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70)
#270
의기투합
콰직—!!
호쾌한 파열음과 함께 다시 한번 중앙의 렌즈가 박살났다. 군자의 첫 화살로 인해 교체했던 카메라 렌즈가, 마지막 화살 때문에 또 한번 고장나고 만 거다.
점수는 말할 것도 없이 10. 또 한 번의 10-10-10, 세 번의 퍼펙트 세트 스코어가 군자의 전광판을 채웠다.
[또, 또, 또 10점입니다아아아—!! 유군자, 64강 첫 경기부터 끝내주는 기량!! 아홉 발의 화살을 모조리 10점 과녁에 꽂아 넣었습니다—!!] [정중앙의 렌즈가 또 박살이 나 버렸습니다!! 올림픽운영위원회에 또 한 번 렌즈 값을 청구하는 유군자!! 장비 담당관이 또 바빠지게 생겼습니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유군자의 과녁을 바라보는 미하일 슐럽!! 이제 그도 퍼펙트 세트를 만들어 내야만 경기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이 경기를 뒤집기 위해선, 말 그대로 기적이 일어나야 합니다!!]“후우우—.”
아홉 발의 화살을 다 쏜 뒤에야 군자는 미간에 주었던 힘을 풀며 이마를 훔쳤다. 그러나 임전 태세를 해제할 생각은 없었다. 만약 미하일 슐럽이 퍼펙트 세트를 만들어 내면 경기를 계속 이어나가야 하므로.
그러나 미하일 슐럽의 멘탈은 이미 불안정한 상태였다.
단 한 발도 실수하지 않는 군자를 상대하기 위해선, 슐럽 역시 한 번의 실수도 없이 퍼펙트 세트를 만들어 내야 한다.
찰나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극한의 상황이 그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갔다.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화살을 당겨 보았지만 손끝이 진정되지 않았다.
“차분해지자, 차분해지자···.”
주문처럼 암시를 중얼거리며 호흡을 정돈했다. 어렸을 적 산중에서 만났던 야생동물을 떠올려 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슐럽이 느끼는 위압감은 그 어떤 야생동물에게서 느꼈던 것보다 더욱 강렬했다.
아마 그 위압감의 근원은 건너편 사로의 군자에게서 나오는 것일 터.
애써 입술을 꽉 깨물며 과녁의 정중앙을 겨냥해 보았지만.
퍼어어어어억—.
[미하일 슐럽, 8점.]결국 압박감이 그를 집어삼키고 말았다. 토너먼트 첫 경기, 군자가 완벽한 경기력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순간이었다.
[경기 끝납니다아아아—!! 유군자, 세 번의 퍼펙트 세트로 독일의 미하일 슐럽을 완벽하게 제압했습니다—!!] [손톱만큼의 논란의 여지도 없는, 그야말로 완벽한 경기력!!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정중앙의 중계 렌즈를 두 번이나 박살내며, 유군자가 3세트만에 32강에 진출합니다—!!] [관중들, 유군자의 이름을 연호합니다!! 정말 멋진 광경입니다!! 정적인 양궁 경기 특성상 이만큼 우렁찬 환호가 나오는 경우는 흔치 않았는데요, 그러나 오늘만큼은 축구 경기를 방불케 할 만큼 뜨거운 응원이 이어집니다!! 손을 들어 환호에 화답하는 유군자, 정말로 멋진 모습입니다—!!]우와아아아아아—.
쩌렁쩌렁한 환호 소리가 군자의 귓전을 울렸다. 콘서트장에서 들었던 하이톤의 비명 같은 환호성과는 달랐다. 남녀노소, 세계 각국 관객들의 목소리가 한 데 어우러진 복합적인 환호성. 목소리는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군자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 아닌가.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도, 군자는 문득 건너편의 미하일 슐럽을 바라보았다.
전력을 다해 경기에 임한 슐럽이었지만 군자를 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반쯤 넋이 나간 표정으로 조용히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다.
올림픽이라는 대회는 4년에 한 번만 한다고 했었지. 그 역시 이 대회에 나오기 위해 피땀 흘려 노력했을 것이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른 군자였다. 궁술 대회를 개최하면 언제나 1등을 놓치지 않았던 군자였다. 대회가 끝난 뒤엔 언제나 양반가 자제들이 군자의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악에 받친 표정으로 군자에게 저주를 퍼붓곤 했다.
어차피 문관일진대, 활 좀 잘 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느냐.
네 숙부의 세력이 약하니, 결국 네 활솜씨도 광대 놀음에 불과할 뿐이다.
어차피 서른 전후에 죽어 사라질 터인데, 활 좀 잘 쏘는 것이 대수더냐.
네놈도 분명 그렇게 될 것이다. 요절하여 네 부모를 따라가게 될 것이다.
적의 가득한 그들의 눈을 보며 군자는 분노보다는 안쓰러움을 느꼈다.
얼마나 이기고 싶었으면 이렇게까지 험한 말을 한단 말인가. 이들도 분명 처음부터 이토록 오염된 이들은 아니었을 터.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승리에 대한 집착이다. 져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이다. 건너편에 선 벽안(碧眼)의 외국인이라고 그런 집착과 압박감이 없었을 리 없다. 넋이 나간 듯 허무한 저 표정이 그를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짝, 짜악—.
이내 스스로의 뺨을 두어 번 때린 슐럽이 군자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 움직임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임전 태세를 취한 군자였다.
그 예전 사대부 자제들처럼, 저 자 역시 억하심정이 가득한 상태일 터. 무슨 폭언을 퍼부을지 모르고, 어쩌면 주먹을 휘두를지도 모른다.
패배로 인한 안타까움에는 공감하는 바이나, 순순히 해코지에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할 생각이라면 대응해야 한다.
그렇게 결심하며 군자가 주먹에 힘을 꽉 준 순간이었다.
“유군자.”
“···?”
서툴지만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군자의 이름을 부르는 슐럽의 목소리엔 적의 같은 것은 없었다.
“좋은 경기였어. 네 샷들엔 정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
패배감 때문인지 얼굴은 아직도 상기되어 있었지만, 그는 군자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 보였다.
“솔직히 이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나 봐. 예선에서의 그 실력은 전부 진짜였구나.”
“···.”
“덕분에 많이 배웠어. 고맙다.”
미하일 슐럽은 씨익 웃으며 군자에게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군자로서는 대경실색할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 4년의 기다림 끝에 맞이한 무대에서 싸운 상대 아니던가. 분명 패배를 원하진 않았을 터, 그러나 슐럽은 적의를 드러내기는커녕 오히려 군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치 이 패배를 받아들이겠다는 듯, 너무나도 후련한 표정으로.
군자로서도 이런 감정은 처음이었다.
“···슈, 슐럽 공!”
군자도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 큰 손을 덥석 잡았다. 자신도 모르게 슐럽을 끌어당기며 그를 와락 끌어안는 군자였다.
“아하핫, 뭐야. 놀랐잖아.”
“고맙소이다, 정말로 고맙소이다!”
“나도 고마워. 덕분에 다시 한번 정진할 수 있을 것 같다.”
벅차오르는 감정 덕분에 군자는 거의 눈물을 흘릴 지경이었다.
그래, 이것이다. 이게 내가 바라는 결착이었단 말이다. 추잡한 뒤끝 대신 상대를 인정하며 존중하는, 사나이답고 멋진 마무리. 과거 궁술 대회에서는 결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다.
그 뒤로도 몇 차례나 진한 포옹과 악수를 나눈 뒤에야 군자는 대한민국 선수단에 합류했다. 덕준과 한영 역시 6-0 스코어로 경기를 마무리한 뒤 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후우, 후우,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 하는구나.”
“푸하학, 상대가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
덕준의 질문에 군자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진정한 전사였다. 패배를 받아들이고, 나를 존중해 주더구나.”
“그런 것 같더라. 지고 나서도 뭔가 후련하다는 표정 같던데.”
“하하, 세 번 연속 퍼펙트 세트로 졌으니까 그럴 만도 하지. 아마 나 같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을 걸~”
“군자 넌 좀 놀란 것 같던데.”
덕준의 말에 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졸렬한 패자만을 겪어 온 군자였기에, 미하일 슐럽의 젠틀한 태도는 군자를 놀라게 만들었다.
“솔직히, 처음엔 내게 시비를 걸기 위해 오는 줄 알았다.”
“상대가?”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글쎄 내게 손을 내밀더구나.”
“그래서 그렇게 표정이 굳어 있었구만?”
“그의 진의를 의심한 것이 부끄러웠다. 그러나 동시에, 참으로 가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아직도 감격에 찬 듯한 표정의 군자를 보며 한영이 환하게 웃었다.
“하하, 올림픽이잖아. 경쟁의 장이지만, 동시에 세계인의 축제라고.”
“···축제 말입니까?”
“그래. 이 시간을 즐기지 못한다면, 그건 완전 그 사람 손해란 말이지~”
“축제, 축제라···.”
그러고 보니 그랬다. 관객석의 모두가 웃는 얼굴이었고, 경기가 끝난 다음엔 환호와 박수 갈채가 뒤따랐다. 함께 경쟁을 펼친 상대는 군자를 끌어안아 주었으며, 사방에서 꽃가루와 꽃잎이 휘날렸다.
생각해 보니 궁술 대회보다 저잣거리 공연과 더 비슷한 분위기다. 그렇다면 축제라는 말도 이해가 됐다.
경쟁의 장이 모두의 축제가 되다니!
군자가 살아 온 세계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역시, 현대란 참으로 옳게 된 세상이로구나.
“근데 아마 앞으로 만날 상대 중엔 슐럽이랑 좀 다른 케이스도 있긴 할거야.”
“다른··· 예를 들면 어떤 경우 말이더냐.”
“예선 때 중국 선수들 쑥덕거리는 거 봤지? 너 점수 보면서 자기들끼리 엄청 뭐라뭐라 하더라.”
“흐으음—.”
군자 역시 턱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군자 역시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모두가 한국 선수들의 점수에 감탄하는 가운데, 유독 표정이 좋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중국 선수단이었다.
“나랑 영이 형은 16강에서 중국 선수들 만나던데. 군자 너네 블록엔 중국 선수들이 없네···.”
“하하, 군자는 4강까지 간다면 만나게 될 것 같네~ 중국 팀 주장 리장량이 D블록이잖아.”
“그렇구만. 하긴 리장량이 예선 4위였으니까··· 흐음, 무튼 우리 모두 한 번씩은 만나네.”
4강이니, D블록이니, 무슨 소리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하나만큼은 알 수 있었다.
모두가 미하일 슐럽같은 것은 아니다. 특히 중국 선수단들은 대한민국 선수단을 필요 이상으로 견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군자를 긴장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본디 화합과 존중을 선호하는 군자였으나, 적의를 보이는 상대에게 따끔한 맛을 보여주는 것 역시 군자의 주종목이었으니까.
아무리 강한 기싸움을 걸어온다 해도, 아무리 드센 말씨와 태도로 위협을 가한다 해도.
결국 궁술 대회에서 중요한 것은 활과 화살, 그리고 과녁 아니던가.
“무튼 군자, 넌 경기 전에 인터뷰한 내용대로만 하면 돼. 그 때 그랬잖아, 과녁의 정가운데에 화살을 맞추는 거, 그거 하나는 자신있다고.”
“예, 형님.”
“우리는 그걸 하러 온 거야. 괜한 시비 받아주지 말고, 경기에 집중하자.”
“알겠습니다.”
쓸데없는 도발에 정신력을 낭비하지 말자. 오직 활을 잘 쏘는 것만 생각하자. 그 외의 모든 것은 잡생각일 뿐이다.
그렇게 굳은 다짐과 함께 의기투합하는 대한민국 선수단이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언론이 일제 보도한 중국 팀의 인터뷰를 보며 세 사람의 생각은 조금 달라지게 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