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84)
#284
30-30-30
동메달 결정전이 시작되기 전, 팀 대한민국 숙소.
군자와 덕준은 물리치료사에게 스트레칭을 받는 한영을 걱정스런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한영이 형님···.”
“형, 정말 괜찮겠어?”
“괜찮아 괜찮아. 너희가 생각하는 것만큼 심한 부상 아니야. 단체전엔 문제 없이 나갈 수 있도록 할 테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아니이, 지금 단체전 걱정하는 게 아니잖아!”
“하하, 그래? 무튼 단체전에서 민폐는 안 끼칠 생각이니까···.”
“아오, 그 놈의 단체전 얘기 좀 하지 말라고오.”
덕준은 역정을 내면서도 한영이 걱정된다는 듯 눈썹을 축 늘어뜨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형은 어차피 올림픽 메달도 있잖아. 이번 대회에 그렇게까지 무리 안 해도 돼.”
“글쎄, 무리 아니라니까.”
“4강에서도 다 느껴졌거든? 형이 정상 컨디션이었으면 분명—.”
“아냐, 덕준아. 4강에선 정말 최선을 다했어. 그 날은 내가 실력으로 진 거야.”
부상만 아니었으면 한영이 자신을 이겼을지도 모른다는 덕준의 말에, 한영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생각할까 봐 최대한 감추려고 했는데··· 덕준이 너, 생각보다 눈치 빠르구나? 하하.”
“뭐야, 욕이야 칭찬이야?”
“무튼 그걸 알면서도 집중해서 경기한 건 진짜 멋졌어. 옛날 김덕준이었으면 분명 집중력 무너지고 경기도 망쳤을 걸?”
“끄응··· 부정할 수가 없네···.”
“어쨌거나, 걱정 안 해도 돼. 나 진짜 생각보다 괜찮거든?”
마침 치료가 끝난 덕준이 오른쪽 어깨를 빙빙 돌리며 싱긋 웃어 보였다.
“10발 정도는 충분히 제 기량대로 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10발? 그 정도로 어떻게···.”
“어떻게 하긴, 덕준이 너도 봤잖아. 군자가 어떤 식으로 경기하는지.”
“···혀, 형도 군자처럼 하겠다고?”
“못할 게 뭐야, 나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데.”
“!”
“할 수 있어. 아니, 할 거야.”
군자의 활약은 덕준 뿐만 아니라 한영의 가슴에도 불을 질러 놓은 것 같았다.
같은 시각, 마지막 경기를 준비하는 중국 팀 숙소의 분위기도 비장하긴 마찬가지였다.
금은동 싹쓸이를 노렸던 중국이지만 결과는 실로 참담했다. 왕하오핑, 쉬웨이준이 차례로 탈락한 지금 메달 확보가 가능한 멤버는 오로지 리장량 한 명 뿐이었다.
상대는 세계 랭킹 1위의 고한영이었다. 4년 전 올림픽에서 중국인 선수 세 명을 차례로 박살내며 금메달을 차지한 고한영이었기에, 중국 궁사들 사이에선 그에 대한 무의식적인 공포가 존재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희망은 역시 부상이었다. 다친 와중에도 왕하오핑을 완벽하게 제압한 고한영이었으나, 덕준과의 4강전에선 분명 부상의 여파가 있어 보였다.
“그 자식, 분명 다친 어깨가 불편할 거야.”
“리, 이번에야말로 장기전으로 끌고 가라고. 분명 화살 몇 발만 쏴도 티 나기 시작할 걸?”
“회전근개 부상을 안고 올림픽에 오다니, 대책 없는 새끼라니깐.”
쉬웨이준과 왕하오핑은 리장량의 사기를 돋워 주겠다는 듯 조잘댔으나 정작 리장량은 신경이 예민해진 듯 그들에게 화를 냈다.
“입 닥쳐 왕하오핑, 네가 8강전에서 그 놈한테 쳐발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걱정은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그, 그건···.”
“젠장, 부상이라고? 부상자 하나 제대로 못 잡은 놈은 그럼 팔 병신이냐?”
날카로운 공격을 받은 왕하오핑이 리장량을 흘겨보았다. ‘그러는 넌 4강전에서 유군자에게 역대급으로 쳐발리지 않았냐’는 말이 턱끝까지 나왔으나, 중국 팀의 리더인 리장량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미안해, 리··· 우리가 너무 경솔했어···.”
“그래, 대가리가 있으면 생각을 좀 하란 말야.”
한껏 예민해진 리장량은 동료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렸으나, 그럼에도 한국에게 금은동을 모조리 내 줄 수 없다는 의지엔 동의하는 듯 했다.
“올림픽 시상대에 그 빌어먹을 놈들만 올라가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지.”
“마, 맞아! 우리가 이겨야 한다고. 동메달도 가져오고, 단체전에서도 우리가···.”
“그래, 이제 더 이상 병신짓은 그만 해야겠어. 지금까지도 충분히 꼴사나웠으니까.”
리장량 역시 고한영의 부상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경기를 조금만 길게 끌고 가도 아마 고한영은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바로 다음 날, 동메달 결정전 경기 당일.
이번에야말로 4강전의 치욕을 씻겠다는 듯, 리장량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경기장에 나섰다. 한영 역시 언제나처럼 차분한 미소와 함께 경기장에 나타났지만, 리장량은 그 여유로운 모습이 모두 허세일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저 자식 저거, 센 척 하는 거 봐라.”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올 여름을 뜨겁게 만들어 준 남자 양궁 개인전의 마지막 경기!! 동메달 결정전을 시작하겠습니다. 경기에 나설 선수는 대한민국의 고한영, 그리고 중국의 주장 리장량입니다.] [공교롭게도 두 팀의 주장이 동메달 결정전에서 만났습니다!! 세계랭킹으로만 본다면 이번 대회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두 선수죠. 유군자 선수가 나타나기 전만 해도 금메달 획득 배당률이 가장 낮았던 두 선수입니다. 즉, 고한영 선수와 리장량 선수가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두 선수가, 동메달을 확보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 맞닥뜨립니다. 대한민국은 금은동을 싹슬이하고 싶을 겁니다. 반대로 중국은 포디움에 대한민국 선수들만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겠죠—!! 자아, 경기는 고한영의 선사(先射)로 시작됩니다—!!]왕하오핑을 잡았을 때처럼, 한영의 호흡에는 손톱만큼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든든한 동료들의 응원을 받고 있기 때문일까, 앙다문 입술은 평소보다도 더 큰 확신에 차 있는 것 같았다.
파아아앙—.
경쾌하게 날아간 첫 화살이 과녁의 한복판 언저리에 꽂혔다.
[고한영 : 10점.]파아앙, 파아아앙—.
이어서 날려 보낸 두 개의 화살도 거의 똑같은 궤적을 그리며 정중앙에 명중했다.
10점 위에 10점, 그 위에 또 10점이 쌓였다. 첫 세트부터 퍼펙트, 완벽한 결과를 만들어 낸 고한영이 관객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이야아아, 시작부터 퍼펙트입니다—!! 고한영, 오늘 컨디션 좋아 보이는데요!? 경기 전 부상 이슈가 있었습니다만, 경기하는 모습을 보니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산뜻한 미소와 함께 자리에 앉는 고한영 선수, 첫 세트부터 자막이 깔끔합니다!! 정말로 깔끔하고 시원하게 활을 쏘는 선수네요—!!] [리장량을 비롯한 중국 선수들, 고한영 선수를 보며 어깨를 갸웃거립니다!! 왕하오핑 선수는 오늘도 오른쪽 어깨를 매만지고 있군요!! 고한영 선수에게 부상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함인가 봅니다. 선수들, 승부욕이 높은 건 좋지만 올림픽 정신을 위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크흐음—.”
고한영의 선전을 보며 리장량이 큰 헛기침을 내뱉었다.
“저 새끼, 초반부터 힘을 다 써 버릴 생각인 건가···?”
이윽고 리장량이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파앙, 파아앙—.
다소 둔탁한 소리를 내며 날아간 화살은, 모두 중앙 언저리에 꽂히긴 했으나 한 발이 10점 선 밖으로 나가며 9점을 기록하고 말았다.
[리장량 : 9점.] [아아아, 리장량 선수 29점입니다—!! 고한영 선수에 비해 1점 모자란 점수!! 이렇게 되면 1세트는 고한영 선수가 가져가네요—!!] [대한민국의 고한영, 메달 획득에 한 발짝 더 다가섭니다!! 만약 이번에 동메달 딴다면 고한영 선수는 2회 연속으로 올림픽에서 메달을 획득한 선수가 됩니다—!!]놀라운 세트를 만들며 1세트를 가져간 한영이었으나 여전히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소름이 끼칠 만큼 정밀한 루틴과 호흡, 그것이 한영의 강점이었다.
부상으로 인한 통증이 시시각각 그 루틴을 방해해 왔으나, 한영은 한 호흡을 쉬는 대신 어금니를 악물었다.
이 망할 놈은 여기서 찍어눌러 버려야 한다.
파아앙, 파아아아앙—.
···.
두 번째 세트, 이번에도 역시 한영의 화살은 모조리 10점 과녁을 꿰뚫었다. 애써 환호성을 참던 관객들도 이 순간만큼은 못 참겠다는 듯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우와아아아아아아—.
실시간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네티즌들의 반응 역시 폭발적이었다.
[ㅁㅊ] [뜨릉ㄹ흐아허아ㅡㅎ아ㅡㅎ] [또 퍼펙틐ㅋㅋㅋㅋㅋㅋ] [하앙하아항하ㅏ하ㅏ아ㅏㅏ 한국선수들진짜뭔데ㅠㅠㅠㅠ] [아나진짜 숨막혀 폐터질것같음] [후우후후훙후웋우후우후웋우후우] [아니 다들 키보드에서 손 떼고 심호흡좀햌ㅋㅋㅋㅋ] [ㅋㅋㅋㅋㅋ하 심장터질라그래진심] [한영옵뭔데ㅠㅠㅠㅠㅠ왜 개멋진데] [진짜 표정1도안변하고 중국애 후두러패는거 넘 멋지다] [근데 어깨 괜찮은거임??ㅠㅠㅠㅠ] [아니 안그래도 어깨 안좋다면서 무리하는거 아니냐구] [다쳐도 중국 정도는 가볍게 찢을 수 있는거임ㅋㅋㅋ] [리장량인가 쟤 당황한거봨ㅋㅋㅋㅋ] [아까 즈그 팀 애들이랑 숄도우 숄도우 하면서 씨부리던데 진짜 개싫음ㅋㅋㅋㅋ왜 상대 선수 부상에 기대서 가려고 하냐곸ㅋㅋㅋㅋ활 잘 쏠 생각이나 하지] [숄도우가 뭔데?] [shoulder의 중국식 발음인듯ㅋㅋㅋㅋ] [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관객석의 환호성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며, 리장량은 애써 호흡을 진정시켜 보았다.
“후우, 후우, 후우우···.”
여기서 진다면 진짜 끝이다.
이제는 정말 물러설 곳이 없단 말이다.
중국인들의 매정함을 그 누구보다 잘 아는 리장량이었다. 큰 포부에는 박수를 보내 주지만, 그 포부가 허풍으로 끝났음을 알게 된 뒤엔 반응은 싸늘해질 것이다. 중국인들은 입만 산 허풍쟁이들을 혐오하니까.
벌써 스코어는 벌어지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희망은 있었다.
슬슬 고한영의 어깨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치약을 짜내듯 힘을 모아서 10점을 쏜 모양이지만, 이제부터는 통하지 않는다.
쐐애애액, 퍼어어어어억—.
[아아, 이번에도 리장량의 마지막 화살이 9점에 맞습니다—!! 이번에도 29점 기록하는 리장량, 분명 훌륭한 점수입니다만 올림픽 양궁 개인전은 상대평가입니다—!!] [예 맞습니다!! 상대인 고한영 선수가 30점을 쏜 이상, 리장량 선수가 점수를 따 내기 위해선 똑같이 30점을 쏘아야 한다는 말입니다—!!]2대 0이었던 스코어가 4대 0까지 벌어졌다. 이제 다시 고한영의 차례, 사로에 올라서는 고한영을 보며 리장량은 마음 속으로 온갖 저주를 퍼부어 댔다.
뒈져라, 그냥 뒈져라, 네가 쏜 화살에 맞아 뒈져라···.
쐐애액, 퍼어어어억—.
[고한영 : 10점.]그러나 한영의 10점 행진은 멈출 줄 몰랐다.
“아, 아니, 이게 뭔···.”
당황한 리장량이 눈물까지 글썽이며 바라보는 와중에도.
퍼어어어어억—!!
[고한영 : 10점.]한영은 철저히 자신의 루틴을 지키며, 10점을 쌓아 나가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