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85)
#285
눈물이 차올라서
패애앵—.
마지막 순간까지, 한영의 활시위에서는 경쾌하기 그지없는 소리가 났다.
날카로운 재단 가위가 원단을 자르듯, 대기를 양단하며 날아간 화살은 마치 당연하다는 듯 10점 과녁의 한복판에 명중했다.
[고한영 : 10점.]1, 2, 3세트 모두 퍼펙트. 단 아홉 발의 화살로, 고한영이 90점을 만들어 내는 순간이었다.
[해, 해냈습니다아아—!! 이번엔 고한영이, 고한영 선수가 퍼펙트 스코어 만들었습니다!! 3세트까지 모든 화살을 10점에 꽂아 넣는 고한영 선수, 무섭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무시무시한 집중력입니다—!!] [모든 화살을 10점에 때려박는 플레이는 유군자 선수만의 전유물이라 생각했는데, 이번엔 고한영 선수가 리장량 선수를 상대로 같은 플레이를 선보입니다!! 고한영 선수, 오른쪽 어깨 부상을 안고도 미친 기량입니다!! 놀랍습니다—!!] [한국 벤치, 거의 축제 분위기입니다!! 김덕준 선수는 마치 자신의 경기인 것처럼 환호성을 지르며 어퍼컷 세레모니까지 쳘치고 있군요—!! 반면 중국 벤치, 분위기가 침통합니다!! 아마 고한영 선수의 부상에 기대를 걸고 있었을 텐데요—.]“고한영! 고한여어엉—.”
“한영아, 이 자식아—!! 너가 최고다 임마!!”
“아니 아픈 사람 맞는 거냐고오—!!”
김덕준과 오진식 코치는 한영의 경기력에 감동받은 듯, 서로를 얼싸안은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관중석의 관객들, 경기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이들도 한영의 퍼펙트 게임에 감동받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와 미친;;; 303030이야] [한영옵 오늘 폼 미쳐따 진짜] [303030은 군자만 하는건줄 알았는데ㅠㅠㅠㅠ웬일이래진심] [하아ㅏㅏ 부상이라고 넘걱정했는데ㅠㅠㅠㅠ] [고한영 쟤도 스타성 미쳤다진짴ㅋㅋㅋ] [이번 양궁 국대가 걍 대놓고 캐릭터로 뽑은것같음 ㅋㅋㅋㅋ존잘 본업천재 센터1 깨발랄 열혈막내1 큰오빠재질 남신1] [이번엔 대놓고 물고빨고 해도 얼빠 소리 안듣는게 ㄹㅇ임ㅋㅋㅋㅋ] [아 남자들도 잘생긴 남자 좋아한다곸ㅋㅋㅋㅋㅋㅋ’잘생기기만’ 하고 실력없는 애들을 안 좋아하는거지] [이제 장량이가 101010 못하면 여기서 겜 끝나는거 아님?] [ㅋㅋㅋㅋㅋ진짜 개꼬시다 또 부상 어쩌고 입 털더니 벌써 한국인한테 6대떡 2번ㅋㅋㅋㅋㅋ] [아 나 쟤 이름때문에 자꾸 화산고 생각남ㅋㅋㅋㅋ나 장량이야! 이러다 개털리는 수로아쟄ㅋㅋㅋㅋ] [화산고? 그게 머임ㅇㅅㅇ?] [헐;;; 세대차이……;;] [화산고 몰름? 장혁이 장풍 쏘고 어? 신민아가 검도 하고 어?] [몰름;;;;아조씨] [ㅠㅠㅠㅠ아조씨도 올림픽은 보게해죠ㅠ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모든 한국인이 싱글벙글인 가운데, 사로에 선 리장량은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사실 2세트부터 조짐이 심상치 않았다.
쏘는 족족 한복판에 꽂히는 화살, 그의 숨통을 조여 오듯 전광판에 늘어나는 숫자 ’10’.
4강전, 군자를 상대하며 느꼈던 절망감이 동메달 결정전에서 되풀이되고 있었다.
“···이, 이건 말도 안 돼···.”
그 데자뷰가 리장량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무리 훌륭한 샷을 날려도 ‘올 10’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으니까.
그를 이기기 위해선 완벽한 세트를 세 번 연속으로 반복한 뒤 슛오프에서 모든 화살을 정중앙에 때려박아야 했다.
그러나 중국팀의 차오슈꺼, 조세근 코치는 그렇게 활을 쏘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준수한 스코어를 기록하는 방법은 배웠으나 신궁(神弓)이 되는 법까지는 몰랐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신궁은 한 명이 아니었다.
[놀랍습니다—!! 고한영, 환상적인 경기력으로 리장량을 윽박지릅니다!! 리장량 선수, 완전히 코너에 몰린 형국입니다!! 이제 이 경기를 이기기 위해선 이번 세트에서 30점을 쏜 뒤, 다음 세트에서 고한영을 완전히 제압하는 점수를 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게 쉬워 보이진 않습니다!! 고한영, 오늘 컨디션 최고입니다!! 반면 리장량 선수는 심박이 130까지 치솟았군요—!! 대한민국의 김덕준 선수는 심박이 치솟을수록 경기력도 상승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였습니다만, 그게 절대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죠—!!]“하아, 하아아···.”
호흡을 가다듬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켜 보았지만 폐만 아플 뿐이었다. 괜히 신발끈이 풀렸다는 핑계로, 장비가 말을 듣지 않는다는 핑계로 시간을 끌다가 레프리에게 옐로우카드까지 받았다.
삐이이—.
[여기서 경고 카드까지 받는 리장량입니다. 저런 행동은 좋지 않습니다!! 아무리 코너에 몰렸다고 하지만, 저런 식으로 경기의 흐름을 끊으면 안되죠!!] [어떻게든 스스로 일어나야 합니다, 리장량!! 사로에 들어선 순간, 선수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선수 자신밖에 없으니까요—!!]“리, 제발 집중해—!! 이제 마지막이란 말이다—!!”
큰 목소리를 내다가 조세근 코치마저 노란 카드를 한 장 받고 말았다.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가운데, 리장량이 온 몸을 부들부들 떨며 사로에 올랐다.
이미 리장량의 멘탈은 완전히 무너져 버린 것 같았다. 인터뷰 마이크 앞에서 당당한 표정으로 한국 선수들을 무시하던 그 선수는 어디에도 없었다.
눈에는 눈물이 맺혀 과녁에 초점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는 조준조차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럼에도 활을 쏘아야 했다. 해설자의 말대로, 사로에 오른 이상 그를 도울 수 있는 것은 자신 뿐이었으니까.
13억 인민이 지켜보고 있다. 80억 지구인이 모두 지켜보고 있다.
어서 화살을···.
피이익—.
[리장량 : 2점.]“——!?!?”
그러나, 스스로를 구원하기에 리장량은 이미 너무도 많이 무너져 내린 상태였다.
[경기 끝납니다아아아아—!! 리장량, 첫 화살이 2점 과녁에 맞았습니다—!! 이런, 이런 엄청난 실수가 동메달 결정전에서 나오네요—!!] [이로서 동메달은 자연스레 고한영 선수의 차지가 됩니다—!! 세트 스코어 6 – 0, 완벽한 승부였습니다!! 화살 아홉 발로 승부 결정짓는 고한영, 놀랍습니다!! 기가 막힌 집중력과 클러치 능력입니다—!!]“이야아아아아—.”
“영이 혀엉—!!”
“형님, 형니임—!!”
군자가 금메달을 땄던 그 순간처럼, 모든 한국인 선수와 코칭스태프들이 일제히 한영에게 달려들어 그를 얼싸안았다. 그 와중에도 덕준은 한영의 오른쪽 어깨를 지키겠다고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물러나게 했다.
“잠깐만, 잠깐만!! 포옹, 헹가레, 다 좋은데 오른쪽 어깨는 지켜 주자—!!”
“푸하하하핫, 덕준아. 나 이제 괜찮아.”
“···정말?”
“그럼. 이상하게 경기 끝나니까 아프지가 않네?”
그게 다 도파민 때문이다, 이제 곧 엄청 아파질 거다, 부상이 얼마나 무서운데, 앞으로 10년은 더 해 먹어야 할 사람이···.
덕준의 잔소리가 이어지는 와중, 군자는 상대였던 리장량을 흘끗 바라보았다.
“···.”
군자에 이어 한영에게까지 내리 셧아웃을 당한 리장량은, 도망칠 기운도 없다는 듯 사로에 나자빠져 있었다.
“흐음···.”
한영 역시 그런 리장량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를 바라보며, 군자와 한영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형님, 주제넘는 말씀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냐, 나도 같은 생각 하고 있을 걸?”
“형님도 마음이 쓰이시는 겁니까.”
“응. 덕준이는 또 유약하다 어쩌다, 그럴 것 같지만··· 어쩔 수가 없네.”
그렇게 말하며 한영은 싱긋 웃었고, 군자는 그런 한영을 바라보며 마주 웃었다.
역시 나와 마음이 잘 맞는 형님이시다.
완전히 무너진 리장량의 모습이 두 사람의 눈에 밟혔다. 경기 시작 전부터 무례한 발언으로 한국 선수들의 심기를 건드린 리장량이었으나, 그 역시 이제 갓 25세의 젊은 선수일 뿐이다.
게다가 곧 본국으로 돌아가 견디기 힘들 만큼의 비난 폭풍에 시달리게 될 터.
누군가는 위선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군자와 한영은 그에게 작은 위로라도 건네고 싶었다.
밉든 곱든, 그 역시 올림픽에서 상대로 경쟁한 국가대표 선수 아니던가.
“갑시다, 형님.”
“응.”
“가긴 어딜 가, 나도 같이 가.”
“?”
그러나 덕준의 합류는 군자와 한영의 입장에서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우리가 어디 가는지 알면 아마 싫다고 할 걸?”
“모를 것 같아? 장량이 쟤 위로해 주러 가는 거잖아.”
“허어, 근데도 같이 가겠다고?”
“응. 뭐 나는 쟤랑 직접 붙진 않았지만··· 그래도 저렇게 자빠져 있는 거 보니까 마음이 안 좋네.”
“···.”
“나도 어릴 땐 말실수 많이 했어. 물론 쟤가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지만··· 무튼 아예 이해 못할 놈은 아니란 거지.”
“···덕준아.”
“그래도 영이 형 어깨 부상 가지고 지랄했던 건 못 참아. 그건 따질 거야.”
“따지다니, 덕준이 너 중국어를 할 줄 아는 게냐.”
“그, 그 번역기 어플 켜면 되거든!?”
또 투닥거리는 덕준과 군자를 보며 한영이 크게 웃었다.
“푸하하핫—.”
“뭐야, 왜 웃어! 형도 중국어 못 하잖아.”
“아냐, 그냥 올림픽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지금 나 놀리는 거지!”
덕준의 말에 한영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한영의 말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올림픽, 천재 군자와 겨뤄 보고 싶었다. 소중한 동생 덕준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었다.
승부밖에 모르던 열혈 10대였던 덕준이, 쓰러져 있는 리장량을 위로해 주러 가겠다고 한다.
이 변화를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자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 같이 가자.”
“근데 뭐라고 하지? 진짜 중국어 어플 켜?”
“아니다. 이런 순간엔 굳이 말이 통하지 않아도 뜻이 전달되는 법이지.”
“그래···?”
그렇게 세 사람은 리장량의 앞으로 다가갔다. 아직도 패배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리장량은 사로 앞에 주저앉아 활을 껴안고 있었다.
“리장량.”
“···.”
“수고했어. 우리 다음에 또 겨뤄 보자.”
“···.”
“그래도 한영이 형 어깨 부상 가지고 입 턴 건 너무 심했어. 그건 너도 알지? 말 안 통해도 알지? 어깨, 이거. 오케이?”
“···.”
“하하, 덕준아. 하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잖아.”
“···그래, 뭐··· 고생했다. 다음엔 나랑도 시합해.”
머쓱한 듯 코를 만지작거리며, 덕준과 군자가 리장량에게 손을 내밀었다.
“···.”
한국어를 알아들을 수 없는 리장량이었으나, 적어도 이들이 그에게 적개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소년들의 눈빛 속에는 경멸보다는 동지애가 담겨 있었다.
그렇게 심하게 공격을 했는데, 심지어 부상을 물고 늘어지기까지 했는데.
내게 이런 관용을 보인다고?
쪼그려 앉은 리장량의 눈에 어느새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