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295)
#295
초상화
브릿지 파트는 온전히 군자의 독무대로 시작했다. 경복궁 돌바닥을 밟고 일어서며, 군자는 태어나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해소감, 해방감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거대했다. 감동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복잡했다.
왕조는 끝났으며 어전은 비어 있었으나, 그럼에도 군자는 경복궁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어쩐지, 그 목소리는 시공을 건너뛰어 삼백 년 전의 세상에 닿을 것만 같았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언제나 군자에게 치유와 회복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 특별한 무언가를 느낀 적은 없었다. 감격에 목소리 끝이 떨려 왔다. 당장이라도 그 시간에 손을 뻗어, 웅크려 있던 군자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싶었다.
떨리는 목소리, 간절한 손짓은 카메라를 통해 팬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군자의 속내를 알 길이 없는 팬들이었으나, 그럼에도 지금 군자가 얼마나 몰입했는지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ㅠㅠㅠ군자목소리떨리는거봐ㅠㅠㅠㅠ] [뭔가 평소보다 엄청 아련하지 않움?] [진짜,,눈빛부터 좀 다른느낌임] [오랜만에 완전체로 무대해서 감동인가바ㅠㅠㅠㅠ] [보는내가다울컥하게되네] [ㄴㄴ군자 드디어 조선건물에서 노래부를수 있어서 감동받은거임 조선에서 온 애자나] [ㅋㅋㅋㅋ은근 설득력있넼ㅋㅋㅋ] [목소리가 진짜 너무너무좋다ㅠㅠㅠ] [올림픽기간동안 확 쉬어서 더 미성 된것 같음] [목소리 좀 떨려서 라이브 티 나는거 너무좋네진짜] [ㅠㅠㅠ노래안끝났음좋겠어ㅠㅠㅠㅠ]팬들의 마음처럼 군자 역시 노래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까지나 이 곳에 서서 이렇게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그 목소리가 결국 과거에 가 닿을 때까지.
그러나 이제 군자에겐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즐거운 지금이 있었다. 떨리는 군자의 목소리를 뒷받침하듯, 유찬과 현재의 보컬이 시나브로 합류하며 화음을 만들었다. 군자의 솔로로 청아하게 시작한 브릿지는, 깔끔하게 정돈된 화음으로 웅장하게 전개되어 나갔다.
자신도 모르게 양 옆 소년들의 얼굴을 보며 미소 지은 군자였다. 소년들 역시 군자에게 미소를 보였다. 사전에 약속된 퍼포먼스는 아니었으나 소년들의 동작은 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이제는 불행했던 과거를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가장 과거와 가까운 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 순간에도, 내 옆에는 소중한 친구들이 있지 않은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연예계라지만 군자는 이 친구들과 평생을 함께할 생각이었다.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즐거운데, 어찌 이 친구들을 져버릴 수 있단 마인가.
아름다운 화음으로 구성된 브릿지가 끝난 뒤, 첫 타이틀 곡 [All Chemi>는 종장으로 치달았다. 다시 한번 환해진 조명 속에서, 소년들은 중력의 영향에서 자유로워진 듯 사뿐사뿐한 발걸음으로 무대 위를 누볐다.
마지막 순간엔 모든 소년들이 군자를 중심으로 한 점에 모여들었다. 어느새 군자는 활과 화살을 든 상태였으며, 소년들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품에서 꺼낸 불꽃 촉매를 이용하여, 소년들은 손 위에 작은 불덩어리를 만들었다.
화르륵—···.
그 불꽃이 군자가 든 활끝에 옮겨붙었다. 평범한 화살은 곧 불화살이 되었으며, 군자는 망설임 없이 시위를 당겨 먼 곳의 무대장치를 겨눴다. 올림픽 무대에서 수없이 보았던 그 모습이었다.
파아아앙—.
마지막 킥 드럼이 떨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군자가 시위를 놓았다.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하게 날아간 불화살은, 무대 장치 정중앙을 완벽하게 관통하며 주변을 둘러싼 화학 소재들을 태워 버렸다.
푸른 불꽃을 내며 사라져 버린 소재들, 그 중앙엔 커다랗고 새하얀 백지가 있었다.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았던 백지에 열이 가해지자, 특수 안료로 그린 일곱 소년들의 초상화가 스르르 떠올랐다.
두 번째 타이틀곡의 제목은 [Portrait>, 즉 ‘초상화’였다.
* * *
솔라시스템 기획팀, 그리고 스칼렛 홀 프로듀싱 사단과의 타이틀 곡 회의 중.
군자가 낸 아이디어는 ‘초상화’였다.
앨범의 대주제는 ‘상호작용’이다. [All Chemi>는 그에 충실하게 디자인 된 트랙이긴 하지만, 커다란 단체와 단체 간의 상호작용을 그렸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조금 더 작고 섬세한 상호작용을 주제로 곡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싶은 군자였다.
“상호작용이라···.”
군자는 자신이 상호작용하고 싶은 상대들부터 먼저 생각해 보았다.
가장 먼저 부모님이 떠올랐다.
비록 매일 직접 문안인사를 드리진 못하지만, 아침마다 안부 전화를 걸어 약간의 상호작용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이제는 부모님이 먼저 ‘전화 좀 그만하라’고 말씀하실 정도였으니, 부모님과의 상호작용은 충분하다고 말하고 될 터였다.
그 다음으로는 동료들이었다. 동료들이야 뭐, 매일 같은 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니 모든 부분에서 상호작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테다. 덕분에 이제는 종종 형제보다 서로를 더 잘 아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친구 사이가 되었다.
그러나 팬들은 어떠한가.
팬들을 생각하면 언제나 고마웠으나 동시에 미안하고 아쉬운 군자였다. 팀의 인지도가 올라가고 덩치가 커질 때마다 그 아쉬움은 배가됐다.
마음같아서는 한 명 한 명, 모든 팬들을 식구처럼 챙기고 싶었다. 그러나 아이돌 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 갔다.
팬싸인회 같은 행사에서 만나뵙는 분들에게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으나, 아마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팬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내게 시간이 무한정으로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팬 분들을 차례로 만나 가며, 느긋하게 초상화라도 그려 드릴 수 있다면 또 얼마나 좋겠는가 말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번뜩이는 발상이 뇌리를 스쳤다.
그렇다면 초상화를 그리는 순간을 곡으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물리적으로 모든 팬분들을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노래를 통한다면 모두를 동시에 만날 수 있다. 오롯이 둘만의 공간에서, 여유롭게 소통하며 팬 분들의 모습을 백지에 담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곡으로 옮기는 거다.
비록 직접 만나뵙는 것만큼의 효과는 없겠으나, 적어도 군자와 소년들의 마음은 분명히 전달될 터.
군자의 발상은 회의실의 모두를 감복케 했다. 좋은 키워드가 떠오르니 프로듀서진들도 작업 속도를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작곡된 [Portrait>는 두 번째 앨범의 완벽한 타이틀곡이 되어 주었다.
전체적으로 쫀쫀하고 에너제틱한 구성의 [All Chemi>와 다르게, [Portrait>은 동양풍의 악기들을 베이스로 여유롭고 스무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번에도 군자가 직접 연주한 거문고 샘플은 시작부터 시청자들의 귀를 확 사로잡았다.
[갓ㅅㅅㅅ양ㅇㅇㅇ풍ㅇㅇㅇㅇㅇ] [하ㅏㅏㅏ이거지ㅠㅠㅠㅠ] [ㅁㅈ동양풍이 진짜 칠린 근본인데ㅠㅠㅠ넘좋다진짜] [내가 모래써!!! 두번째 타이틀곡 초상화컨셉같다고했지!!!!!!] [라방에서 초상화 이벤트 했을대부터 낌새가 있었다구] [헉 맞네;;; 생각해보니까 그때 뜬금 서로 초상화 그리기 했었지] [칠린 라방은 그냥 뇌비우고 보면 안돼··· 그냥 방탈출게임같은거임.,,] [??? : 그냥 심심해서 그림 그린 건데요?] [ㅋㅋㅋㅋㅋㅋ앜ㅋㅋㅋㅋㅋ] [군자라면 그랬을수도 있겠다ㅋㅋㅋㅋ] [하 근데 여유로운 거문고 넘좋다ㅠㅠㅠ] [애들 착장이랑도 넘 찰떡이야] [ㅇㅈ 악세사리에서 은은하게 자개빛 나는거 넘 예쁨] [블랙착장 나풀나풀하는거 멋지다ㅠㅠㅠ촐싹맞지도 않고 상복같지도 않고] [칠린은 코디병크도 없어서 넘좋으뮤ㅠㅋㅋㅋ] [All Chemi>보다 느려진 BPM 위에서 소년들은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All Chemi>가 에너지를 보여주는 선곡이었다면, [Portrait>에서는 힘을 빼고 부드럽게 몸을 사용하며 손끝으로 곡선을 만들어 나갔다.붓끝처럼 모은 손가락으로 유려한 곡선을 그려 나가니, 그 모습은 마치 누군가의 얼굴 선을 훑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와아아···.”
모니터 앞에서 무대를 지켜보던 팬들은 채팅 치는 것도 잊고 작은 탄성을 흘렸다.
춤을 잘 추는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배경과 어울리는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좋은 건 멤버들의 몸짓과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진다는 부분이었다.
노래 속 화자는 사랑하는 대상을 바라보며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다. 가능하다면 하루종일이라도 그 사람을 위해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멤버들의 눈은 카메라 너머의 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듯, 애정 가득한 눈빛이었다.
팬들은 자연스럽게 노래 안에 자신을 대입했다. 소년들의 앞에 가만히 앉아, 그들이 그려 주는 초상화를 기다리는 스스로를 상상했다.
[노래머야진짜? 가사 무슨일임???] [30초만에 과몰입해버림;;;;] [ㅎㅏ 그래 나 초상화 좋아했네] [내일 우리동네 하루필름 부셔버리고 하루초상화 개업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자 내 최애가 그려주는 초상화 받으면 기분 어떨까··· 심장 터질것같움] [군자가 그런 이벤트 한번 해줬음 좋겠다ㅠㅠ] [안돼 나 최애 권태웅이란말임 얘 그림 진짜 개초딩이야] [ㅋㅋㅋㅋㅋ뭔가 유니크한데 그것돜ㅋㅋㅋㅋㅋㅋ] [근데 노래는 진짜미쳣다] [인혁이랑 태웅이도 춤선 진짜 많이 부드러워진듯] [저 커다란 애들이 어떻게 저렇게 나풀나풀 사뿐사뿐 움직이는걸까?] [칠린 + 동양풍 + 아련 진짜 이 조합 어떻게 안 사랑함?] [온세상이 다 알아야 한다고 떠들고 다녔는데ㅠㅠㅠ이제 진짜 온세상이 다 알아버림,,,] [맞네ㅠㅠㅠ이제 경복궁에서 공연하고 컴백라이브 전세계사람들이 다보게됐다구]두 번째 곡에 접어들자, 어느새 군자도 이 곳이 경복궁이라는 사실도 잊은 채 공연에 빠져들었다.
이제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군자였다. 회전 동작을 할 때마다, 복잡한 동선이 맞물릴 때마다 소년들과 군자의 눈이 마주쳤다.
그럴 때마다 멤버들은 서로를 보며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면서도 동작에는 한 치의 어긋남이 없었다.
이토록 믿음직한 친구들을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위험한 퍼포먼스를 펼쳐야 하는 순간에도 군자는 자신의 몸을 친구들에게 완전히 맡길 수 있었다.
[All Chemi>의 하이라이트가 쥐불놀이였다면, [Portrait>의 하이라이트는 멤버들이 만든 계단을 타고 올라 노래를 부르는 현재의 브릿지 파트였다.가장 몸무게가 가벼운 현재가 멤버들을 타고 올라, 위태로운 와중에도 중심을 잡으며 고음을 시원하게 뽑아 냈다. 하늘을 향해 손을 뻗으며 노래하는 현재의 모습은, 마치 동양풍으로 만들어진 D사 애니메이션의 남자 주인공을 보는 듯 했다.
사뿐한 점프로 지상에 착지한 현재가 다시 대열에 합류하여 공연을 이어 나갔다. 군자를 중심으로 한 후렴에 보컬 멤버들이 은은한 화음을 얹었다. [Portrait>의 분위기에 걸맞는 서정적인 마무리였다.
극락 같은 컴백 공연은 그렇게 끝났지만, 팬들에게는 아직 즐길거리가 더 남아 있었다. 무대가 끝남과 동시에, 솔라시스템 공식 채널에 풀버젼 뮤직비디오가 함께 공개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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