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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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제시조즉석낭송
첫 순위발표식 현장, 군자는 자못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순위발표식이라. 300년 전으로 비유한다면 과거 급제자를 알리는 방(榜) 같은 것일 테지.
군자에게는 순위 욕심이 없었다.
일단 생존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결과 아닌가.
높은 순위를 받으면 좋기야 하겠다만···.
뭐 이것이 최종 순위도 아니고, 허허.
그렇게 40위권 참가자의 이름이 발표되기 시작했고, 군자의 이름은 없었다.
“형! 우리 다 없어요!”
“그렇구나.”
뒤이어 30위 참가자가 나오는 동안에도 군자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오오, 20위권 확정이야!”
“잘 된 일이구나.”
20위, 15위. 발표는 계속됐고, 군자는 여전히 명단에 없었다.
“선비 형아아-!”
“너 진짜 높은가 봐!”
“축하한다, 군자.”
“허허, 거 호들갑들은 참.”
군자는 별 일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웃었다. 어째서인지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마른 침이 목구멍으로 꿀꺽 넘어갔지만, 아침에 물을 안 마셔서 그런 것인가 싶었다.
“이게 최종 순위도 아닌 것을.”
“그래도 높으면 무조건 좋죠!”
“하핫, 군자(君子)는 이런 순위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마침 그 순간, 정해진이 11위 참가자의 이름을 크게 호명했고.
“11위, 유!”
“허엇-.”
“균상! 참가자, 축하합니다! 유균상 참가자가 11위를 차지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를 뻔한 군자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겨우 체통을 유지했다.
“···군자 형?”
“으, 응?”
“손 엄청 떠시는데.”
“아, 이, 이것은.”
황급히 두 손을 등 뒤로 숨겨 보았지만, 파들파들 떨리는 다리까지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다, 다리도···.”
“하하, 괜찮다. 어제 악마 선생이 시킨 숙호투를 해서 그렇다.”
애써 미소를 지어 보아도 벌써 이마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입술은 수영장에 다녀온 듯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형, 긴장했어요?”
“···긴장은 무슨.”
그러나 이제 군자 본인도 인정해야 했다.
생애 첫 순위발표식을 앞둔 이 순간, 군자는 극도의 긴장감에 빠져 있었다.
중하위권 발표가 끝나고, 이젠 최상위권만이 남은 상태.
제 아무리 안빈낙도를 인생의 모토로 삼고 살아온 선비 유군자라 할지라도.
‘···그래도 이왕이면 높은 등수가 좋지 않은가···.’
이 순간만큼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잠시 못난 욕심을 자책했으나, 군자는 이내 생각을 고쳐 먹기로 했다.
순위가 높다는 것은 데뷔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
벌써 많은 사랑을 받았으니, 데뷔를 통해 그 사랑을 되돌려 드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래, 높은 순위는 나 개인이 아닌 나의 팬들을 위한 것이었어.
그렇다면 나의 이 못난 기대도 사실은 합당한 것 아닌가? 후후.
현대로 건너온 뒤, 정신승리 솜씨가 탁월해진 군자였다.
“10위, 하현재 참가자!”
“감사함다!”
어느새 10위까지 순위가 발표된 가운데, 남은 참가자는 아홉 명 뿐. 그 중엔 군자와 유찬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제 남은 참가자는 아홉 명입니다. 이 중 상위 여덟 명에게는 300코인, 그리고 2차 미션에 유리한 특권이 주어진다고 말씀드렸는데요.”
“···.”
“지금 그 특권을 공개하겠습니다.”
MC 정해진이 큐 카드를 넘기며 설명을 이어 나갔다.
“상위 8인의 참가자에게는 2차 미션 ‘팀장’의 자격이 주어집니다. 자신이 가진 코인, 그리고 추가로 부여받은 코인을 이용하여 팀을 꾸리고 미션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
“1차 미션을 통해 깨달으셨겠지만, 팀장은 미션을 주도적으로 준비하며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매우 유리한 포지션입니다.”
이미 팀장을 경험해 본 바가 있는 군자는 그게 얼마나 좋은 특권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된 거, 이왕이면 8위 안쪽으로 올라갈 수 있다면 좋겠군.’
그러나, 바로 옆 자리의 유찬은 생각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정해진이 특권의 내용을 발표하자 마자, 유찬은 사색이 된 얼굴로 무언가를 간절히 되뇌고 있었다.
“제발 9위, 제발 9위···.”
“으음?”
이왕이면 팀장이 되는 편이 더 좋을 텐데, 어째서 9위를 희망하는 걸까. 군자의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쨌거나 그 간절한 기도가 통한 것인지, 바로 다음 순간에 유찬의 이름이 불렸다.
“9위는 기유찬 참가자입니다!”
“가, 감사합니다.”
유찬은 9위로 호명된 것이 진심으로 기뻐 보였다.
마침 잠시 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지자, 군자가 바로 유찬에게 질문을 던졌다.
“유찬아, 넌 9위를 하고 싶었던 거냐.”
“아, 넵.”
“어째서? 8위 안쪽으로 가면 엽전도 받고 조장도 하니 더 좋은 것 아닌가.”
“그치만··· 그렇게 되면 군자 형이랑 팀 못 하잖아요.”
나와 같은 팀이 되고 싶어서 9위를 희망했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랬지만, 참으로 똥강아지 같은 놈이로다. 하긴, 둘 다 조장이 되면 같은 팀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군자는 흐뭇하게 웃었지만, 한편으로는 유찬이 걱정되기도 했다.
그 동안은 운 좋게 같은 조가 되어 왔지만, 언젠가는 다른 조에서 경쟁해야 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이쯤에서 일러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유찬아, 우리가 매번 같은 조를 할 수는 없을 거다.”
“그, 그건···.”
“물론 나도 헤어지기는 싫다만.”
군자의 말에 유찬이 머리를 푹 떨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풀 죽은 유찬의 모습을 보니 괜히 마음이 쓰이는 군자였다.
내가 괜한 말을 했나. 어차피 본인도 알고 있을 터인데, 괜히 기만 죽인 것 아닌가.
군자가 안절부절 못하는 사이, 순위 발표는 이어졌다.
8위 양정무, 7위 한종서, 6위 강수호. 상위권 참가자들이 한 명씩 순위표를 채워 나갔지만, 아직도 군자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5위, 장선재 참가자.”
“넵, 감사합니다!”
아역배우 출신 참가자 장선재가 5위, 군자의 이름은 바로 그 다음 차례였다.
“4위, 유군자 참가자입니다.”
“예.”
마침내 호명된 군자가 계단을 한참 올라 4위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많은 인원 중 4위라. 놀라운 일이었다. 그저 춤과 노래를 하고 싶었기에 열심히 한 것 뿐인데.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니 더 큰 책임감이 들었다. 나를 이 위치에 올려 준 이들에게 보답하는 방법은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이며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는 것이리라.
이 순간만큼은 큰절 욕구를 참을 수 없는 군자였다.
“감사하옵니다.”
감사의 마음을 듬뿍 담은 큰절.
요즘 들어 절이 너무 헤프다고 혼이 나긴 했지만, 이번만큼은 반드시 극상의 감사 표시를 하고 싶었다.
순위발표식은 그 후로도 이어졌다.
1~3위는 사전투표 때와 마찬가지로 주하성, 현시우, 민강열이 차지했다. TOP 3가 공고한 가운데, 군자가 그 뒤를 추격하는 모양새.
순위 확인이 끝나자, 이번엔 코인 정산이 이어졌다.
지난 미션에서 승리한 팀에게 100코인 일괄 정산. 거기에 군자는 팀원을 영입하며 90코인을 투자했기에, 그 세 배인 270코인을 정산받는다. 게다가 첫 순위발표식에서 8위 안에 들었기에 300코인이 추가로 받게 됐다.
기존의 110코인에 추가 정산 코인을 합치면, 잔여 코인은 총 780코인.
이 정도면 혼자서도 최고의 팀을 만들 수 있는 코인이다.
그러나, 2차 팀 미션의 룰은 1차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2차 팀 미션은 상위 여덟 명의 참가자가 팀장이 됩니다. 이번 미션은 ‘창작곡 미션’. 여러분들이 직접 스케치하고, 작사하고, 작곡한 노래를 통해 경연을 펼치게 됩니다.”
“!”
창작이라는 말에 참가자들이 웅성이기 시작했다. 춤과 노래를 잘하는 참가자는 많았지만, 작사 작곡 능력을 갖춘 참가자는 많지 않았으니까.
이에 대한 설명을 덧붙이듯, 정해진이 다시 말을 이었다.
“물론 참가자들의 역량만으로 자작곡을 만들기 어려울 경우, 트레이너와 전문 작곡, 편곡자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참가자들의 아이디어 스케치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참가자들이 얼마나 작곡에 많이 관여했는지 역시 평가 기준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어, 이번엔 트레이너 평가도 들어가나요?”
“좋은 질문입니다, 하현재 참가자.”
정해진이 하현재를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트레이너 평가 대신, 이번엔 특별히 ‘자작곡 경매’ 스테이지가 도입됩니다.”
‘경매’라는 생소한 단어에 참가자들이 서로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이번 미션에선 현역 가수와 작곡가, 제작자들이 직접 여러분들의 자작곡을 구매하기 위해 경매를 벌일 것입니다.”
“!”
“좋은 곡을 만든다면 승리하는 것은 물론, 비싼 코인을 받고 곡을 팔 수도 있겠죠. 뿐만 아니라, 현역 아티스트들과의 협업 기회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와아-!”
새로운 룰 도입에 모든 참가자가 환호성을 질렀다. 끝내주는 노래 하나만 뽑아낸다면, 경매를 통해 단번에 많은 코인을 벌어들이는 것이 가능한 룰이었으니.
그러나 이번에도 군자는 침착하게 상황을 파악했다.
‘자작곡이라.’
물론 트레이너 스승님들이 도와 주신다는 말이 있기는 했다.
그러나 그들의 몸과 능력은 한정되어 있다.
여덟 개 팀을 모두 돌아다니며 만족스러운 피드백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일 터.
즉, 이번 임무는 자체적으로 노래를 제작할 수 있는 ‘작곡 능력자’를 보유하는 것이 핵심 중 핵심이다.
주하성, 현시우 등 상위권을 차지한 참가자들도 그 사실을 눈치챈 듯 사방을 둘러보았다.
현 시점 최고의 매물은 12위를 차지한 노엘. 1차 경연에선 춤과 노래에서 실수를 범하며 순위가 다소 떨어졌지만, 작곡 능력만큼은 의심할 여지 없이 최상위다.
‘작곡 능력자를 잡아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가장 중요한 팀 선정 방식이 공개되지 않았다.
1차 팀 미션처럼 선착순으로 팀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을 준다면 좋겠지만, 이제 더 이상 선착순은 없었다.
“팀원 선택 방식은 지난번과 동일합니다만, 순서는 선착순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정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정해진이 단상 아래서 커다란 아크릴 상자 하나를 꺼냈다.
전면이 검은 시트지로 덮여 있으며, 중앙에 하얀 ‘Q’가 써 있는 박스.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 그 첫 번째 돌발 퀘스트는···.”
박스 안을 뒤적거리던 정해진이 플라스틱 공 하나를 집어 들었다.
플라스틱 공 안엔 짤막한 단어 두 개가 쓰여 있었다.
[프리스타일 랩]“프리스타일 랩입니다아아—!!”
“—!?!?”
“여덟 명의 팀장들은 지금부터 프리스타일 랩 배틀을 벌입니다!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참가자부터, 팀원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집니다아아—!!”
모두가 기절초풍한 가운데.
쿠웅, 쿠웅-.
낮게 울리는 808 베이스의 힙합 비트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진심?”
“프, 프리스타일을 하라고?”
“아니, 이렇게 갑자기?”
모두가 선뜻 나서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만 보며 쭈뼛댔다.
당연한 일이었다. 랩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상위권 참가자에게도 프리스타일 랩이란 부담스러운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딱 한 명의 참가자만큼은 생각이 달라 보였다.
뒷짐을 진 채 둠칫둠칫 양반 스텝으로 무대 중앙을 점령한 이는 4위 유군자.
요즘 힙합의 맛을 슬슬 깨달아 가던 그는, 마침 어젯밤 유튜브로 프리스타일 랩 배틀 영상을 본 참이었다.
프리스타일이라.
이건 뭐, 자유주제시조즉석낭송(自由主題時調卽席朗誦)을 말하는 것이로구만.
군자에겐 어려울 것도 없었다.
심지어 주제마저 자유롭다? 그렇다면 그에게 가장 소중한 가치관을 각운에 맞춰 뱉으면 되는 것 아닌가.
덩실덩실 리듬을 타던 군자가, 마침내 프리스타일의 첫 마디를 힘차게 내뱉었다.
“효!”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