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94)
#294
불
컴백 무대 촬영 시간은 늦여름 해가 떨어질 무렵인 6시 언저리로 정해졌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복궁이었지만, 부드러운 처마 끝에 노을빛 햇살이 떨어지는 그 순간이야말로 경복궁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 판단했기 때문에.
현장인 경복궁은 이미 촬영 준비로 한창이었다. 모두 국내 최고 수준의 인력이었지만, 국보급 문화재에서 촬영을 진행해야 하기에 극도로 조심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촬영 준비가 이루어졌다.
현장에서 촬영을 위한 준비가 이루어지는 동안, 7IN 멤버들은 언제나처럼 이용중 실장이 모는 밴을 탄 채 거리 위를 달리고 있었다. 모처럼만의 완전체 무대였기에, 소년들도 기대감에 가득찬 모습이었다.
“후우, 이게 얼마만이야 진짜.”
“그러게. 이래저래 꽤 오래 쉬어 버렸네.”
“미안하다. 내가 올림픽에 나가는 바람에···.”
“거기서 너가 사과를 왜 하냐. 너가 올림픽 나갔다 와 줘서 우리 팀 위상이 얼마나 떡상했는데.”
“맞아여. 그리고 올림픽도 엄청 재밌게 봤는데 뭐! 흐히.”
“그나저나 유군자 씨.”
“음?”
“자칭 조선인으로서, 조선의 궁궐에서 공연을 하게 된 소감이 어떠십니까?”
“흐음—.”
“조선 시대에도 궁궐 공연은 아무나 못 했겠지요?”
태웅은 장난스럽게 질문을 던졌으나 군자는 자못 진지했다.
“···아직까지는 실감이 나지 않는구나.”
그것이 솔직한 감상이었다. 경복궁에서 공연을 한다, 참으로 가슴 벅차고 설레는 문장이다. 그러나 말만으로는 와닿지 않았다. 그저 친구들과 함께 완벽한 모습으로 무대에 오를 수 있음이 감사할 뿐이었다.
허나 밴에서 내려 고궁(古宮)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자, 군자의 가슴도 동시에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참으로 묘한 감정이었다.
어깨만 덩실거려도 회초리를 맞았으며, 저잣거리에서 노래를 부른 날엔 뒤주에 갇히고 말았다. 그렇기에 현대에 온 뒤부터는 모든 것이 속풀이며 한풀이였다.
이토록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다니. 나의 가무를 좋아해 주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매 순간이 감동이었다. 하루도 감사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팬들을 소중히 여겼으며, 겸손을 잃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감사의 나날들 중에서도 오늘은 조금 특별했다.
아직도 조선에 머물러 있을 나의 숙부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그토록 임금을 알현하고 싶어 했던 숙부가, 마침내 왕궁에서 가무를 선보이게 된 군자를 본다면 무슨 말을 할까. 무엇보다, 그곳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할 수만 있다면 과거의 군자에게 말해 주고 싶었다. 너는 해방되었다. 시공간을 뛰어넘어 내게 와 준 친우 덕분에, 아름다운 세상에서 좋은 친구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그러니 안심하거라. 숙부의 뜻에 따르지도 말거라.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행복해질 날이 온다. 감당조차 되지 않을 행복에, 매일매일 환히 웃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야 유군자.”
“···음?”
“뭘 아련하게 웃고 있어, 징그럽게.”
“아, 내가 웃고 있었구나.”
“또 조선 사람이라고, 왕궁 오니까 막 옛날 생각 나고 그러나 보다?”
“후후, 그래 태웅아. 옛 생각이 조금 났다.”
“그래 그래, 내가 졌다. 전부터 느꼈던 건데, 이 정도로 지독한 컨셉이면 그냥 현실로 인정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
“뭐야, 권태웅 너 아직도 몰랐냐. 군자 조선 사람 맞다니깐?”
“그래, 그러시겠지. 어련하시겠냐~”
“히히, 형들! 우리 이제 한 번 맞춰 보고 바로 촬영 들어가요.”
“오케이, 저 뒤에서 해 볼까?”
의상까지 갈아입은 뒤 소년들은 무대 뒤편에서 마지막 리허설을 마쳤다. 첫 번째로 공연할 곡은 전부터 준비했던 더블 타이틀곡 [All Chemi>였다.
컴백을 위해 수천 번도 넘게 연습했던 퍼포먼스였기에 전주만 들어도 몸이 먼저 반응했다. 다소 위험한 소품이 들어가는 공연이었기에, 안전팀은 그 어떤 때보다도 신경을 곤두세우며 멤버들의 연습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위험한 소품을 다루면서도 소년들은 손톱만치의 긴장감도 없이 완벽하게 리허설을 해냈다.
커리어 초반부터 온갖 힘든 서바이벌 무대를 견뎌 냈으며, 중반부터는 줄을 타고 지붕 위를 달리며 컨텐츠를 만들어 온 그룹이었다. 본업은 아이돌이었으나, 소년들의 담력은 어느새 스턴트맨 수준까지 올라와 있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리허설을 마친 뒤, 음향 세부 조정까지 끝나자 마침내 본 촬영이 시작됐다. 경복궁의 아름다운 풍경을 살리면서도 무대를 돋보이게 할 조명장치가 소년들이 밟은 땅 위로 떨어졌다.
쿠웅, 쿠우웅—.
곡의 시작을 여는 묵직한 타악기 소리는 미리 섭외된 대고(大鼓)로 대체됐다. 동양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대고는 경복궁의 풍경과 완벽하게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생중계 카메라에 대고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스트리밍 채널의 반응도 폭발하기 시작했다.
[하아ㅏㅏㅏ 경복궁에 대고라니 미친거아니냐ㅠㅠ] [진짜 칠린이 동양풍 쌉근본임··· 얘네만큼 동양풍 찰떡인 그룹이 없다구ㅠㅠㅠㅠ] [멤버중에 한명이 걍 조선에서 왔자낰ㅋㅋㅋ] [후웋우후ㅜㅎ우후우 북소리에 심장 뻐렁친당] [양궁도 떨렸는데 무대는 백배더떨리뮤ㅠㅠㅠ] [이번엔 뮤비도 선공개 안해서 더 궁금하다구] [허럴허러ㅓㅓ헝 애들 보인다ㅠㅠㅠ실루엣ㅁㅊ] [오늘은 다 하얀옷이네ㅠㅠㅠㅠㅠ] [하ㅏㅏ아ㅏㅏ 너무 예쁘다진심]소년들은 조용히 눈을 감고 서 있었다. 웅장한 대고에 베이스라인이 합세하며 곡의 기반을 만드는 듯 싶더니, 바로 다음 마디에서 키치한 메인 멜로디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소년들이 번쩍 눈을 뜨며 오른손을 치켜들었다.
화르륵—.
미리 준비했던 특수효과로 인해 오른손에 맹렬한 불꽃 덩어리가 타올랐다. 일곱 소년이 모두 같은 동작으로 한 쪽 무릎을 꿇으며 그 오른손을 바닥에 찍자, 경복궁 돌바닥에 설치되어 있던 조명이 점등되며 소년들을 환하게 비추었다.
시작부터 처음 보는 퀄리티의 불쇼, 스트리밍을 보던 시청자들은 두괄식으로 극락에 가고 말았다.
[미친ㅋ랗앟잏잏아아ㅏㅏ] [왘ㅋㅋㅋ라ㅏㅏ아ㅏㅋㅋㅋㅋㅋ] [미친거 아내ㅑ?미친거 아냥?미친거 아니야?] [어ㅘㅋ와 세상에;;;;;] [아니 뭐야이겈ㅋㅋㅋㅋㅋ미쳤나바] [동작맞는거봐ㅠㅠㅠㅠ] [주먹꽝하고 동시에 조명 불 쫘라라락 들어오는거 진짜 ㅁㅊ] [하ㅏㅏ 뭔가 게임같은데 걍 졸라멋지다ㅠㅠㅠ] [군자랑 유찬이 눈빛봐;;;;] [하얀의상이랑 새빨간 불꽃이랑 너무 진짜 너무임] [애들 갈수록 잘생겨지는건 내 주관이 개입된것인가요 아니면 팩트인건가요ㅠㅠㅠㅠ] [여러분들 퍼포말고 음악도 들어주세요ㅠㅠㅠ사운드도 진심극락임] [이게 자본의 힘인가?? 이게 윌리그린인가??] [진짜 칠뽕 제대로 찬다ㅠㅠㅠㅠ심지어 무대는 경복궁이야]환하게 밝혀진 무대 위에서 소년들은 본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All Chemi>는 그 동안 7IN이 만들어 온 모든 케미스트리에 대한 곡이다. ‘케미’라는 주제에 걸맞게, 무대 위의 멤버들은 완벽한 호흡을 선보이며 퍼포먼스를 이끌어 나갔다.
후렴구 직전의 아크로바틱 파트, 멤버들의 서포트를 받아 군자 – 태웅 – 현재가 공중회전을 선보이는 순간 팬들은 다시 한번 극락에 갔다.
그러나 그 짜릿함이 가시기도 전에, 악기를 오히려 배제하고 미니멀한 베이스라인으로만 구성된 후렴 파트가 흘러나왔다. ‘윌리 그린’ 스칼렛 홀이 영혼을 갈아 만든 후렴구, 라이브를 지켜보던 해외 팬들의 심장도 두근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소년들이 준비한 킬링 파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첫 후렴이 끝난 직후, 일곱 소년들의 손에는 어느새 쥐불놀이를 위한 도구가 들려져 있었다.
화르르르—···.
발화점이 낮은 화학 약품은 약간의 마찰로도 쉽게 타올랐다. LED 조명을 이용한 쥐불놀이를 할 수도 있었겠지만 소년들은 실제 불꽃을 다루는 방향을 선택했다. 위험도는 올라갔으나, 진짜 불꽃만이 주는 임팩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쥐불놀이 깡통은 현란한 빛의 궤적을 만들며 타올랐다. 깡통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빛의 티끌이 머리 위로 날릴 때마다 소년들의 이목구비가 선명하게 보였다.
마침 시간도 딱 석양이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을 무렵. 쥐불놀이를 하는 소년들의 모습은, 마치 하늘의 노을을 퍼 담아 그것과 함께 춤을 추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휘리릭, 화르르륵—.
현란한 회전, 그리고 다시 발화.
쥐불놀이가 격해질수록 팬들의 입은 떡 벌어졌다. 퍼포먼스의 수준도 수준이었으나, 가장 놀라운 것은 그 난무하는 화염 속에서도 웃고 있는 멤버들의 모습이었다.
경복궁 한가운데에서 위험천만한 무대를 펼치며 소년들은 세상에서 가장 즐거워 보였다. 무대에 완벽하게 집중한 듯, 겁에 질린 표정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환하게 웃는 소년들을 보니 팬들도 그저 무대를 즐길 수 있게 됐다.
[ㅠㅠㅠㅠ애들 넘 예쁘게 웃는거 아니냐고ㅠㅠㅠㅠ] [진짜 화르르를르르 불돌리면서 저렇게 웃는건 반칙이지] [이번에 진짜 독하게 준비한듯] [아니 인간문화재도 저렇겐 못하겠다;;;] [저정도면 그냥 우리애들이 쥐불놀이 인간문화재 해야되는거 아님?] [ㅋㅋㅋㅋㅋㅎㅏ근데 너무 멋지다ㅠㅠㅠㅠ] [나 쥐불놀이가 이렇게 개멋진건지 몰랐음,,, 내가 보기에도 이런데 외국인들은 어떨까] [진짜 미친듯이 뽕차오른다 뽕찬다는 말로 부족함 이건] [나새끼 인생에서 제일 잘한게 칠린 팬질 시작한것임] [첨엔 뭐가 막 불타길래 다칠까바 걱정했는데 내가 우리 칠린이들을 너무 과소평가했던 거였구요] [후 불돌릴때 군자랑 시우 턱선 봐;;] [군자는 어뜨케 맨날 흑발인데 스타일링을 이렇게 디테일하게 잘하지ㅠㅠㅠ약간 이마 보이게 깐거 불꽃이랑 진짜 개잘어울림] [하 그냥 미친무대다 이건 또 얼마나 복습해야하는거야ㅠㅠ] [계속 돌려줘··· 음악 끝나지말아줘제발]현란했던 쥐불놀이 파트는 마무리 방식 역시 짜릿했다. 베이스라인이 바뀌며 2절의 두 번째 벌스가 끝나자, 소년들은 일제히 쥐불놀이 소품을 바닥에 찍으며 깡통 속의 불을 꺼 버렸다.
그와 동시에, 그 불이 옮겨붙듯 바닥의 두 번째 조명이 점등했다.
천천히 해가 떨어지고 있었기에 소년들의 얼굴도 어렴풋해 보이던 시점. 또 한번 밝아진 무대 덕분에 아름다운 이목구비가 중계 카메라를 가득 채웠다.
[하아ㅏㅏ 구성 미쳤어] [진짜 조명 점등방식 돌은것같다;;;] [안그래도 쫌 어두워서 섭섭했는데 이런 구성이ㅠㅠㅠㅠㅠ] [좋은건 더 환하게 보라고 배려해주느거 보소] [ㅋㅋㅋㅋㅋ하 이것도 애들이 다 구성한 무대겠지ㅠㅠ] [이런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냐고 진짜] [나 벌써 두번째 타이틀곡도 기대됨] [난 그냥 이무대가 안 끝났음 좋겠다ㅠㅠㅠ]환한 조명과 함께한 프리코러스, 후엔 두 번째 후렴이 이어졌다. 키치하고 간단한 멜로디 덕에 벌써 몇몇 팬들은 후렴을 따라 부르기도 했다.
후렴 뒤에 이어지는 브릿지 파트, 대형을 맞춰 선 소년들이 오른손으로 일제히 핑거스냅 동작을 취했고.
따악—.
청량한 소리와 함께 모든 조명이 일순 소등됐다.
남은 것은 오로지 소년들의 머리 위에 떨어진 핀 조명 뿐. 사방이 어두웠기에 오히려 핀 조명이 소년들을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다.
하얀 핀 조명을 받으며, 브릿지 파트를 맡은 군자가 입을 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