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75)
#275
어깨
8강 경기가 시작되기 전, 중국의 왕하오핑은 고한영의 데이터를 살펴보고 있었다.
기복 없는 성적으로 오랜 기간 세계랭킹 1위를 유지 중인 고한영은, 특별한 약점이 없는 선수 같아 보였다.
[2022년도 고한영의 해입니다—!! 압도적인 기량으로 양궁월드컵 금메달을 차지하는 고한영 선수!! 결승에서 맞붙은 미국의 다리우스 한센을 따뜻하게 안아 줍니다!!] [언제 봐도 참 매너가 좋은 선수네요!! 거기에 깔끔한 용모까지 갖춘 고한영 선수, 여성 팬들 많기로 유명하죠—!!]“쳇, 재수 없는 놈···.”
한영의 경기 영상을 꺼 버리며 왕하오핑은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뇌까렸다. 어딜 보아도 마음에 드는 구석 하나 없는 놈이었다. 마침, 대표팀 동료이자 중국 팀의 주장을 맡고 있는 리장량이 그에게 다가왔다.
“어때,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이겨야지.”
“맞는 말이야. 이 밥맛 없는 새끼들한테 질 수는 없다고.”
주장 리장량의 말에 차봉 왕하오핑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제법 잘 쏘는 놈은 맞아. 하지만 약점이 없는 건 아니라고.”
“오오, 뭔가 찾은 건가?”
“흐흐, 코치님이 찾아 주셨지.”
그렇게 말하며 왕하오핑은 조세근이 가져다 준 고한영의 부상 리포트를 흔들었다. 한국 출신인 조세근이 자신의 인맥을 이용하여 몰래 빼돌린 자료였다.
“이 녀석, 계속해서 최상위권을 유지하다가 유독 2023년에는 김덕준이라는 놈한테 조금 밀리는 양상이었다고.”
“그래?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2023년 초에 회전근개를 다쳤어. 아마 수술까지는 안 한 것 같지만···.”
회전근개 부상이라는 말에 리장량의 눈이 번쩍 커졌다. 양궁은 어깨 근력을 많이 사용하는 종목이기에 회전근개 부상은 언제나 치명적이다. 부상 리포트와 출전 기록을 보았을 때, 고한영은 제대로 된 수술과 재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선수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부상 때문에 2023년 상반기는 성적이 저조했지만 하반기부터는 다시 폼을 끌어올렸지. 올림픽 직전엔 다시 세계랭킹 1위로 올라왔고.”
“독한 놈이구만.”
“그리고 여기 이걸 봐.”
그렇게 말하며 왕하오핑은 조세근 코치가 넘긴 두 번째 자료를 건넸다. 이번 올림픽을 준비하며 고한영이 개인적으로 주문한 소염진통제와 근육이완제 리스트였다.
리장량에게도 꽤나 익숙한 이름의 약들이었다. 리스트를 내던지듯 내려놓으며 리장량이 코웃음을 쳤다.
“약해빠진 약들이네.”
“맞아. 스테로이드 성분을 최소화한 진통제들이야. 아마 올림픽 약물 검사에 걸리는 게 두려워서, 엄청 약한 진통제만 맞기로 한 거겠지.”
“하지만 이런 약으로는 진통을 완벽하게 잡을 수 없을 텐데.”
“맞아. 이 자식, 아마 아픈 걸 참으면서 경기를 하고 있을 거야.”
왕하오핑의 말에 리장량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좌우지간 독한 놈이군.”
“하지만 그것도 이제 곧 끝이야. 경기를 장기전으로 끌고 갈 수만 있다면, 이 놈은 분명 페이스가 떨어지게 될 거라고.”
조세근 코치가 빼돌린 자료는 정확했다. 왕하오핑의 말처럼, 주장 고한영은 진통제를 먹으며 경기에 나서고 있었다. 타이레놀 수준의 진통제도 약물 검사에 걸릴 위험이 있었기에, 애매한 성분은 최소화한 진통제만 사용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진통은 완벽하게 잡히지 않았다.
대표팀의 오진식 코치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고한영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영아, 너무 무리하지 마라.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행보였어. 양궁은 선수 생활이 긴 스포츠야. 오래 봐야지, 응? 여기서 회전근개 다 소모하고 커리어 조져 버리면, 그건 누가 책임져 주냔 말이야. 응?”
그러나 울상이 된 오진식 코치와 달리 한영은 평온한 모습이었다.
“누가 책임지다뇨, 제가 한 선택인데.”
“한영아···.”
“코치님 원망 안 합니다. 좋은 동생들이랑 올림픽 뛰고 싶어서 제가 고집 부린 거잖아요.”
“정말 이렇게까지 무리할 가치가 있는 대회인 거니? 넌 올림픽에서 금메달도 따 봤잖아.”
“하하, 코치님! 저 막 그렇게까지 아픈 건 아니에요. 몇 경기 정도는 문제 없다구요.”
그렇게 말하며 한영은 괜찮다는 듯 오른팔을 붕붕 돌려 보였다. 그러나 오진식이 보기에, 한영의 오른쪽 어깨는 확실히 가동범위가 떨어져 있었다.
“거 잘 움직이지도 않는구만···.”
“이 정도면 활은 쏠 수 있잖아요.”
“한영아, 너 정말 괜찮겠냐?”
“문제 없어요. 코치님 시절엔 훨씬 더 큰 부상도 그냥 안고 경기 하셨다면서요.”
“임마, 그건 선수보호고 뭐고 그냥 국가의 영광을 위해서 뒈져라 하던 시절 얘기고! 지금은 국가보다 선수 개인의 영광이 더 중요한 시대란 말이다.”
“영광이라··· 코치님, 코치님의 영광의 시대는 언제였나요?”
“무, 뭐라고?”
“전··· 지금입니다!”
“갑자기 웬 슬램덩크 드립이야?”
유명한 만화 대사를 인용하며 장난을 치는 한영이었지만, 그 눈빛에는 장난기가 일절 없었다. 오진식 코치도 그런 한영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코치님, 전 이번 올림픽에 나올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고 있어요. 덕준이는 앞으로 한국 양궁을 짊어지고 갈 녀석이에요. 하지만 아직은 멘탈이 불안정하니까, 옆에서 누군가가 잡아 주어야 하죠.”
“···.”
“게다가 군자는 또 어떻고요. 이렇게 잘 쏘는 녀석인데, 다음 올림픽엔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잖아요.”
“···그거야 뭐···.”
“제가 또 언제 이런 멋진 멤버로 올림픽을 뛰어 보겠어요.”
“···.”
“코치님이라면 참으실 수 있겠어요?”
“···쩝···.”
오진식 코치도 반박할 말이 없다는 듯, 그저 입맛을 다시며 진통제 키트만 만지작거렸다.
“그러네··· 너 논리적이다 야···.”
“무튼 걱정 마세요. 어차피 이제 몇 경기 안 남았잖아요.”
“단체전은 어저고.”
“단체전에선 0.7인분만 하면 돼요. 한영이랑 덕준이가 2인분 이상씩 해 주는 애들이니까.”
그렇게 말하며 한영은 오진식 코치를 향해 특유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8강 경기장에서도 그 미소는 여전했다. 상대 왕하오핑은 애써 웃고 있었으나, 미소 속엔 조급함과 비열함이 너무도 또렷하게 드러나 보였다. 그러나 한영은 달랐다.
[고한영 선수, 오늘도 따뜻한 미소로 경기를 준비하는 모습입니다!! 우리 양궁소년단의 리더죠!! 처음엔 유군자 선수에게 반해서 TV 앞에 앉은 팬들도, 고한영 선수에게 스며들어 버린다고 합니다—!!] [저렇게 훌륭한 실력, 훌륭한 인품에 저렇게 샤방샤방하게 웃으니 안 반하기도 어렵습니다!! 신장도 187cm으로 길쭉길쭉하니, 활을 들고만 있어도 태가 나는 고한영 선수입니다. 올림픽 해설인 만큼 선수들의 경기력에 집중해야 하는데, 참 그게 어렵게 만드는 멋진 선수입니다—!!]경기 시작 직전, 덕준과 군자는 한영을 끌어안으며 그에게 기를 나눠주었다.
“형, 매번 얘기하는 거지만··· 진짜 절대 지지 마. 특히 중국 선수한테는 더더욱!”
“하하, 알겠어 알겠어. 우리 4강에서 만나기로 했잖아.”
“나 진짜 기다린다? 나도 이길 테니까, 형도 꼭 이겨야 해!”
“응. 걱정하지 마, 덕준아.”
그렇게 덕준이 자리로 돌아간 뒤, 군자도 한영의 손을 덥석 잡았다.
“형님.”
“군자, 너도 지지 말라고 하려고?”
“너무 무리하시면 안됩니다.”
“하하, 무리는 무슨···.”
“알고 있습니다. 형님, 아직 어깨에 문제가 있으시지요.”
“!”
내내 미소를 짓던 한영의 표정에 처음으로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군자는 진작 알고 있었다. 활에 있어서는 귀신 같은 군자였다. 활을 쏘는 동작만 보아도 사수의 몸상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성적만 본다면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한영이었으나, 어깨의 움직임이 평소와는 달라 보였다. 경기가 길어질수록 그 양상은 더욱 또렷하게 나타났다.
“···덕준이도 알아?”
“아닙니다. 덕준이에겐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휴···.”
그러나 그 순간에도 한영은 자신의 어깨보다 덕준을 먼저 걱정했다.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군자, 한영과 달리 덕준은 아직 미숙한 소년이었다. 한영의 몸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덕준은 분명 경기력에 지장이 생길 터였다.
군자 역시 그런 한영의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동생의 마음을 더 걱정하다니, 참으로 훌륭한 형님이로다.
그런 한영에게, 군자도 힘을 주고 싶었다. 군자와 덕준이 한영에게 의지한 만큼, 그 역시 한영에게 의지가 되는 존재이고 싶었다.
“승패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게 있어서 중요한 건, 온전하지 못한 상태로도 나라를 대표하여 몸을 불사른 형님의 의지입니다.”
“···.”
“부족한 제가 알 정도이니, 아마 국민 여러분들도 결국은 모두 알게 되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
“형님,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마십시오. 덕준이도, 저도, 세상 그 무엇도 괘념치 마시고 형님의 경기를 펼치고 오시면 됩니다.”
“···.”
“형님이 제게 버팀목이셨듯, 저 역시 형님에게 의지가 되는 동생이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덕준이 역시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렇게 말하며 군자는 한영의 아픈 어깨를 조심스럽게, 부드럽게 토닥여 주었다.
“오늘은 저희가 형님에게 어깨를 빌려 드리겠습니다.”
한영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군자와 뜨거운 포옹을 나누며 짧은 감사 인사를 전할 뿐이었다.
“고마워.”
“예, 형님.”
“그럼, 다녀올게.”
이제 경기 시작이 임박하여, 군자 역시 관중석으로 돌아가 덕준의 옆에 앉았다. 덕준은 아까부터 초조한 표정으로 손톱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군자야.”
“음.”
“영이 형, 잘 하겠지?”
“물론이다. 우리의 주장이지 않느냐.”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양궁 개인전, 이번 대회 최고의 흥행 대진이죠! 한국 대 중국, 그 두 번째 경기가 곧 시작됩니다!!] [첫 번째 대진, 김덕준과 쉬웨이준의 경기에서는 김덕준 선수가 역전승을 거두며 8강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왕하오핑은 현재 세계 랭킹 6위에 올라 있는 엘리트 궁사입니다. 단순히 세계랭킹으로만 본다면 쉬웨이준보다 20계단 정도 높은, 한 티어 높은 수준의 선수라고 보아야 합니다—!!] [그런 왕하오핑에 맞선 선수는,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주장!! 현 세계 랭킹 1위, 2020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고한영입니다—!!] [최근 다소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으나, 올림픽 시즌 직전부터 다시 폼을 끌어올렸죠. 이번 대회에서는 굉장히 안정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본인의 퀄리피케이션 라운드 레코드까지 경신했습니다. 유군자에 다소 묻힌 감이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이번 대회 최고의 우승후보 중 한 명입니다—!!] [그러나 얼마 전, ‘한국을 꺾을 비책이 있다’고 말한 중국 팀이었기에 기대가 되는 경기입니다!! 과연 중국의 차봉 왕하오핑은 고한영 선수를 상대로 어떤 경기를 펼칠지, 디펜딩 챔피언 고한영은 또 얼마나 우아한 경기력을 선보일지!! 자, 지금부터 경기 시작합니다아아—!!]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