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79)
#279
기묘한 파열음
휘이잉—.
바람이 군자의 앞머리를 흩트러 놓았다. 모든 바람 중 가장 읽기 어렵다는 난잡한 측풍. 그러나 군자는 가만히 활시위를 당기며 과녁을 응시할 뿐이었다.
어렵지 않은 바람이다. 이 정도 바람이라면 숱하게 읽어 왔다.
슈우우욱, 퍼어어어어어억—!!
기계처럼 정밀한 계산은 오발(誤發)을 허용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간 화살은 여지 없이 10점 과녁 정가운데에 꽂혔다.
이 정신없는 바람을 뚫고 10 – 10 – 10.
이번에도 군자는 단 한 발의 예외도 허용하지 않으며, 모든 화살을 자신이 원하는 곳에 때려 넣었다.
[우와아아악, 미쳤어요—!! 유군자, 유군자 선수가 첫 세트 가져갑니다—!! 10 – 10 – 10, 퍼펙트 세트입니다!! 이번 대회 내내 이어 오던 퍼펙트 행진을 이어가는 유군자!! 그러나 실로 불가사의한 경기력입니다—!! 아니, 어떻게 이 바람을 뚫고 이렇게 잘 쏠 수 있나요—!?] [그냥 10점도 아닙니다!! 이번 대회에서 종종 보여준 ‘렌즈 파괴술’은 시전하지 못했습니다만, 세 발의 화살이 모두 한복판의 점에 매우 근접해 있습니다!! 대체 어떻게 이게 가능한 것인지, 모두가 머리를 감싸쥔 채 놀라워 하고 있네요!!] [상대인 리장량 선수가 가장 놀란 것 같습니다!! 하긴, 그럴 만 하죠!! 28점을 쐈다고 기고만장해 있었는데, 상대는 30점을 쏘고도 태연한 표정이니까요—!!]세 발의 화살을 모두 완벽한 위치에 꽂아 넣었음에도 군자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특유의 옅은 미소도 보이지 않는 무뚝뚝하게 굳은 표정.
혹자는 그것을 긴장의 증표라 했으나 군자에게 긴장감은 없었다. 리장량에겐 안타까운 소식일 테지만, 오늘 군자의 컨디션은 최상 중에서도 최상이었다.
“···젠장, 이런 말도 안 되는···.”
어느새 리장량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져 가고 있었다. 중계화면 아래엔 실시간으로 솟구치는 리장량의 심박수가 표시됐다.
[쫄아버렸쥬?] [28점 쏘고 개좋아하더닠ㅋㅋㅋㅋ] [아모고토 못하고 발리쥬? 꼴 좋쥬?] [진짜 유군자는 예술이닼ㅋㅋㅋ어떻게이렇게잘헤] [화살 날라가는거 봄? 일부러 풍향 반대로 쏴서 휘게 하는거 ㄹㅇ;;] [진짜 미친놈같아ㅠㅠㅠㅠ그렇게 쏘고나서도 무표정인거 진짜 미쳤음] [중국애 심박 올라가는거봨ㅋㅋㅋㅋㅋㅋ] [심장이 두근두근 미치겠쥬? 코너에 몰린 기분이쥬?] [애써 표정관리 하고 있지만 심장은 거짓말을 안함ㅋㅋㅋㅋ] [이와중에도 군자 심박 평온한거봐ㅠㅠㅠ50 위로 안올라간당] [군자는 몸만 근육질인게 아니라 심장도 근육질인가바ㅠㅠ] [ㄴ 근데 심장은 원래 근육아님?ㅋㅋㅋ] [ㄴ 앜ㅋㅋㅋㅋㅋ그냥 말이그렇다거,,, 넘어가줘 부끄럽닼ㅋㅋ] [후우후우 이제 장량이 두번째 세트 쏜닼ㅋㅋㅋㅋㅋ] [근데 심장이 저렇게 나대서 쏠수있겠냐궄ㅋㅋ]애써 호흡을 고르며 리장량이 천천히 활시위를 당겼다.
그래도 중국의 에이스, 13억 인민 사이에서 선별된 초 엘리트 운동선수다.
그들의 기대를 져버릴 순 없다. 무엇보다 이런 잡스러운 놈에게 꼴사납게 질 수는 없단 말이다.
끈적한 의지가 리장량의 남은 집중력을 끌어모아 주었다. 바람은 점점 더 심해졌으나, 이제는 리장량도 풍향을 읽기 시작했다.
퍼어어억—.
[리장량 : 10점.]퍼어어억—.
[리장량, 10점.]퍼어어어어어억—.
[리장량, 9점.]우오오오오—.
또 한번의 고득점에 중국 관객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지난 세트보다 1점 더 올라간 점수, 리장량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묘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이 악천후에 29점을 쏘고도 불안해 하는 게 맞나.
어쩌면 1세트의 30점은 천운 아닐까. 이제는 마음을 놓아도 되는 것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군자를 흘끗 본 리장량이었으나.
“···빌어먹을, 저 자식은 왜 표정이 저렇게···.”
도저히 군자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그 딱딱한 무표정으로, 조금의 변화도 없는 얼음 심장으로, 군자가 2세트의 첫 시위를 당겼다.
평소 같았다면 차분하게 경기에 집중했겠지만, 오늘만큼은 이 불손한 자에게 경을 치고 싶은 군자였다.
실력 자랑은 좋아하지 않았으나 어쩌면 오늘은 예외일지도 모르겠다.
슈우우욱, 퍼어어어어억—!!
[유군자 : 10점.]한복판의 점 언저리에 우선 한 발을 꽂아 넣고.
슈우우우욱, 콰자작—.
두 번째 화살은 놀랍게도 첫 화살이 꽂힌 바로 그 자리에 꽂혔다. 화살은 하나의 구멍을 함께 사용하는 가족처럼 찰싹 붙은 채로 과녁을 관통했다.
[우와아, 엄청난 영점입니다—!! 유군자 선수, 첫 화살과 두 번째 화살을 완전히 붙여서 쐈습니다—!! 얼마나 완벽한 루틴으로 활을 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죠!! 소름이 돋을 정도로 정확한 신궁입니다—!!] [관객들, 이제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입니다!! 이 순간에도 관객 여러분들의 머리칼이 바람에 날리고 있습니다!! 이 곳 경기장의 악천후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인데요, 그러나 유군자 선수는 바람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습니다!! 마치 풍신(風神)이 그를 지켜 주는 것 같습니다—!!]마지막 화살을 당기는 동작에도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시원시원하게 잡아당긴 화살을 놓자, 우아한 궤적을 그리며 날아간 화살은 앞선 화살이 꽂혀 있던 바로 그 구멍에 정확히 안착했다.
퍼어어어억—.
[유군자 : 10점.]두 번째 세트도 10 – 10 – 10.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하나의 구멍에 세 개의 화살을 모조리 집어넣은 군자의 신들린 활솜씨였다.
[으아아아아, 또 10점!! 또 10점입니다아아—!! 이 선수, 정말 미쳤습니다!! 제 정신이 아니에요!! 두 번째 세트도 가져갔습니다—!! 유군자, 4-0으로 스코어 앞서 나갑니다—!!] [중계 화면이 계속해서 세 개의 화살을 잡아 주고 있습니다!! 저는 저렇게 사이좋은 화살들은 처음 봅니다!! 정말 굴에서 사는 다람쥐처럼 꼭 붙어 있네요—!! 신궁이 활을 쏘니 화살끼리도 사이가 좋아집니다—!!]1세트에서 120까지 치솟았던 리장량의 심박은 이제 130, 140까지 올랐다.
“리, 호흡 해! 내가 가르쳐 준 그거 있잖아—!!”
조세근 코치가 뭐라고 소리를 치고 있었으나 리장량의 귀엔 들리지 않았다.
호흡이고 자시고, 그딴 걸로 이런 괴물을 이길 수 있을까.
하나의 구멍에 메다꽂힌 세 개의 화살을 보며 리장량은 일종의 공포를 느꼈다.
이건 단순한 퍼펙트 세트가 아니다. 유군자, 저 놈이 무력시위를 펼치는 거다. ‘난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며, 리장량을 실력으로 찍어누르려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걸을 깨닫는다 한들, 리장량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젠장, 젠장, 젠장···.”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으나 이건 올림픽이었다. 수억, 수십억의 시청자가 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무엇보다, 여기서 도망친다면 중국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는 역적이 될 터였다.
끝까지 맞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이미 리장량은 전의를 상실해 가고 있었다.
휘이잉—.
다시 한번 거센 바람이 리장량의 얼굴을 때렸다. 아니, 도대체 이 바람 속에서 어떻게 이렇게 정밀하게 쏘는 거지?
슈우욱, 퍼어어억—!!
[리장량 : 9점.]리장량의 경기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니, 사실 이 바람 속에서도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경기를 보는 모두가 알았다. 두 선수 사이에는 아득할 정도의 격차가 있음을.
퍼어어어어억—!!
[리장량 : 8점.]퍼어어어어어억—!!
[리장량 : 6점.]“젠자아아앙—!!”
결과는 최악의 3세트. 마지막 점수를 확인한 리장량이 활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아아, 리장량 선수 자멸하고 맙니다. 9 – 8 – 6, 이번 대회 내내 이렇게 낮은 점수를 쏜 적은 없었는데요. 합계 23점, 유군자 선수는 24점 이상만 쏜다면 결승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절호의 기회를 잡은 유군자,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만 본다면 결승 진출이 확정적인 것 같기도 한데요···.]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군자가 앞머리를 정리하며 활시위를 매만졌다.
안정적으로만 쏜다면 결승 진출이 확정되는 순간. 그러나 군자는 그렇게 어중간한 점수를 남길 생각이 없었다.
정중앙 언저리에 나란히 꽂힌 화살 세 개, 그 우측에는 한 구멍을 공유하듯 빽빽하게 꽂힌 화살이 또 세 개.
이젠 어느 곳을 맞추면 좋을까.
잠시 고민하던 군자가 이내 마음을 굳혔다.
이 오만한 자의 콧대를 꺾어 놓기엔, 아마 이보다 좋은 목표물은 없으리라.
한층 더 올라간 집중력으로 시위를 잡아당기며 새로운 목표를 겨냥했다. 목표는 과녁이되 과녁이 아닌 것이었다.
파아앙—.
기류의 방해까지 이용하며 날아간 화살은.
쩌어어억—!!
처음 듣는 기묘한 소리를 내며 과녁의 어딘가에 꽂혔다.
중계 카메라가 줌을 당겨 과녁의 모습을 잡아 준 뒤에야, 사람들은 군자의 화살이 어디에 꽂혔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3세트, 군자의 첫 화살은 1세트 때 군자가 쏘았던 화살의 꽁무니에 박혀 있었다.
[로, 로, 로빈훗 애로우입니다아아—!!]로빈훗 애로우, 꽂혀 있던 화살에 새로운 화살을 꽂아 버리는 신기.
마지막 세트, 군자가 선택한 과녁은 10점도 아니고, 한복판의 카메라도 아닌, 1세트 때 군자가 박아 놓았던 세 발의 화살이었다.
규정상, 기존 화살에 새로운 화살이 꽂혔을 때엔 기존 화살과 같은 점수를 받게 된다.
즉, 군자의 3세트 첫 번째 화살의 점수는 여지없이 10점.
무게 때문에 다소 아래로 쳐진 화살이었으나, 그럼에도 점수는 변함없이 10점이었다.
지금까지 군자의 놀라운 기량에 감탄해 온 관객들도 이 현상만큼은 우연의 일치라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결승 진출을 앞둔 시점, 일부러 1세트 때 쏜 화살의 꽁무니를 조준하는 미친 짓을 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었으니까.
“···이건 우연이겠지?”
“당연하지. 저걸 겨냥하고 쏜다는 게 말이 돼?”
“무튼 10점이라서 다행이다.”
“근데 만약 다음 화살도 또 저렇게 꽂히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게 말이 되냐. 해설자가 그러잖아, 자기도 중계하면서 처음 봤다고.”
“그런가···.”
쐐애애액, 쩌어어어어어억—!!
그러나 3세트의 두 번째 화살에서도 기묘한 파열음은 이어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