을 넘는 초월적인 기록을 달성한 가운데, 유군자는 무려 712점이라는 경이로운 점수를 기록하며 새로운 세계신기록을 작성했다.
모든 경쟁팀 선수들, 더 나아가 이 경기를 지켜보던 전 세계의 스포츠 팬들에게 ‘유군자’라는 이름이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퀄리피케이션 라운드, 즉 예선이 끝났을 뿐이지만 경쟁팀 선수들은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올림픽 양궁에서 금메달을 따내기 위해선, 저 귀신 같은 궁사를 반드시 뛰어넘어야 함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