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82)
#282
분전의 끝
와아아아아아아—.
남자 양궁 개인전 결승전이 열리는 올림픽 양궁 경기장엔 단 한 석의 빈자리도 보이지 않았다.
긴급 특설 좌석을 설치한 것도 모자라, 풀밭 위에 간이 의자까지 설치해 가며 관객을 받았지만 그럼에도 수요는 차고 넘쳤다.
그렇게 모여든 수천의 관객은, 전광판에 점수가 뜰 때마다 환호성을 보내며 경기의 분위기를 뜨겁게 만들었다.
1세트 30 대 30. 세트스코어 보드에 1 : 1이라는 숫자가 떠오르자 관객들은 더욱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그 동안 압도적인 기량으로 모든 상대를 찍어 눌러 온 군자가 처음 점수를 빼앗긴 순간이었으니까.
[경기장 분위기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그렇죠, 이게 양궁이죠!! 수많은 국가의 선수들이 참여해서 결국 마지막엔 한국인 대 한국인의 대결을 보는 것—!! 이게 올림픽 양궁입니다—!!] [지금까지 한 발의 화살도 실수하지 않으며 10점에 꽂아 넣은 유군자 선수도 대단하지만, 저는 김덕준 선수가 더 놀랍습니다—!! 그 동안의 상대들은 유군자 선수를 만난 순간 페이스를 잃고 무너져 내리기 일쑤였는데요, 감정기복으로 인한 기량 저하를 단점으로 지목받던 김덕준이 멋지게 1세트에서 점수를 가져왔습니다—!!]“후후, 덕준이도 대단하구나.”
리장량과의 경기에서는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던 군자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동시에 심박수도 분당 50회에서 70회 가량으로 소폭 상승했다.
그러나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은 긴장 때문이 아니었다.
이제야 비로소 진정한 강자를 만났다는 희열. 가장 높은 곳에서 덕준과 승부를 낼 수 있다는 짜릿함!
활을 든 순간엔 언제나 빙하처럼 차가운 심장이 되는 군자였으나, 이 순간만큼은 군자도 가슴이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허나 지금은 들떠선 안 된다. 모든 호흡과 맥박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그저 활과 나, 과녁에만 집중해야 할 터.
고양된 몸과 마음을 가라앉히며 군자가 두 번째 세트를 준비했다. 시위에 화살을 먹이는 순간부터 관객석의 소음은 잦아들었으나 동시에 부풀어 오르는 기대감이 느껴졌다.
우승까지 전 세트 퍼펙트, 단 한 차례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 대기록.
그러나 모든 기록이 그렇듯, 마무리가 가장 중요하다. 고지까지 잘 달려온 이들도 마지막 한 순간 방심 때문에 무너져 버리는 것을, 군자는 너무나도 많이 보아 왔다.
이 화살 끝에는 나의 영광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의 기대와 염원이 담겨 있다.
이 몸은 충국(忠國)을 본분으로 하는 선비일진대, 어찌 그 마음을 져버릴 수 있으랴.
쐐애애애액—.
올곧은 사명감으로 쏜 화살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2세트의 화살 세 발도 어김없이 과녁의 중앙을 꿰뚫었다.
이번에도 10 – 10 – 10.
모든 화살을 10점 과녁에 꽂아 넣겠다. 처음엔 모두가 믿지 않았던 공약이었으나, 이제는 달성이 코앞에 와 있었다. 관객들은 물론 상대인 덕준마저 놀란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와, 말이 돼—!?”
관객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덕준은 황당하다는 표정과 함께 입을 틀어막았다.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경기를 이어나가는 군자와 달리, 덕준은 뜨겁게 달아오르는 자신의 감정을 숨길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 이래야 이길 맛이 나지! 아자아아—!!”
[오오, 김덕준 선수가 전의를 불테웁니다—!! 최강의 상대를 맞아 고함을 지르며 파이팅을 올리는 김덕준 선수—!! 극도로 차분한 유군자 선수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아아, 그런데 바람이 김덕준 선수를 도와 주지 않습니다. 점점 거세지는 측풍, 이 바람을 뚫고 고득점을 기록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어느새 덕준의 심박은 100을 넘어서 있었으나 그의 얼굴에는 희열이 가득했다. 루틴도, 템포도 무너진 채 기세 하나로 경기를 펼치고 있었음에도, 화살은 기묘하게 과녁의 중앙을 향해 날아갔다.
[김덕준 : 10점.] [김덕준 : 10점.] [김덕준 : 9점.]“아악, 젠장—!!”
[아쉽습니다아아—!! 김덕준 선수, 딱 1점 차로 2세트 빼앗깁니다!! 세트 스코어 3 : 1, 언제나 그렇듯 유군자 선수가 리드를 잡는군요—!!] [하지만 김덕준의 분전이 대단합니다!! 두 번째 세트에서는 바람이 더 강하게 불어서, 고득점을 기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보았는데요···.] [앞선 리장량 전에서 유군자 선수의 측풍 대응력은 이미 확인한 바 있습니다만, 김덕준 선수 역시 그에 못지않은 훌륭한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역시 올림픽 결승다운 경기입니다—!!]덕준이 쏘는 화살 한 발, 한 발을 보며 군자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친구는 대회가 이어질수록 발전하고 있구나!
새삼 덕준을 처음 만났던 순간이 떠오른 군자였다. 군자와의 시합에서 이긴 적은 거의 없음에도 이상하리만치 강한 승부욕을 가진 소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군자에게 점수를 가져올 만큼 성장해 버렸다.
[유군자 : 10점.]···.
[유군자 선수가 또 퍼펙트 세트를 기록했습니다—!! 세 번째 세트에서도 10점 과녁에 세 발을 모조리 꽂아 넣었습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습니다만··· 대기록이 눈앞에 있습니다—!! 이제 정말 몇 발만 더 실수 없이 쏜다면, 올림픽 역사상 최초로 모든 화살을 10점에 꽂아 넣은 양궁선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한국 언론, 외신들까지 이 경기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경기장 주변을 구름처럼 둘러싼 미디어 관계자들이 이를 증명합니다!! 이 괴물 같은 선수에 맞서, 김덕준 선수는 또 어떤 샷을 선보일지—!!]이제는 퍼펙트 세트가 당연해진 군자에 이어, 이번에는 덕준이 활을 들어올렸다. 심박은 130까지 치솟아 있었으나 덕준의 표정엔 환희가 가득했다.
“하, 양궁 너무 재미있어—!!”
루틴에 없는 고함까지 치며, 덕준 역시 세 발의 화살을 모조리 10점에 꽂아 넣었다. 이번에도 30점에 30점으로 응수, 다시 한번 군자에게서 점수를 가져오는 덕준이었다.
“흐하하, 대단하구나 덕준아!”
3세트에서도 기어이 군자에게 한 점을 따내는 덕준을 보며 이번엔 군자가 호탕하게 웃었다.
놀라운 친구다. 저렇게 조잡스럽게 떠들면서, 게다가 저렇게 심박 관리를 안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곳에 화살을 꽂아 넣다니.
흥분이 그에게는 힘이 되는 듯 했다. 관객들이 환호성을 지를 때마다, 경기장의 분위기가 뜨거워질 때마다 덕준의 경기력도 함께 상승하는 것 같아 보였다.
본래 결승에선 한영과 만나고 싶었던 군자였으나, 덕준과 경기를 하다 보니 오히려 이 편이 잘됐다 싶었다.
원래 무언가 배우고 싶거든, 자신과 다른 성향의 사람을 찾아야 하는 법 아니던가.
“후우우—.”
친구 덕준이 최상의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나 역시 가장 멋진 모습으로 화답해야겠지.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세트를 앞두고 군자가 정신을 한 곳에 모았다. 실타래처럼 가닥 가닥 나뉘어진 정신력을 한 곳에 모아 곱게 포개고, 그것을 마음 깊숙한 곳에 켜켜이 쌓아 주변을 고요하게 했다.
와아아아아—···.
관객들의 웅성임이 차츰 잦아든다. 군자의 집중력은 관객석에 남은 작은 소음까지도 음소거시켜 버렸다. 마치 깊은 물 속에 들어간 듯, 고막에는 아무런 진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손발은 공기의 파도를 따라 움직이듯 가볍고 자연스러웠다.
수십, 수백만 번이나 취해 온 동작을 자연스레 반복한다. 시위에 화살을 걸고, 목표를 겨냥하며 오른손을 당긴다.
꽈아아악—.
청각과 후각 대신 시각과 촉각에 모든 감각을 집중한다. 저 먼 곳에 선 과녁의 작은 숫자가 보일 정도다. 손가락 끝에선 화살꼬리의 조직마저 느껴졌다.
파아앙—.
그렇게 손에 든 양궁과 물아일체가 된 상태로, 군자가 무심하게 활시위를 놓았다.
[유군자 : 10점.]어김없이 전광판엔 10점이 출력되었지만 군자의 귀에는 관객들의 환호성이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주변 사로, 나무, 풀 따위의 자연물마저 보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하얗게 날아가는 가운데, 눈에 보이는 것은 오로지 화살과 활, 그리고 과녁 뿐.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것 외의 그 무엇도 보고 듣고 만질 필요가 없었다.
파아아앙—.
[유군자 : 10점.]‘됐다’라는 느낌조차 없다. 원하는 것을 쏘아 맞춘다는 것은 군자에게 너무도 당연한 행위였다.
두 번째 화살을 쏘았으니 이제 세 번째 화살을 시위에 걸 뿐.
세 번째 활시위가 팽팽해지자, 스스로 소음을 통제한 관객들마저 입을 덥석 틀어막았고.
쐐애애애애액—!!
힘차게 날아간 화살은 과녁 정중앙의 카메라 렌즈를 박살내 버렸다.
[유군자 : 10점.]4세트까지 10 – 10 – 10 퍼펙트.
점수를 확인한 다음에야 주변의 환호성이 천천히 들렸다.
하나같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들어올린 채 소리를 지르고 있는 관객들, 턱을 거의 명치까지 떨어뜨린 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덕준의 얼굴.
4강전에 이어 이번에도 시청률은 70%을 가뿐히 돌파했다. 아마도 양궁사에 남을 경기를 보기 위해, 전세계의 수많은 시청자들 역시 스트리밍 채널의 새로고침 버튼을 연타하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군자가 신기를 보여주었으니 이제는 덕준이 이에 응수할 차례였다.
군자와 마찬가지로 30점을 쏜다면 경기는 슛오프로 진행된다. 그러나 만약 30점에 미치지 못한다면 경기는 6 : 2, 군자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다, 군자야—!!”
말은 그렇게 했으나 덕준은 웃고 있었다. 그 역시 이 압박감을 즐기는 방법을 깨달은 것 같았다.
[김덕준 선수, 마지막 세트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유군자 선수가 4세트까지 퍼펙트 세트를 기록한 가운데, 이제 김덕준 선수가 사로에 섰습니다—!!] [이번 결승전에서만 두 번의 퍼펙트 세트를 기록한 김덕준, 세 번이라고 하지 말라는 법이 없죠!! 유군자 선수와 마찬가지로, 김덕준 선수의 폼 역시 절정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갖고 있었던 ‘천재 궁사’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멋진 경기력입니다—!!]마지막으로 기합을 넣으며 덕준이 시위를 놓았다.
[김덕준 : 10점.]첫 번째 화살이 10점.
[김덕준 : 10점.]두 번째 화살은 렌즈를 박살내며 또 한번 10점.
이제 마지막 화살만 남은 가운데, 바람은 그 어느 때보다 거칠게 불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