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76)
#276
고한영
본격적인 경기가 시작되기 전, 왕하오핑은 고한영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경기를 준비하는 고한영의 시선은 오로지 자신의 장비, 그리고 사로와 과녁에만 머물러 있었다. 실로 놀라울 정도의 집중력, 그러나 왕하오핑은 포기하지 않으며 고한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아무리 제 페이스대로 사는 놈이라 해도, 이렇게 쳐다보면 한 번은 돌아보겠지.
왕하오핑의 예측은 들어맞았다. 경기 준비를 마친 한영이 상대 사로 측으로 넌지시 시선을 던진 순간, 왕하오핑은 놓치지 않으며 비릿한 미소와 함께 오른쪽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너, 어깨 괜찮냐?’
노골적인 의미를 담아 보낸 바디 랭귀지. 순간 고한영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크크, 아둔한 놈 같으니.”
그 표정 변화는 왕하오핑의 눈에도 정확히 들어왔다. 평온했던 고한영의 정신 세계에 드디어 파문이 일기 시작한 거다.
적어도 왕하오핑 자신은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꽈아아악—.
시위를 당기면서도 기분이 괜찮았다. 한국에서 코치를 데려온 건 꽤 괜찮은 선택이었다. 조세근 코치가 이런저런 정보를 가져다 준 덕에, 상대인 고한영의 멘탈을 흔들 수 있었으니까.
파아앙—!!
[왕하오핑, 첫 화살은 9점입니다!! 나쁘지 않은 시작이죠!! 고한영 선수 역시 퍼펙트 세트를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만, 유군자 선수만큼 압도적인 게임을 이어온 것은 아닙니다!!] [나머지 두 화살 잘 쏘면 첫 세트를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습니다. 9-10-10이면 상대를 압박하기엔 충분한 점수입니다—!!]해설자의 말대로, 왕하오핑은 나머지 두 발의 화살을 모두 10점 과녁에 꽂아 넣으며 첫 세트 29점을 기록했다.
첫 화살이 9점이라는 사실은 다소 아쉬웠지만, 괜찮았다. 어차피 고한영은 27점 이상을 기록할 수 없을 테니까.
자신의 세트를 마친 다음에도 왕하오핑은 계속해서 고한영을 바라보며 오른쪽 어깨를 만졌다. 마치 그의 몸상태가 어떤지 모두 알고 있다는 듯. 이제는 고한영도 더이상 왕하오핑의 눈을 피하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
“크크, 꼬라보면 뭐 어쩔 건데.”
그렇게 뚫어지게 보면, 다친 오른쪽 어깨가 낫기라도 하냐?
[자아, 이제 고한영 선수의 첫 화살입니다. 신중하게 화살 끝 매만지는 고한영 선수, 주어진 시간 최대로 활용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묘하게 장내가 차분해지는군요. 고한영 선수가 가진 호수 같은 아우라가 대회장 분위기를 지배합니다. 긴 속눈썹이 천천히 움직입니다. 드디어 첫 화살을 쏠 준비를 마친 고한영입니다—!!]퍼어어어억—.
[고한영, 10점.]한영의 첫 화살은 호쾌하게 10점 과녁을 꿰뚫었다. 한국 관객들은 작은 탄성을, 왕하오핑은 장난스런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우, 제법인걸?”
그래, 한 발 정도는 10점을 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허나 여기까지다. 맛탱이가 간 오른쪽 어깨로 완벽한 경기를 할 수는···.
퍼어어어어어어억—.
[고한영 선수, 또 10점입니다아아—!! 10-10, 상대인 왕하오핑 선수보다 더 훌륭한 스타트입니다—!!] [29점도 아주 좋은 점수입니다만, 30점은 29점보다도 100배는 좋은 점수죠!! 고한영 선수, 한국 팀 주장다운 훌륭한 경기력입니다—!!]두 번째 10점이 터지자 왕하오핑의 얼굴에서도 미소가 살짝 가셨다. 언뜻 박수를 보내듯 손뼉을 치다가, 다시 한번 오른쪽 어깨를 신경질적으로 두드리는 왕하오핑이었다.
너 이 새끼, 어깨 아프다면서.
무리하지 말고 그냥 고꾸라지란 말이다.
왕하오핑의 메시지엔 오로지 악의만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나 고한영의 태도엔 흔들림이 없었다.
퍼어어어어어어어억—!!
[10, 10, 10입니다아아—!! 고한영, 8강전에서 또 한번의 퍼펙트 세트를 보여줍니다—!! 이거 너무 멋진데요—!?] [고한영과 유군자, 이번 대회 점수 인플레이션 현상의 주범들입니다!! 뭐 쐈다 하면 30점이 나오니, 29점을 쏜 상대 왕하오핑 선수의 입장에선 황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29점도 아주 훌륭한 점수입니다!! 아마 웬만한 상황에서는 지지 않는 점수였을 겁니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이 상대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오늘 고한영을 이기기 위해선 모든 세트에서 30점을 기록하는 수밖엔 없을 것 같은데요—!?]“···!”
할 말을 잃은 왕하오핑은 그저 고한영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나 한영은 왕하오핑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어느새 한영의 입가엔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경기에 100% 집중한 듯, 두 눈은 오로지 자신의 장비와 과녁만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왕하오핑은 그의 모습에서 잔잔한 분노를 읽을 수 있었다. 멀리서 보아도 동공 속의 조용한 불길이 보이는 듯 했다.
“···저, 저 놈이···.”
왕하오핑의 섣부른 도발이 고한영을 화나게 만든 거다.
* * *
파앙, 파아앙—.
[두 번째 세트에선 28점을 기록하는 왕하오핑입니다!! 원래 같았다면 충분히 승부를 노려볼 만한 점수입니다만··· 글쎄요,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고한영 선수의 우월한 기량을 견제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왕하오핑의 화살은 이미 떠났습니다!! 이제는 고한영 선수가 실수해 주기만을 기다려야 합니다—!!]두 번째 세트, 왕하오핑은 28점을 쏘았다.
꽤나 잘 쏘는 선수다. 이렇게 복잡한 바람 속에서도 28점이라면, 한국을 제외한 어딜 가든 국가대표 에이스급 선수가 될 수 있을 테다.
하지만 그게 뭔 상관이야.
꽈아아악—.
한영이 두 번째 세트의 첫 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첫 세트로 인해 달아오른 회전근개에서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으윽···.”
적당한 부상이라면 스트레칭으로 열감이 오름과 동시에 통증이 사라져야 할 터인데, 이 놈의 어깨는 오히려 열이 오를수록 더 아프다. 분명 쉽지 않은 부상인 거다.
파아앙, 퍼어어어억—.
[아아, 고한영 선수 이번엔 첫 화살이 9점에 꽂힙니다!! 바람을 잘못 읽은 것일까요? 첫 화살부터 쉽지 않은 양상이네요!!] [워낙 점수 인플레이션이 심한 대회이기 때문에, 한 번의 미스 샷이 곧 실점으로 이어집니다!! 고한영, 이제부터는 실수가 허용되지 않습니다—!!]통증 때문에 100%의 기량을 발휘하기 쉽지 않았다. 아마 이 통증은 경기가 진행될수록 더 강하게 한영을 압박해 올 테다.
하지만 그게 또 뭔 상관이야.
슈우우욱, 퍼어어어어어어억—!!
[고한영, 10점.]군자가 그랬다, 그냥 자신의 경기를 하라고. 아무 것도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활을 쏘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맞는 말이다. 언제나 한영이 덕준에게 해 주었던 말과도 같다. 결국 스스로와 싸우는 스포츠 아닌가.
극한까지 치솟은 집중력은 통증마저 잊게 했다. 세 번째 시위를 당기자 다시 한번 회전근개가 욱신거렸으나, 집중력이 통증을 억누르며 한영의 호흡을 가다듬어 주었다.
“후우우—.”
가볍게 내뱉고, 이어지는 무호흡. 힘을 빼듯 손가락을 놓자 화살은 어김없이 아름다운 궤적으로 비행했다.
슈우우욱, 퍼어어어어어어어어억—!!
[십저어어엄—!! 또 10점 찍는 고한여어엉—!! 29점으로 2세트까지 가져가 버립니다—!! 고한영 선수, 4-0으로 유리한 고지에 먼저 올라섭니다—!!] [정말 멋진 한 발이었습니다!! 지금 풍속, 풍향계를 보시면 알겠지만 바람이 정말 불규칙한 상황이었거든요!! 화살이 날아가는 동안에도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자칫 경기를 그르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고한영 선수, 자신감 있게 쐈습니다!! 자신의 템포를 잃지 않았습니다—!!] [크게 호흡 내쉬는 고한영 선수!! 반면 왕하오핑, 어두운 얼굴로 고개 절레절레 젓습니다!! 이건 분명 왕하오핑 선수가 원하는 결과는 아니었을 겁니다—!!]“후우, 후우, 후우우···.”
화살이 꽂힌 뒤엔 통증이 뒤따른다. 경기 중엔 소염진통제를 복용할 수도 없다. 오로지 멘탈만으로 모든 변수를 통제해야 한다.
이어진 3세트, 중국의 왕하오핑이 다시 한번 29점을 쏘았다. 29-28-29, 기복 없는 스코어가 그들의 연습량을 짐작케 했다.
[왕하오핑의 세 번째 세트는 29점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만, 29점이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점수입니다!! 그러나 왕하오핑, 불안하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립니다—!! 고한영 선수가 다시 한번 자신을 앞지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겠지요!!] [심리적으로는 먼저 쏘는 사수가 더욱 유리한 측면이 있습니다만, 고한영의 기세는 그마저도 무색하게 만듭니다!! 먼저 쏜 왕하오핑이 오히려 더 초조한 기색을 보입니다!! 과연 고한영, 이번 세트로 경기 마무리지을 수 있을지—!!]찬스를 잡은 순간엔 틀림없이 경기를 마무리해 내는 클러치 능력이 한영의 장점이었다.
어깨 통증이고 자시고, 10년이 넘도록 내내 해 오던 일 아닌가.
꽈아아악—.
시위를 당길 때마다 오른쪽 어깨가 비명을 질렀으나, 한영은 어금니를 악물며 팔꿈치를 뒤로 당겼다.
이제 더는 안된다며 보상작용이 일어났지만, 그마저도 이용하는 한영이었다.
원래 방법대로 쏠 수 없다면 몸의 각도를 틀면 된다. 그것도 쉽지 않다면 발사각을 바꾸고 궤적을 달리 하자.
퍼어어어어억—!!
[고한영 : 10점.]중국 선수에겐 지지 말라고, 덕준이 으름장을 놓았다.
퍼어어어어어어어억—!!
[고한영 : 10점.]군자는 어깨를 빌려 준다고 했지. 참 기특한 동생이다.
[고한영, 고한영이 연속으로 10점 쏩니다—!! 미쳤습니다—!! 마지막 세트가 될 수도 있겠는데요—!? 엄청난 집중력입니다!!] [고한영 선수, 이번 대회 처음으로 땀 흘리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마에 구슬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습니다!! 완전히 집중해 있다는 증거일까요, 아니면 어딘가 불편한 걸까요!! 어쨌거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오롯이 집중해 있는 것 같아 보입니다—!!] [관객들 역시 숨소리 하나 흘리지 않으며 집중하고 있습니다!! 고한영 선수, 이제 화살 한 발 남았습니다!! 왕하오핑 선수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입니다—!!]“후우, 후우, 후우우···.”
유일한 소염진통제인 심호흡을 통해 통증을 다스리며, 고한영이 마지막 시위를 힘차게 당겼다. 어깨가 찢어질 듯한 통증 속에서도 한영은 과녁을 향해 활을 정조준했다.
꽈아아악—.
시위가 완전히 팽팽해질 때까지, 온 힘을 다해 오른팔을 당겼다가.
파아아앙—!!
무심하게 활시위를 놓자, 화살은 공기를 가르며 과녁을 향해 날아갔다.
화살이 손 끝에 걸리는 감각, 릴리즈 순간 활에서 느껴지는 진동, 활꼬리가 날아가는 모양, 솟구치는 화살의 궤적까지.
풍부한 경험, 그를 통해 쌓은 감각이 말하고 있었다.
“됐다.”
순간, 한영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읊조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