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87)
#287
널 위한 죽순
일반적인 언론사와 달리, 타블로이드 언론은 자극적인 기사를 주로 다룬다.
이들에게 있어 팩트보다 중요한 것은 기사의 재미와 자극성이다. 사실 관계를 오목조목 따지며 지루한 기사를 쓰느니, 차라리 몇 줄 조작으로 완성한 흥미로운 기사가 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런 타블로이드 언론 중에서도, 브래들리 존스가 근무하는 [더 선데이>는 가장 높은 악명을 자랑한다.
연예인, 스포츠 스타, 정치인, 인플루언서, 기타 온갖 셀러브리티들에 대한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 내며 영국 황색언론의 대명사가 된 [더 선데이>는, 한때 폐간의 위기를 맞았으나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부활하는 데에 성공했다.
열 개의 날조 기사 사이에 하나의 팩트 기반 기사를 삽입하는 것. 그 하나의 기사가 갖는 임팩트 덕분에, [더 선데이>는 ‘사생활에 있어서만큼은 믿을 만한 언론’ 이라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 때부터 [더 선데이>의 취재 기조는 바뀌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날조를 한다면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팩트에 교묘하게 소설을 덧붙여 만든 기사는 모두의 환호를 받기 마련이다.
브래들리 존스는 이런 [더 선데이>의 운영 기조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스포츠부 기자였음에도, 연예부 기자보다 많은 사생활 관련 기사를 쏟아 내며 명성과 악명을 동시에 쌓아 나가고 있는 브래들리 존스였다.
그런 존스의 다음 타겟이 바로 유군자였다.
물론 쉽지 않은 타겟이었으나, 그 점이 오히려 그를 자극했다. K-POP 아티스트들은 사생활에 대한 철저한 통제로 스캔들을 잡아내기가 어렵다지만, 존스는 기획사의 단속 능력보다 인간의 본성을 더 믿었다.
“브래들리, 난 K-POP 가수들이 사생활로 문제를 일으키는 걸 본 적이 없··· 아, 아니다. ‘Victory’의 경우가 있었구나. 무튼 그 녀석 외엔 사생활에 문제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뭐 그렇긴 하지.”
“할 수 있겠어? 괜히 헛물 켜지 말고, 칼럼 볼트의 세 번째 와이프 썰이나 취재해 보는 건 어때?”
그러나 칼럼 볼트의 사생활은 더 이상 브래들리 존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는 이제 새로운 올림픽 스타의 뒤를 캐는 데에 완전히 매료된 듯 했다.
“토마손, 생각해 봐. 그 젊은 애들이, 과연 자의로 그렇게 사생활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걸까?”
“뭐 그건 아니겠지만···.”
“100%, 회사에서 단속하는 거야. 하지만 올림픽 기간만큼은 그 단속이 헐거워질 테지.”
“···그런가?”
“생각해 봐, 리우에서 올림픽 숙소에 대체 몇 개의 콘돔을 뿌렸는지. 게다가 여긴 파리라고. 리우 데 자네이루 못지 않은 자유인들의 도시지.”
“흐으음—.”
“지금 유군자는 그냥 올림픽 스타가 아니야. 잘 나가는 K-POP 아티스트이자, 끝내주는 스포츠 스타이자, 최고로 핫한 몸에 멋진 미소까지 가진 젊은 놈이라고. 선수촌 여자들이 얘를 가만히 둘 것 같아?”
동료 기자 랜달 토마손도 조금씩 브래들리 존스의 논리에 설득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네.”
“일탈하고픈 소년의 마음, 주변에서는 수많은 유혹. 22살 꼬꼬마에겐 가혹한 환경이야. 나 같았다면 절대로 못 참았어.”
“푸하하, 맞아. 나라도 못 참아.”
“토마손, 너도 칼럼 볼트 취재는 그만두고 나랑 함께하자. 이번에도 특집 기사로 한탕 해 먹는 거야. 칼럼 볼트가 카사노바인 건 이제 전 세계 사람들이 다 안다고. 하지만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건 언제나 얌전한 놈이 보여주는 반전이잖아?”
그렇게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군자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올림픽 선수단은 원칙적으로 특정 구역을 벗어날 수 없다는 규제가 있었기에, 군자를 미행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팀 훈련이 끝난 뒤, 야심한 시각. 군자는 선수촌 근처의 대나무 숲을 거닐며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흐음, 불란서에도 대나무가 유행이라니. 참으로 잘 된 일 아닌가—.”
피톤치드에 한껏 취해 있는 군자였으나 두 타블로이드지 기자에겐 그 모습도 사심이 가득해 보일 뿐이었다.
“저 놈 저거 봐라. 대놓고 대쉬해 주길 기다리고 있는 거잖아.”
“···그런가? 정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머지않아 두 사람이 기다리던 상황이 발생했다. 스웨덴의 여성 높이뛰기 선수, 카롤리네 이바노비치가 군자에게 과감하게 다가가 말을 걸었기 때문.
“어어, 쟤 카롤리네잖아? 이번 올림픽에 나온 여성 선수 중 가장 핫하다고 손꼽힌···.”
“맞네.”
“뭔 일이 생겨도 생기겠는데···.”
멀리서는 대화 소리가 정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분명 카롤리네는 군자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말하고 있었다. 군자 역시 그런 카롤리네를 단숨에 뿌리치지 않고 무언가를 말하는 듯 했다.
“오오오—.”
“뭘 감탄하고 있어, 토마손! 빨리 찍어!”
“그, 그래!”
찰칵, 찰칵—.
두 사람이 만나는 모습은 사진에 담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스토리다. 이 사진만으로는 결국 날조 기사밖에 쓸 수 없으니.
머지않아 두 사람의 만남은 끝났다. 군자는 뒷짐을 진 채 가던 길을 갔고, 혼자 남겨진 카롤리네는 군자에게 받은 무언가를 소중하게 품으며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었다.
“가 보자.”
“오케이.”
이윽고 두 기자가 카롤리네에게 다가갔다. 기자들이 다가왔음에도 카롤리네는 여전히 영혼이 빠진 표정이었다.
“···잘생겼어···.”
넋 놓고 스웨덴어를 중얼거리는 카롤리네에게, 브래들리 존스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카롤리네. 혹시 방금 한국의 유군자 씨와 대화한 겁니까?”
“···네, 뭐 잠깐···.”
“이렇게 황홀한 표정이라니, 분명 좋은 대화가 오고 갔나 보죠?”
“···어어, 네에···.”
“어떤 내용인지 조금 알 수 있을까요?”
“···그가, 그가 내게 씨앗을 주겠다고 했어요···.”
“—!?!?”
놀라운 발언에 두 기자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일탈이 있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건 너무나도 급진적인 전개 아닌가.
“그, 그렇군요! 하하, 그래요. 무슨 일이든 가능한 도시니까요.”
“···네에···.”
“여기서 잠깐 기다리라고 하던가요? 아니면 곧 장소를 옮길···.”
브래들리 존스가 질문을 이어가는 사이, 멀리서부터 군자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두 기자가 있었음에도 군자는 아랑곳 않으며 카롤리네 이바노비치에게 무언가를 불쑥 내밀었다.
죽순이었다.
“···이건···.”
“말씀드렸던 씨앗이외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모종에 가깝지만···.”
“···.”
“카롤리네 공, 부디 이 죽순을 북구라파에도 널리 퍼뜨려 주시오. 이곳 불란서에 대나무가 있는 것을 보니 내 마음이 참 좋더이다.”
“···.”
“북구라파에는 주로 침엽수림이 번성한다 하지요? 그 곳에는 ‘희부아 희부아(喜富我 喜富我, 스스로에게 즐거움이 많다는 것을 뽐내는 노랫말)’라는 가사도 존재한다 들었습니다. 분명 푸르른 침엽수를 보며 느끼는 즐거움을 나타낸 가사겠지요.”
“···.”
“대나무 역시 추위에 강하며 올곧은 식물이랍니다. 이렇게 죽순을 받아 주어, 참으로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그렇게 카롤리네의 손 위에 죽순을 올려 놓곤, 군자는 산뜻하게 웃으며 두 기자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어느 나라에서 오셨는지.”
“어, 우, 우리는 영국에서···.”
“오호, 여왕의 나라 아닙니까. 그 곳엔 혹시 대나무가 있습니까? 괜찮으시다면, 두 분께서도 이 대나무 씨앗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두 사람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자 군자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상쾌하게 그 자리를 떠났다. 올림픽 최고의 미녀로 명성이 자자했던 카롤리네 이바노비치는, 사라지는 군자의 모습을 보며 아련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나, 나는···.”
“카롤리네?”
“우리 나라에 대나무 밭을 만들 거예요···.”
카롤리네는 군자에게 완전히 반해 버린 것 같았으나 취재는 허탕이었다. 운 좋게 카롤리네가 먼저 군자에게 접근했으나, 군자는 정색 이상의 철벽으로 카롤리네를 완벽하게 차단해 버렸으니까.
그러나 두 기자는 포기하지 않으며 군자의 뒤를 밟았다.
“역시 식당이지. 미세한 기류가 흐르기에 그보다 좋은 장소는 없어. 분명 군자와 눈빛을 주고받는 누군가가 있을 거야!”
그러나 정작 군자는 눈 깜짝할 새에 식사를 해치우고, 감동적인 메뉴에 대한 한시를 쓰기에 바빴다.
婆手打佳魔侍妥(파수타가마시타)
노인이 만든 수타요리가 아름다우니, 마귀도 응당 이를 떠받들 터.
以太利製法理野(이태리제법이야)
이 큰 이득을 법으로 제정하여, 너른 땅을 다스려야 할 것이다.
“후훗, 푸후훗, 마음에 드는구나.”
그 해괴한 풍경을 보며 두 기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썸은 안 타고 저게 뭐 하는 개짓거린데?”
“조금 더 따라다녀 보자. 자유시간엔 무슨 일이 생겨도 생기겠지!”
저녁식사 후, 잠시 주어지는 자유시간 동안에는 이상기류를 포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 두 사람이었다. 때마침 식사를 마친 군자가 한국 마장마술 대표팀 훈련장으로 향하는 모습이 보였다. 식사 후의 은밀한 훈련장행이라니, 이번에야말로 뭔가 일이 생길 줄 알았지만.
“자아, 이런 식으로 말을 다룬다면 우측으로 쉽게 돌 수 있습니다.”
“오오—.”
“여기서 목덜미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면, 나의 뜻을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지요.”
“오오오—.”
“이 방법이 숙련된다면, 이런 식으로 말을 타고 공중제비도 가능하답니다.”
“오오오오오오—!!”
군자가 마장마술 훈련장에 간 이유는 현역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승마 기술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었다.
“아니, 쟤네는 코치가 없어 뭐가 없어··· 왜 양궁선수한테 저걸···.”
“브래들리, 코치들도 저기 있는 것 같은데?”
“응?”
랜달 토마손의 말처럼, 마장마술 코치들 역시 1열에 앉아 군자의 놀라운 기술을 직관 중이었다.
“아니, 코치들도 배우고 있으면 뭐 어쩌잔 거야?”
군자의 건전한 행보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야간 훈련 후 자유시간엔 붓글씨 연습을 했으며, 다음 날 새벽녘엔 혼자서 댄스 연습을 했다. 쉬는 시간이 생길 때마다 틈틈이 부모님께 편지를 썼으며, 그 와중에 동료들과 영상전화로 안부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그 사이에도 수많은 여성들이 군자에게 접근해 왔으나.
“오오, 알렉사 공은 브라질에서 오셨소? 혹시 브라질에도 대나무가 있소이까?”
“···?”
“레오나 공, 자메이카에서 오셨다지요? 그 나라엔 ‘대마’는 있어도 ‘대나무’는 없을 것이외다.”
“···??”
“자아, 혹시 또 내게 말을 걸 분이 계시오? 이제 죽순이 얼마 남지 않았소—.”
“···???”
모두가 원하는 대답 대신 죽순 하나만 받아가야 했다.
그렇게 며칠 동안 군자를 따라다닌 결과, 사생활 취재 전문 브래들리 존스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이건 아닌 것 같아.”
“응? 뭐가?”
“젠장, 난 죽순 증정식이나 보자고 이 놈을 따라다닌 게 아니라고!”
“왜, 재미있잖아. 난 저 친구 팬 된 것 같은데?”
세상엔 아무리 사생활을 캐도 티끌 하나 나오지 않는 희한한 인간도 있다는 것을.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