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69)
#269
퍼펙트 세트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양궁 본선 토너먼트, 64강에 오른 미하일 슐럽은 독일 최고의 궁사였다.
컴파운드 보우로 사냥을 하던 아버지 덕에 어릴 적부터 활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첫 사냥에 나갔던 순간을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슐럽이었다.
활만이 가진 곡사(曲射)의 매력은 슐럽을 완전히 매료시켰다. 유년기가 지난 뒤에도 슐럽의 손에는 활이 들려 있었으며, 그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엘리트 양궁선수의 길을 걸었다.
사냥에 쓰이는 컴파운드 보우 대신 양궁용 리커브 보우를 들었지만 그의 재능은 여전히 빛났다. 같은 엘리트의 길을 걷는 선수들 중에서도 슐럽의 집중력을 뛰어넘는 이는 없었다.
“와우, 슐럽! 또 10점이야!”
“대체 어떻게 하면 이렇게 쏘는 화살마다 고득점인 거지?”
“말해 봐. 너처럼 완벽한 집중력을 갖기 위해선 대체 무슨 훈련을 해야 하냐고.”
독일 국가대표팀 동료들은 매일 그를 채근했지만 슐럽은 그저 고개를 저으며 웃을 뿐이었다.
극한의 집중력, 그게 어디 하루이틀 훈련으로 갖출 수 있는 것이던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다니며 연마한 집중력이다. 산중 야생동물과의 대치 상황은 슐럽의 멘탈을 연필심처럼 날카롭고 예리하게 갈고 닦아 주었다.
올림픽 퀄리피케이션 라운드에선 파리의 기후와 풍향에 적응하지 못해 낮은 점수를 기록했으나 슐럽은 흔들리지 않았다.
어차피 퀄리피케이션 라운드는 본선 진출자를 가려내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토너먼트에서 상대를 확실히 꺾는 것. 첫 상대부터 세계신기록을 수립한 유군자를 만났지만, 슐럽은 오히려 반갑다는 기색이었다.
“저 녀석이 아마 이번 올림픽 양궁 최고의 스타겠지?”
“아마도. 출신부터 독특한 친구잖아. 게다가 세계신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그렇다면 저 친구를 이긴다면 내가 그 관심과 사랑을 다 가져갈 수 있겠네.”
슐럽이 보기에 유군자는 하얀 얼굴의 연예인일 뿐이었다.
나름대로 활을 쏠 줄은 아는 것 같았지만 슐럽은 걱정하지 않았다. 1대 1 경기는 기록 라운드보다 훨씬 더 높은 집중력을 필요로 하니까.
1대 1 토너먼트 라운드는 훨씬 더 적은 수의 화살로 인해 승부가 결정된다. 그렇기에 단 한 순간이라도 집중력이 무너지는 순간, 제 아무리 예선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운 선수라 해도 떨어질 가능성은 존재하는 것이다.
슐럽은 집중력을 잃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평생을 안무 연습실에서 보낸 군자와 달리, 어렸을 적부터 산짐승을 사냥하며 자라 왔으니까. 물론 컴파운드 보우와 리커브 보우는 다루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었으나, 극한의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것만큼은 같았다.
사로에 선 군자의 평안한 표정을 보면서도 슐럽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연기도 했다더니, 제법 연기력이 되는군.”
물론 저주받은 군자의 연기력은 그 정도 표현을 해 낼 역량이 없었으나, 슐럽이 그런 사실을 알 리 만무했다.
퍼어어어억—!!
[유군자, 10.]군자의 첫 화살히 호쾌하게 정중앙을 맞춘 뒤에도 슐럽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첫 화살로 10점을 쏘는 것이 대수인가. 중요한 것은 한 세트 3발의 화살을 모두 안정적으로 꽂아 넣는···.
퍼어어어어어억—!!
[유군자, 10.]···세 발 모두 안정적으로 꽂아 넣는 능력이다. 두 번째 화살까지는 용케도 집중력을 유지한 모양이었지만, 반드시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따라붙는 세 번째 화살만큼은···.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어억—!!
[유군자, 10.]“—!?”
그러나 경기는 슐럽의 예상과 다르게 흘러갔다.
[유군자. 놀랍습니다! 첫 세트부터 퍼펙트 스코어입니다! 심지어 첫 화살은 중계용 렌즈를 박살내며 과녁의 정가운데에 명중했네요!] [예선에서 놀라운 점수로 세계신기록을 작성한 유군자, 본선 무대에서도 어김없이 하이스코어를 이어갑니다! 놀라운 집중력입니다!] [지금 유군자 선수의 화살이 꽂힌 위치를 보시면 이 선수가 얼마나 일정한 매커니즘으로 화살을 쏘아 보내는지 알 수 있는데요. 같은 10점이라도 과녁의 이곳저곳에 정신없이 꽂힌 것이 아니라, 영점이 잘 잡힌 일정한 위치에···.]세 발의 화살을 정중앙에 꽂아넣고도 표정 변화 하나 없는 군자를 보며, 슐럽은 관자놀이에 흐르는 땀을 훔쳐야 했다.
“뭐야, 이 자식···.”
첫 올림픽 출전에 첫 퍼펙트 세트, 분명 환호할 법도 했으나 군자의 표정에 큰 웃음은 없었다. 마치 ‘그럴 줄 알았다’라는 듯, 가벼운 미소와 함께 돌아섰을 뿐. 그 와중에 갤러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는 여유도 잊지 않았다.
와아아아아아아아—.
뒤따르는 관객들의 환호성이 괜히 거슬렸다. 까짓 거, 똑같이 퍼펙트 세트로 응수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첫 화살을 준비한 슐럽이었으나.
퍼어억—.
[미하일 슐럽, 9점.]“!?!?”
첫 화살부터 9점에 맞고 말았다. 이제 나머지 화살을 모두 10점에 꽂아 넣는다고 해도 점수는 29점. 첫 세트부터 30점을 기록한 군자를 이길 방도는 없었다.
자동적으로 첫 세트는 군자의 차지. 합산 스코어는 2 : 0으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자아, 이렇게 첫 세트를 유군자 선수가 가져갑니다! 미하일 슐럽, 당황한 표정이 역력한데요. 아마도 이런 식으로 선취점을 내 줄 줄은 몰랐나 봅니다!] [여기서 양궁의 스코어 기록 방식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양궁 토너먼트 라운드는 한 세트에 세 발의 화살을 쏩니다. 이 세트에서 승리한 경우 스코어 2점, 비긴 경우 스코어 1점을 가져가게 됩니다. 이렇게 점수를 모아 최종적으로 6점을 기록한 쪽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하는 방식입니다.] [합산 스코어가 동점이 나오는 경우, 축구의 승부차기와 비슷한 슛오프라는 연장전 제도가 있습니다만··· 적어도 이번 경기에선 슛오프가 나오지 않을 것 같기도 합니다! 유군자 선수의 기세가 너무 좋네요!]첫 세트를 압승으로 가져갔음에도 군자의 태도엔 변화가 없었다. 다시 한번 태연하게 사로에 올라 첫 시위를 당긴다. 도톰한 입술에 시위 끝 부분이 살짝 닿자, 격앙된 표정의 팬들이 입을 틀어막으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흐으음—.”
느긋하게 풍향을 읽으며 쏘아 보낸 네 번째 화살, 역시 어김없이 10점이다.
[유군자, 10점.]와아아아아아아—.
박수 갈채와 환호성이 뒤따르는 가운데, 오직 독일 팀 코치진과 미하일 슐럽만이 웃지 못한 채 얼어 있었다.
“···또 10점이라고?”
이어서 군자가 쏘아 보낸 두 발의 화살 역시 모두 10점.
토너먼트 첫 경기인 64강부터, 군자는 자신의 기량을 여지 없이 발휘해 내고 있었다.
[이야아아, 또 퍼펙트 세트입니다! 또 10-10-10! 텐의 행렬이 스코어보드를 가득 채웁니다!] [이런 경우가 있었나 싶습니다! 올림픽에 처음 오는 선수가, 양궁 대회 자체에 처음 참가하는 선수가, 그것도 심지어 현역 아이돌인 선수가! 독일 랭킹 1위인 미하일 슐럽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습니다!] [미하일 슐럽, 이건 전혀 예상했던 바가 아니라는 듯한 모습인데요! 머리를 긁적이며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입니다!]“하하··· 이게 대체 뭔···.”
벌써 두 번째 퍼펙트 세트다. 슐럽 역시 집중력을 끌어올리며 2세트의 첫 화살을 10점에 꽂아 넣었지만, 이미 요동치기 시작한 심박은 제어할 방도가 없었다.
바로 쏘아 보낸 두 번째 화살, 이번에도 슐럽의 화살은 10점 과녁을 빗나가고 말았다.
[미하일 슐럽, 9점.]“젠장—!!”
손톱만큼 실수했을 뿐인데, 이번에도 세트를 내어 주고 말았다. 10점에 9점이면 올림픽 라운드 기준으로도 아주 잘 쏜 편에 속하지만, 퍼펙트 세트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렇게 두 번째 세트까지 내 주자, 순식간에 스코어는 4-0까지 벌어졌다. 벼랑 끝에 몰린 슐럽의 심박이 100 이상으로 치솟았다.
“슐럽, 호흡해. 크게 호흡하라고!”
“후우, 후우우—.”
“아직 경기 안 끝났어. 지금부터라도 집중하면···.”
어떻게든 슐럽을 진정시켜 보려는 코치진이었으나, 그 순간 군자의 존재는 마치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이제 한 세트만 가져가면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이 와중에도 군자의 심박은 40~50 사이를 오가고 있었다.
“이런 미친···.”
“40이면 일반인보다도 훨씬 낮은 수치 아냐?”
“집중력만 좋은 게 아니라, 심장 기능도 엄청 좋은가 본데···.”
“이게 말이 돼? 도대체 왜 아이돌을 하고 있었던 거래?”
슐럽 역시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초월적인 집중력은 도저히 연예인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었다.
연예계가 아무리 힘들다고 한들, 퍼포먼스가 아무리 도전의 연속이라고 한들 야생동물과의 대치 상황만큼 긴장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야생에서 감각을 갈고 닦은 슐럽이기에, 적어도 집중력에서만큼은 군자에게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슐럽은 실력으로도 멘탈적으로도 군자에게 완벽하게 밀리고 있었다.
퍼어어어어억—!!
[유군자, 10점.]3세트의 첫 화살 역시 10점. 본능적으로 이 곳이 승부처임을 직감한 듯, 군자의 두 눈에 형형한 이채가 돌았다. 두 번째 화살을 준비하는 그의 동작에는 군더더기 하나 없었다. 아직 시위를 당기지도 않았으나, 슐럽은 어쩐지 알 수 있었다.
“···또 10점이야.”
그런 슐럽의 예감을 증명이라도 하듯, 홀연히 날아간 군자의 화살은 과녁 정중앙에 꽂히며 다시 한번 전광판에 같은 숫자를 써내려갔다.
[유군자, 10점.]와아아아아아아아—.
경기 중엔 큰 환호성을 지르지 않는 것이 매너였으나, 몇몇 관객들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 소리를 지르며 열광했다. 안전요원이 그들을 제지했지만, 심지어 안전요원들조차도 무언가를 기대하듯 벅차오른 표정이었다.
세트제가 도입된 뒤, 한 라운드에서 세 번의 퍼펙트 세트를 기록한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 군자가 마지막 화살을 10점에 꽂아 넣는다면, 그 놀라운 업적을 달성하게 되는 거다.
모두가 군자의 마지막 화살을 기대하는 가운데, 슐럽은 문득 깨달았다.
‘이 자식은 절대로 이길 수 없어.’
만약 이 세트에서 슐럽이 퍼펙트 세트를 만들며 경기를 근근이 이어 나가더라도 마찬가지다. 다음 세트에서도, 다다음 세트에서도, 군자의 집중력은 흐트러지지 않을 테니까. 반면 슐럽의 심박수는 이미 130을 넘어 140, 150까지 치솟아 오르고 있었다.
패배를 직감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놀라운 상대를 만났기에 느끼는 두근거림일지도 모르겠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으며, 슐럽은 군자의 마지막 화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분명 한 경기장에서 경쟁하는 상대였으나, 어느새 미하일 슐럽은 순수한 군자의 팬이 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모두의 주목을 받는 가운데, 마침내 군자가 마지막 활시위를 당겼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