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311)
311화 구원
“사실 나는 조선에서 왔다.”
군자가 조심스레 서두를 꺼냈다. 사실 첫 고백은 아니었다. 이제 막 현세로 날아와서 [아육시>에 참가했을 시점에는 꽤나 여러 번 이 사실을 이야기했었더랬다.
그러나 친구들의 반응은 언제나 비슷했다. 그저 우스운 장난질 쯤으로 여기거나, 고된 연습으로 잠시 정신이 이상해진 것으로 생각하고 말았다. 그렇기에 군자 역시 더 이상 고백을 이어 나갈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은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다짜고짜 본론을 꺼냈음에도 친구들은 꽤나 진지한 표정으로 군자의 말을 경청하는 중이었다.
“오늘은 헛소리 한다며 질타하지 않는 게냐?”
“질타를 왜 해여, 고민 들어주기로 한 건 우린뎅.”
“계속 얘기해 봐. 헛소리라도 들을 준비 돼 있으니까.”
“그리고 사실, 너랑 지내 보니까 나도 헷갈리더라고. 얘가 진짜 지금까지 내내 컨셉질을 하고 있는 건가, 아니면 진짜 조선에서 온 건가···.”
“미, 믿어 주는 것이냐?”
“뭐, 그렇다고 진짜 조선에서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여! 그건 진짜 과학적으로 말이 안 되잖음여.”
“그거야 그렇긴 하다만···.”
“···하, 하지만 분명 군자 형이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맞아. 세상엔 과학과 상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도 많으니까.”
“그래. 난 군자 너가 콩으로 메주를 담근다고 해도 믿을 거라고.”
“태웅아, 근데 메주는 원래 콩으로···.”
“아이, 좀 맥락을 파악하라고 맥락을. 너 T야?”
군자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신뢰로 가득했다. 몇 년 전, 이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이야기만 꺼내도 정신병자 취급에 조금은 풀이 죽기도 한 군자였다. 그러나 이제는 용기를 냈다. 적어도 이 친구들에겐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금 긴 이야기인데, 괜찮겠느냐.”
그렇게, 군자는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이 기억하는 유년 시절의 기억들, 문원 유씨 가문에 얽힌 비통한 저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군자를 앞세웠던 잔혹한 숙부 유형원, 그 와중에 가무(歌舞)를 사랑해 버린 군자.
기루에 올라 가야금을 배우고, 저잣거리에서 처음으로 줄을 탔던 이야기가 나올 땐 모두가 작은 탄성을 질렀다. 그러다가 숙부 유형원에게 붙잡혀 결국 뒤주에 갇힌 순간엔 모두가 작은 들숨을 헉, 하고 들이쉬었다.
소년들은 작은 소리조차 내지 않으며 군자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모두 지어낸 이야기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디테일이 살아 숨쉬는 서사시였다. 지금까지 지켜보아 온 바, 군자는 이 정도 스케일의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아니, 들을수록 점점 빠져드는데?”
“···마, 만약 다 사실이라면··· 너무 슬픈 이야기예요···.”
“인혁이 형, 휴지 좀 갖다 줄까요?”
“으응···.”
“고만 좀 울어요, 고만 좀. 사람들이 근육즈 덩치좀 하라잖아.”
“아하하핫, 웅이도 눈이 빨개져 있는데~”
“아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여. 네? 뒤주에 갇힌 것까진 알겠는데, 도대체 300년 전 뒤주에 갇혀 있던 형아가 어떻게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거냐구여.”
“그러게. 대체 어떻게··· 헉, 서, 설마 귀신?!?”
모두는 태웅의 추론을 살포시 무시하며 다시금 군자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 때부터 군자는 상태창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문의 저주였으나 자신에겐 친구였던 존재, 불가사의한 힘으로 자신을 300년 전에서 지금으로 데리고 와 준 은인.
이야기를 듣는 내내 소년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 아무리 거짓말 안 하는 군자라고 해도, 이 말만큼은 쉬이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그, 반짝반짝 형광 홀로그램이 형아를 여기로 데려다 줬다구여?”
“그래, 믿을 수 없겠지만 말이다.”
“무슨 웹소설 도입부 같은 설정이네. 군자 너, 웹소설을 너무 많이 본 거 아니냐?”
“권태웅 넌 마블 영화를 그렇게 좋아하면서 왜 상태창은 못 믿는 건데?”
“그, 그런가? 설득력이 있는데?”
“아하하핫, 군자가 정말 조선 사람이라면 못 믿을 말도 아니지~”
“···그, 그건 그래요··· 군자 형을 여기로 데려올 힘이 필요했을 테니깐···.”
“무튼, 요약하자면 이거잖아. 군자 너는 정말로 300년 전 조선에서 왔다. 그런데 뒤주에 가둬 두고 온 너의 본체가 걱정된다. 그 본체는 지금쯤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본인만 현세에서 꿀빠는 거 아닌지, 마음이 불편하다. 맞아?”
태웅의 정리에 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소년들은 함께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걱정스런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볼 뿐이었다.
“뭐··· 고민이 뭔지는 알겠는데 말이다, 쩝···.”
“역시 믿어 주지 않는 것이냐.”
“아냐. 100% 다 믿는 건 아니지만, 또 100% 헛소리라고 생각하지도 않아. 솔직히 말한다면 믿고 싶은 쪽에 더 가깝긴 한데.”
“근데 믿는다구 해도 우리가 형아를 도와줄 방법이 없자나여···.”
“맞아, 바로 그거야. 너무 마음아픈 얘기지만, 과거의 너를 도우려면 300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잖아. 근데 우리는 시간여행을 하는 방법을 모른단 말이지.”
당연한 이야기였다. 사실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를 기대한 적도 없었다. 현세로 온 것도 사고에 가까운 일이었거늘, 대체 어떻게 300년의 시간을 다시 거슬러 올라간단 말인가.
“이해한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 이렇게 내 고민을 들어준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고맙단다.”
“들어 주는 거야 얼마든 할 수 있는데··· 너도 답답하겠다, 진짜.”
“어쩌겠느냐. 그러나 본디 해결할 수 없는 고민도 있는 법이지.”
“잘 살고 있을 거예여··· 그 숙부 얘기 들어 보니까 쉽진 않겠지만여.”
“···치, 친구라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게 말이다 유찬아. 과거의 내게도 너희 같은 좋은 친구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아, 이럴때 닥터 스트레인지 형님이 딱! 나타나서 타임 스톤으로 시간여행을 따아악?!!”
“에휴, 넌 이 순간에도 마블 타령이냐.”
“몰라 임마. 마블 붐은 다시 온다!”
바로 그 때, 군자의 명치에서 무언가가 빛나기 시작했다.
“뭐야, 군자 너 슴골에 폰 넣어 놨냐?”
“그, 그 무슨 망측한···.”
“근데 왜 가슴에서 빛이 나는··· 어?”
빛은 점점 커져 가며 소년들을 휘감기 시작했다. 소년들은 당황했으나 군자에게는 꽤나 익숙한 빛깔이었다.
“창이야, 너로구나!”
오직 군자만이 이 상서로운 빛의 정체를 깨달았다. 뒤주에서 처음으로 이 빛을 마주했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온 몸이 깃털로 변한 듯 두둥실 떠올랐고, 빛으로 가득한 시야는 차츰 흐릿해졌다.
“타, 타임 스톤이다! 유군자가 타임 스톤을 썼어!”
“이, 이거 뭐예여!? 군자 형아, 이게 갑자기 어떻게 된?.”
“시간여행이야, 현재야! 지금부터 우리는 과거로 갈 거라고오?!!”
“에에?!?”
“흐어어어어?···.”
* * *
다시 정신을 차린 순간, 소년들은 그들이 어떤 세계로 온 것인지 대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노오란 흙먼지 너머로 보이는 세계는, 사극에서나 보아 왔던 조선 길거리의 모습 그 자체였다.
“민속촌인가?”
두 눈을 비비며 현수가 중얼거렸으나, 민속촌 같은 가짜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군자는 알 수 있었다. 이 곳은 군자가 시간여행을 떠나기 직전 머물렀던 300년 전의 조선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군자와 그의 여섯 동료들이 모두 한 번에 조선으로 건너온 거다. 심지어 동물이 그려진 수면잠옷 차림으로!
군자를 제외한 동료들은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뭐야 이거, 뭐 어떻게 된 건데?”
“···저, 정말 시, 시간여행을 한 건가 봐요···.”
“아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래, 말도 안 되는데··· 이건 그렇게밖엔 설명할 수 없잖냐···.”
“크크, 유군자가 타임스톤 쓴 게 맞다니깐! 세상에, 우리 숙소가 사실 생츄어리였다니!”
“일단은 몸을 숨기자.”
“형아 몸 숨기는 게 가장 일일 것 같은데여.”
“아, 미안.”
“일단 눈물부터 좀 어떻게 해 봐여. 아니 무슨 시간여행을 하면서도 울었어 이 사람은.”
“슬픈 이야기를 들었잖아.”
“자아, 자아, 정리 좀 해 보자. 대체 뭐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여기가 진짜 조선이라는 거잖아? 군자 말대로 시간여행이라는 건 정말 실존하는 거였고···.”
그러나 소년들이 머릿속을 정리하기도 전에, 멀리서부터 흙먼지와 함께 한 분대의 병졸들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
그 선두엔 군자의 눈에도 꽤나 익숙한 충청도 출신 하인의 모습도 보였다.
“저기, 저 쪽입니다요!”
“괴이한 복장을 착용한 칠인조가 이 거리에 나타났음이 틀림없으렸다!”
“물론입죠, 지가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께요!”
코 옆에 왕점을 단 충청도 하인의 두 눈이 부리부리하게 빛났다. 새삼 느끼지만, 저 자는 뭔가를 두 눈으로 똑똑히 보는 것에 정말로 능하구나!
“도, 도망쳐야 한다!”
황급히 동료들을 추슬러 줄행랑치려 한 군자였으나, 안타깝게도 병졸들 중에는 말을 타고 있는 자들도 있었다. 군자와 소년들이 아무리 재빨리 달린다고 해도 말보다 빨리 달릴 수는 없었다.
“수상쩍은 자들이여, 이 오라를 받으라!”
“우와, 이 대사를 실제로 듣는다고?”
오랏줄에 묶여 관아로 끌려 가면서도 소년들은 도통 현실감각을 찾을 수 없었다. 차갑고 축축한 나무 감옥에 투옥된 뒤에야, 슬슬 무언가 큰 일이 생겼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우리 지금 투옥된 거임여?”
“조선에 떨어지자마자?”
“시간여행만으로도 황당한데, 감옥에 갇히기까지 했다고?”
“아니 군자야, 이거 뭐 어떻게 된 거냐. 설명 좀 해 주라.”
그러나 군자 역시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상태창은 언제나 군자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움직였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곳이 군자가 알던 300년 전의 조선이라는 사실이었다.
“내 의도가 아니었다. 미안하구나.”
“아니 네가 한 게 아니라면 미안할 일도 아닌데··· 하, 이거 뭐 어떡하지.”
“내가 아는 유일한 사실은, 이 곳이 내가 알던 300년 전의 조선이라는 것이다.”
“···우, 우리 돌아갈 수는 있는 거예요? 우리가 살던 세계로···.”
유찬의 질문이 끝나자 마자 군자의 눈앞에 새로운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23 : 59 : 59]숫자가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홀로그램은 제한시간을 뜻하는 듯 했다. 그제야 군자는 오랜 친구의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창이가 우리를 여기로 보내 준 것이다.”
“어?”
“오직 딱 하루만. 아마도 하루가 지나면 우리는 다시 우리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될 테다.”
확신에 찬 군자의 말에 소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딱 하루만 300년 전 조선에 머물 수 있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소년들은 이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 세계의 군자를 구하러 가자. 어때?”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