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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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공자님이 오심
군자와 힙합의 만남은 처음부터 운명 같았다.
심야 연습이 끝난 트레이닝 룸,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태웅이 틀었던 노래가 시작이었다.
시작은 일반적인 아이돌 노래 같았으나 중반부터 갑자기 다른 양상의 창법이 튀어나왔다.
음이 없고 속도가 빠르며, 그 태도가 몹시 공격적인.
얼핏 들으면 판소리의 아니리(판소리에서 창자가 자유 리듬으로 사설을 풀어 놓는 행위) 같기도 했다.
“태웅아, 아이돌 노래에도 아니리가 있구나?”
“응? 아니리? 뭐가 아닌데?”
태웅은 그것이 아니리가 아닌 ‘랩’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랩이란 힙합이라는 문화를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했다.
“힙-합이라.”
호기심에 찾아 본 힙합은 참으로 생소하고도 낯선 문화였다.
무릇 선비라면 언제나 겸손하고 청렴하며 타인을 위하고 조강지처를 아낄 줄 알아야 하거늘.
힙합 음악은 스스로를 과시하고, 가진 것을 뽐내며, 비난에 비난으로 맞서고, 심지어 ‘네 여자 내 여자’라는 어마어마한 가사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 이런 숭하디 숭한 노랫말을···.”
두 소절 이상만 들어도 귀끝이 새빨개지고 목덜미에서 땀이 났다. 평생을 선비로서 살아 온 군자에게, 힙합 음악은 너무도 큰 자극이자 일탈이었다.
하지만 태웅의 말에 따르면, 아이돌 음악에서 랩과 힙합은 뺄 수 없는 요소라 하였다. 그러니, 아무리 얼굴이 새빨개져도 공부를 멈출 수는 없었다.
하기야 세상 어떤 공부가 달콤하기만 할까.
매일 밤마다 힙합 음악을 꾸준히 고막에 때려 박은 군자였다. 종종 민망한 가사가 나올 때마다 악! 소리를 내는 바람에, 곤히 자고 있던 유찬에게 수직 목례를 하기도 했다.
그렇게 힙합 음악을 주입한 지 일주일 째.
이제 군자는 더 이상 잠든 유찬을 깨우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장단에 맞춰 머리까지 흔들며 음악을 즐기기까지 했다.
랩이라, 힙합이라.
이거 알고 보니 멋진 음악 아닌가?
문득 처음 가사를 필사할 때가 떠올랐다. 그 때도 종종 노래가 시작하기 전에 ‘예의’를 찾는 이들이 있었지. 예의는 군자에게 아주 친숙한 개념이었다.
그런데, 이 힙합이란 음악엔 ‘예의’가 발에 채일 만큼이나 많았다.
어떤 노래를 틀든 적어도 세 번 이상은 ‘예의!’를 외쳤다. 뽐낼 땐 뽐내도 예의는 지키겠다는 의지인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효!’는 예의보다 더 많았다. 이제야 이 땅에 힙합 음악이 유행한 이유를 깨달은 군자였다.
허나 힙합의 매력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힙합이야말로 산수(山水) 자연(自然) 속에서 공부하며 농본주의(農本主義)와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추구하는 음악이었다.
[SWAG!]수액.
나무 수액을 찾으며, 청산(靑山) 삼림을 즐기는 선비의 모습을 그렸고.
[FLEX!]후락수(厚樂水).
큰 즐거움은 재물도, 권력도 아닌 물에 있음을 알고 있다.
[Check!]책(冊).
항상 책을 찾는다는 것은, 그 좋은 산과 물 속에서도 공부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음이며.
[Ma Homies!]나의 호미.
자신의 농기구를 소중히 여기는 모습은, 농사를 근본으로 여기는 국가의 선량한 백성 그 자체를 보는 듯 했다.
그 와중에 솔직하며 직설적인 노랫말로 속풀이까지 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훌륭한 음악인가.
처음엔 두 소절 이상 듣기 힘들었던 힙합 음악이 이젠 그의 자장가가 됐다.
‘에픽 로우’의 음악으로 겨우 입문한 힙합이지만, 이젠 ‘퀸 왓싸비’의 노래도 서슴없이 들었다.
‘프리스타일’이라는 경연 역시 군자에겐 꽤나 익숙한 것이었다.
숙부 유형원은 어린 군자를 데리고 다니며 뭇 대감들 앞에서 군자의 글솜씨를 뽐내곤 했다.
먹물 깨나 먹었다는 양반들 앞에서, 군자는 어떤 주제를 받아 들든 즉석으로 시구를 써 내려가며 모두를 감탄케 했다.
시제(詩題)를 줘도 청산유수처럼 시를 내뱉었는데, 자유 주제라면 무엇이 어려울꼬.
“효우, 효우.”
가볍게 운을 뗀 군자가 모두를 돌아보며 독한 가사를 내뱉기 시작했다.
나의 지극한 효심 (Hyo!) 내 안에 공자님이 오심 (Hyo!)
나는 부모를 모심 (Hyo!) 내 안에 맹자님이 오심 (Hyo!)
단숨에 만들어 낸 미친 중독성의 훅. 무대를 지켜보던 랩 트레이너 레이첼은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표정이었다.
“···미친놈인가?”
그녀의 반응과 달리, 참가자들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푸하핫-!”
“저게 뭐야!?”
“중독성 미쳤어!”
순식간에 모든 참가자들이 떼창을 시작했다. 첫 번째 타자로 나왔음에도, 군자는 좌중을 완벽하게 사로잡아 버렸다.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여유만만한 선비 스텝을 밟던 군자가 이내 훅을 뚫고 벌스(Verse)를 내뱉기 시작했다.
비뚤어진 저고리, 바로 매무새를 고침.
몸가짐은 선비, 하지만 꿈은 아이돌임.
볼에는 연지곤지, 그러나 예의는 고집.
부모님이 우릴 보심, 행동거지를 조심.
···.
듣도 보도 못한 폭풍 선비 랩이 이어지는 동안, 참가자들 대다수가 바닥을 굴렀다.
“푸하하하하핫-.”
“유군자, 이 미친놈아—!!”
“저게 뭐냐고 진짜, 크카카캌.”
아슬아슬하게 비트를 탈 듯 놓칠 듯, 팔다리는 마치 흐르는 물에 인삼을 씻는 듯 흐느적 흐느적 흔들렸다.
거기에 효도 랩의 콜라보레이션까지. 참가자들이 폭소하는 것도 꽤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랩 트레이너 레이첼만큼은 마냥 웃을 수 없었다.
효심으로 내뱉는 효도 랩, 그러나 그 안엔 힙합의 기본 요소가 오롯이 갖춰져 있었다.
현란한 플로우나 스킬은 없었지만 쭉쭉 뻗는 찰진 발성과 정박으로 딱딱 때려 박는 라임.
겉멋만 잔뜩 들어간 스킬 위주의 랩보다도 훨씬 더 강렬한 청각적 쾌감을 선사했다.
요즘은 래퍼 지망생부터 아이돌 지망생까지, 모두 변조된 목소리로 속사포를 쏟아내거나 멈블 랩이랍시고 영어로 웅얼웅얼 옹알이를 하는 세상이 됐다.
그 와중에 군자의 랩을 들으니, 오히려 더 참신하고 강렬한 느낌을 받은 레이첼 트레이너였다.
게다가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게 프리스타일이라는 것. 그것도 여덟 명 중 처음으로 무대에 나온 녀석이.
“···이게 말이 돼?”
어느새 열여섯 마디를 가득 채운 군자가 다시 한번 훅을 내뱉으며 관객들을 선동했다.
“나의 지극한 효심, 내 안에 공자님이 오심!”
“나는 부모를 모심, 내 안에 맹자님이 오심!”
어느새 모든 참가자들이 그 미친 훅을 따라 불러 댔다.
“군자, 넘 웃겨!”
2위 현시우는 곧 자신이 프리스타일 랩을 해야 된다는 것도 잊은 채 손을 들고 방방 뛰며 방실방실 웃고 있었고.
군자의 가장 큰 라이벌인 양정무조차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슬쩍슬쩍 올라가는 입꼬리를 컨트롤하지 못했다.
다시 한번 무대를 뒤집어 놓은 군자가 마이크를 높이 들어올리며 크게 소리쳤다.
“후락수—!!”
“우와아아아아아—!!”
“감사하오—!!”
1번 타자로 나간 군자가 무대를 뜨겁게 달궈 놓자, 그 다음 멤버들도 천천히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요우, 요우.”
“헤이, 체키라웃!”
“푸쳐핸섭!”
“우우우우-.”
그러나 다음으로 나선 이들은 모두 군자만큼 끝내주는 무대를 보여주지 못했다.
사실, 갑자기 프리스타일 랩 경연을 하는 것은 아이돌 연습생이 아니라 전문 랩퍼들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트레이너 레이첼은 이 퀘스트를 멈추지 않았다.
2차 팀 미션의 주제는 ‘창작곡 경연’.
음악 창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순간적인 영감, 그것을 포착할 수 있는 날카로운 직관이다.
단순히 뛰어난 프리스타일 랩을 보자는 것이 아니었다.
창작곡 미션의 팀장으로서, 얼마나 말랑말랑하며 신선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는지.
레이첼 트레이너는 그것을 보고 싶었다.
지금까지 그녀의 기대치를 충족시킨 것은 오직 군자 한 명 뿐이었지만, 솔직히 그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
프리스타일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깔끔하며 뛰어난 퍼포먼스였으니까.
종종, 미리 작성해 둔 리튼(written) 벌스를 프리스타일인 양 풀어 놓는 래퍼들도 있다. 군자의 벌스 역시 리튼 벌스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새로운 주제를 주고 다시 시켜 볼 수도 없고···.’
그녀가 고민하던 사이, 어느새 무대 위엔 마지막 참가자인 주하성이 올라왔다.
“오오-.”
현 시청자 투표 1위.
압도적인 댄스 능력과 뛰어난 비주얼로 초반부터 코어 팬덤을 만든 주하성의 포지션은 메인 댄서 & 래퍼.
상위 여덟 명의 참가자 중, 유일하게 스스로 랩 벌스를 만들 수 있는 능력자이기도 했다.
쿠웅, 쿠웅-.
‘마지막이 주하성이야?’
이번엔 기대를 조금 걸어 봐도 괜찮을까.
레이첼 트레이너가 자세를 고쳐 앉는 순간, 주하성이 마이크를 쥐고 가볍게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무대 중앙으로 나서는 듯 하던 그의 발걸음이 갑자기 군자에게로 향했다. 지금까지 별다른 접점이 없던 두 사람이었으니, 순간 모두가 촉각을 곤두세웠다.
“Hey 군자, 들어 봐.”
벌스의 시작은 군자의 이름. 동시에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아—!!”
“오오오, 주하성—!!”
마지막에 와서야 프리스타일 경연에 다시 불이 붙었다. 상대의 이름으로 운을 띄운다는 건, ‘디스 랩’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써 온 랩 잘 들었어, 네 컨셉 참 재미있네.
이름이랑 잘 어울려, 양정무도 빵 터졌대.
But Dude, hold up. 이건 개콘이 아닌데.
네 진짜 모습을 보여, 계속 선비로 지낼래?
“우오오오오—!!”
“싸운다, 싸운다, 싸운다아아—!!”
주하성의 랩은 군자의 ‘컨셉질’을 꼬집고 있었다.
모두가 인지하고 있으나 그저 ‘재미있다’는 이유로 묵인 중이었던.
모든 참가자 중, 군자의 ‘선비 컨셉’을 전면에서 지적한 것은 주하성이 처음이었다.
분위기가 다시 끓어오르는 가운데, 레이첼 트레이너의 눈도 기대감으로 빛났다.
주하성이야 뭐 랩 실력을 이미 검증 받은 참가자였으니 논외로 치더라도, 군자는 달랐다.
여기서 유군자의 잠재력을 확실히 검증하고 싶었다.
첫 번째 벌스는 준비해 올 수 있어도, 만약 즉흥 배틀이 시작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상대의 가사에 대응하며 자신의 이야기까지 해야 하기에.
이번에야말로 유군자의 창의력을 제대로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뺄 거냐, 아니면 들어올 거냐.
모두가 기대감을 갖고 지켜보는 가운데.
난데없이 공격을 받은 군자가 다시 둠칫둠칫 리듬을 타기 시작했다.
“예의, 예의, 예의.”
3연속 예의 콜로 다시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모습. 1위 주하성의 공격에 맞대응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우와아, 군자아아아—!!”
“좋아-! 유군자, 가라아아—!!”
“책, 책, 책.”
능숙하게 좌중의 함성을 유도하며, 이번엔 군자가 주하성에게 다가갔다.
뜻밖의 공격을 받았으나 군자의 얼굴에 당혹감은 없었다.
안타깝구나, 주가(周家)의 1위 참가자여.
조선은 경연의 나라다.
무릇 제대로 공부를 한 선비라면 논쟁 실력은 갖추는 것이 기본.
랩 배틀 역시, 군자에겐 생소한 문화가 아니었다.
주하성 앞에 똑바로 선 군자가, 이내 두 번째 벌스를 뱉기 시작했다.
“예의, 예의, 예의가 없구나?”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