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idol is a former scholar RAW novel - Chapter (313)
313화 해방
“내 분명 뉘우치라 했거늘.”
숙부 유형원의 표정에선 분노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어찌 뒤주에서 나와 있느냐.”
“수, 숙부님···.”
“뉘우침은 끝난 것이더냐?”
마치 야산에서 만난 사냥감을 겨냥하듯 한없이 건조한 태도, 두 군자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심기가 뒤틀린다면 망설임 없이 활시위를 놓을 인간이다.
“···.”
제 아무리 날랜 군자라 해도 자신을 향해 겨눠진 화살을 피할 재간은 없었다. 그것은 어린 군자 역시 마찬가지일 터. 상황은 두 군자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한껏 숨을 죽인 채로, 큰 군자가 작은 군자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겁먹을 것 없다.”
뾰족한 재간은 없었으나, 그럼에도 군자는 어린 군자의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붙잡은 손을 통해 의지가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용기를 가져야 한다.
이대로 숙부에게 굴복한다면 어찌저찌 살아갈 수는 있을 터, 그러나 죽느니만 못한 인생도 있는 법이지 않느냐.
“···죽는다···.”
“?”
“뒤주에 갇혀서 죽든, 화살에 맞아서 죽든··· 어차피 같은 죽음 아닌가.”
입술을 앙다문 어린 군자가 제 숙부를 향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 어쩐지, 군자는 그가 어떤 결심을 한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쏘십시오, 숙부님.”
“!”
“하지만 숙부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어린 군자는 두 팔을 양쪽으로 쭉 벌린 채 제 숙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으나 어린 군자는 물러설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영혼이 같은 존재였기 때문일까, 어린 군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군자는 다 알 수 있었다.
어린 군자 역시 유형원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았다. 숙부 유형원에게 군자는 제 비원을 이루어 줄 열쇠 같은 존재였다. 죽을 때까지 몰아붙일지언정, 절대로 목숨을 거둘 리는 없을 터. 그 믿음이 어린 군자를 한 발짝 더 나아가게 했다.
“숙부님.”
“거기 멈춰 서거라.”
유형원의 목소리에는 노기가 서려 있었으나 어린 군자의 결심엔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 동안은 단 한 번도 숙부에게 대든 적 없었다. 그러나 뒤주에 갇히고, 끝내 숙부의 활시위 끝에 선 지금 이 순간에도 고분고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저는 가무가 좋습니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것이 즐겁다는 말입니다.”
“!”
다시 한번, 유형원의 두 눈에 핏발이 불거졌다. 활시위를 잡은 오른팔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할 말을 하겠다는 듯, 어린 군자가 다시 한번 앙다문 입술을 열었다.
“선대의 훌륭한 선비들도 모두 가무를 사랑했다고 배웠습니다. 무릇 금기서화(琴棋書畵)의 금이란···.”
“네가 저잣거리의 천박한 것들과 놀아나더니, 주둥이 놀리는 솜씨만 늘었나 보구나.”
“숙부님, 제발 제 말을 들어 주십시오! 제 생각이 틀렸다고 해도 좋습니다. 허나 이 병증, 상태창(常太瘡)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무가 필요합니다. 이것만큼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것이 네 유언이더냐.”
“믿어 주십시오. 춤과 노래만이 제가 원하는 것이며, 더불어 이 가문의 저주를 끊을 방법입니다!”
어린 군자의 목소리는 절절했지만 유형원은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한없이 냉철한 표정으로, 유형원이 어린 군자의 목덜미에 시위를 겨누었다.
“잘 알았다.”
“!”
“그래, 네 말이 맞다. 모든 것이 내 뜻대로일 수는 없겠지.”
“숙부님!”
“올바른 선비의 길을 걸을 수 없다면, 차라리 내 손에 죽거라.”
이제는 정말로 저질러 버리겠다는 듯, 활시위를 잡은 손이 더욱 뒤로 멀어졌다. 여차하면 몸이라도 던져서 화살을 받아내야 할 터. 허나 그 일촉즉발의 순간, 어린 군자는 화살을 피하는 대신 입을 열어 노래를 시작했다.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고운 소리가 공기를 타고 숙부의 귓전에 닿았다. 노래라면 치를 떠는 유형원조차도 일순 멈칫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실로 아름다운 노랫소리였다.
“···이 놈이, 지금 무슨···.”
어린 군자가 선택한 마지막 저항은 설득도, 반격도 아닌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았기에, 처절한 심정으로 부르기 시작한 마지막 노래.
그러나 그 부드러운 노랫소리가 툇마루까지 울려퍼짐과 동시에, 놀랍게도 유형원의 오른쪽 어깨를 뒤덮고 있던 병증에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우웅···.
“?!?”
가장 먼저 변화를 감지한 것은 유형원이었으나 현세의 군자 역시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문득 처음 노래를 불렀던 순간이 떠올랐다. 분명 피부병 같아 보였던 상태창이, 노랫소리에 반응하여 형광의 문신으로 모습을 바꿔 갔었더랬지. 유형원에게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허나 그 와중에도 어린 군자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제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화살촉 앞에서도,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오롯이 노래에만 집중했다. 겁에 질린 목소리는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으나, 그 떨림은 아름다운 음색에 처연함을 더해 줄 뿐이었다.
“내가 님 찾아 떠났을 때 님은 나를 찾아왔네.”
···우웅, 우우웅···.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오른팔뚝의 변화도 계속됐다. 좋다는 의원은 다 만나 보았으며 팔도의 약재란 약재는 다 먹어 보았으나 차도를 보지 못했던 창병에 반응이 오자, 제 아무리 정신 나간 유형원이라고 해도 두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이건···.”
그 상서로운 변화에 정신이 팔린 그 순간을, 현세의 군자는 놓치지 않았다.
파바밧?.
순간 거리를 좁힌 군자가 숙부의 손에 들려 있던 각궁을 낚아챘다.
“?!?”
“숙부님, 궁술은 집중력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네, 네놈은···!?”
순식간에 무기를 잃은 유형원은 팔을 허우적대며 저항했으나, 군자는 손목을 가볍게 잡으며 발목을 걸어 그를 제압해 버렸다.
“크으윽?!!”
쿠당탕?.
“형아아?!!”
“여기 맞아?”
“맞다니까? 군자 냄새가 났어!”
“냄새를 알아? 이 자식 진짜 위험한 놈이네 이거.”
“아하하핫, 군자 집 진짜 좋다~”
유형원이 고꾸라짐과 동시에 사립문이 열리며 동물잠옷 패거리가 들이닥쳤다. 뿔뿔이 흩어졌던 소년들이 모두 모인 것이다.
온 마을을 구르고 달리고 허우적대느라 꼴은 말이 아니었으나, 군자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자마자 가슴부터 벅차올랐다. 이 친구들 덕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다. 영원히 해결하지 못할 것 같았던 고민을 풀 수 있었단 말이다.
그러나 가슴 벅찬 군자와 달리, 친우들은 어째 어린 군자에 더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헉, 이 분이 군자 형아 본체예여!?”
“와 씨, 미모 봐.”
“아육시2 나오면 바로 1위 데뷔 각인데?”
“킁킁, 오오··· 이 분한테서도 군자 냄새가 나!”
“지현수 미친놈아, 변태 짓 하지 말라고.”
“아하하하핫, 조선이잖아~ 예의를 지키자구~”
갑자기 몰려든 동물잠옷 패거리에 어린 군자는 커다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어린 군자 역시 그들이 자신의 편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한편 아까부터 몸부림을 치던 유형원은, 이제 속박에서 풀려나기를 포기한 듯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중년 남성의 힘과 순발력으로는 군자를 극복해 낼 수 없었으며, 설상가상 문원 유씨 가문의 마지막 문지기였던 검술 스승 위호선마저 소년들의 뒤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발칙한 것들, 반란이라도 일으킬 셈이더냐.”
치를 떠는 유형원의 목소리에, 이번엔 현세의 군자가 대답했다.
“아니요. 우리는 그저 자유롭게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렇게 대답한 뒤, 현세의 군자가 다시 어린 군자를 돌아보았다.
“노래가 아직 남지 않았느냐.”
“예, 형님.”
“이번엔 함께 불러 보자꾸나.”
어린 군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의 뒷부분을 마저 부르기 시작했다. 이번엔 현세의 군자도 그 음율의 아래에 자신의 목소리를 깔며 화음을 만들어 냈다.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 날 밤 꿈에는.”
“같이 떠나 오가는 길에서 만나기를?.”
이번에도 유형원의 오른팔이 노랫소리에 반응했다. 그러나 흠칫 놀란 것은 유형원 뿐만이 아니었다. 어린 군자 역시 이 중창에 적잖이 놀란 듯 흥분한 표정이었다.
“형님, 이, 이것은···.”
“그래, 아마 처음 겪은 조화일 게다.”
“예! 대체 무엇입니까? 서로 다른 두 개의 음이, 마치 하나의 가닥에서 나온 듯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것이 실로 황홀한 기분이었습니다.”
“바로 화음(和音)이라는 것이다.”
“!”
조선의 가곡은 모두 제창(齊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어린 군자는 알 리가 없었으나 현세의 군자에겐 익숙한 개념이었다. 그 역시 처음으로 화음을 느낀 순간 같은 반응을 보였더랬다.
“화음, 화음이라···.”
음률의 조화에 놀란 어린 군자를 뒤로 한 채, 일곱 소년들은 숙부 유형원을 빙그르르 둘러쌌다. 이제는 숙부에게서 군자를 해방시킬 차례였다.
“이제 군자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충분히 깨달았을 것이오.”
“···.”
“게다가 당신이 그토록 고치고 싶어 했던 그 창병 역시 그와 연관이 있음을 알았을 것이고.”
“···.”
“이제 당신에겐 더 이상 군자를 속박할 명분이 없소.”
“···.”
더는 할 말이 없다는 듯, 유형원은 고개를 푹 떨군 채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동안 당했던 수많은 고초를 생각하면 해코지를 해야 마땅하나, 군자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제 가자.”
“군자야, 그냥 가게?”
“복수를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이겠느냐. 어린 내가 자유로이 살 수 있다면, 그걸로 더 이상의 고민은 없다.”
“후으음, 그렇구만.”
“자, 이제 가자꾸나.”
넋이 나간 숙부를 툇마루에 남겨 둔 뒤, 군자는 어린 군자의 손을 잡고 저잣거리로 향했다.
“후아아, 이제 끝인 거지?”
“시간도 좀 남았는데, 조선 구경이나 하다가 가여!”
“그래 그래, 우리가 언제 또 시간여행을 해 보겠냐구.”
“허허, 그럼 저잣거리로 한번 나가 보겠느냐.”
“저잣거리? 그럼 공연도 할 수 있는 건가?”
“아하하핫, 재미있겠는데~”
“애기 군자, 넌 포지션 뭐야?”
“예? 포지선(鋪志善)? 그것은 또 무엇입니까?”
“와 씨, 군자 처음 봤을 때 생각날려고 하네.”
“하하, 포지션이란 말이다···.”
소란스러운 동물잠옷 소년들이 저잣거리로 향하는 동안, 대열에서 조용히 빠져나온 인혁은 숙부 유형원에게 다가갔다. 유형원은 여전히 황망한 표정으로 툇마루에 주저앉아 있었다.
“유형원.”
“···?”
“군자는 너를 용서한 것 같지만, 난 속이 좁은 남자다.”
“···그게 무슨···.”
“약속 하나는 받아 놓아야겠다.”
“약속?”
“다시는 군자 앞에 나타나지 마.”
“!”
“대답해라.”
“네 이놈, 감히 누구를 협박하려는 것이냐.”
“생각보다 머리가 나쁘군.”
“무, 뭐라?”
“하지만 머리가 나빠도 고통은 기억하겠지.”
“?!?”
오